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샬로트의 웨딩마치-8화 (8/19)
  • 8.

    맥시밀리인은 샬로트를 항상 감시할 수 있도록 사교계 행사에 더욱 자주 참석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그녀가 더 이상 구혼자들과 키스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단속할 생각이었다. 맥시밀리언 자신의 자제력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런 상태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그녀 때문이고 그녀를 포옹했던 경험이 그 어떤 포옹이상일지라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이런 감정은 목사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목사의 딸에게 계속해서 관심을 쏟는 이유는 오직 그것뿐이다! 예전 같았으면 무시했을 초대를 이제 그는 클럽 방문을 포기하면서까지 받아들였지만 샬로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때는 많지 않았다. 그럴 경우 맥시밀리언은 랠리가 전해 주는 보고에 의존해야만 했다. 랠리는 샬로트가 어디에 누구와 같이 갔는지 등등을 그에게 알려 주는 데서 야릇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로디는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치마폭에 매달려 있지 않았지만 다른 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 꿰어찼다. 그들은 샬로트의 집으로 찾아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구실로 그녀에게 바깥바람을 쏘였다. 그녀는 밤이면 오페라 관람을 하고, 저녁이면 무도회에 참석하며, 낮에는 공원에서 승마를 즐겼다. 빈도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맥시밀리언의 손아귀에서 점점 벗어났고, 그는 그런 행사들이 이어질 때마다 말도 안 되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성가시게도 맥시밀리언은 예전과는 달리 자신의 일과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오늘 오후에도 그는 비서와 사소한 일로 충돌을 빚고는 잔뜩 비꼬아 가며 말을 던졌다.

    "왜 우리 집 관리인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자기 업무를 검사 받고 싶어하는 거지?"

    그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육중한 책상 위에 서류 다발을 내던졌다. 맥시밀리언은 피터의 경악한 표정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창가로 다가갔다. 묵직한 짙푸른 빛 벨벳 커튼 때문에 서재 안은 다소 어둠침침한 분위기였다. 여느 때였다면 집무를 보기에 바람직한 분위기라고 여겼겠지만 지금은 답답하고 음울하게만 느껴졌다. 맥시밀리언은 짜증스럽다는 듯 커튼을 젖히고 햇살 가득한 정원을 내다보았다.

    "뮬러니 부인에게 이 커튼을 묶으라고 시키게. 실내가 어둠침침하군,"

    그가 이렇게 말하자 비서가 있을 법한 쪽에선 목 졸린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맥시밀리언은 궁금하다는 듯 돌아서서 비서를 바라보았다.

    "네, 백작님."

    피터는 애써 참느라 목줄기를 아래위로 떨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백작님께서는 관리인들에게‥‥‥ 회계 업무를 엄격하게 관리하라고 요구하셨으니까요. 여태까지는 항상 관리인들의 보고서를 면밀하게 검토하셨잖습니까."

    "관리인들의 편지 점검은 에거먼트를 시키게.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나한테 보고하도록 해."

    맥시밀리언은 명령한 다음 다시 창가로 몸을 획 돌렸다. 묘하게 기분이 초조했고 육체 역시 딱 집어 말하기 힘든 열망으로 마구 용솟음쳤다. 차라리 외출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일정대로 오후 내내 비서와 회의를 하겠다던 결심이 슬슬 흔들렸다.

    "네, 백작님."

    피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백작님께서 보시고 싶어할 편지는 서식스의 목사에게서 온 것뿐입니다."

    창가에 서 있던 맥시밀리언이 획 돌아섰다.

    "내가 직접 읽겠네."

    그는 피터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채다시피 했다. 그는 비서의 놀란 표정을 무시한 채 창틀에 기대서서 편지를 펼쳤다. 편지지에 비치는 밝은 빛은 마치 그의 손가락 아래 서식스의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친애하는 위클리프 백작님

    백작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상상이 가시겠지만 저는 백작님의 서한을 받고 그지없이 안심했답니다.  런던에서 일어난 일들을 굳이 시간을 내서 전해 주신 데다 보잘것없는 저희 가족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주시다니 백작님께 크나큰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샬로트가 대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에 저희 가족은 모두 흥분했습니다. 그 아이는 현명하니 그런 관심에 괜히 들뜨지 않으리라 믿지만 만약 그 아이가 허영심의 제물이 될 경우 백작님께서 올바르게 이끌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맥시밀리언은 이 대목에서 빙그레 웃었다. 샬로트가 자기 도취로 허우적대는 모습이나 어떤 사안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그녀를 올바르게 이끄는 광경 같은 건 상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목사의 딸은 나름대로 고집이 있는 아가씨였다. 그는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가는 필체를 슬쩍 훑어보았다.

    아이들은 태터솔 경매(18세기 말 런던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세계 최초의 순종 말 경매)나 권투 시합,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안들에 관심을 보이며 수많은 질문으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전 백작님께 직접 편지를 드리라고 그 아이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쓴 편지를 받으셨을 때 부디 불쾌하게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물론 저희는  백작님께서 샬로트를 지켜봐 주시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시인하자면 이곳으로 돌아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제니는 백작님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며 백작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백작님을 찾곤 합니다. 킷은 백작님 영지에서 새로 일하게 된 관리인을 돕느라 한창입니다. 그 애 말로는 그런 행동이 그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백작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제인도 가끔 킷을 돕고 그 결과 금년에는 정원 가꾸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는 집 옆의 텃밭을 다시 가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마도 다음 번 백작님이 오셨을 때에는 몰라보게 변모해 있을 것입니다. 캐리는 제 언니 편지를 받을 때마다 거의 황홀경에 정신을칠고 자기도 언젠가는 사교계에 데뷔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지요.그 애는 런던 모든 것이 근사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사라는 샬로트를 걱정하고 있답니다. 뭐 그 애야 항상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는 백작님께서 모든 걸 제대로 손써 주실 거라고 사라를 안심시켰답니다. 백작님께서 문의하신 대로 샬로트가 구혼을 받게 될 경우 저는 백작님의 훌륭한 판단에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당연히 백작님께서는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혼처를 골라 선별해 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단 하나, 샬로트 동의하에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전 그 애가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맥시밀리언이 스윽 훑어본 나머지 내용에 따르면 목사는 목사관의 최근 근황을 전한 다음 백작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인사말로 끝을 맺었다. 그는 묘하게도 감동을 받았다. 어느 누가 그를 이렇게까지 그리워해 준 적이 있었던가? 그는 영국 전역의 친구들이며 각지에 흩어진 영지 관리인들과 서한을 주고받는 처지였지만 이렇게 겸손하면서도 진심 어린 인사로 가득 찬 편지를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생 처음으로 맥시밀리언은 마치 이 다정하고 사랑 넘치는 가족의 일원이 된 듯 충만한 소속감을 느꼈다. 묘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문득 맥시밀리언은 그들 가족을 다시 만나도 싫지 않을 것 같

    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도 놀랐다. 귀여운 꼬마 제니, 캐리, 제인, 킷 ‥‥‥ 심지어 입씨름만 해대는 사내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와 목사관 사이의 유대감은 순전히 의무 때문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은 맥시밀리언은 초조하게 기다리고있는 피터의 모습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그는 비서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 비서는 헛기침을 했다.

    "자아, 오늘의 일정은‥‥‥‥"

    그는 말을 꺼냈다.

    "태터솔에 들어오는 새 가축 매물을 보러 가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말 경매 얘기가 나오자 맥시밀리언은 미소지었다. 그에게는 기분 전환을 위한 소일거리에 불과했지만 목사관의 사내아이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이겠지. 어쩌면 다음에 그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느긋하게 그런 생각을 하던 맥시밀리언은 피터가 딴 생각을 하는 주인의 모습에 크게 놀랐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계속하라는 표시로 비서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 다음에 새클비 경 부처가 여시는 만찬 파티에‥‥‥‥"

    맥사밀리언은 무심하게 손사래를 치며 피터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못 가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사람을 시켜 오거스타 서굿양이 오늘 저녁 어떤 모임에 초대장을 받았는지 알아보게. 거기에 맞춰 내 일정을 조정하겠네."

    피터는 그 자리에서 뻗어 버릴 듯한 얼굴을 했다.

    "그분이 어디로 가든 따라가실 겁니까, 백작님?"

    그는 정수리에 올라가 붙을 정도로 눈썹을 치켜떴다.

    "그렇네."

    맥시밀리언은 딱 잘라 대답했다. 목사의 편지로 기분이 좋아진 그는 사소한 소식이나마 이 기쁨을 샬로트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 동행해서 가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렇네"

    맥시밀리언은 결코 어디에도 샬로트를 에스코트해 간 적은 없었다.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는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의무를 다할 뿐이니까. 맥시밀리언은 새삼스레 차오르는 활력을 느끼며 창가에서 물러났다.

    "정원을 좀 둘러보고 나가야겠네."

    그는 입을 떡 하니 벌린 비서를 남겨둔 채 시계를 꺼내 보는 일도 없이 서재를 나섰다. 샬로트는 부채로 가리고 몰래 하품을 했다. 겨우겨우 그녀는 오거스타의 마음에 들 정도로 이 유행 장신구  사용술을 터득했다. 이제는 부챗살과 부채폭을 단지 펄럭대는 것만으로도 미묘하게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밤 부채의 용도는 단지 따분한 기색을 감추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그녀와 오거스타는 이번 주 내내 거의 새벽녘이 되어서야 귀가했고 그런 일정이 그녀에겐 힘에 부쳤다. 그런 강행군에 반대할 수도 있었건만 그냥 꾹 참았다. 새로운 행사에 참여하면 맥스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는 더욱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보통은 뒤켠에 가만히 서 있었지만 방 건너편에 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벌집으로 향하는 꿀벌처럼 마음이 끌렸다. 가끔은 그가 그녀를 찾아와 말을 거는 적도 있었지만 그 날 밤 정원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 그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샬로트는 실망감을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그를 차지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이제는 우아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남편감이 될 만한 추종자들에게 관심을 돌려야 했다. 샬로트는 저녁시간을 즐겁게 지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다. 고향에 있던 시절에는 런던 사교계를 마법의 세계인 양 황홀하게 꿈꿔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근사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런던의 화려함과 위풍당당함이 일단 그 찬란한 빛과 참신함을 잃기 시작하자 자신이 이렇게 고뇌하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가 너무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그녀는 부와 사랑을 찾는 일을 가벼운 장난거리쯤으로 여겨 왔지만 이제 와서 보니 실로 심각한 문제였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혼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결혼하고 싶지도 않은 남자와 억지로 즐겁게 지내는 척을 하려니 비참하기만 했다.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그녀에게 쏠리는 관심과 인기 따위는 이제 시큰둥했다. 하루 하루가 지나갈수록 그녀는 자신이 처한 문제를 점점 더 뚜렷이 인식하게 되었다. 앞으로 겨우 몇 달 안에 짝을 찾아야만 하는데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반항심 때문에 성가시고 괴롭기만 했다. 사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맥스뿐이었다.

    "난 점점 더 빗나가고만 있어."

    샬로트는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뭐가?"

    옆에 앉아 있던 필리파 스톨링스가 물었다. 필리파는 발랄한 군인인 자기 오빠를 많이 닳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감점 요인이었다. 남자의 얼굴이었다면 장점이 되었을 요소들이 여자인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키가 훤칠하고 골격이 건장하며 코는 너무 길고 턱은 예쁜 정도를 넘어 너무 각져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빗나간 용모 때문에 성격도 비뚤어졌는지 남들에게 여간해서 호감을 사지 못했다. 최근 필리파는 자주 샬로트 곁에 붙어 다녔는데 샬로트의 추종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그러는 것 같았다. 샬로트는 친절하게 대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필리파는 종종 그녀에게 질시가 넘치는 시선을 쏟아붓곤 했다. 결혼해 인척관계가 되기엔 좋지 않은 전조였다. 결혼. 아직까지는 오거스타에게서 청혼이 들어왔다는 말을 못 들었지만 샬로트는 호남아인 대위가 그녀 때문에 점점 더 초조해한다는 것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다. 스톨링스가 계속해서 더욱더 관심을 보이고 그 누이 역시 끊임없이 그녀의 앞에 등장하자 샬로트는 우아하게 퇴장할 가능성도 없이 구석에 몰린 듯한 기분이었다.

    "아, 혼잣말이었어."

    샬로트는 대답했다.

    "왜 우린 항상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탐내는 걸까? 신화에는 순전히 그런 얘기들 투성이인데 말야!"

    샬로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린 그런 데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걸까?"

    필리파는 선웃음을 치며 낄낄거리기만 했다. 그녀는 샬로트와 대화하다가 못 알아들을 얘기가 나오면 항상 그렇게 둔하고 꼴사나운 웃음을 웃어댔다. 상대가 당황한 것을 느낀 샬로트는 그리스 신화의 교훈보다 좀더 세속적인 충고 쪽으로 생각의 줄기를 틀었다.

    "아빤 자기가 가진 몫에 기뻐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지. 하지만 말이야 행동보다 쉬우니까."

    필리파는 또 낄낄거렸다. 샬로트는 대화를 하려던 노력을 포기했다. 애초부터 그녀는 자신의 이런 고민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기를 그다지 질투하지 않아 굳이 그녀에게 접근할 필요가 없는 여자들은 그런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싱글턴 양만 해도 결혼의 목적은 재산이며, 사랑은 다른 곳에서나 찾아보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지 않았던가! 샬로트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충격을 받아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귀족 계급의 도덕 관념이 허술하다 한들 여태껏 그녀가 받은 교육으로는 애인을 둔다는 생각 자체도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온실을 거닐지 않을래? 아주 아름다울 거야."

    필리파가 다소 음흉한 미소를 띠고 권했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샬로트는 대답했다. 그렇게 귀가 닳도록 들었던 실내 정원을 산책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지도 몰랐다. 그녀는 일어나 필리파에게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못생긴 아가씨들은 자기 의사대로 뭔가를 추진하는 적이 드물었으므로 샬로트는 이 아가씨가 스스로자기 자신의 관심사를 찾도록 격려해 주고 싶었다. 온실은 조용했고 다소 어둠침침했다. 샬로트는 낮에 왔더라면 식물을 감상하기가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필리파는 다소 초조해하면서도 온실 산책을 꼭해야 할 모양이었다. 스톨링스 대위의 여동생은 평소보다 한층 더 낄낄거렸고 샬로트는 유리 아래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이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알아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어머. 저것 봐!"

    샬로트는 섬세한 꽃잎을 활짝 피운 난초 쪽으로 다가갔다.

    "아름답지 않아?"

    그녀는 나직이 물었다.

    "당신만큼은 아니구려, 샬로트."

    남자의 속삭임이 뒤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란 샬로트는 다음순간 튼튼한 팔이 자신을 감싸더니 뻔뻔하게 그녀의 팔을 쓰다듬는 것을 느꼈다.

    "대위님 !"

    샬로트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은 순간 왠지 불안해졌다. 그녀의 행동이 다른 젊은 아가씨들보다 자유분방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구혼자가 이렇게 으슥한 나무 그늘로 숨어 들어와 그녀의 몸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필리파?"

    그녀는 스톨링스의 여동생을 불렀다. 대답이 없자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누이는 내가 당신과 단 둘이 얘기하고 싶어하는 걸 알고 있었지, 사랑스런 샬로트."

    대위는 들척지근하게 말했다. 그녀는 등 전체가 그의 훤칠한 몸에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꽉 안겨 있었다. 그의 대담한 행위에 샬로트는 충격을 받았다. 로디 블랙과 키스를 나눈 것은 그저 장난이었고 그때는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 물정에 닳고닳은 이 대위가 누이의 협조를 빌리는 계책을 써서 그녀의 허를 찌른 것이다. 그녀는 불안해졌다. 샬로트는 공포에 등골이 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스톨링스 대위가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이후 상황이었다. 누군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광경을 본다면 그녀의 평판은 엉망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와 억지로 결혼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위가 그 점을 노린 걸까? 그 생각을 하자 샬로트의 심장 고동이 마구 빨라졌다. 그녀는 획 돌아섰지만 금세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그녀는 그의 널따란 가슴에 밀착되어 원치도 않는 포옹에 동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에게서 강하게 풍기는 향수 냄새가 그녀를 얼떨떨한 상태에서 뒤흔들어 깨웠다. 샬로트는 그 남자답지 못한 냄새를 맡고 코를 찡그렸다.

    "이것 놓으세요!"

    대위는 나른하게 미소짓기만 했다. 샬로트가 보기에는 꽤나 연습을 거듭한 일종의 추파였다.

    "자아. 샬로트. 이젠 우리가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아니오?"

    그는 길다란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며 물었다

    "결정을 내릴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요"

    그녀는 그의 가슴을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얌전히 말을 듣지 않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몸을 뒤채느라 더욱 느슨하게 흘러내렸다. 대위는 나직이 껄껄대며 웃었다.

    "아아, 당신은 사랑스러운 아가씨요.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겠지."

    그는 속삭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그의 몸짓은 거칠지 않았고 기교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샬로트에게는 불쾌한 키스였고 그녀의 인격을 무시한 희롱에 불과했다. 그녀는 다시 그의 가슴을 밀었지만 대위는 끄떡도 하지 않아 별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의 저항이 내숭이라 여기는 지도 몰랐다. 혹은 앞으로 가르칠 것이 많은 순결한 처녀라는 증거로 여길 수도 있었다. 어쨌든 간에 대위는 자신의 관심을 싫어하는 여자가 있으리라는 상상은 한 적도 없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신만만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절대 그녀를 놓아줄 턱이 없었다. 샬로트는 그 점을 깨닫고 저항을 멈춘 뒤 딱딱하게 몸을 굳혔다. 입은 꼭 다물고 몸도 뻣뻣하게 곧추세운 뒤 양손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자네 제정신이 아니로군, 스톨링스."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린 순간 샬로트는 아찔한 안도감에 휩싸였다. 스톨링스는 키스를 멈추었지만 그녀를 놓아주지는 않은 채 팔만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샬로트는 그 틈을 타 그의 포옹에서 벗어난 다음 심호흡을 했다. 맥스의 품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했다. 왠지 어리석게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위클리프 백작? 이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닐 텐데요."

    스톨링스는 말했다. 그가 로디처럼 순순히 꼬리를 사리고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샬로트는 맥스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침착했고 호흡도 평온했지만 살짝 주먹을 쥔 가느다란 오른손에서 그의 분노가 엿보였다.

    "순진한 젊은 아가씨가 달갑지도 않은 무례한 자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 때 그 아가씨를 보호하는 건 언제 어디서나 신사의 의무가 아니겠나."

    맥스는 엄청난 모욕이 담긴 말을 매끄럽게 읊었다.

    "이것 보시오, 백작 나리."

    스톨링스는 벌컥 대들었다.

    "모르시나 본데 이 여인은 내 아내가 될 사람이오!"

    샬로트는 다시금 맥스의 손가락이 거의 보일락 말락 꿈틀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턱을 굳히더니 커다란 갈색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 분노가 자신에게 쏟아지게 될까봐 두려운 나머지 그녀는 하마터면 떨 뻔했다.

    "그게 사실이오, 트로브리지 양?"

    그가 물었다. 샬로트는 그 강렬한 시선을 피하려고 미친 듯이 애쓰면서 맥스와 자기 곁에 서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조금 전에 그런 행동을 하긴 했지만 스톨링스는 그녀에게 구혼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잘생기고 남자다운 그는 다른 구혼자들보다 떨어지는 구석이 없어 보였다. 만약 그녀가 이 자리에서 그의 말을 반박한다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더더욱 협소해지고 만다. 그녀가 대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책임감이 숨통을 졸라 버릴 듯 무겁게 짓눌러왔다.

    "그렇소, 트로브리지 양?"

    그녀는 억지로 대위 쪽을 바라보았다. 무심하게 미소짓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매력을 속속들이 깨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문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녀의 학식을 알게 된다면 아마 놀라 자지러질 터였다. 그는 겉보기 그대로 용감하고 잘생긴 사람에 불과했으며 그 두 가지 장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런 남자는 결혼 후에도 바람기를 계속 뿌리고 다니지 않을까? 하지만 샬로트는 난봉꾼 남편의 이미지를 머리에서 털어 버리려고 애썼다. 사실 대위는 그녀에게 자신의 가문을, 그녀의 가족에게는 안락한 생활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니 그녀도 그 이점을 따져 보아야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점이 있다해도 대위라는 남자 자체와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 쪽이 비할 바 없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녀는 아마 평생 그의 무식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할 것이고 허영투성이인 그의 외모를 칭찬해 주며 그녀를 냉담하고 비참하게 만들뿐인 키스에도 점차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아뇨"

    샬로트는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다.

    "그렇지 않아요."

    맥스가 긴장을 풀었다는 것을 샬로트는 눈보다 느낌으로 알았다. 그녀는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스톨링스 쪽으로 돌아서서 그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청혼을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대위님. 하지만 지금은........."

    맥스는 예의를 차리려는 그녀의 말을 뚝 끊었다.

    "어떤 청혼이든지 우선 당신 아버지를 통해야만 합니다. 트로브리지 양. 스톨링스 대위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거요. 그리고 이 점을 알려 주겠는데 트로브리지 양의 아버지는 자네가 그분의 딸에게 무례하게 친밀한 척 굴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실 걸세, 대위."

    맥스는 경고했다

    "이것 보시오, 위클리프 백작."

    스톨링스는 흥분해서 퍼부어 댔다. 그에게 팔을 잡힐까 봐 샬로트는 재빨리 그를 피해 물러났고 마침 그때 맥스가 앞으로 나서서 끼어 들었다. 그의 검은 눈썹이 가늘게 뜬 눈 위에서 일그러져 있었다.

    "당신에겐 참견할 권리가 없소. 우리끼리 조용히 의논할 수 있게 당신이 이 자리를 피해 준다면 고맙겠소만."

    "자네야말로 이 자리를 피하는 편이 좋겠네, 그래야 이 숙녀분께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을 테니까."

    맥스는 말했다.

    "이 아가씨에 대한 자네의 충심에는 아가씨의 평판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씨 역시 깃들여 있으리라 믿네."

    스톨링스는 맥스에게 못 미치는 키를 꼿꼿이 세우더니 호전적인 자세를 취했다.

    "무슨 권리로 간섭을 하는 거요? 내 경고하겠는데, 트로브리지양에게 관심을 가지는 당신의 저의야말로 매우 의심스럽소"

    샬로트는 '헉' 하고 터져 나오려는 외침을 억눌렀다. 맥스의 표정은 그녀가 여태껏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사나웠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차분하던 모습이 지금은 분노로 잔뜩 험악해져있었다.

    "이 숙녀분의 평판에 오점을 남기려는 발악이 아니길 빌겠네. 그런 짓을 하려 든다면 자네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는 천천히 말했다. 샬로트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비틀거리면서도 그 순간 맥스가 대위에게 재고할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스톨링스는 대결을 피할 작정이 아니었다.

    "결투의 증인으로 누굴 세울 거요?"

    그는 씩씩대며 물었다.

    "랠리 경과 울버턴이 자네에게 약속을 알려줄 걸세."

    맥스는 그새 자제심을 완전히 되찾은 듯 냉혹한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샬로트는 대위를 흘끔 곁눈질했다. 그는 이 모든 골칫거리의 주범이 그녀라는 듯 비난하는 눈길로 바라보더니 이런 상황 하에서 가능한 허세를 최대한 부리며 금발을 홱 젖히고 온실에서 성큼성큼 나가 버렸다. 결투라니! 샬로트는 순간적으로 욕지기를 느꼈다.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 그녀를 구하러 달려와 준, 누구보다도 소중한 맥스는 더더욱. 그녀는 그의 힘찬 팔에 몸을 던져 그 잘생긴 얼굴에 소나기 같은 키스를 퍼붓고 싶은 충동과 싸웠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가깝지 않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고마워요, 맥스."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그의 반응은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그는 단아한 입매를 딱딱하게 굳히고 감정이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눈동자 위에 검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그녀에게 홱 돌아섰다.

    "당신은 정말 천하의 걸작이군!"

    그가 쏘아붙였다.

    "기막힐 정도로 자제력이 전무한 그 점에 난 경악할 뿐이오! 당신에겐 자기 자신이나 아버지의 명예를 생각할 분별도 없소? 당신이 런던으로 온 건 정말로 남편감을 찾기 위한 거요, 아니면 콧대만 높은 대도시의 한량에게 물불 안 가리고 몸을 던지려고 온 거요?"

    샬로트는 공포에 질려 주춤거렸다. 그의 말이 그녀의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본능에 따라 반응했다. 온 힘을 다 그러모아 그의 정강이를 걷어찬 것이다.

    "우욱!"

    맥스는 비명을 지르더니 걷어 채인 부위로 손을 가져갔고 샬로트는 그 광경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추잡한 말을 입에 담은 벌이에요, 위클리프 백작님 !"

    그녀는 정당한 분노에서 비롯된 힘을 한데 모아 나머지 다리까지 세차게 걷어찼다. 그녀는 낮게 내뱉는 그의 욕설을 듣고 엄청난 분노로 타오르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싹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이번 건 날 그런 여자로 생각한 벌이고요!"

    샬로트는 분노 못지 않게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그가 그녀를 그렇게까지 나쁘게 생각할 수 있다니 너무나 괴로웠다. 저녁 내내 쌓여 왔던 비참한 심정이 눈시울을 따끔따끔 찔러왔다. 그 감정이 터져서 더욱 당혹스러워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녀는 자리를 뜨려고 돌아섰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빌어먹을, 샬로트!"

    맥시밀리언이 외쳤다. 그는 그녀의 양팔을 움켜쥐고 자신과 마주 보게 돌려세웠다.

    "놔 줘요! 그리고‥‥‥ 그 끔찍한 욕 좀 그만 해요!"

    샬로트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더욱 딱딱거렸다. 깜짝 놀란 맥시밀리언은 뒤죽박죽이 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아가씨가 단지 '경험'을 쌓기 위해 로디 블랙에게 입맞췄다고 침착하게 시인하던 그 여자와 동일인일까? 스톨링스를 상대로 똑같은 상황에 처한 지금 그녀는 그를 발길질로 공격하더니 이제는‥‥‥ 이제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보였다 맥시밀리언은 당황했고 그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란 이다지도 기묘하고 비논리적인 동물이란 말인가. 물론 그는 원래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야말로 여자라는 종족의 완벽한 전형이었기 때문이었다.

    "지평을 넓히기 위해 경험을 쌓던 중이 아니었단 말이오?"

    맥시밀리언은 잔뜩 회의적인 어조로 물었다. 샬로트는 대답을 않고 속절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녹색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도톰한 입매는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비참했다.

    "저 우쭐대는 맵시꾼과 키스한 것을 부인하는 거요?"

    그는 그녀의 몸을 흔들며 캐물었다.

    "당신에게 대답할 필요는 없겠죠, 백작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윌 믿건 말건 나한텐 아무 상관없어요!"

    그녀는 외쳤다.

    "놔 줘요! 당신이 싫어요. 런던도 싫어요.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맥시밀리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돌아가시오. 내가 데려다 주리다. "

    그는 생색을 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일정을 더듬어 보았다. 샬로트를 안전하게 목사관까지 데려다 주게 몇 주만 시간을 삘 수 있을까? 그녀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때렸다.

    "남편감을 찾을 때까지는 집에 못 가요. 이제 난 어떻게 하냐고요! 아아, 차라리 말뚝처럼 못생긴 얼굴로 태어났다면 좋았을걸 !"

    그녀는 울부짖었다.

    "쉬 잇."

    맥시밀리언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달래는 것은 그의 천성에 영 맞지 않았지만 이렇게 포옹을 하고 있으니 문득 마음이 흔들렸다.

    "당신이 돌아가도 아버지는 싫어하지 않으실 게 분명하오. 그분은 당신을 몹시 사랑하시니까."

    "돌아갈 수 없어요."

    샬로트는 그의 가슴에 대고 웅얼거렸다.

    "식구들 모두가 나만 바라보고 사는걸요. 아빠, 남동생들, 제인‥‥‥‥ 가엾은 것, 그 앤 그렇게 예쁘지도 않아요. 캐리는 엄마를 닮았지만 그 애가 크려면 아직 멀었으니까요. 그때가 되면 너무 늦어요! 꼭‥‥‥‥"

    그녀는 세상이 끝장난 듯 그의 조끼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맥시밀리언의 뱃속이 뭉클해졌다. 그는 이렇게 수심에 찬 소녀보다는 그의 정강이를 걷어찬 원기 왕성한 아가씨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소 그리고 당신 아버지와 함께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 보겠소."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샬로트는 고개를 저었다.

    "난 당신이 불행해지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요"

    맥시밀리언은 단호하게 말했고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 말에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치켜들며 미소지었고 그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백작님' 이란 말은 집어치워요. 난 내가 맥스인 줄 알고 있었는데."

    "맥스."

    그녀는 속삭였다. 그 말은 은은한 안개처럼 감미로우면서도 강렬하게 그의 주위를 휘감았고 그는 마치 마녀의 노랫소리에 넋을 빼앗긴 사람처럼 그녀에게 이끌렸다. 위로 쳐든 하얀 볼에 서린 그녀의 눈물 자국이 어두운 온실 안에서 마치 별빛처럼 빛났다 순간 내면에서 뭔가가 흔들렸다.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조심성 따위는 내던져 버리고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든 다음 눈물 젖은 볼에 입맞췄다. 그녀의 속눈썹에서 짠맛이 났다. 그는 그녀의 머리선 주위에 삐져나온 꼬불꼬불한 곱슬머리에 입술을 누른 다음 부드럽고 따스한 입술에 키스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어루만지면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목을 감쌌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손등을 간질였다. 그는 그들이 어떤 장소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품에 안긴 여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 아래에서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기처럼 머뭇머뭇 움직이더니 살며시 벌어졌다. 그 초대를 받아들인 그의 혀가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상의 옷깃을 맹렬하게 움켜쥐는 그녀의 손길을 느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부드러운 혀가 그를 흉내내 처음으로 가벼운 약탈의 몸짓을 보이기 시작했다. 맙소사‥‥‥‥ 두 사람의 혀가 뒤엉켜 원초적인 결합을 엮어냈다. 맥시밀리언은 거대한 욕망이 마구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원했다. 그녀의 전부를 원했다. 지금, 강렬하고 이국적인 꽃망울로 둘러싸인 여기 온실 바닥에서. 불빛에 반짝이는 하얀 크림빛 가슴이 그의 손길과 입술을 갈구했다.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어깨로 손을 가져갔고 최고급 비단같은 피부 감촉을 음미했다. 그는 너무나 쉽게 그녀의 소매를 끌어내리고 상의 옷자락 아래로 손가락을 들이밀 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차지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여자였다. 부드럽고 감미로우며 은은하고 봄날처럼 싱싱하면서도 그들 주위에 우거진 꽃봉오리처럼 현실적인 존재였다. 그의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다. 맥시밀리언은 불굴의 자제력을 발휘해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었다. 한순간 그는 그녀를 세차게 끌어안고만 있었다. 내가 지금풋내기 학생처럼 떨고 있나?

    "미안하오, 샬로트."

    그는 거칠게 속삭였다. "용서해 주오."

    용서하라고? 그의 돌연한 태도 변화 외에는 용서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맥스‥‥‥"

    그녀는 그를 잃어버렸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이런 식이리라. 그는 그라는 남자의 천성 때문에, 명예를 존중하는 훌륭한 인격 때문에 물러날 것이고 자신은 그를 결코 가질 수 없으리라. 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난 스톨링스 대위에게 키스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가 적어도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 사람 여동생이 날 일부러 여기로 데려와 놓고 사라져 버렸어요. 그 사람은 날 감언이설로 설득시키려 했지만‥‥‥‥"

    "그래서 내가 그자보다 못하던가? 그랬소?"

    맥스는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아니에요! 당신 자신을 그런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요"

    샬로트는 반박했다.

    "당신은 날 위로하려고 그런 거잖아요"

    "그랬소?"

    맥스는 되묻더니 전혀 즐겁지 않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럼 좋소. 당신은 위로를 제대로 받은 거로군. 그럼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침착한 내색을 해요. 난 다른 문으로 나가겠소"

    그녀는 돌아섰지만 그의 헛기침 소리에 제지당했다.

    "그리고 샬로트‥‥‥‥"

    그녀는 돌아섰다. 그의 커다란 갈색 눈동자에는 조롱기가 서려 있었다.

    "남자들의 포옹을 조심해요.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맥시밀리언은 미안한 듯하면서도 다소 씁쓰레한 표정으로 잠시 망설였다.

    "아니, 이유는 따질 것 없이 특히 나를 조심하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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