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9화 (9/29)

9. 실망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샌포드는 너무 완벽하다는 사실, 너무 멋지다는 사실을.

그것을 도널리는 오늘 저녁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유니온 호수에 있는 그의 하우스보트에서 근사한 저녁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 시애틀의 스카이라인과 눈 덮인 올림픽 산맥이 로맨틱한 정경을 자아냈다.

식사를 마치고 어두워지자 그들은 벽난로 앞에 다정하게 앉았다. 도널리는 그의 단단하고 강한 가슴에 사뿐히 기대었고, 그는 두 팔로 도널리를 감싸안았다. 이따금 그는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목에 감미롭게 키스하며 속삭였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얼마나 완벽한지.

하지만 도널리는 그가 왜 아이들이나 가족 이야기를 피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는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아니요, 샌포드.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군요.]

[내가 만약 가정을 원했더라면 벌써 몇 년 전에 결혼을 했을 거요. 데이트라인에 접수하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타입을 구체적으로 알려줬지. 나만큼 사회적 경력을 중시하는 여자. 나처럼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자를.]

[난 가정을 원해요. 내가 데이트 서비스를 신청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구요.]

샌포드는 천천히 숨을 내쉬고 도널리의 어깨에 이마를 얹었다. 그의 괴로움이 그녀 자신의 괴로움처럼 아프게 전해왔다.

[오, 도널리. 이런 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깊은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타협점이 보이지 않았다.

[난 아버지가 된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어. 이런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싶진 않아.]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아니.]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엄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어. 내 입장은 분명하니까. 벌써 몇 년 전에 정관수술까지 했어.]

도널리는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정관수술이라니.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확고하단 말인가?

[사랑해, 도널리.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

그가 도널리의 머리카락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도널리는 꼭 샌포드 같은 남자를 기다려 왔었다. 샌포드는 그녀가 꿈꾸어 온 모든 것들의 화신이었다. 그녀에 대한 자상함이 항상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다. 배려가 깊고, 부드럽고, 열정적인 연인이었다. 그는 완벽한 남편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지가 않았다.

[무슨 말이든 좀 해봐.]

그가 불안한 어조로 채근했다.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가해졌다.

[난......난 언제나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그 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겐 아이들이 필요 없어, 도널리. 아이들에게 쏟을 정열을 우리 서로에게 쏟는 거야. 서로의 꿈을 실현해 가고, 우리 나이의 다른 부부들이 가질 수 없는 자유를 자길 수 있다고.]

그는 그들의 미래에 대해 찬란한 그림을 그려 가며 그녀를 설득하려 애썼다.

도널리는 눈을 감고 샌포드가 들려 주는 장밋빛 환상에 빠지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가 들려주는 말은 얄팍하고 공허하게만 들렸다.

지금까지 그들은 말다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의견이 다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일은 그들이 서로의 차이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만약 당신이 정관수술한 걸 회복시키지 않으면 우리 관계를 계속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죠?]

그는 잠시 굳어졌다.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

[나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리고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키스해 줘요, 샌포드. 어서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줘요.]

그녀의 다급한 요청에 그는 갈망으로 답했고 도널리를 두꺼운 카펫위에 누이고 입술을 겹쳐왔다. 샌포드를 잃어버리는 아픔을 감수하느니 다른 방법을 찾으리라고 도널리는 맹세했다.

그들은 침실까지 갈 사이도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린,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그 거실 카펫 위에서 나누었다. 벽난로의 불꽃이 무심하게 타닥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러 내렸지만 샌포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뜨거운 정열의 순간에 도널리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샌포드를 사랑했고, 샌포드도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는 자신의 일부를 그녀에게 주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감정은 내주지 않았다. 그의 몸이 그녀의 육체를 채우고 만족시킬 때에도 감정적으로는 도널리와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도널리는 깨달았다. 그녀가 자신의 꿈을 버릴 때에만 샌포드는 그녀에게 전부를 줄 것이다.

만약 꿈을 버린다면.....

도널리는 눈을 감고 사랑하는 남자의 따뜻하고 감미로운 체취를 들이마셨다. 아이가 전부는 아니었다. 동생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으면 되고, 또 좀 있으면 할리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 조카들, 그리고 친구들의 아이를 사랑하면 된다. 샌포드 말이 맞았다. 그들은 서로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또 말이 없군.]

샌포드가 귓가에 속삭이고는 부드럽게 키스했다. 방금 사그라들었던 정열의 불꽃이 다시 피어올랐다.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말할 수 없어요.]

[알아야 돼, 도널리.]

그는 도널리의 손을 들어 손가락을 깍지끼고는 카펫 위로 내리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도널리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사랑해요, 샌포드.]

[사랑해.]

그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에 그녀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겠죠.]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그의 눈에 천천히 안도의 빛이 번졌다.

[그 보상을 반드시 하겠어.]

그는 키스를 퍼부으며 약속했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로 그녀에게서 내려와 카펫에 반듯이 누웠다.

[우린 아이들이 필요 없어, 우리 둘만 있으면 돼.]

[그래요.]

그녀가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또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전부를, 그의 가슴에 있는 모든 것을 남김 없이 주었다.

도널리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가슴 속은 여전히 텅 빈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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