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샬로트의 웨딩마치-15화 (15/19)
  • 15.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어깨에서 목덜미로 손길을 더듬어 올라왔다. 그의 전신은 뜨거운 욕구로 웅웅거렸으며 혈관 속의 피 역시 원초적인 박자에 맞춰 콸콸 흘렀다. 딱 한 번만, 그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가 그녀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딱 한 번만 보여 주기로 하자. 그가 입술을 가져가자 그녀의 입술은 부드럽게 굴복했다. 그는 서로의 입술과 고개의 각도를 맞춘 다음 혀를 살짝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의 입 안은 살 내음과 마찬가지로 싱싱하고 감미로웠다. 그는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고 혀를 더 깊이 찔러 넣었다. 그녀는 나지막이 신음하며 그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아주 좋았다. 그녀가 그의 몸을 꽉 붙들고 부드러운 육체를 그의 몸에 밀착시켰을 때의 기분은 이제껏 겪은 어떤 경험보다도 좋았다. 그는 양 손으로 그녀의 등을 쓸고 내려가 엉덩이를 받쳐든 다음 단단해진 그의 몸 쪽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그녀를 원치 않는다고? 맙소사. 그는 여지껏 어떤 여자 때문에라도 이렇게 지끈지끈 욱신대는 열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샬로트는 그의 입에 대고 한숨을 내뿜었다. 그녀의 혀가 머뭇머뭇 그의 혀를 침범했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그 둥글고 사랑스러운 곡선 때문에 다른 부분의 곡선도 떠오른 그는 불현듯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그는 그녀의 목줄기에 뜨거운 키스를 퍼붓는 동시에 호흡을 고르려 애쓰며 그녀의 가슴을 생각했다. 풍만하고 유혹적인 가슴‥‥‥‥ 이래서는 안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맙소사, 그의 양손이 덜덜 떨렸다. 순간 그 손이 그녀의 드레스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음 순간 옷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벗겨 내렸다. 속치마에 달린 얇은 어깨끈이 나오자 그는 거의 눈길도주지 않고 무작정 끌어내렸다. 그의 심장이 갈비뼈에 미친 듯이 쾅쾅 부딪혔다. 다음 순간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풍만한 우윳빛 가슴을 옷 밖으로 꺼냈다. 아기에게 빨리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장미색 젖꼭지도 드러났다. 아기가 아니라 남자를 위한 것일까? 그는 양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받쳐들고 손가락으로 감촉을 시험해 보았다. 부드럽고 비단결 같은 가슴은 묵직했다. 그리고 그가 여지껏 그녀를 향해 품고서도 의무와 도의심 때문에 억눌러 왔던 모든 욕망이 그를 말려야 할 모든 자제심을 몰아낸 채 표면으로 확 밀려나왔다. 그는 신음하며 그 부드러운 언덕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그녀의 크림빛 살결 위를 방황하며 음미한 끝에 목적지를 찾아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젖꼭지를 감싸 물더니 혀로 굴리고 희롱하며 잡아당겼다. 샬로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음을 흘렸다. 그녀는 서로의 허벅지를 꼭 마주 댄 채 등을 한껏 젖히며 그에게 허리께를 밀착시켰다. 그는 그녀를 침대에 똑바로 눕히고 그녀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몸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샬로트의 엉덩이는 풍만하고 동그스름했다. 그는 그녀의 옷 너머로 탱탱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녀가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파묻더니 그의 고개를 자신의 가슴으로 세차게 끌어내렸다. 그가 농익은 유두를 번갈아 더욱 세차게 빨아들이자 마침내 그녀는 그를 힘껏 끌어안으면서 그의 남성에 몸을 비벼댔다. 그 바람에 그는 한층 더 미칠 지경으로 내몰렸다.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들어올려 날씬한 발목을 거쳐 부드러운 스타킹과 그 위쪽에 비단결처럼 드러난 피부를 어루만졌다. 그는 맨살인 그녀의 엉덩이를 애무하고 속옷 아래로 그녀의 곡선부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풍요로웠다. 그가 그녀의 가슴에서 성찬을 계속 맛보자 마침내 그녀는 그의 몸 아래에서 신음하며 그를 재촉하고 허리를 들어 몸을 한층 밀착시켜 왔다. 마침내 맥시밀리언은 손을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가져갔다. 딱한 번만, 그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하지만 뜨겁고 매끄럽고 촉촉한 기운을 마주하게 되자 그의 고삐는 완전히 풀려 버리고 말았다. 그는 신음했다. 그만둘 수가 없어진 나머지 그는 그녀의 꽉 조여드는 동굴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그녀의 몸 속에 자리잡을 수만 있다면‥‥‥‥그는 그녀의 몸 안에서 부드럽게 꿈틀대며 욱신대는 그녀의 중심부를 어루만지고 손가락을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마침내 그녀는 그의 몸 아래에서 몸부림쳤다. 감미롭고 순결한 샬로트‥‥‥그녀는 야생 동물처럼 침대 위에서 고개를 흔들어대며 분명치 않은 쾌락의 신음 소리를 흘렸다. 맥시밀리언의 머리카락이 풀려 얼굴 주위로 늘어지면서 그녀의 가슴 위를 휩쓸었다. 샬로트는 양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하나가득 움켜쥐더니 그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기는 한편 그의 손에 자신의 몸을 더욱 세차게 밀어붙였다. 그들이 함께 빛어내는 박자속에서 맥시밀리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다음 순간 그녀는 갑자기 몸을 굳혔고 그는 그녀의 몸을 휩쓰는 수축감을 느꼈다.

    "맥스!"

    그녀는 쾌락으로 나직이 외쳤다. 맥시밀리언은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성의 저편에 내동댕이쳐져 일찍이 알지 못하던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고있었다. 그는 바지 앞섶을 주섬주섬 풀어헤쳤다. 그녀의 치마를 허리께까지 밀어 올린 그는 그녀의 다리를 넓게 벌린 채 그 사이에 자리잡고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밀착시켰다. 그녀의 몸은 따스하고 촉촉했다. 그는 안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진입에서 느껴지는 쾌락이 너무나 격렬했으므로 그는 신음을 깨물어 참았다. 천천히 진행시켜야 한다고 자신을 억지로 다잡을 만한 이성이 아직 남아 있긴 했지만 실상 맥시밀리언의 소원은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의 몸 안에 완전히 자신을 묻어 버리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제력 비슷한 마지막 실오라기나마 움켜쥐려고 애쓰며 그녀의 새하얀 허벅지를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조금만 더‥‥‥그의 몸이 그녀의 처녀막에 닿은 그 순간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맥시밀리언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다음 순간 나직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샬로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입술은 벌어졌으며 크게 뜨인 초록색 눈에는 충족된

    욕망이 넘실거렸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과 몸을 구름처럼 감싸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소진될 때까지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이런 간절한 소망을 그가 느낀 적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는 몸을 뒤로 빼냈다.

    "샬로트"

    그는 고통스럽게 속삭인 다음 전신을 욕구로 부들부들 떨며 그녀의 치맛자락으로 하반신을 다시 가려 주었지만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벌렁 누워 버렸다. 노크 소리는 이제 요란해졌다. 하지만 욱신거리는 그의 전신이 아직도 격하게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통에 그 소리조차 그의 뇌리에 파고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샬로트‥‥‥‥ 아, 맙소사. 터져 버릴 것 같아."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이 그의 얼굴 위로 다가왔다. 아름다운이목구비는 그에게 낯익었지만 이제는 정열 때문인지 그녀가 달라 보였다. 그녀는 경악과 근심이 가득한 눈을 깜박였다. "아아, 맥스."그녀가 속삭였다.

    "어떻게 해줘야 하죠?"

    맥시밀리언은 신음하며 순간 망설였지만 전설에 남을 정도였던 그의 절제력은 결국 자취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 몸을 만져줘,"

    그는 애원했다. 그녀가 손을 뻗어오자 그는 그 손을 잡고 인도해 자신의 솟아오른 남성을 감싸쥐게 했다. 그는 신음하며 고개를 떨구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물결치면서 아직도 그에게 훤히 보이는 황홀한 우윳빛 가슴으로 펼쳐져 내렸고 그녀의 가느다랗고 하얀 손이 그의 바지 앞섶으로 흥분해 솟아오른 남성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어루만져 줘,"

    그는 욕구 때문에 바싹 말라 버린 입술로 속삭였다.

    "위아래로 그렇게. 샬로트, 그래 !"

    그는 외쳤다. 그는 그녀의 손 안에서 경련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다음 순간 쾌락이 찾아왔다. 끝간데 없고 단비처럼 고마운 해방이 마침내 찾아오면서 그는 자신의 욕망을 이불 위에 흩뿌렸고 마침 그때 호스킨스가 문간에서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샬로트는 그의 육체가 보인 반응에 놀란 듯 작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지만 금세 그에게 몸을 숙이고 다정한 키스를 입술에 짧게 해준 다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바지 앞섶을 추스르는 동안 그녀는 일어나 드레스 매무시를 최대한 바로잡았다.

    "백작님! 거기 계십니까?"

    호스킨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만족을 얻은 맥시밀리언은 집사의 태도에 너무나 분개한 나머지 목을 졸라 버리겠다는 격한 충동을 느낄 만큼 기력이 회복되었다. 샬로트가 옷을 제대로 다 입었는지 곁눈질로 확인한 다음 그는 침대에서 뛰쳐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확 열어 젖혔다.

    "뭔가?"

    맥시밀리언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이 작자를 갈겨 주고 싶어 근질근질한 나머지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호스킨스는 오랜 세월 동안 그를 훌륭하게 섬겨온 집사였다. 오늘까지는. 호스킨스는 자신의 행동이 극도로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챘을지언정 전혀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차분했다.

    "외람되지만 손님을 모셔갈 마차를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

    그는 요지부동인 태도로 말했다.

    “호스킨스”

    맥시밀리언은 감히 입을 열기조차 힘들었다.

    “네, 백작님.”

    “자넨 해고일세."

    “맥스, 안 돼요!"

    샬로트가 항변했다. 그녀는 맥스의 곁으로 다가와 그를 진정시키듯 팔에 손을 얹었다. 맥시밀리언은 재간둥이인 그 가냘픈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를 절정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이 사람은 그저 당신을‥‥‥‥“

    “날 당신 손아귀에서 지키려 했다고?"

    맥시밀리언은 냉정하게 뒷말을 이었다. 그녀는 시선을 떨궜고 사랑의 행위로 이미 붉어져 있던 볼은 이제 완전히 진홍색으로 변했다.

    "안됐지만 그건 집사의 임무가 아니오"

    “맞는 말씀입니다. 백작님."

    호스킨스는 준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맥스”

    샬로트는 그의 소맷부리에 더욱 매달리며 꾸짖듯 불렀다. 그는 구름처럼 풍성한 금발에 파묻힌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그동안 그렇게도 어루만져 보고 싶었던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손조차 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 주위에서 부드럽게 매혹적으로 굽이치는 반면 그의 머리카락은 마구 흐트러진 채 등에 축 늘어진 상태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눈길이라도 주었던가? 맥시밀리언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전 그의 침대에서 있었던 사건은 평소에 그가 즐기던 부드럽고 주도 면밀한 행위와는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일찍이 알지 못했던 거침없고 제어 불가능한 정열이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 정도의 행위로 그를 몰아갔다. 혹독한 진실이 그를 덮쳤다. 호스킨스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샬로트의 순결을 더럽혔을 것이다. 그것도 더없이 황홀한 신혼 침상에서 오래오래 풍요롭게 쾌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다 옷을 입은 채로 허둥지둥 욕정에 사로잡힌 채로 맥시밀리언은 자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호스킨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그는 말했다.

    "숙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지. 내 밑에서 계속 일해도 좋네. 그리고 말일세, 호스킨스."

    "네, 백작님."

    맥시밀리언은 감히 어떤 반응을 보이겠냐는 듯 집사를 노려보았다.

    "자네 축하를 받아야겠네. 트로브리지 양과 난 조만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결혼할 걸세."

    "아주 잘됐군요, 백작님."

    호스킨스는 대답했다. 맥시밀리언은 집사의 눈에서 격한 비난의 표정을 찾아볼 수 없자 안심했다.

    "좋아."

    맥시밀리언은 중얼거렸다.

    "그럼 서로 양해하기로 하지. 이제 난 어머니 댁으로 트로브리지 양을 직접 모셔갈 생각이네."

    맥시밀리언은 스타킹만 신은 자신의 발을 흘끗 내려다보는 집사의 눈길을 보고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분명 멋쟁이 맵시꾼은 아니었지만 흠잡을 데 없는 자신의 외관에 자긍심을 품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하마터면 셔츠와 바지만 달랑 입은 채 침실을 나설 뻔했던 것이다. 이제 샬로트가 그의 삶에 영원히 함께 할 존재가 될 테니 그 자긍심은 물론이고 위엄마저 창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맥시밀리언은 생각했다. 그의 심정은 쓰라리긴 했지만 키스로 붉게 달아올라 농익은 샬로트의 미소 띤 입술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그런 장점들을 잃은 것도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맥시밀리언은 그답지 않게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그녀의 곱슬머리 한 올을 얼굴에서 걷어올려 주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녀의 머리 감촉은 부드럽고 기분 좋았다.

    "너무나 근사한 머리카락이오"

    그는 속삭였다.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에 놀란 그늘이 언뜻 스치는 광경을 목격했다.

    "진담일 리가 없어요"

    "물론 진담이오. 결혼하면 날 위해서 그 머리를 풀어놓고 지냈으면 하오"

    두 손가락으로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그시 쥔 그는 욕망이 다시금 몸 안에서 욱신대자 크게 심호흡을 했다.

    "결혼하면‥‥‥‥"

    샬로트도 녹색 눈을 은근히 반짝이며 그의 머리채를 바라보고 목쉰 소리로 말했다.

    "날 위해서 그 머리를 풀어놓고 지냈으면 해요"

    맥시밀리언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둘 사이의 공기가 기대감으로 충만한 나머지 마음의 평화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다소 열렬한 어조로 말한 다음 앉아서 레버링이 너무나 말끔하게 닦아준 장화를 손에 들었다. 그는 평소보다 침착성이 떨어지는 태도로 장화를 신으면서 욱신거리는 자신의 남성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호스킨스가 헛기침을 했다.

    "트로브리지 양께서는 거실에서 백작님을 기다리시는 편이 좋을것 같습니다. "

    "고맙지만 됐어요"

    샬로트의 무심한 대답을 듣고 맥시밀리언은 빙긋 웃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안락한 장소라는 양 그의 침실을 거니는 그녀의 모습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사적인공간을 제 집처럼 편안해했다. 맥시밀리언은 장화 한 짝을 마저 신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대하니 그의 몸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온기가 따스하게 번졌다.

    "어머, 맥스! 이건 꼭‥‥‥‥"

    샬로트는 제니가 보내온 그림을 집어들며 말꼬리를 흐렸다.

    "날 닳았소?"

    샬로트는 그녀 특유의 근사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는 일어나서 넥타이를 찾았다. 그는 평생 시종이 입혀 주는 대로, 혹은 거들어 주는 대로 옷을 입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일을 손수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샬로트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그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소중하게 위해 준다는 느낌이랄까? 맥시밀리언은 자신의 어리석은 면모에 얼굴을 찡그리며 분별을 찾으라고 타일렀다. 샬로트는 그에게 어느 정도 존경심을 품고 있다고 시인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열렬히 사랑하겠다는 선언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역시 그녀에게서 그런 감상적인 말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망상은 낭만적인 공상가들에게나 어울리는 몫이다. 사랑? 시시하긴! 그는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어떤 증거도 여태껏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일부러 심술궂은 태도로 넥타이를 확 잡아당겼다. 제대로 매지지 않자 그는 넥타이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다른 것으로 꺼냈다. 그는 내팽개쳐진 넥타이를 주워 드는 샬로트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놀랐다. 그 동작이 왠지 그의 가슴을 저며왔다. 그녀는 하얀 리넨 넥타이를 서랍장 위에 올려놓더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평소처럼 정확하게 넥타이를 매지 못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샬로트는 그림을 그의  얼굴 옆에 들어 보이면서 짖궂은 미소를 보냈다.

    "그래요, 닮은 데를 알겠네요"

    맥시밀리언은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몸치장을 끝내기 위해한 번 더 시도했다.

    "아아. 맥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꼭 끌어안았다. 넥타이를 매려던 그의 두 번째 시도 역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호스킨스가 다시금 헛기침을 해댔다. 두 사람 다 집사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거드름피우는 가정교사처럼 아직도 문간에 서서 둘의 짓거리가 못마땅하다는 듯 곁눈질하는 중이었다. 맥시밀리언은 샬로트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이 욕설을 퍼부은 다음 그녀의 포옹에서 벗어나 구겨진 넥타이를 간단하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재빨리 다시 맸다.

    "혹시 당신이 여동생을 도와서 내 초상화를 완성시킨 건 아니오?"

    맥시밀리언은 고개만 돌린 채 말한 다음 조끼가 놓여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하지만 조끼는 어떻게 손쓸 수 없을 만큼 구겨져 있었다. 조끼가 그런 상태가 된 이유가 자꾸 생각나려 했으므로 그는 억눌러 참고 옷장으로 다가가 새 조끼를 서둘러 꺼내 입었다.

    "그럼 이건 제니가 그린 거로군요!"

    샬로트는 외쳤다

    "어쩐지 낯익은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니가 당신에게 그림을 보냈나요?"

    묘한 어조를 듣고 그는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에는 불가사의한 표정이 서렸고 눈에는 그의 내면의 자아까지 꿰뚫을 듯한 빛이 깃들였다. 맥시밀리언은 투덜대며 상의에 팔을 꿰었다 마침내 옷을 다 차려입었다. 물론 아침 식사 예정 시간을 한참이나 넘긴 뒤였다. 그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그림을 받아 들어 제자리에 끼운 다음 손을 얹으라는 뜻으로 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럼 갑시다. 당신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시빌이 위급 상황이라며 사람을 보내기 전에 가야지."

    맥시밀리언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마치 샤프롱인 양 행동하는 호스킨스를 내버려둔 채 방을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그들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으려니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지은채 서류를 한아름 안은 비서가 다가왔다. 피터 월크스는 샬로트가 자기 주인과 함께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 죽은 듯이 멈춰 서서 입을 쩍 벌렸다. 아랫사람들의 나사가 빠진 듯한 예의범절을 보고 맥시밀리언은 화가 났지만 이 집안에는 평상시에도 여자

    손님이 넘쳐났다는 듯 무시한 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잘 잤나, 피터? 의논할 일은 다음으로 연기해야겠네."

    맥시밀리언은 비서를 놔둔 채 지나치며 말했다.

    "트로브리지 양을 어머니 댁에 다시 모셔다 드릴 참이네. 그리고 돌아오면 그 즉시 캐스털리로 떠날 생각이네. 하인들에게 그리 이르고 레버링에겐 즉시 짐을 싸라고 지시하도록. 다른 약속들은 무기한 연기시키고‥‥‥‥"

    "안 됩니다!"

    나란히 팔짱을 낀 두 사람이 현관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비서의 고함이 들려왔다. 맥시밀리언은 경악하며 돌아섰다. 피터는 하얗게 질린 안색과 몹시 흥분한 눈빛을 하고 서류 뭉치를 필사적으로 가슴에 끌어안은 채 뿌리박힌 듯 계단 아래에 얼어붙어 있었다.

    "뭐라고 했나?"

    맥시밀리언이 물었다.

    "안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일정 조정 따위는 않겠습니다. 백작님 !"

    격한 캄정 때문에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였다.

    "백작님께 고용되었을 때 전 우리 두 사람이 성격상 닮은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꼼꼼하고 시간에 엄격하고 차분한 부류라고요.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백작님은 돌변해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영원히요! 백작님은 약속을 거르시고 보고서도 무시하시고 제가 세심하게 짜맞춘 일정도 허공에 날려 버리셨지요! 지금 백작님 모습을 보십시오. 이제 백작님은 신분에 절대 어울리지 않게 언제나 황급히 서두르려 하시지 않습니까!"

    "아니, 피터."

    맥시밀리언은 말을 꺼냈다. 그는 피터를 달래기로 작정했다. 피터의 행동은 돌발적이기는 했지만 그는 좋은 비서였다. 맥시밀리언은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요즘 들어 변화가 있었다는 건 시인하겠네‥‥‥‥"

    "변화라고요?"

    피터는 찢어지는 쇳소리로 껄껄댔다.

    "지금 이건 순전히 무법 상태입니다. 백작님. 저‥‥‥ 저 여자 때문에 무법 상태가 도래했단 말입니다!"

    그는 앙상한 손으로 샬로트를 삿대질했다. 맥시밀리언은 분노가 치밀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무법 상태라고?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주먹의 힘을 빼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눈빛으로 집 안을 둘러보았다. 문간에서 명령을 기다리던 하인은 그지없이 우스운 태도로 어린아이처럼 입을 딱 벌린 채였고 가엾게 시달린 호스킨스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확실히 평소처럼 사무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맥시밀리언의 입술이 떨렸다. 샬로트는 이런 상황이 펼쳐지자 초록빛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도 그를 진정시키려는 듯 계속해서 그의 팔을 토닥여 주었다. 그도 알았다는 듯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살짝 얹었다. 이제 변화의 징조가 그의 몸 전체에서 발산되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것은 바람직한 쪽이었다. 그의 아랫사람들이 활기와 웃음소리, 그리고 온기를 풍기는 것은 실로 처음이었다. 이 멜로드라마의 주역 쪽으로 눈길을 돌린 맥시밀리언은 인간미보다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질서에 집착하는 말라깽이 안경쟁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이 남자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더없이 기뻤다. 맥시밀리언은 고개를 젖히고 비서의 말을 껄껄 웃어넘겼다.

    "무법 상태라면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게나, 피터. 새 일자리를 얻게 되기를 비네. 자네처럼 유머 없고 질서정연한 주인을 찾기를 기원하네 !"

    맥시밀리언은 우아한 몸짓으로 돌아서서 집사를 바라보았다.

    "호스킨스, 여행 준비를 부탁하네. 그리고 좀 앉게나, 자네. 안색이 너무 나쁘군."

    샬로트가 기대했던 대로 그녀가 없어진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막 몸단장을 끝내고 내려온 시빌은 샬로트가 동행도 없이 신사를 방문하러 나갔다 왔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 것이 분명했다.

    "맥시밀리언! 만나서 정말 반갑구나."

    시빌은 호들갑을 떨며 그에게로 다가가 서로의 볼을 맞댔다. 키스를 하는 모양이라고 샬로트는 생각했지만 솔직히 말해 킷이 강아지한테 뽀뽀하던 때보다도 훨씬 더 심드렁한 태도들이었다.

    "이런 시간에 어떻게 외출을 했단 말이냐? 넌 정말이지 인간미가 없어. 그리고 샬로트, 너도 마찬가지야."

    시빌은 샬로트를 곁눈질했다

    "우리 시골 아가씨는 항상 새벽녘에 일어나면서도 안색이 저렇게 좋지 뭐냐. 요물도 다 있지. 아침은 들었니? 자아, 같이 식사하자꾸나."

    우아한 여인은 그들이 당연히 식당으로 따라와야 한다는 듯 경쾌하게 손짓했다. 샬로트는 감정을 드러내 주는 맥스의 손놀림을 보고 말리듯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러길 다행이었다. 그의 눈썹이 험악하게 아래로 내려온 데다 그 아래 자리잡은 그의 눈은 어머니를 따끔하게 혼내 주고 싶은 충동으로 번득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에게 사과하겠소, 샬로트. 저런 태만한 보호 아래 당신을 맡겨 뒀다니‥‥‥‥"

    그는 딱딱하게 말했다.

    "자아. 맥스."

    샬로트는 그의 팔을 꼭 쥐어 주었다.

    "아무 해도 없었잖아요"

    순간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다음 순간 그의 입술이 뒤틀렸다. 샬로트는 그가 오늘 아침 그의 침대에서 벌어졌던 전대미문의 사건을 떠올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갑자기 아까 일어났던 일이 당혹스럽게 다가온 나머지 샬로트는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눈길을 떨궜다. 맥스가 그녀에게 퍼부었던 행위와 그녀에게 안겨준 느낌은 그 모두가 너무나 흥분되고 황홀했으므로 그녀는 그 순간이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기를 바랐을 정도였다. 그녀가 그를 만졌을 때 그가 지었던 표정‥‥‥그녀에게 간청하던 그 표정‥‥‥ 그런 상황을 떠올리자 그녀의 심장이 격렬한 속도로 망치질을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 빠진 그를 다시 보고 싶었다. 자신의 욕망을 방출할 때 그가 가슴 깊숙이에서 내지르던 신음 소리를 듣고싶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그녀의 몸 안에 있었으면 했다. 샬로트는 결과 같은 건 생각지 않고 궁극적이고도 돌이킬 수 없는 정열에 기쁘게 자신을 내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맥스가 그녀의 방종한 욕구를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양 손을 꼭 모아 쥐었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후회하지‥‥‥ 않아요?"

    그녀는 작고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그녀의 턱을 받쳐들고 부드럽게 빛나는 눈으로 시선을맞추자 그녀는 거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소"

    그는 목쉰 소리로 속삭였다.

    "그저 내 절제심이 놀랄 만큼 부족했다는 점이 통탄스러울 뿐이오"

    다음 순간 그는 태평하게 식당으로 들어가 버린 시빌 쪽으로 고갯짓을 하더니 입을 꼭 다물었다.

    "하지만 옹고집쟁이인 당신이 다른 남자의 집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어쩔 뻔했소? 누가 당신을 말렸을까? 아니, 당신이 자리에 없다는 걸 알아챈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그는 그녀의 턱을 받쳐든 손에 힘을 주며 경멸조로 중얼거렸다. 샬로트는 그의 분노가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그의 사랑스러운 얼굴에 한쪽 손을 갖다 대고 그가 이해해 주기를 빌첬다.

    "다른 남자의 집에는 절대 갔을 리가 없어요! 알고 있다고 말해 줘요, 맥스"

    "모르겠소."

    그는 퉁명스레 인상을 쓰며 외면했다.

    "처음엔 로디 블랙, 그 다음엔 스톨링스에다 버기스. 그 다음차례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이 결혼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내가 당신을 런던의 정신나간 구혼자들에게서 보호해야 하는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오."

    그는 영락없이 심부름이 하기 싫어 투덜대는 소년 같았으므로 샬로트는 하마터면 까르르 웃을 뻔했다.

    "로디 일은 미안해요. 그 사람한테 키스한 건 그저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골려 주려는 욕심도 있었죠. 당신도 알겠지만요"

    그녀는 시인했다.

    "하지만 나머지 사건은 일부러 한 게 아니에요. 내가 대위에게 당할 뻔했을 때나 남작에게 유괴 당했을 때 당신이 귀찮았다는 기색을 보여서 서운했어요"

    맥스는 그녀가 부인하는 말을 듣고도 별로 믿지 않는 기색이었다. 샬로트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집에 찾아가고 싶었던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당신말고 다른 남자의 집에 가겠다는 생각은 맹세코 눈곱만큼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다른 남자가 내게 손을 대려 했다면 절대 그냥 허락하지 않았을 거예요 적어도 그 사실만은 알고 있다고 말해 줘요, 맥스."

    그녀는 그가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분개해서 말했다. 그의 시선이 곰곰이 따지듯 노골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말했다.

    "알고 있소"

    너무나 엄숙한 말투에 샬로트는 안도했다. 그녀는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녀가 그의 침대에서 쉽게 무너진 것이 오직 그에게만 특별한 감정을 품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원치 않았다. 샬로트는 그를 가만히 응시하며 말로 하기 망설여지는 감정을 눈으로 전하려 애썼다. 그도 그녀의 머리가 아찔해질 만큼 따스한 눈길로 마주 바라보았다.

    "스톨링스가 당신 키스를 헐뜯었을 때 즉시 알아봤소. 하지만 그 이유는 전혀 모르겠더군. 왜 그랬소, 샬로트?"

    샬로트는 그의 빈축을 살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처음 목사관에서 만났던 뒤부터 내겐 항상 당신뿐이었어요"

    그녀는 속삭였다. 그 고백이 그녀의 모습을 훑어 내리는 갈색눈동자에 불꽃을 당긴 것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열기가 갑자기 피어올라 공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슈발리에가 나타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달려들어 그 자리에서 불꽃을 피워 올릴 뻔했다. 샬로트는 맥스의 팔을 잡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아침에 일어난 온갖 사건들이 뇌리를 스쳐 갔으므로 그녀는 맥스가 약혼 기간을 길게 잡지 않기를 빌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불현듯 그에게로 돌아섰다. "스톨링스가 내 키스를 헐뜯었다니 무슨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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