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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사 벳시아-13화 (13/16)
  • 13.

    벳시아가 야영지에 도착했을 때, 저녁식사를 마친 사내들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제야 옷이 피범벅이 되어 있음을 깨달은 그녀는 자신이 한 생명을 빼앗았다는 증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펄민이 죽었어요.]

    벳시아가 말했다.

    [그가 나를 공격했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의 선언을 들은 사내들 틈에서 웅성거림이 새어 나왔다. 메리엘이 그녀를 도우려는 듯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지만 벳시아는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나 죽은 궁수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그는 지하 통로를 파괴시켰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는...]

    처음으로 벳시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잠깐 말을 멈추고 목청을 가다듬은 뒤 어깨를 쭉 폈다.

    [사이먼이 그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제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불안정한 벳시아 대신 존이 재빨리 사람들을 조직하여 몇몇은 땅을 파라 보내고, 다른 몇몇은 광부들을 부르러 보냈다. 모두가 떠나자 존이 옆으로 다가왔다.

    [다쳤습니까?]

    [아니에요.]

    벳시아가 말했다. 사실이었다. 육체적으로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강인한 기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마치 몸 속 깊숙한 곳, 심장에서부터 피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 우리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사이먼이에요.]

    존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서 당신의 기사에 대해 알아봅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벳시아는 존이 사이먼을 자신의 기사라고 부른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급히 그를 따라갔다. 그들이 지하 통로 입구에 도달했을 때, 몇 사람은 이미 아래로 내려간 상태였다.

    [통로 자체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버팀목이 잘려진 것 같군요.]

    누군가가 소리쳤다. 벳시아는 사람들을 마구 헤치고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터널 파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을 하는 동안 옆으로 비켜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바로 사이먼을 위해서.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고,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단 한 사람이었다. 벳시아는 흐느낌을 삼키면서 마치 반드시 따라올 것 같은 나쁜 소식을 물리치겠다는 듯 결의가 굳은 태도로 팔장을 꼈다. 사냥터에 있는 철 광산 속에서 죽은 광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았다. 때때로 땅이 무너져 그들을 덮쳤고, 위에서 떨어진 잔해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공기의 부족으로 얼마 못 버티고 생명을 잃었다. 천천히 가해지는 고문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이먼의 모습이 떠오르자 신음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는 터널로 들어가기 전에 좀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어! 어째서 터널 주변을 어슬렁거렸단 말인가? 벳시아는 그가 좁은 공간을, 특히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터널을 파는 것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이먼은 조언을 하거나 터널이 정확하게 파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다. 모두 나를 위해서...그런 생각을 하자 눈 주변이 붉게 달아오르고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벳시아는 눈물을 애써 삼키면서 사이먼은 단지 진정한 기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고, 요란하게 덤벼드는 무수한 감정들을 막아 주지 못했다. 오, 사이먼은 자신이 지닌 정의감만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무엇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자연스럽고 야성적인 힘으로 그녀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서 오직 그녀를 위해 일했다. 벳시아는 저도 모르게 한 줄기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비록 오만하고 고집스럽기는 해도 사이먼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녀의 인생을 마음대로 하려고 들었지만 벳시아는 그의 존재, 퉁명스런 목소리와 몸이 그리웠다.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벳시아는 사랑 앞에서는 논리적인 사고도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벳시아는 자신이 강하며 오랫동안 경멸해 마지않던 감정들에 대해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어둠이 깔리고 등불과 연장, 그리고 흙을 퍼내기 위한 양동이들이 모아지는 가운데 서서 기다리던 그녀는 지난 몇 주일 동안 한사코 거부하던 감정을 인정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심장은 더 이상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는 것처럼 공허했다. 사이먼 드 부르그가 심장을 훔쳐냈기 때문에.

    [펄민이 버팀목을 잘라버린 것이 분명해요. 하지만 왜 사이먼이 거기로 내려갔는지 모르겠군요.]

    존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벳시아는 돌아섰다.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손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에요.]

    그녀가 대답했다. 존은 그녀를 흘끗 보았다. 사이먼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아는 눈치였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 그리고 어떻게 펄민은 그에게 눈치채이지 않고 뒤따라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 기사는 우리 가운데 누구와도 상대할 수 없는 강한 사람이었는데요.]

    벳시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하려다가 실패했다.

    [아마도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죠.]

    벳시아는 최근에 그와 벌였던 말싸움을 떠올리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그녀는 그의 차가운 시선을 기억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상처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은 오직 신만이 아실 거야. 어쩌면 사이먼 역시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그는 나에게 욕망 이외의 무엇인가를 느꼈을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그는 마지막 싸움에 영향을 받았을 게 분명해. 벳시아를 감아대던 죄의식은 천천히 분노로 바뀌었다. 그 남자는 항상 조심성이 없고 무모하게 행동했어! 갑옷을 입고 다니라고 충고까지 했는데...항상 공격당할지도 모르니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했는데...벳시아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막 새어 나오려는 순간 터널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이 발을 찾아냈답니다.]

    궁수 한 명이 잔뜩 흥분하여 소식을 전했지만 벳시아는 현기증을 느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기절한 적이 없는데도 발밑이 마구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무줄기에 몸을 기댔다. 발이라고? 그 단어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벳시아는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손바닥으로 다리를 꽉 눌렀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지금까지 집과 자유, 상속권과 아버지의 사랑을 잃고 고통을 받아왔지만 쓰러진 사이먼 드 부르그의 모습은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를 찾아냈어요, 벳시아!]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렀다. 벳시아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돌아서서 단단한 나무줄기에 고개를 묻어 버리고 싶은 비겁한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벳시아는 사이먼이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든지 그를 똑바로 보겠다고 결심하고 광산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적어도 그 정도의 경의는 표시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살아 있습니다!]

    목을 조르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 왔고 벳시아는 그것이 자신의 복구멍에서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와들와들 떨리면서 안도감이 몰려들었다. 사이먼이 살아 있다니...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어디를 어떻게 다친 것일까? 벳시아는 사람들이 그를 땅위로 끌어올릴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두 사람이 꼼짝도 하지 않는 그의 몸을 운반하는 것을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갔다. 저도 모르게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눈은 감겨 있었고 숨소리는 희미했다. 강물에서 자주 목욕을 해서 늘 청결하던 몸이 진흙으로 덮여 있었다. 벳시아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몸에서 흙을 떨어냈다.

    [괜찮을까요?]

    벳시아는 자신이 듣기에도 이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포로 심장이 마구 뛰었다. 등불이란 등불이 모두 켜졌고, 마침내 한 광부가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땅속은 변동이 잦은 공간이죠. 때때로 나쁜 공기가 사람을 금세 죽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공기 주머니가 형성되어 목숨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아주 운이 좋았어요. 우리는 시간을 잘 맞추었죠. 만약 밤새 그곳에 있었다면...]

    광부는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펄민이 원하던 것이 바로 그거예요.]

    벳시아는 중얼거렸다. 마음이 사악한 궁수는 사이먼이 천천히 고통을 당하는 동안 그녀와 신나게 즐길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벳시아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다급하게 달려와 잘못을 털어놓던 주다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사이먼은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진흙에 묻혀 있던 그의 몸뚱아리를 내려다보았디.

    [그를...]

    [우리집으로 옮기도록 해요.]

    메리엘이 말했다. 벳시아는 놀라서 고개를 들고 사람들 틈에 선 메리엘을 보았다.

    [아가씨가 그를 돌보는 동안 저는 제 동생 집에서 머물겠어요.]

    나이 든 과부가 부드럽게 말했다. 고마운 제안이기는 했지만 벳시아는 주저했다. 메리엘의 오두막집은 매우 멀고 마을길 건너에 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만약 누군가 축 늘어진 배더슬리의 영주를 운반하는 그들을 본다면 설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산적의 무리로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벳시아는 다른 장소를 떠올렸다. 버려진 광산? 동굴? 조그만 헛간? 비록 작고 간소하기는 해도 메리엘의 집이 간이로 만든 야영지보다는 훨씬 편안할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물이 있고 음식을 데울 난로도 있었다.

    [좋아요.]

    벳시아는 고마움이 담긴 시선으로 메리엘을 바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부하들은 아무 말 없이 인내심 있게 그녀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를 손수레에 실어요. 내가 데려가겠어요.]

    그녀는 혼자서 가고 싶었다.

    [내가 돕죠.]

    존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단호했고 벳시아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숨겨 놓은 장소에서 손수레를 꺼내 오고 대장장이에게서 말을 빌려 왔다. 벳시아와 존은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로 변장하고 어둠을 방패삼아 길을 떠났다. 그들은 어두운 사냥터를 가로질러 천천히 나아갔다. 벳시아는 속력이 너무 느린 것을 탓했다. 그렇게 꾸물거리다가 자신의 기사가 딱딱한 손수레 바닥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 것 같았다. 물론 마지막으로 살펴보았을 때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벳시아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공포감을 애써 억누르며 침묵을 지켰다. 그동안 그들은 숲 속을 지나 메리엘의 오두막 집으로 가는 길을 건넜다. 그녀와 존은 거대한 몸집의 사이먼을 손수레에서 내려 침상에 눕혔다. 그를 내려놓은 뒤 존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내가 옆에 있을까요?]

    [아니에요. 손수레를 가지고 돌아가도록 해요. 그리고 당신이 과부의 오두막집에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존은 벳시아를 도와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시선으로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돕는다는 말인가? 그는 치료사가 아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그런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마침내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벳시아는 얼룩진 자신의 옷을 내려다볼 때까지 그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사이먼의 사고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펄민이 자신을 공격한 사실에 대해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그래요, 나는 괜찮아요. 이것은 모두 그의 피예요.]

    그녀가 설명했다.

    [그를 묻어 주도록 해요.]

    존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펄민은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요.]

    벳시아가 동의했다. 하지만 존은 개인적인 감정에도 불구하고 펄민의 시신을 잘 처리해 줄 것이며 벳시아는 존의 도움에 고마워하며 문까지 배웅하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나무를 쌓아 놓은 벽난로로 다가갔다. 불길이 밝게 타오르자 벳시아는 돌아서서 사이먼이 누워 있는 곳으로 다가가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떨리는 손을 그의 심장 부근에 댔다. 손바닥 아래로 규칙적인 고동이 느껴지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튜닉에 달라붙은 흙을 떨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그의 몸을 닦아야 할 것 같았다. 그 뒤에 상처를 살펴보고 치료를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옷을 벗겨냈다. 기온이 꽤 높은 밤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화덕 위에 물을 담은 양동이를 올려놓고 그것이 조금 데워졌을 때 수건에 적셔 그의 몸에 묻은 것들을 닦기 시작했다. 감정의 홍수 속에서, 벳시아는 그에게 키스하던 뜨거운 순간을 떠올렸다. 또다시 그런 기분을 경험하고 싶었다. 정지한 그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고, 눈동자 속에 너울거리는 불꽃을 보고 싶었다. 벳시아는 숨을 멈추며 그런 이미지들을 지워 버리려고 노력했다. 사이먼은 깨어나지 못할지도, 다시는 아무 것도 못할지도 몰라. 그녀는 솟구치는 흐느낌을 억지로 삼키면서 그의 몸을 닦아냈다. 천이 목과 넓은 가슴으로 내려오면서 빳빳한 털과 평평한 젖꼭지가 손가락에 닿았다. 비록 자신의 몸단장도 그렇게 해본 적도, 앤스퀴스에 온 어떤 손님도 씻겨 본 적이 없지만, 벳시아는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그의 몸 어떤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발을 들어올려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꼼꼼하게 닦았다. 그러나 그의 육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요, 사이먼.]

    벳시아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면 얼마든지 나를 놀려도 좋아요. 그래요,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할게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약속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 오지 않았다. 벳시아는 물이 든 양동이를 옆으로 밀아 놓은 뒤 할 수 있는 한 베인 상처와 멍을 치료하고, 와인으로 가장 심각한 상처를 소독했다.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머리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상처를 입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이먼에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벳시아는 중얼거렸다. 그런 일은 허락할 수 없어.

    [당신은 회복될 거예요, 사이먼 드 부르그. 그렇지 않으면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이는 게 나아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 거친 경고에도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자 벳시아는 저만큼 걸어가 피묻은 옷을 벗고 남은 물로 자신의 몸을 닦았다. 그러고는 그곳에 놓아두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침상으로 돌아와 얇은 담요로 그의 몸을 덮었다. 벳시아는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가슴에 손을 얹어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이먼의 상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길...그녀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극도의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는 팔에 고개를 대고 잠에 빠져 들었다. 벳시아는 눈을 깜박거리고 고개를 홱 쳐들다가 목 근육이 꼬이는 바람에 몸을 움찔했다. 메리엘의 조그만 오두막집 안의 짚단 사이에 앉아 사이먼이 있던 침상에 팔을 올려놓고...그가 사라진 것을 깨달은 그녀의 목에서 조그만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벳시아는 황급히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때 입구를 가득 메운 사람의 커다란 몸집을 보고 발을 멈추었다. 사이먼...그는 문 입구에 서 있었다. 아침 햇살 속에 본 그의 몸은 온통 멍과 상처투성이였다. 벳시아는 강인한 육체에 대한 본능적인 허기를 포함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안도감으로 대체될 때까지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밖에서 뭘 하고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사이먼은 아무런 저항 없이 조그만 오두막집으로 들어왔고, 벳시아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파리한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녀는 그에게 달려갔다.

    [당신은 누워 있어야만 해요, 이 멍청한 남자 같으니!]

    그가 부축하려던 그녀의 손길을 떨구어냈을 때 마치 몇 시간 동안, 아니, 몇 날 몇 주일 동안 참았던 열정이 통제력을 부수고 터져 나왔다.

    [바보 멍청이! 당신이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요!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아래까지 내려간 거죠? 왜요?]

    벳시아는 그가 손목을 잡을 때까지 그의 넓은 가슴팍을 두들겼다. 사이먼은 그녀의 두 손목을 꽉 잡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들 주변에 흐르던 공기의 흐름이 한순간 멈춘 기분이었다. 갑자기 벳시아는 거의 벌거벗은 그에게 자신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깨달았다. 눈길을 떨어뜨린 그녀는 그 역시 같은 기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벌써 숨이 가빠왔다. 그녀의 심장은 무섭게 뛰고 있었다. 벳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강한 욕망이 드러난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꽉 다문 그의 입 주변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나는 피하지 않을 거요.]

    그가 말했다. 모든 시간들의 기억이, 그를 거부했던 모든 시간들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남자처럼 살아왔다. 이제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럴 거예요.]

    벳시아가 고개를 쳐들면서 대답했다. 순간 그가 육체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직도 자신의 손목을 꽉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숨겨진 모든 갈망과 숨막히는 열망은 그녀의 몸 속에서 생명으로 분출했고 그것을 부인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녀는 입술로 그를 공격했다. 그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손가락이 팔 아래를 지나 등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벳시아는 크고 강인한 그의 몸에 비짝 다가섰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벳시아는 사이먼의 훌륭한 몸에 있는 모든 근육과 살갗을 느끼고 싶었다. 성급한 그의 손가락이 어깨와 가슴, 옆구리, 그리고 단단한 엉덩이로 내려왔다. 벳시아는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그의 단단한 턱과 목, 그리고 거친 가슴 털에 키스를 했다. 그의 입술에서 거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 그의 배꼽에 혀를 댔다. 사이먼은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벳시아...]

    그의 거친 속삭임을 듣자 그녀의 열정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는 치마 속으로 들어와 속옷을 벗겨내는 사이먼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벳시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벳시아의 이름을 부르며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벳시아는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귀를 잘근잘근 씹었다. 사이먼은 다급하게 벳시아를 침상에 눕히고 다리를 벌렸다. 벳시아는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온 그의 몸이 무겁기는 했지만 더없이 반가웠다. 두 사람의 손은 거칠고 미친 듯이 움직였다. 그녀는 다리로 그의 단단한 허벅지를 훑어 내리면서 뜨겁게 달구어진 그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이마로 흘러내린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긴장한 얼굴, 꽉 다문 턱...그녀는 그의 찌푸림조차 사랑했다.

    [나는 멈출 수 없소.]

    그가 중얼거렸다. 벳시아는 반항하지 않았다. 맥박이 마구 뛰면서 그녀를 몰아댔다. 이것은 생명이야. 사랑이야. 그녀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멈추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 사이에 뜨겁고 본능적인 무엇인가가 자라났다. 사이먼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그녀 안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벳시아는 그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그의 남성이 순결한 처녀성을 뚫고 들어올 때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고통은 왔던 것만큼이나 재빨리 사라졌다. 벳시아는 그가 완전히 들어와 주길 갈망하며 그의 몸에 다리를 감았다. 사이먼은 빠르고 깊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 그것으로 충분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손이 엉덩이를 잡고 더 가까이 끌어당길 때까지 못 참겠다는 듯 몸부림을 쳐댔다.

    [벳시아...]

    낮은 속삭임이 그녀의 내부에 들어 있던 무엇인가에 불을 붙였고, 벳시아는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신음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맥박은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뛰었다. 그가 깊이 들어올 때마다 그녀의 감각들은 회오리 속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다음 순간 짜릿한 전율이 밀려 들어왔다. 벳시아는 즐거움 에 넘친 신음 소리를 참기 힘들었다. 곧이어 사이먼이 마지막 돌격을 했다. 그의 고개가 뒤로 꺾어지고 근육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이완되었다. 벳시아는 그를 환영했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벳시아는 그들이 나눈 열정의 힘에 경외감을 느꼈다. 비록 경험은 없었지만,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쉽게 부서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이먼이 건강하게 살아 자신을 안아 주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벳시아는 나머지 모든 것을 무시한 채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사이먼은 나른한 가수면 상태에서 떠다녔다. 가슴으로 자신을 깨우려는 강렬함이 몰려들면서 암흑에 빠져들었다. 그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만족을 느꼈다. 전쟁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보다 더 커다란 기쁨이었다. 숲 속에서 발견한 평화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게다가 절대로 변치 않을 것 같은 깊은 만족감과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즐거움을 예고했다. 벳시아...사이먼은 즉시 눈을 뜨고 그녀의 체취와 사랑의 향기가 뒤섞인 공기를 들이마셨다. 순간 그의 몸이 긴장했다. 사이먼은 자신이 아직도 그녀의 몸 속 깊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자궁에 씨를 뿌린 이래로 얼마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지금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녀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지난날의 충돌은 금세 잊혀지고, 이제 그는 지금 머무른 곳에 남길 원했다. 그녀에게 둘러싸인 채 그녀를 만지고, 체취를 맡고, 느끼고...영원히. 그는 또다시 숨을 빨아들였다. 조그만 움직임도 한껏 즐기고, 한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세게 끌어올리면서 목에다 코를 문질러 댔다. 그녀의 피부는 가장 섬세한 천보다도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곡선과 가느다란 근육의 경이로운 조합은 그의 육체에 강한 자극을 전달했다. 그는 이빨로 자신을 물던 뜨거운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를 깨물었다. 벳시아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자 사이먼은 그녀에게 더 큰 쾌감을 안겨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탄탄한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숨을 훅 들이마시며 가만히 멈추었다. 사이먼은 만약 자신이 귀를 기울인다면 어디가 가장 민감한 부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더욱 흥분되었고, 사이먼은 다시 손을 끌어올려 작지만 단단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벳시아는 가슴을 만져 주는 그의 손가락을 반겼다. 사이먼은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그녀의 목과 매끈한 어깨를 입으로 빨고 강한 자극으로 그녀의 감각을 일깨웠다. 벳시아는 부드럽지만 강렬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사이먼...]

    그녀의 중얼거림은 그의 피를 타오르게 했다. 전에는 재빨리 행위를 끝마치곤 했는데 지금은...지금은 그녀를 또다시 갖고 싶었다. 그리고 또다시. 사이먼은 평소의 차갑고 침착한 표정 대신 열정으로 안달이 난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또?]

    그는 일부러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면서 큰소리로 물었다.

    [다시 해요.]

    벳시아는 그를 향해 입을 내밀고 다리로 그의 몸을 감으면서 말했다. 사이먼은 신음 소리와 함께 그녀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광란에 가까웠던 조금 전의 행위와는 달리 두 사람의 몸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벳시아는 그의 등을 움켜잡고 몸을 들이밀었다.

    [벳시아...]

    사이먼은 열기로 휩싸인 그녀의 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속삭였다. 그가 다시 빠져 나오자 그녀는 그를 얼른 잡아챘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벳시아는 사이먼의 목에 키스를 퍼부으며 그를 끌어당겼다. 사이먼은 두 사람이 모두 숨을 가쁘게 내쉴 때까지 계속 그녀를 공격했다. 사이먼은 벳시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연한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이고 열정이 가득한 표정은 부드러웠다. 사이먼은 나머지 여생을 그녀의 몸 안에서 보내고 싶었다. 늘 재빨리 끝내 버리던 쾌락을 길게 연장하고 싶었다. 순간 이 모든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아직 자신이 광산 아래 묻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런 운명은 견딜 수 없어. 그는 마치 그녀의 영혼과 육체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깊고 세게 들어갔다.

    [벳시아!]

    사이먼은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면서 그녀의 턱을 잡아 살짝 들어올렸다. 그런 다음 다시 그녀의 입술을 탐하면서 이제 확실하게 그녀가 자신의 것이란 사실을 전달했다. 영원히 말이다. 사이먼을 구한 이래로 며칠 동안을 벳시아는 너무나 짧게 느꼈다. 그들은 메리엘의 조그만 오두막집 침상에 누워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그와 함께 나누는 즐거움에 몰두했다. 사이먼은 빠르게 회복했고, 배더슬리로 전갈을 보냈다. 벳시아의 정성스런 간호로 그는 바깥으로 드러난 찰과상과 멍을 제외하면 예전과 다름없는 건강을 되찾았다. 광부들은 다시 일에 착수하고 존은 매일매일 들러서 진행 과정을 보고했다. 다행히도 펄민이 파괴시킨 것은 지하 터널 맨 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함몰 장소는 금세 치워졌다. 만약 날씨가 도와준다면 터널은 곧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벳시아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녀와 사이먼 사이에는 오두막집에 더 오래 남아 있기 위해 그의 건강을 핑계로 내세우는 암묵적인 동의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심장을 빼앗겼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벳시아는 그가 거친 손으로 자신을 쓰다듬고 사랑을 나눌 때 셀 수도 없이 그에게 주어 버렸을 것이다. 때때로 그들은 천천히 사랑을 나누었다. 그럴 때마다 벳시아는 신음 소리를 내며 그에게 매달렸다. 또한 사이먼은 그녀의 치마를 얼른 들추고 그녀에게 숨을 고를 시간조차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벳시아는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이 그의 손길이 자신의 몸에 닿길 바랐다. 그렇게 상상의 세계에서 사는 나날들은 지나갔다. 벳시아와 사이먼은 자신들만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벳시아는 이것을 무한정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와 전사로서의 생활,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조그만 목소리로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벳시아에게 그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하 광산의 블랙홀처럼 느껴졌다. 사이먼은 정말로 나와 결혼하길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재의 상태로 만족하는 것일까? 벳시아는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비록 그를 사랑했지만 오랫동안 몸에 밴 조심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불가능했다. 벳시아는 옷에다 손바닥을 닦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이 점점 어두워져 회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존이 비가 오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구해내고 싸움을 종결짓기를 갈망하는 만큼, 벳시아는 폭풍우가 몰려와 어쩔 수 없이 일이 지연되고 의무와 욕망의 경계선 속에 남는 일이 더 오래 계속되길 바랐다. 마치 그녀의 생각을 반영이라도 하듯, 사이먼이 오두막집 문가에 나타났다. 그를 본 벳시아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에게서는 오만함과 힘이 발산되었다. 그녀의 심장이 고통스럽게 비틀대며 현기증을 일으켰다. 하지만 침착한 표정 뒤로 내일에 대한 공포를 애써 감추었다.

    [존이 늦는군요.]

    그녀는 손을 이마에 대고 숲 속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그녀가 돌아설 때 가벼운 바람이 치마 속으로 들어왔다.

    [아마 곧 닥칠 폭풍우를 피하느라 그럴 거요.]

    사이먼이 대답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오두막집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오후에는 몰려드는 폭풍우 구름 때문에 여행객이나 농부들이 집안에만 머무르는 듯 길가가 매우 한적했다.

    [오늘 일이 끝날 것 같다고 했소. 만약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통로가 손상을 입지 않는다면 말이오.]

    사이먼이 말했다. 그렇다면 비가 오게 내버려둬요, 벳시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브리스에 대항하여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다급하게 준비를 서둘렀는데도 지금 이 순간 벳시아는 일이 끝나길 바라지 않았다.

    [정말로 당신이 공격을 지휘할 건가요?]

    그녀가 묻자 사이먼은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은 내가 전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하오?]

    그는 눈썹을 불쑥 들어올리면서 물었다. 벳시아는 미소를 지었다. 사이먼은 강렬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오두막집 외벽에 그녀의 등을 기대게 했다. 그녀는 또다시 열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사이먼의 키스에 의해서도 그녀의 걱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오면 사이먼, 그리고 그들 모두는 앤스퀴스의 탈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사이먼은 자신이 선발한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전갈을 보내어 그와 합류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지금 그 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장원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나날들을 함께 보내면서 사이먼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벳시아는 다시는 그와 함께 보낸 귀중한 나날들이 되풀이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앤스퀴스를 탈환한다고 해도 더 이상 함께 잠들지 못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감각적인 율동에 몸을 움직이고 서로 뒤엉커다 지쳐 쓰러지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변할 것이다. 벳시아는 음울한 시선으로 앞날을 내다보았다. 지하 터널 따위는 잊어버려! 그냥 내버려둬! 사이먼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을 때 벳시아의 머리 속에서 강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하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는 자신의 딸을 내버리다시피 했지만 그녀는 병들고 약해진 아버지를 내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앤스퀴스로 가지 않는다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살아보겠다는 나의 희망은...사이먼이 두 손을 머리에 대고 몸을 받치면서 들여다보았을 때 벳시아는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느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반가웠다. 그녀는 팔을 들어올려 그의 목에 감았다.

    [다 젖겠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사이먼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목 줄기로 내려갔다. 사이먼은 고개를 들고 그녀의 눈을 그윽하게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도전적인 맹렬한 빛이 담겨 있었다.

    [상관없소.]

    그가 중얼거렸다. 사이먼이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세게 누를 때 가벼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사이먼의 열기와 빗방울의 차가움을 동시에 느낀 벳시아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녀가 머리를 오두막집 벽에 대고 있는 동안 사이먼은 옷 가장 자리에 손을 댔다. 사이먼은 치맛자락을 들어올리고 다리를 벌렸다. 벳시아는 그의 손길이 닿자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고, 그는 바지 끈을 풀렀다. 그의 남성이 자유롭게 모습을 드러내어 여자의 비밀스런 곳에 닿자 벳시아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들어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턱을 잡아 자신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도록 했다. 마치 그녀에게 불도장을 찍는 듯...하지만 벳시아는 그의 소유가 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농염하게 익어갔고, 그가 몸 안으로 들어왔을 때 몰려온 뜨거운 쾌감을 환영했다. 사이먼은 점점 더 깊이 들어 갔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부드러운 물방울이 그녀의 가슴 위에 닿았다. 벳시아는 몸부림치며 미친 듯이 그를 움켜잡았다. 벳시아는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 자신들이 밖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훤한 대낮에 바깥에서 말이다. 하지만 벳시이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다만 사이먼이 자신의 몸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너무나 깊게...벳시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몰려드는 경련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사이먼의 다급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면서 그의 몸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사이먼이 막 그녀의 몸 밖으로 빠져나갔을 때 그들은 누군가의 외침을 들었다. 벳시아는 떨리는 손으로 젖은 옷을 바로잡고 벽에서 한 걸음 걸어나왔다. 사이먼은 이미 오두막집 옆으로 발걸음을 옮긴 상태였다. 둘 다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벳시아는 넋을 놓고 있던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소리친 사람은 존이었고, 그는 비를 맞으며 서둘러 길을 건넜다. 벳시아는 그가 조금 더 일찍 도착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웃고 있는 그를 맞이했다.

    [일이 끝났습니다!]

    그가 말했다.

    [땅바닥에서 몇 미터만 남겨 놓고 말입니다. 우리는 성의 안뜰로 들어갈 수 있어요. 만약 비가 통로로 스며들지 않는다면 내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전투를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지러운 사이먼은 존과 함께 기뻐했다. 누가 그를 탓할 수 있겠는가? 벳시아는 자신 역시 축하할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미소가 나오지 않아 억지 웃음을 웃었다. 그토록 힘들게 쟁취하려던 목표가 지금은 텅 빈 승리처럼 여겨졌고, 한때 갈망하던 자유도 옆에 선 기사로 인해 빛을 잃었다. 마치 새로운 시작이 아닌 종말처럼 느껴졌다. 낭만적인 시간은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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