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1화 (1/29)
  • 그들만의 웨딩(This matter of marriage)

    데비 매컴버 지음

    김정숙 옮김

    1999년 신영 장편로맨스

    일과 성공을 향해 열심히 뛰느라 데이트 한번 변변하게 해보지 못한 할리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에 무언가가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남자! 아니, 삶을 같이 나눌 동반자!

    1년 안에 결혼하기로 정한 할리는 남자들을 소개받고 데이트 소개업체까지 두드린다.

    하지만 만나는 신랑감 후보마다 도망을 가고 싶을 지경이었고 마침내 발견한 사람 역시........

    옆집의 잘생긴 남자 스티브와 잘해보는 게 오히려 나을까?

    1. 새출발

    1월 1일

    해마다 새해가 되면 맹세를 한다. 몸무게를 2.5킬로그램,

    아니 솔직하자, 5킬로그램 정도 빼고, 크레디트 카드를 조금만

    쓰고........

    매년 1월 마다 다짐한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물론

    몸무게를 빼긴 해야겠지만 금년엔 좀더 빼야겠다. 그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결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낳을

    것이다.

    우선 계획을 세워야겠지. 난 목표를 세워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정해 놓고 정진하기를 좋아한다. 올해

    내 목표는 결혼! 결혼을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살을 빼는 것이다--지금의 모습도 그렇게 흉하진 않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내 다리야, 잘 듣고 있지?--광고를 하면서

    깨달은 것처럼, 뭐니뭐니 해도 포장이 중요하니까.

    몇 가지 계획들을 써놓고 보니 여러 가지가 더 보인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한참 되었다. 캐시, 제이미, 리타, 제인은

    모두 졸업하고 6개월도 안돼서 결혼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결혼을 '여성의 도피처'라고 부르며 싫어했다. 사회로 나가

    봤자 공연히 고생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결혼을 택했으리라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다.

    난 그 애들과 달랐다. 결혼은 너무 진부하게만 느껴졌다. 난

    우선 사업이란 게 뭔지 해보고 싶었다. 그래픽 회사를 세워

    내 이름을 한 번 날려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해냈다!

    이제 나는 완전한 원을 다 그린 것 같다. 그런데 인생에는

    상공회의소에서 주는 '올해의 여성' 상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지난 크리스마스 때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지난주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결혼을 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도 이제 남자가 들어와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남자를 만나는 것을 뭐랄까.......후식쯤으로

    생각했었다. 가끔씩은 좋지만, 매끼니 마다 먹을 것은 아니라고,

    친구들이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성화였지만, 그때마다

    나는 퇴짜를 놓았었다.

    리타 말로는 내가 너무 까다롭단다. 그렇지 않다. 다만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뿐.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지만 내가 아직 결혼을 안 한 것은 일 때문이다. 지난 6년

    동안은 회사에다 나의 관심과 능력,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삶의 매순간이 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내가 성공만으론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6월 아빠가 돌아가신 일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아직도 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줄리와 나도

    마찬가지고.

    아빠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정말 침울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빠가 늘 하던 일들이 생각나서 우린 내내 울먹거리면서

    지냈다. 줄리와 내가 어렸을 때, 우리가 만든 장식을

    세상에서 최고의 작품인 것처럼 칭찬을 하면서 트리에

    장식을 하고, 이브날 밤에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글을 읽어

    주고, 산타 앞치마를 입고 칠면조를 자르던 아빠.......

    줄리의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 위안이 되리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그러나 나한테도 엘렌이 그렇게 엄청난 효과를

    미칠 줄은 몰랐다.

    난 언제나 내가 강하고 독립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주위에 남자가 있는 것도

    싫었다. 그런 내가 달라진 것이다.

    줄리가 아기를 봐달라고 안겨 주었을 때의 뭉클함이라니.

    가슴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을 모성 본능이라고

    하지? 바로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 인생에 빠져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남편, 아이, 그리고

    가정.....

    남편만 제대로 만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가지게

    되겠지. 집, 가정, 일. 다른 여자들도 다 가졌는데 나라고

    못 가지란 법이 없지 않은가. 신기한 일이다. 아기 한 번

    안아 본 후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난 이제

    준비가 되었다. 지금부터 내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죽기살기로 매달렸던 일이 지금은 저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래, 인정해.

    난 남편과 아이들을 갖고 싶다. 순서대로 하자면 우선

    남자부터 있어야겠지.엄마는 내가 일단 마음을 먹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 만다고 한다. 이제 목표가 정해졌고

    계획을 세웠으니 2, 3개월 안에 남편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정초에는 아마 주부가 되어 있겠지? 임산부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이마에서 땀방울이 굴러 떨어지며 눈 속으로 들어가

    순간적으로 할리의 시야가 흐려졌다.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그녀는 눈가를 닦았다. 쳐다보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음에도 저도 모르게 눈이 러닝 머신의 타이머로 향했다.

    이제 1분만 더 하면 된다.

    60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이 각오를 다지자

    다리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끈기있게 부저 소리가

    나기만 기다렸다.이 러닝 머신은 색을 맞춘 디자이너 조깅복

    3벌까지 포함해서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정해 놓은 시간이

    되면 4인치짜리 컴퓨터 스크린에 디지털 메시지가 뜨기까지

    한다.

    도널리는 헬스 클럽에 가야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헬스 클럽에 가려면 우선 체중을 줄여야 했다. 돼지 같은

    다리로 클럽 안을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숨이 턱까지

    차 헉헉거리며 할리는 러닝 머신 양옆을 잡고 타이머를

    노려보았다. 이 마지막 1분은 평생 가장 긴 1분처럼 느껴졌다.

    할리는 머리 속으로 결승전을 상상하며 무심코 거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누가 이사 오나? 옆집 콘도 앞에

    이삿짐 차가 서 있고, 우람한 체격의 남자들이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 뒤에 대형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할리가 윌로우 우즈라고 불리는 이 콘도 단지로 이사를 온

    것은 6개월 전이었다. 지금은 거의 다 입주가 끝났고, 할리의

    옆집도 머지 않아 들어오리라 예상하던 터였다. 특히 옆집은

    단지 내에서 가장 평수가 넓은 형이었고, 침실이 3개나 되었다.

    따라서 입주자들은 아이들도 있는 가족일 것이다. 이웃이

    생긴다니 반가웠다.

    타이머가 울리며 러닝 머신이 멈추었다. 할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수건으로 닦았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땀에 젖은 짧은 곱슬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었다.

    러닝 머신을 살 때 같이 산 새 운동복을 입고 땀을 빼기가

    아까워서 전부터 입던 회색 운동복을 입고 뛰었는데 이제

    그 허리가 헐렁하게 느껴졌다. 뭔가 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당장이라도 목욕탕으로 달려가 체중을 달아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런 실수는 이미 여러 번 했다. 이제는 1주일에

    딱 한 번만 체중을 달아 보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하리라.

    21일 만에 2.5 킬로그램을 뺐다. 처음 1킬로그램은 쉽게 빠졌다.

    그러나 그 다음 1.5킬로그램은 찻숟가락으로 콘크리트를 긁는

    것처럼 어려웠다. 굶기도 하고, 끈기있게 운동을 계속했다.

    지방, 탄수화물, 그리고 초콜릿 칩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인 도널리 쿠퍼는 할리가 몸에 너무 신경을

    쓴다고 했지만, 할리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가 아는 한

    남자들이 여자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은 특히,

    첫인상의 경우 전적으로 여자의 외모에 달렸다.

    가는 허리에 풍만한 가슴이라면 여자의 머리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남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살을 빼는 목적이 남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동안은 운동을 너무 안 했고 걸핏하면 아침을 거르고 일을 하면서 패스트푸드를 구겨 넣는 식이었다. 결코 바람직한 생활 습관이 아니다. 그런 설명을 해도 도널리는 곧이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 심하게 아픈 적도 없지 않냐는 것이 그녀의 지적이었다.

    도널리는 스무 살 때 잠깐 결혼을 했었지만 불행하게 끝났다. 할리가 1년 안에 남자를 찾아 결혼을 하기로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도널리도 같이 합세하겠다고 나섰다. 도널리 역시 다시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할리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아이를 원했다. 도널리는 이 결혼 계획에 할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대처했다. 다른 전략을 가지고 나왔다.

    [그냥 네 모습 그대로면 돼.]

    그녀의 충고였다.

    [내 모습대로 지금껏 살아서 누가 관심이나 줬니?]

    할리가 투덜거렸다. 최소한 도널리는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데이트 건수도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이제부터 그런 상황을 바꿀 것이다.

    할리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킷샙 페닌슐러에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리는 성격도 외모도 아버지와 가까웠다. 하지만 예술적인 재능은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다. 루실 매카시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음에도 바깥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재능이 있는 여자가 집안일을 돌보는 것 외에 달리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할리는 늘 불만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몇 달 동안 할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머니의 저력을 깨달았다. 크리스마스 때 할리가 유화 배우기를 권해서 지금 루실은 레슨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루실은 잠이 든 엘렌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전화를 끊고 할리는 장을 봐야 할 물건들을 메모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운전석에 막 앉았을 때 새로 이사온 사람인 듯한 남자가 보였다. 키가 컸지만, 근육질은 아니었다. 단단한 체구 정도에 어깨가 넓고, 거부감이 들지 않는 미남형이었다. 그를 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결혼을 한게 분명했으므로.

    얼굴은 괜찮아 보였다. 뭔가 좀 들어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고, 물론 친구로서지만 알고 지내면 좋은 것 같았다. 그녀는 옆에 있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주 귀여워 보이는 남자아이가 손을 흔들며 밝게 웃고 있었다.

    할리도 손을 흔들어 주고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거의 1시간쯤 지나 돌아왔을 때 이삿짐 차는 가고 없었고 꼬마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이가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할리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우리 아빠가 저 옆집으로 이사 왔어요.]

    꼬마는 자전거를 급히 멈추고 내렸다.

    [봤어.]

    할리는 장을 보아 온 꾸러미들을 주섬주섬 집어들면서 말했다.

    [전 케니예요. 애들 있어요?]

    케니가 대뜸 물었다.

    [미안하지만 없는데.]

    그녀는 양손 가득 꾸러미를 들었다.

    케니는 실망하는 듯했다.

    [이 동네에 애들 있는 집 있어요?]

    [아마 네 또래 아이들은 없을 거야.]

    이 콘도 단지로 이사 온 사람들은 거의가 신혼부부였다. 몇 년 후에는 아이들이 생길지 모르지만, 지금은 없었다.

    [내가 들어다 줄게요.]

    케니가 자전거를 잔디에 눕혀 놓고 할리의 짐꾸러미 중 하나를 들었다.

    [고맙구나.]

    할리는 어린 꼬마의 마음 씀씀이가 대견했다.

    케니는 그녀의 칭찬에 얼굴이 함박꽃이 되었다.

    [엄마도 아빠와 이혼한 후론 내가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어요.]

    이혼 얘기에서 케니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할리의 가슴도 따라 아렸지만 동시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이 결혼 상대자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생전 처음으로 남편감을 찾겠다는 결심을 다진 마당에 자동적인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할리는 그의 첫인상을 다시 떠올리며, 그녀가 원하는 남자는 그보다는 좀더 뭐랄까, 풍치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이삿짐 센터 사람들이 나르는 짐을 봤었는데, 온통 운동 기구뿐이었다. 등산에서부터 보트 타기나 스쿠버 다이빙까지 안 하는 게 없는 것 같았다.

    할리는 부엌으로 들어가 싱크대 위에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케니도 자기가 들고 온 것을 그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정말 고마웠어, 케니.]

    [결혼했어요?]

    케니가 물었다.

    [아직.]

    그녀의 머리 속에선 결혼 반지가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어제 만났던 남자와 결혼할지 누가 알겠는가.

    [이제 가서 점심을 먹어야겠어요. 다음 주말에 또 만나요.]

    케니가 현관으로 가면서 소리쳤다.

    장 봐온 물건들을 치우는데 전화기에서 수신된 메시지가 있음을 알리는 불이 깜박거렸다. 아마 엄마가 또 전화를 걸었거나 아니면 동생 줄리가 딸 자랑을 하려고 걸었겠지.

    만약 그 남자라면? 그 남자란 키스턴 은행의 대출계에 새로 부임한 직원이었다. 할리는 금요일 오후에 은행에 갔다가 존 프랭클린이라는 이 남자를 처음 소개받았다.

    그를 보는 순간 할리는 이 남자야말로 자기가 남편감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큰 키에 거무스름한 피부, 게다가 미남이었다. 친절하고 예의바르며 분명 지성도 있어 보였다. 기본적인 기준은 모두 합격이었다. 손에 결혼 반지가 없는 것도 확인했다. 나이는 마흔 살 가까이 되어 보였다. 열한 살 정도의 차이가 무슨 문제겠는가? 그녀는 3개월 후면 서른 살이 된다. 분명 4월까지 약혼은 하고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메시지를 남긴 사람은 존이 아니라 도널리였다. 무슨 일인지 목소리가 붕 떠서는 할리에게 집에 오는 즉시 전화를 걸라고 선언했다.

    [전화했었니?]

    [답을 찾았어.]

    뜬금없이 도널리가 서둘렀다.

    [뭘 말이야?]

    할리는 별로 신날 것도 없었다. 아직 점심도 안 먹었고, 배가 고프면 아무 것도 하질 못하는 사람이 그녀였으니까.

    [우리가 꿈에 그리는 남자를 어딜 가면 만나는지 알아?]

    [아아.]

    이제 좀 관심이 끌렸다.

    [어디서 만나는데?]

    [그 답이 좀 복잡하니까 잘 들어 봐.]

    [도널리.......]

    [그냥 내 말 끝날 때까지 잘 들어 달라니까, 그것도 못해?]

    할리는 마지못해 그러마고 대답했다.

    [<시애틀 위클리>에서 데이트 서비스 광고를 봤어.]

    할리는 신음 소리를 냈다. 정말 절박한 사람들이나 그런 데이트 중개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자를 만나겠다고 접수하는 남자들이 도대체 어떤 부류일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설마 농담이겠지?]

    [끝까지 듣겠다고 약속했잖아.]

    할리는 눈을 감고 제발 참을성을 달라고 기도했다.

    [이 데이트 서비스는 다른 데와 달라.]

    [비디오를 쓴다니?]

    [그게 아냐. 제발 끝까지 잠자코 들어 줄래?]

    [미안해.]

    [너나 나나 여류 사업가잖아? 대부분의 남자들은 우리 같은 여자들을 겁내.]

    할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경우엔 또 결혼도 했었잖아.]

    [13년 전 일이야.]

    [조금 있으면 13년이 15년으로 되고, 그 다음엔 20년이 돼. 결국 이꼴로 일평생이 다 지나가는 거야. 10대를 벗어나자마자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할리, 난 혼자 살고 싶지 않아. 난 남자가 있어야 해. 아이들도 있고, 교외에 집도 있고, 담장은 흰색 페인트로 칠하고 말야. 고양이와 개도 기를 거야. 왜 지금까지 미루어 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네가 결혼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난 계속 다음으로 미루고 살았을 거야.]

    [나보고 그 데이트 중개소에 연락해 보라는 거야?]

    [우선 신청을 해야 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눈이 돌아가게 많은 입회비를 내야 해. 그럼 그 사람들이 너한테 적당한 짝을 찾아서 연결해줄 거야. 경제적인 수준도 비슷하고, 성격도 잘 맞는 사람으로. 이 회사는 자격을 굉장히 까다롭게 해서, 회원도 많이 받지 않는대. 그 대신 일단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네가 결혼 상대자를 찾을 때까지 사람을 소개시켜 주는 거야.]

    [입회비가 얼마나 되는데?]

    할리는 최근에 운동 기구를 들여놓느라고 1,500달러를 썼다. 크레디트 카드 사용을 줄이겠다던 신년 계획도 이미 날아간 상태였다.

    도널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2천 달러.]

    [2천?]

    [응.]

    [그만한 돈이면 브래드 핏트하고도 데이트할 수 있겠다.]

    도널리는 웃었다.

    [브래드 핏트가 너나 나 같은 노땅하고 데이트하겠대?]

    친구라고 한다는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설마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그만한 돈이 있다면 할리는 지방흡입 수술을 하고 러닝 머신이나 다이어트 따위는 잊어버리겠다.

    [물론 진심이지.]

    도널리는 도전적으로 말을 이었다.

    [난 벌써 서른세 살이야. 너보다 더 시간이 없어. 이 중개업소가 나 한테 좋은 남자를 소개만 해준다면, 그만한 돈도 아깝지 않아.]

    [너 정말이니?]

    [그냥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봐.]

    할리는 아직까지는 팔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난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야.]

    데이트 중개업소를 이용한다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기도 전에 백기를 드는 것만 같았다. 이렇다 할 노력도 해보지 않은 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남자 구함'이라는 팻말이라도 들고 돌아다닐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여태까지도 남편감을 구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어. 그렇지만 구하지 못했잖아. 지금이라도 사정이 달라지겠어?]

    [지금은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까.]

    그동안도 남자를 사귄 적이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일에 묻혀 사느라 데이트에 비중을 두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비서인 바니 엘리스에게 일을 좀더 맡김으로써 일에 쏟는 시간을 차츰 줄여 나갔다.

    [결혼할 준비가 됐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진다고?]

    도널리는 회의적으로 물었다. 사실 할리가 생각할 때 도널리는 매사에 좀 회의적인 편이었다.

    [지금 관심있는 남자가 있어.]

    할리는 존 플랭클린을 생각하며 고백했다.

    [정말? 그게 누군데?]

    도널리가 캐물을 것을 진작 예측했어야 했다.

    [은행에 다니는 사람이야. 키스턴 은행의 켄트 지점 대부계에 새로온 남자. 이번주에 시애틀 지점에서 이리로 전근왔어. 금요일날 만났는데 마음에 들었어. 그 남자도 나를 마음에 들어했고, 정말 잘생겼다. 민감하기도 하고.]

    [잘생긴 민감형이라.]

    도널리가 따라서 말했다.

    [독신 중에 잘생긴 남자 찾기 정말 어렵잖니.]

    할리는 친구의 냉소적인 말투를 의아해하며 설명조로 말했다.

    [그건 그런 남자들 대부분이 남자를 애인으로 사귀기 때문이야.]

    할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존이? 그럴 수가!

    [존 프랭클린을 알아?]

    도널리는 저당 전문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이 지역 은행 직원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직접은 아니지만 듣기는 했어.]

    할리의 의심이 더욱 고조되었다.

    [무슨 말?]

    [존 프랭클린 같은 남자들 때문에 데이트 중개소가 필요한 거야.]

    [그래?]

    그녀의 자신감은 이제 산산조각이 났다.

    [네 말이 맞아. 존은 민감하고, 친절하고, 지나치게 잘생겼지, 게이라는 것 빼곤 완벽해.]

    할리는 지옥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이었다. 존 프랭클린이........?

    [자, 그러니까 너 데이트라인에 가입할 거야, 말 거야?]

    도널리가 물었다.

    [2천 달러나 내고?]

    [남자들에 대해 미리 다 조사를 해주니까 그것도 싼 편이야.]

    [브래드 핏트가 조달이 안 된다면, 그만한 돈이면 왕족이라도 대줘야 하겠다.]

    [그러면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갈 거야.]

    [어떤지 들어보기는 하겠지만 가입할지는 모르겠어.]

    [전화만 걸면 안내서를 보내줘. 그 안내서를 읽어 본 다음에 전화해, 알았지? 약속해!]

    [알았어, 알았어.]

    할리는 별 생각 없이 전화번호를 받아적었다.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도대체 이 놈의 결혼을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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