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샬로트의 웨딩마치-7화 (7/19)

7.

맥시밀리언은 오거스타 서굿의 현관 복도에 서서 자신이 무엇에 홀려 여기 오기로 동의했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의 비서는 은행가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다시 잡으라는 말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맥시밀리언은 경악하는 피터에게 약속이 틀어지게 된 배경 상황을 설명할 배짱이 도저히 없었다. 아니, 그 자신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다. 미안하네, 하지만 목사의 딸과 중요한 약속이 있거든‥‥‥‥물론 샬로트에게 선약이 있다고 전갈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이미 그녀와 약속을 해버린 뒤였고 사실 그녀가 다소 내밀히 초대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서굿 양의 집안 일일까? 아니면 목사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런던에서 돌아오라고 목사가 명령한 것일까? 맥시밀리언은 그 생각을 하자 만족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그렇다면 그는 쌍수를 들고 환영이었다. 맥시밀리언이 보기에 샬로트는 시즌의 여왕 따위는 집어치우고 서식스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그도 그녀를 만나러 수많은 남자들 사이를 애써 뚫고 지나갈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그녀는 상냥하고 순진한 본성을 간직한 채 같은 마을 사람과 결혼해 그의 뇌리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맥시밀리언은 남루한 하인으로부터 서굿 양이 외출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잘됐군, 맥시밀리언은 생각했다. 그의 방문 목적은 그 여자가 아니었다.

"난 트로브리지 양을 만나러 왔네."

하인이 뻔뻔스럽게도 그를 꼬나보자 맥시밀리언은 그자를 이웃 마을까지 날려 버릴 기세로 노려보았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멀대같은 그 멍청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초조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주인 마님께서 말씀하시길, 마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트로브리지 양에게 구혼하러 신사분이 오시거든 모두 돌려보내라고 하셨습지요"

맥시밀리언은 화가 벌컥 났지만 평정한 어조를 유지했다.

"이보게, 내가 그 젊은 숙녀분과 어떤 관계인지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이렇게만 말해 두지. 난 트로브리지 양에게 구혼하러 온 게 아닐세."

하인은 망설이는 듯 우물쭈물하더니 어깨를 으쓱한 다음 문을 열어 주었다. 건방진 작자 같으니! 맥시밀리언은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가 초조한 듯 이리저리 거닐었다. 이 방문 때문에 일정이 뒤엉킨 것만도 충분히 불쾌한데 장사치 취급을 받고 문간에서 쫓겨날까 보냐! 발걸음 소리를 듣고 돌아선 맥시밀리언은 입구에 서 있는 샬로트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에 맨 처음 띈 것은 풀어 내린 그녀의 머리였다. 노란 구름처럼 어깨에서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용사를 유혹한 마녀의 힘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향기로운 냄새가나겠지, 그는 생각했다. 라일락 향기와 풋풋한 시골 냄새가?

"백작님! 와주셔서 정말 기뻐요."

맥시밀리언은 다가오는 그녀의 드레스에 주목했다. 그녀가 가난한 목사의 딸이었을 때 입던 몸에 안 맞는 아이 옷과는 완전딴판이었지만 동시에 런던에서 보았던 그녀의 최신 유행 복장과도 달랐다. 이 연듯빛의 주름장식 옷은 목선이 너무 올라오기는커녕 풍만한 가슴 바로 위까지 패여 있어 그는 하얀 크림색에 극히 풍만한 곡선의 융기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드레스에 대한 백작님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맥시밀리언은 가슴에서 눈길을 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허리선이 높은 나머지 위로 치켜 올라온 가슴은 잡티 하나 없고 비단결처럼 윤이 났으며 어두운 골짜기에는 비밀이 고인 듯했다. 불현듯 맥시밀리언은 그 가슴을 손에 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허벅지 사이가 활기차게 벌떡 일어섰다. 그는 대답을 하려 했지만 입이 바싹 말라서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빤히 바라보았나? 그는 무진 애를 써서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들어올렸다. 그녀의 볼은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최신 유행을 따랐구려."

그는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기뻐하실 줄 알았어요, 백작님."

샬로트는 말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슬쩍 들려 올라갔으므로 그는 그녀가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럴 리가. 그의 촌뜨기 오리 새끼가 그런 재치와 세련된 태도를 갖추었을 턱이 없지 않은가? 그녀는 그보다도 더 나은 여자였다. 맥시밀리언은 닳아빠진 런던 숙녀들처럼 그녀가 속임수 따위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따져 보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몸을 돌린 뒤였다.

"이제 제 새 드레스를 보셨으니 새로 익힌 걸음걸이도 평가해주세요, 백작님."

그녀는 원래의 우아하고 거침없는 걸음걸이와는 사뭇 다르게 종종걸음을 치며 저쪽으로 갔다.

"마음에 드세요, 백작님?"

"아니오"

맥시밀리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샬로트는 획 돌아서서 나직이 까르르 웃어댔다.

"하지만 완벽하게 익히려고 얼마나 연습을 했는데요, 백작님 오거스타 할머님 말씀으로는‥‥‥‥"

"이제 그만!"

맥시밀리언은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그 마귀할멈이 진리랍시고 사기치는 허튼 소리 따위에 귀기울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느님 맙소사, 대체 그분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요?"

"백작님 !"

샬로트가 외쳤다. 그녀의 말투는 충격받은 듯했지만 반짝이는 눈빛 때문에 꾸짖는 어조도 허사가 되었다. 이번에도 그녀의 입꼬리가 뒤틀린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는 동생들을 꾸짖으려 들 때와 아주 흡사한 모습이었다.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시면 안 돼요. 아빠가 몹시 난감해하실 거예요, 백작님."

"백작님, 백작님!"

맥시밀리언은 쏘아붙였다.

"그 백작님 소린 이제 신물나오! 그 호칭은 존경의 표시지 기도문이 아니란 말이오."

샬로트의 넘쳐 나던 활력은 함부로 내뱉는 그의 말투 때문에 한 풀 꺾인 것 같았다.

"하지만 백작님을 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걸요."

그녀는 이의를 제기했다.

"내 이름을 알고 있잖소"

맥시밀리언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위클리프라고 부르면 되지."

"위클리프?"

샬로트는 눈을 깜박였다.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요. 그냥 백작위를 칭하는 명칭일 뿐이잖아요."

"사람들은 날 그렇게 부르고 있소"

맥시밀리언은 대답했다.

"백작님은 절 항상 샬로트라고 부르시잖아요"

그녀는 맑은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불쑥 말했다. 왜 이 아가씨와 있으면‥‥‥ 우쭐한 기분이 들지?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날 맥시밀리언이라고 부르는 건 우리 어머니뿐이란 말이오!"

그는 쏘아붙였다.

"맥시밀리언."

숨을 몰아쉬며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샬로트의 따스한 목소리 앞에서 그의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멋져요! 아아. 고마워요, 맥스!"

그녀는 마치 킷이나 토마스에게 하듯 그를 양팔로 휘감고 끌어안았다. 그는 실로 경악하고 말았다.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그녀의 날씬한 팔 감촉과 그의 가슴에 밀착된 그녀의 묵직한 가슴, 그녀의 머리 향기를 음미했다. 그녀가 거실에 들어선 이후 애써 감추었던 그의 바지자락이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나직이 신음하며 그녀의 팔을 풀었다.

"뭐가 말이오?"

"당신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주셔서요! 아아, 맥스. 이제 당신을 진짜 친구로 여길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뻐요."

샬로트는 친밀한 태도를 계속 견지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의 양손을 잡기까지 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순진무구한 기쁨 그 자체였다.

"우린 최고의 친구예요, 그렇죠?"

맥시밀리언은 놀란 나머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녀의 봉긋한 하얀 가슴이 바로 몇 치 앞에 있고 그녀의 손이 자신의 손을 따스하게 덮고 있는 지금 그는 도무지 그녀를 순수한 눈길로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달리 어떤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자칭 그녀의 보호자였고 그녀는 그를 당연히 그런 상대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 점이 이리도 짜증나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아아, 고마워요!"

그녀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지그시 잡아준 다음 놓았다.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온기에서 떨어지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전 그럴 줄 알고 있었어요! 이 말씀은 꼭 드려야 할 것 같지만 할머님께서는 우리의 친분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왜지?"

맥시밀리언은 분연히 노기를 띠었다. 그 입심 사나운 심술쟁이 노파가 그의 도덕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젊은 아가씨와 한 자리에 두기에는 믿지 못할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샬로트는 한숨을 쉬었다.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시인했다.

"말해 봐요."

맥시밀리언은 이를 악물고 윽박질렀다. 그는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서굿 양이 샬로트의 어리고 순진무구한 마음을 오염시켰다면 그 여자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다!

"좋아요"

샬로트는 양손을 가지런히 앞에 모으며 말했다. 그녀의 팔을 잡고 쪽 소리나게 입맞춰 주고 싶을 만큼 예전의 시골 소녀 모습을 연상시키는 자태였다.

"할머님께서는 제게 청혼할 남자분들만 골라서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당신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금하셨죠. 이제 당신도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셨군요"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맥시밀리언은 샬로트의 친척 여인을 비웃어야 할지 목을 졸라줘야 할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서굿 양의 말은 일리가 있었지만 샬로트의 성공을 위해 애써준 그를 그렇게 취급한 것은 극도로 무례한 처사였다

"서굿 양과 얘기를 해보겠소"

맥시밀리언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 안 돼요! 그러시면 안 돼요."

샬로트는 날씬한 손을 그의 팔에 얹었다.

"제가 당신에게 그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할머님도 아시게 되잖아요 그림 분명 화내실 거예요. 그분은 우리의 각별한 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세요"

샬로트는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우리 둘의 의견이 갈라지는군, 맥시밀리언은 입맛이 썼다. 사실 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그는 샬로트의 '각별한 우정' 이라는 말이 영 마땅치 않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자신이 고리타분한 후견인이나 어린 아가씨를 애지중지하는 할아버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전 우리의 동료애를 잃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다른 누구한테도 하지 못하는 말을 당신에게는 할 수 있는 거예요, 친애하는 맥스."

맥스? 그를 맥스라고 불렀던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난데없이 웬 동료애? 꼭 무슨 종교 단체 같지 않은가.

"우리, 터놓고‥‥‥ 얘기해도 되는 거죠?"

샬로트는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이미 하고 있잖소"

맥시밀리언은 다소 성깔을 냈다. 의논 상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건 여인네들이 할 몫이 아닌가. 그녀는 그를 처음에는 나이 지긋한 삼촌뻘 취급을 하더니 그 다음에는 정신적인 조언자, 이젠 또 거의 환관 수준으로 팍팍 깎아 내리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죠 당신 말이 옳아요 물론이죠."

샬로트는 고개만 돌려 그에게 살짝 미소를 보냈다.

"그러니까 아무 제약받지 않고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꺼낼게요, 맥스."

그녀는 획 돌아서서 맑은 초록색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당신이 만약 결혼을 염두에 둔 여자에게 구애하고 있다면요‥‥‥"

그녀는 장난꾸러기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 여자에게 키스하고 싶을까요?"

순간 맥시밀리언은 그 질문에 너무나 놀라 당황하고 말았다. 다음 순간 그의 뇌리에 불길한 생각이 스며들었다.

"누가 당신에게 키스하려 든 사람이 있소?"

"오, 거의 전부 다죠"

샬로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맥시밀리언의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그자들 이름을 알려 주면 이 문제는 내가 처리하겠소"

그는 몸 속에 엄청난 분노가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샬로트는 무심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 사람들 이름도 다 기억 못하는걸요"

맥시밀리언이 그 경악할 만한 말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녀는 계속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이거예요. 당신이라면 결혼을 염두에 둔 여자가 당신에게 키스해 주기를 바라겠어요?"

"절대 아니오!"

맥시밀리언은 외쳤다.

"진정한 신사라면 그런 부탁은 하지 않소"

그는 그녀를 보호하겠다는 마음에서 사실을 약간 왜곡했다.

"그리고 당신을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남자라면 남편으로 고려해 볼 가치조차 없소"

"하지만 전 궁금한걸요"

샬로트는 말했다.

"당신은 분명 많은 여자와 키스해 보셨을 테죠. 매번 똑같던가요, 아니면 상대마다 특유의 느낌이 있나요?"

"그건 젊은 아가씨가 신경 쓸 일이 아니오."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건방지고 주제넘기는! 그녀는 어쩌자고 이런 대화에 그를 끌어들인 것일까?

"아이. 그러지 마세요!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데 제가 무슨 수로 그 느낌을 알겠어요?"

샬로트는 물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와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도톰한 입술은 짜증난다는 듯 다물어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해보면 되잖소. 그 전에는 안 되오"

맥시밀리언은 딱 잘라 말했다. 목사 딸의 저 천사 같은 외관 뒤에는 악마같은 기질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우 이런 시시껄렁한 짓거리 때문에 그의 인내심을 시험할 리가 없었다.

"저도 알아요!"

샬로트는 돌연 외쳤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얼굴을 둘러싼 머리카락이 풍요롭게 물결치면서 기대에 가득 찬 맑은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당신이 있잖아요!"

"뭐라고?"

맥시밀리언은 왠지 짜증이 나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우스꽝스러운 대화가 정말이지 신물날 지경이었다

"당신이 키스해 주시면 되겠네요."

샬로트는 제안했다.

"그럼 제 호기심이 충족될 거예요"

맥시밀리언은 뻔뻔스러운 태도에 대경실색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잔혹하게 웃었다.

"난 당신에게 키스하지 않을 거요, 이 말괄량이 꼬마 아가씨! 대체 당신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시겠소?"

샬로트는 그 반론을 잠깐 생각해 보고 무시하는 듯 약간 눈살을 찌푸리더니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봄빛을 띤 그녀의 눈에 광채가 아스라이 떠올랐다.

"제발 부탁이에요."

"싫소 !"

맥시밀리언은 날카롭게 말하면서 부드러운 탄원의 빛을 띤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망할, 이 아가씨는 자기가 무슨 부탁을 하고있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으면서! 유혹이 그의 고결한 이성과 싸움을 거듭했다.

"난 당신에게 키스하지 않겠소"

"아이. 참. 당신은 너무 완고하시군요. 흐음, 그럼 구혼자들 중에 아무한테나 부탁할 수 밖에요."

샬로트는 한숨을 쉬었다.

"절대 그래선 안 되오."

맥시밀리언는 울화가 화르르 치솟았다. 맙소사, 그는 샬로트를 무릎 위에 엎어놓고 때려 주고 싶었다. 어떻게 감히 이런 권유를 한단 말인가? 밀려드는 분노의 기세에 놀란 그는 몇 번 심호흡을 한 다음 다소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그랬다간 당신 평판이나 좋은 혼처를 찾을 기회 따윈 영원히 잃게 될 거요."

"어머나."

샬로트는 말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풀죽은 듯했지만 다시금 환한 표정을 지으며 비단결 같은 속눈썹을 내리깔고 그를 슬쩍 곁눈질했다.

"하지만 맥스, 당신이 해주신다면 아무도 알지 못할 거예요"

"난 맥스가 아니오. 그리고 난 당신에게 키스하지 않을 거요"

맥시밀리언은 대답했다.

"세상에, 꼬마 아가씨. 당신한텐 내가 답답하고 케케묵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도 어엿한 남자란 말이오. 자칫하다간 키스가‥‥‥더 큰 사태로 발전할 수 있소"

"어떤 사태요?"

그녀는 신이 나서 물었다. 아무리 대담한 질문을 해댄다 해도 그녀의 의도가 순진하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했다.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충동적인 기질에 매운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다짐하며 노려보았다.

"사랑의 행위나‥‥‥‥"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임신도 가능하오."

그녀는 커다랗게 뜬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바라보더니 다음순간 까르르 웃어 버렸다.

"스스로를 못 믿어서 제게 키스하지 못한다는 건가요?"

빌어먹을! 그녀는 그의 인내심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법을 완전히 터득한 모양이었다.

"좋소"

맥시밀리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날랜 몸짓으로 순식간에 그녀를 꼭 끌어안은 다음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꼭 다문 입술을 거세게 눌러댔다. 다음 순간 그는 그녀를 재빨리 밀쳐 버렸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맥시밀리언은 자신의 가슴에 밀착되었던 탄탄하고 풍만하게 솟아오른 가슴의 감촉을 아직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그녀에 관한 한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거친 태도로 인해 그녀가 겁을 먹어 호기심을 저버리거나 적어도 깜짝 놀랐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를 슬쩍 훔쳐본 결과는 사뭇 달랐다. 샬로트에게 나타난 표정은‥‥‥ 실망이었다.

"이게 그거예요?"

그녀는 물었다. 그녀의 경험으로는 상상도 못할 불장난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그녀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며 맥시밀리언은 간신히 자제력의 고삐를 거머쥐었다.

"그게 그거요"

그는 대답했다.

"그리고 더 이상 키스 얘기는 듣고 싶지 않소. 알아들었소?"

그녀는 다소 망설이며 끄덕이더니 고개를 숙였다.

"자아."

맥시밀리언은 시계를 꺼냈다.

"난 오늘 여러 군데 약속이 있으니 가봐야겠소. 구혼자들이 당신에게 자꾸 강요하거든 즉시 내게 알려요. 그럼 내가 처리하겠소"

그는 명령했다.

"아무리 금년 시즌의 여왕이라 해도 지금 당신 입장은 상당히 미묘하오. 한 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주위에서 백안시당하고 결국은 아무 소득 없이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갈 처지란 말이오"

샬로트는 고개를 푹 떨군 채 끄덕였다. 맥시밀리언은 그녀의 양순한 태도를 보고 어느 정도 화가 풀렸다.

"당신 할머님이 나와 관련해서 또 뭔가를 문제삼으시면 내게 알려 줘요. 랠리에게 전갈을 보내면 될 거요. 그 친구는 좀 지나치긴 해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오. 내 주소는 알고 있겠지?"

그녀는 다시금 묵묵히 끄덕였다. 그는 그녀의 턱을 치켜들고 눈을 맞췄다.

"사람들 앞에서는 날 위클리프라 불러야 하오. 알아들었소?"

그는 확실하게 다져 두었다.

"젊은 숙녀가 그렇게 친밀한 행동을 보이는 건 전혀 적절하지

않소"

그녀의 얼굴에 언뜻 스쳐간 슬픈 미소를 보자 그의 심장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착한 아가씨지."

그는 말했다. 다음 순간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선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피부는 기막힐 정도로 보드랍고 아련한 향기까지 주위에 감돌았으며 머리카락이 그의 손등을 어른어른 스쳤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잘 있어요, 샬로트."

그는 딱딱한 웃음을 띠었다.

"안녕히 가세요, 맥스."

그는 문을 나선 순간 깨달았다. 그녀는 겁먹은 태도를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내내 눈에서는 광채를 잃지 않았다. 이후 맥시밀리언은 그녀를 일부러 찾지 않았으며 마주치게 될

만한 사교 모임의 초청도 수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샬로트 생각을 않고 지내기란 불가능한 듯했다. 그녀의 이름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고 특히 랠리는 너무나 즐거워하며 샬로트의 최근전적을 들려주곤 했다. 랠리의 온갖 수다를 들은 덕에 맥시밀리언은 목사의 딸이 영국 귀족의 절반을 손아귀에서 주무른다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맥시밀리언 본인은 그녀에게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녀의 열렬한 추종자인 친구를 통해 오는 메모나 전갈도 없었다. 일정표에 맞춰 1주일을 지내고 나자 맥시밀리언은 초조해졌다. 그는 그녀를 찾아가 볼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약속한 그의 의무였다. 랠리의 장담대로라면 조만간 수많은 청혼이 쏟아질 테니 누군가 적당한 혼처를 가려낼 사람이 필요했다. 샬로트의 친척 여인은 분명 그 임무에 적임자가 아니었다. 맥시밀리언은 생색을 내며 자신이 그 책임을 떠맡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목사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펜을 들었다. 그는 편지에다 샬로트가 성공리에 사교계 데뷔를 마쳤다고 쓰는 한편 별 볼일 없는 구혼자를 솎아내 버리는 일은 자기에게 믿고 맡기라고 목사를 설득했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그는 파티에 참석했다. 지칠 줄도 모르고 소식을 전해 주는 랠리 덕에 그는 샬로트가 그 파티에 참석하리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는 파티장에 들어서면서 당당하게 시계를 꺼내 보았다. 한 시간, 그는 자신에게 못박았다. 이번에는 목사의 딸 때문에 일정이 어그러지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할 것이다. 맥시밀리언은 파티장을 둘러보았지만 샬로트는 춤을 추는 무리에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없었다. 하지만 랠리는 금방 눈에 띄었다. 그는 몰려 있는 사람들 가장자리에 심드렁하니 서서 외알 안경으로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맥시밀리언은 다른 손님들에게 고갯짓과 간단한 인사말을 몇 번 건넨 뒤에야 친구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봐, 그 아가씨는 어디 있나?"

그는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랠리의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는 두 남자 모두 그가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자네가 인기 절정의 시골 아가씨를 말하는 거라면 대답하기가 망설여지는군."

랠리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맥시밀리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왜지?"

랠리는 아무 죄도 없다는 척을 했다.

"친애하는 친구여, 자네도 알겠지만 난 말이나 옮기고 다니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네"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숙녀가 후견인에게 꾸지람을 당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네. 그 아가씨에게 자네는 그런 역할이 아닌가. 그렇지 않나?"

맥시밀리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랠리?"

그는 이 무심한 친구의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빳빳한 멱살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가씨는 어디 있지?"

맥시밀리언의 적대적인 태도 앞에서 랠리가 보인 반응은 놀랍고 재미있다는 기색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뒷걸음질을 칠 만한 지각은 갖고 있었다.

"이런, 이런, 위클리프 그렇게 흥분하지 말게나!"

그는 씩 웃으며 권고했다.

"조금 전 자네의 그 목사의 딸이 정원으로 나가는 걸 보았다네. 로디 블랙과 함께 말일세."

맥시밀리언은 사람들을 뚫고 바깥쪽 출입구로 가기에 바빠 나직이 킥킥대는 랠리의 웃음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성질은 일촉즉발의 상태에 다다랐다. 그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 잡아죽일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녁의 어둠 속에서 남녀 한 쌍이 속삭이고 있었지만 여자 쪽은 검은머리였으므로 절대 샬로트가 아니었다. 그는 장식용으로 세워 놓은 그리스 풍 주랑 쪽으로 다가가던 중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 우뚝 멈춰 섰다. 성큼 기둥 뒤로 나서자 노리던 대상이 나타났다. 저 날씬한 실루엣은 분명 그녀였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파릇파릇하고 순결한 그의 시골 미녀 아가씨 샬로트가 로디의 품에 안겨 있었다. 맥시밀리언은 속에서 분노가 마구 들끓어 올랐다. 광폭한 분노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 올라왔다.

"자네 주제를 잊었군, 블랙."

그는 이를 악물고 씩씩대며 말했다. 젊은이는 깜짝 놀라 샬로트에게서 떨어지더니 목숨이 두려운 듯 맥시밀리언을 바라보았다. 그 반응을 본 맥시밀리언은 만족감이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그는 젊은이에게 고갯짓을 했다.

"샬로트,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시오"

순간 맥시밀리언은 이 햇병아리가 샬로트의 치마폭 뒤에 숨는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로디는 두려움에 거의 떨면서도 마침내 앞으로 나섰다. 당연히 그래야지, 맥시밀리언은 경멸하며 생각했다. 이 녀석에게 결투를 신청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총으로 쏘아 죽이기보다는 따끔한 교훈을 안겨 주기 위해서였다. 어깨를 다치면 이 녀석의 호색적 기질도 한동안은 죽어지낼 것이다.

"제발, 백작님."로디는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정신이 나가서‥‥‥‥"

맥시밀리언은 험악한 얼굴로 상대의 말을 제지했다. 햇병아리는 결투를 하게 될까봐 잔뜩 겁에 질려 발끝까지 오들오들 떠는 티가 역력했다. 맥시밀리언은 사격의 명수로 유명했다. 그가 결투를 했던 것은 아주 오래 전 딱 한 번뿐이었지만 그때 상대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겉보기엔 과묵하지만 일단 밟히면 가만있지 않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이 애송이 청년이 금년 사교계 여왕의 평판을 망치도록 방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트로브리지 양에게 더 이상 추근대지 말게."

맥시밀리언의 말에 햇병아리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는 따지고 들려고 입을 열었지만 맥시밀리언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사교계에서 환영받는 손님들의 목록에서 밀려나게 될걸세. 자네 아버지의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도 그 사태를 바꿀 수는 없을 걸세. 알아들었나?"

로디는 말없이 끄덕였다. 샬로트를 향한 그의 정열도 그의 생활 방식을 포기해야만 하는 위험 앞에서는 흔들리고 있었다.

"알았나?"

맥시밀리언은 다그쳐 물었다.

"네, 백작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라도‥‥‥"

맥시밀리언은 상대의 말을 끊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자네가 없어진 걸 알아채기 전에 파티장으로 돌아가도록 하게."

로디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정신 없이 샬로트를 흘끔 바라보더니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있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다급히 실내로 달려들어갔다. 맥시밀리언은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다음 그제서야 돌아섰다. 그는 팔짱을 끼고서 오늘밤 처음으로 목사의 딸을 바라보았다. 구혼자와는 달리 샬로트는 맥시밀리언을 눈앞에 두고 손톱만큼도 겁난 표정이 아니었다. 심지어 분개한 기색도 아니었다. 그의 분노가 다시 확 피어올랐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요?"

그는 따져 물었다.

"키스하고 있었어요"

샬로트는 대답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녀의 완벽한 이목구비에 달빛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풍만한 가슴 굴곡이 새 드레스의 재단선 위로 드러나 보였다. 민망할 정도로 노출이 심한 드레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로디도 저 광경에 침을 흘렸을까? 맥시밀리언은 분노가 더욱 타오르면서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그자와 키스를? 당신 미쳤소?"

"아뇨 그냥 호기심이었어요. 비교 경험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양손을 앞으로 얌전히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맥시밀리언은 그 순진무구한 태도에 속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비웃고있다는 불쾌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시험에 들었던 그의 평정이 쨍 하고 깨져 버렸다. 맥시밀리언의 갈색 눈이 가늘어졌다. 샬로트는 지켜보고 있기만 해도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무심한 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였지만 순간 자신의 행동이 과연 현명했는지 문득 불안해졌다.

"풋내기에 침이나 질질 흘리는 저 애송이가 나보다 키스를 더 잘하던가? 그랬소? 그 말을 하려던 거요?"

그늘에 가려진 맥시밀리언의 표정은 엄하기 짝이 없었다. 샬로트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양팔을 움켜쥐고 그녀를 와락 끌어당기며 상처 입히려는 것처럼 벌주듯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로디의 키스와는 전혀 달랐다. 아니, 그녀가 여태껏 경험한 어떤 입맞춤과도 달랐다. 그의 키스는 부드럽지 않았다. 하지 만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맥스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며 그의 감촉을 기쁘게 음미했다. 그의 혀가 입구를 찾아 헤매자 그녀는 기꺼이 입술을 열었고 전에 없던 짜릿한 감각에 붕 떠올랐다. 피가 들끓고 심장이 쿵쿵거렸으며 현기증이 나듯 머리가 빙빙 돌았다. 그의 입을 통해 생명력을 전해 받은 것처럼 그녀의 몸 구석구석이 생기발랄하게 일어났다. 마구 내리누르던 그의 입술이 약간 누그러지면서 혀가 그녀의 입 안을 휘감더니 이를 훑고 숨겨진 비경을 탐색했다. 키스가 바뀌자 그의 포옹도 바뀌었다. 그녀의 팔에서 떨어진 그의 양손은 등을 어루만지더니 점점 아래로 내려왔고 마침내 한쪽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희롱했다. 샬로트는 그의 입술에 대고 한숨을 토하면서 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훑어 내렸다. 리본으로 묶은 매끄러운 머릿단을 어루만지던 그녀는 대담하게도 단번에 매듭을 풀어 버렸다. 부드러운 검은 머리채가 그녀에게로 쏟아졌다. 그녀는 양손을 그 숱 많은 머리카락에 파묻고 감촉을 음미하면서 그의 고개를 자신에게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러자 맥시밀리언은 더욱 깊이 파고 들어와 그녀의 혀를 빨아들이며 호흡을 앗아가 버렸다. 샬로트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흐느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키스였다. 이야말로 그녀가 이 남자에게서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직 이 남자에게서만. 그가 촉촉하고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턱선을 쓸면서 엉덩이 위에서 움직이던 손을 더 한층 친밀하게 놀려 곡선부를 받쳐들자 그녀는 헐떡이며 숨을 들이마셨다. 샬로트는 자신의 하반신이 완전히 그에게 밀착되자 점점 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전신이 자극으로 들떠 올랐다. 그때 맥시밀리언은 낮게 패인 그녀의 목선 위로 고개를 숙이고 따스한 숨결을 내뿜던 중 문득 동작을 멈췄다. 그를 제지시킨 것이 무엇인지 샬로트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가 다시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너무나 애가 탔다. 지금 멈추면 안 돼요! 샬로트는 그렇게 말하려 했다. 속삭이려 했다. 아니, 그의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벅차 오른 그녀의 감각은 어떤 반응도 거부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드는 그의 모습을 속절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영원과도 같은 한 순간 그녀는 그의 시선이 드레스 위로 넉넉히 드러난 그녀의 가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음순간 그는 뭔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대며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샬로트는 하마터면 울 정도로 너무나 날카로운 상실감을 느꼈다.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눈은 가늘었고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매무새를 수습하고 즉시 파티장으로 돌아가요. 누가 찾기 전에 말이오"

맥시밀리언이 말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토해낸 낮고도 떨리는 한숨은 정원의 정적 속에서 그의 말보다도 한층 더 크게 울려 퍼졌다.

"그게 바로 키스요. 그러니 앞으로 결혼할 때까지는 더 이상아무한테도 시험해 보지 않기를 바라겠소"

샬로트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는 항의할 말이 있었지만 그 말들은 그녀의 입을 벗어나기도 전에 사그러들고 말았다. 그의 표정을 본 그녀는 그의 품에 자신을 던져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책임감 강한 신사 맥시밀리언은 그의 본분을 기억해낸 것이다.

바보! 오거스타의 분노한 음성이 그녀의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위클리프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다니 ! 그리고 사라도 있었다‥‥‥‥그녀의 가엾고 착실한 언니는 남자들과 키스하고 다니던 샬로트의 옛날 버릇이 되살아난 것을 알면 엄청난 충격을 받을 터였다. 아니, 이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나쁜 사태였다. 그녀는 백작을 유혹해 낚으려 했다. 모두의 충고 따위는 듣지도 않고 그의 관심을 끌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그녀의 반항적인 기질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무관심하지는 않다는 사소한 증거들 때문이었다. 그래, 맞았다. 샬로트는 오늘밤 백작이 그녀에게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가 무관심하지 않다 한들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그를 곁눈질한 순간 그녀는 맥스가 이제 그녀에게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샬로트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 사실을 되새겼다. 차갑고 엄격하고 고상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들 사이에 그렇게 급격하게 타올랐던 정열은 한낱 꿈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방금 전 사건이 현실이었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절박하게 애썼지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얼굴 주위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있는 머리카락뿐이었다.

"잠깐만요! 당신 머리카락........"

그녀는 속삭였다. 맥시밀리언은 나직이 욕설을 퍼부으며 칠흑처럼 깜깜한 땅바닥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 망할 리본은 어디에 있지?"

"이걸 쓰세요."

샬로트는 검푸른 리본이 실처럼 꿰어져 장식된 그녀의 상의로 손을 가져갔다. 순간 맥시밀리언은 그녀가 주겠다는 것에 자칫하면 깨물리기라도 할 것처럼 응시하더니 천천히 매듭을 풀고 옷에서 리본을 끝까지 사르륵 빼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샬로트는 맥시밀리언의 눈길이 절대 리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왠지 무자비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리본의 끝자락을 옷에서 풀어내는 그의 손길이 떨리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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