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빼기 운동
2월에 보기 드문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몇 주일째 하루도 빠짐없이 집 안에서 운동만 해온 터라 할리는 오늘 비가 그친 짬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녀는 새로 맞춘 세 벌의 운동복 중 하나를 골라 입었다. 진한 녹색에 바지 양 옆으로 진분홍색 줄이 덧대 있었고, 지퍼가 달린 재킷은 기하학적 디자인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모양새가 좀 나아진 것은 같았다. 목표로 한 5킬로그램 중 이제 3.5 킬로그램은 빠진 것이다. 물론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 3.5킬로그램이 영원히 빠졌다고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어딘가 숨어 있다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는 순간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루 러닝 머신을 안 달린다거나 유혹에 못 이겨 초코칩 하나를 먹는 날이면 고스란히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제 1.5킬로그램 남았다. 그 1.5 킬로그램까지 빼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와 같은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목표 체중, 얼마나 좋은 말인가.
발렌타인 데이 전까지는 그 목표 체중을 달성할 것이다. 그 정도면 시간이 충분하다.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 동료 중에서 그녀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던 몇몇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제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알려 놓았다. 아직 연락 온 것은 없었지만, 시간은 있었다.
그녀는 현관문을 열고 화창한 햇볕 속으로 나갔다. 오랜만의 햇볕을 즐기러 나온 사람이 그녀 혼자만은 아니었다.
옆집 남자가 현관에 나앉아 있었다. 스티브 매리스와의 첫 대면에서 발을 잘못 내딛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하필이면 데이트라인에서 온 우편물을 볼 게 뭐람!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했다면 좀 나았을 것을 입을 연 것이 잘못이었다. 아니, 그건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니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신음 소리가 나왔다.
[안녕, 할리 누나!]
스티브의 아들이 그녀 쪽으로 달려왔다. 동네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없으니 주말마다 아버지와 같이 지내자면 따분도 할 것이다.
[안녕, 꼬마야. 오늘은 뭐하니?]
[아무 것도 안 해요.]
케니는 지루하다는 듯 말했다.
할리는 머리 위로 팔을 들어올리고 숨을 천천히 내쉰 다음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손끝을 땅바닥에 댔다. 왜 이렇게 하는지는 몰랐다. 달리기 선수들이 경기 전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엔 필경 무슨 좋은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한 달 동안 러닝 머신 위에서 하루 평균 3킬로미터씩을 가파른 지형을 달리는 것과 같은 시뮬레이션 코스로 달렸으니 실제 달리기에서 1.5킬로미터는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할리는 생각했다. 차의 속도계로 측정해 보니 윌로우 우즈 입구까지가 정확히 0.8킬로미터였다. 거기까지는 문제없이 갔다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새로 산 운동복이 더러워질까 봐 너무 땀을 빼도록 달리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녀가 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지켜보던 케니가 물었다.
[조깅하려고 준비운동하는 거야.]
[누나 조깅도 해요?]
꼬마는 저으기 감탄한 기색이었다.
[응.]
[얼마나 멀리?]
[1.5킬로미터.]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로 하고, 익숙해지면 길이를 좀더 늘릴 생각이었다.
[나도 같이 가도 돼요?]
[아빠가 허락하시면.]
할리는 두 팔을 흔들어대며 팔운동을 하고 난 뒤,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서서 목운동을 했다.
케니는 얼른 할리의 집 잔디밭에 자전거를 들여놓고는 쏜살같이 아빠에게 달려갔다.
할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렉과 함께 '신나는 스포츠 세계'를 본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케니가 속사포로 아빠한테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티브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허락해 줬어요.]
케니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왔다.
케니를 생각해서 할리는 느린 속도로 출발했다. 첫 번째 코너를 돌 때 케니는 조금 속도를 빨리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할리는 숨이 차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리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세 번째 블록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건 경주가 아니다.]
할리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간신히 말했다.
[어머, 내가 너무 빨랐죠? 미안해요.]
케니는 금방 속도를 늦추었다.
정문이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있지.......내가.......운동화를 잘못 신은 것 같아........]
할리는 헉헉댔다. 그녀는 멈춰 서서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는 미친 듯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운동화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할리도 그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나, 괜찮아요?]
케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응........아무렇지도 않아.]
[돌아갈 수 있어요? 내가 가서 아빠를 데리고 올까요?]
스티브 매리스에게 이런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할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아주 어렵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시늉을 했다. 허파가 불이라도 난 것처럼 뜨거워져서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길이었다. 하지만 거리는 여전히 0.8 킬로미터나 되었다. 같이 가는 이 꼬마는 그녀의 주위를 뺑뺑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빠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아빤 정말로 이해심이 많거든요.]
할리는 이를 악물고 거짓말을 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이야.]
[정말?]
[정말.]
꼬마가 속으로 흉을 보든지 말든지 그녀가 알 바 아니었다. 땀을 안 흘리려던 계획은 이미 무산돼 버렸다. 땀은 소나기처럼 흘러나와 머리카락을 적시고 윗입술과 이마에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사뭇 괜찮은 폼을 유지하며 그녀는 스티브 부자의 집을 지나서 그녀의 집까지 왔다. 그녀는 계단 맨위에 털썩 주저않아 마치 조깅을 즐기고 온 것 같은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사기였다. 사실 그 속은 CPR 사진을 찍어 봐야 할 지경이었다.
[좀 식힌 다음에 들어가지 않아요?]
케니가 물었다.
[샤워를 해야겠어.]
[아빠가 그러는데 조깅을 한 다음엔 좀 걸어야 몸이 적응을 한대요.]
그러면서 케니는 걸어다녔다. 할리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몇 분이 지나자 그녀의 심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할리는 케니에게 같이 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눈에 익은 차 한 대가 길모퉁이를 돌아 들어 오는 게 보였다. 도널리였다. 할리는 반가워서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생활이 바빠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못했다.
도널리는 키가 크고 늘씬하며 다갈색 머리가 어깨까지 치렁거리는 아주 인상적인 여자였다. 그녀의 기다란 다리가 차 밖으로 뻗어나오더니 이내 전신이 드러났다. 그 우아한 자태는 부드러운 남부 억양만큼이나 그녀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두 사람은 5년 전에 다른 친구를 통해 만났는데 만난 즉시 원래의 친구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렸다. 할리는 대학교 때 친구들보다 도널리와 생각이나 가치관이 더 비슷했다. 대학 친구들은 거의다 결혼을 했고, 개중에는 두 번 결혼한 친구도 있었다. 할리는 아직 한 번도 못해 보았건만. 할리는 결단코 결혼은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부모님처럼.
도널리와 할리는 둘 다 사업가였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지난 2년 동안 그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우정을 돈독히 해왔다. 할리는 직원이나 거래처, 어떤 문제로든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도널리에게 풀었고, 도널리 역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할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인생의 행로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도 사실 할리에겐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생각은 종종 같은 모습을 띠었다. 읽는 책도 같았고, 영화 취향도 똑같았으며, 그 밖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비슷했다. 2년 전에는 두 사람이 따로 쇼핑을 갔다가 똑같은 구두를 산 적도 있었다. 물론 색깔은 달랐지만.
할리도 성격이 좋아서 유치원 시절부터 친구가 많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도널리와 같이 있을 때 제일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물론 울기도 했다. 도널리는 말하자면 진짜 친구였다.
[전화 걸어 봤니?]
도널리가 물었다.
[뻔히 알면서 왜 물어?]
할리는 현관문을 열고 부엌으로 친구를 데리고 들어갔다. 할리는 음식 만드는 재주는 없어도 예술적인 감각은 뛰어났다. 노란색과 흰색 위주로 꾸며 벽 윗부분에 담쟁이 무늬를 돌린 실내는 밝고 쾌적했다. 할리는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도널리는 할리가 물을 권하자 고개를 흔들며 카운터에 앉았다.
[어떻게 생각하니?]
[팜플렛 말이야?]
할리는 도널리가 신청을 하도록 꼬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데이트라인엔 신청하지 않을 거야.]
도널리는 실망을 굳이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안 해봤지? 해봤다면 요즘 결혼 시장에 파고 들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걸 알았을 거야. 대학 다닐 때와는 사정이 달라. 그땐 어딜 봐도 안전한 남자들이 있었지.]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우선은 내 힘으로 해보고 싶어.]
2천 달러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최소한 혼자 힘으로 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일단 도널리가 먼저 등록해서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리타한테 전화했었어.]
할리가 털어놓았다. 리타는 할리와 도널리를 연결시켜 준 두 사람의 친구였다. 그녀는 로맨틱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앞을 예측하기 힘들었으며, 친구들한테 데이트를 주선해 주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을 섰다.
도널리는 자못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설마 내가 데이트라인에 등록했다는 이야기 걔한테 한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 그건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야. 전화를 한 건, 그냥 내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어.]
그 말에 리타가 보인 반응이 생각나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남자를 만나고 싶어하게 된 것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더라.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라나. 결국 나는 후회하면서 끝나게
될 거라는 거야.]
할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몇 년 동안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도 조르길래 내가
결혼할 마음이 생겼다고 하면 얼씨구나 할 줄 알았더니 전혀
딴청이더라구.]
할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가 가정을 갖고 싶다고 하니까, 리타 말이 유전자가 좋은
남자를 찾아서 임신을 한 다음 발목을 잡으라는 거 있지.]
[리타가 그런 소리를 해?]
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썰렁하지 않니?]
그녀는 리타를 좋아했다. 그래서 계속 연락을 하려고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성격이 달랐다. 예를 들어, 리타는 자기가 가장 엉뚱한 말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했다.
[네가 원하는 게 아이뿐이라면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하다.]
도널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게 아니잖아. 난 아이도 원하지만 남편도 원해. 내가
바보니? 말도 마. 내 동생이 엘렌과 씨름하는 걸 봤는데
그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갓난아이는 한
순간도 엄마 없이 못 사는 것 같더라. 제이슨과 엄마와 내가
도와주는데도 그래. 다행히 제이슨은 아빠 노릇을 아주 잘해.
여자 혼자서 애를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더라. 난
그런 엄두도 못 내.]
[나도 그래.]
도널리도 맞장구쳤다. 그녀의 길게 끄는 말투가 다른 때보다도
더 두드러졌다. 도널리는 열세 살 때 조지아에서 이사를 왔지만,
지금까지도 그 남부 억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갑자기 도널리는 빙긋이 웃었다.
[우리가 엄마가 된다는 게 상상이 가니?]
[그럼.]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긴 했어도 할리는 그녀 나이가 되면
다른 여자들도 이런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도널리는 이혼
경험이 있어서 지레 겁부터 먹는 것이리라.
[있지, 데이트라인에서 어제 전화가 왔어.]
도널리는 할리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핸드백의
가죽 줄을 만지작거리며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하고 맞는 남자를 찾았대.]
그제서야 도널리는 할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벌써?]
인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실 놀라웠다.
[관련 정보를 팩스로 보내면서 그걸 검토해 보고 다시 전화를
하라더라. 그래서 그렇게 했지. 그랬더니 1시간 후에 샌포드란
남자가 전화를 한 거야.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어.]
[샌포드?]
[알아, 갑갑하고 보수적인 남자가 얼른 떠오르니?
그런데 조금 이야기를 해봤더니..........]
[해봤더니?]
도널리가 머뭇거리자 할리가 채근했다.
[있지,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이상적인 남자 같았어.]
[이상적이라고?]
데이트라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더 환상적인
곳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난 무서워, 할리. 래리를 처음 만났을 때도 기분이 이랬거든.
하지만 그때야 내가 아는 게 뭐가 있었니? 열아홉 살밖에 안
되었고, 생전 처음으로 집을 떠나 있었잖니. 연쇄 살인범이라고
해도 나한테 잘해 주기만 하면 넘어갔을 거야.]
도널리는 이혼했던 남자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남자는
결혼 생활 1년 만에 그녀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다른
여자에게로 갔다. 도널리의 자존심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고,
그녀의 자아는 넝마짝처럼 해어졌다. 다시 회복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완전히 아물었다고는 할리조차도
장담하지 못했다. 그녀는 도널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했다.
[이번엔 달라.]
할리가 그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지금은 철부지 어린애가 아니잖아.]
[서른세 살 철부지 노처녀지.]
두 사람은 같이 까르르 웃었다.
도널리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좋아, 샌포드는 서른 여섯 살이고, 보험회사 간부야.
전과는 없어.]
[경찰 기록에 전과가 없다는 말이야?]
그건 할리도 없기를 바라는 일이었다!
[결혼한 적이 없다는 말이야, 데이트라인에서 쓰는 표현이야.]
[아.]
이 데이트라인이라는 데는 전문 어휘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흠, 재미있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얘기가 끝이 없더라고.]
도널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샌포드도 나와 같이 느꼈대. 우린 같은 주일날 데이트라인에
등록을 했어. 그 사람도 나만큼 불안해하면서 한 거래.
근무시간 중이었는데 30분도 더 넘게 얘길했지 뭐야. 몇 마디
나누면서 금방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그 사람도 그랬대. 꼭
평생 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더라니까. 샌포드도 텍사스
음식과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대. 나도 좋아하는 거잖아.
그리고 하우스보트(집처럼 지붕도 만들고 주거를 할 수
있도록 만든 배)에서 산대. 나도 늘 하우스보트가 너무나
로맨틱하다고 생각해 왔었잖니. 또 에마 톰슨이 나오는
영화라면 뭐든 다 보고 스티브 마티니 소설을 주로 읽는대.
안 믿어지지? 물론 이런 것들은 피상적인 것이지만, 우리
둘이 잘 통할 수 있다는 말은 되잖아. 최소한 얘깃거리가
많잖아.]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샌포드도 나만큼이나 놀라워하고 좋아했어. 전화를 끊기가
아쉬울 정도였단다.]
[하우스보트에서 산다구?]
이 작자는 할리에게도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도널리와
틀어지면 소개해 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지?]
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도널리 입장이어도 그럴 것이다.
[암만 해도 그 남자가 너무 괜찮은 게 마음에 걸려.]
도널리는 신음 소리처럼 말했다.
[그 남자 만나는 순간 일이 깨져 버릴 거야.]
[그걸 어떻게 아니?]
할리는 자신있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녀도 도널리만큼
겁이 났다. 그 남자에게도 뭔가 결점이 있을 것이 아닌가.
사람은 겉보기와 다를 때가 많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성격상의 결점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하니까.
[처음엔 이렇게 성공하고 매력적인 남자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을까 의아했어. 그런데 그의 편지를 보니까 이해가
가더라.]
할리의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에 도널리가 설명했다.
[데이트라인에서 그 사람이 쓴 자기 소개서를 보내줬거든.
대학교 때 학자금 융자 받은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결혼을
미룬 거래. 그 사람한테는 경제적인 안정이 중요한 거야.
난 그 점도 존경스러워. 데이트라인은 등록한 고객들의 신용
기록까지도 조사하는데 그 기록이 깨끗해야 접수할 수 있다고
계약 내용에 포함되어 있대.]
신용 카드 기록까지 조사해 본다니 과연 철저하게 회원관리를
하는 모양이었다.막 그 말을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할리는 수화기로 손을 뻗으면서 부엌 창문으로 스티브
매리스와 그의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케니에게
소프트볼을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여보세요.]
[너 고맙다고 해.]
리타가 다짜고짜 말했다.
[뭘?]
[장래 남편감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았어.]
리타가 선언했다.
[만나 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