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전사 벳시아-11화 (11/16)
  • 11.

    벳시아는 숨어 있던 덤불 속에서 사이먼의 모습을 보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녀는 후들후들 떨리는 사지를 커다란 참나무에 의지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너무 조심한 나머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만약 지금 사이먼이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는 아마 자신만의 비밀스런 모습을 훔쳐본 그녀를 경멸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기사가 약한 모습을 본 자신을 미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자 차가운 한기가 몸을 따라 흘렀다. 어떤 남자는 자신들의 육체가 느끼는 욕구에 대해 너털웃음을 짓거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달래기 위해 특이한 방법을 사용 한다. 벳시아는 그런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이먼 드 부르그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욕망을 포함한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벳시아는 멀어져 가는 사이먼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힘없는 다리를 쭉 폈다. 몰래 훔쳐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메리엘의 오두막집 앞에서 본 사이먼의 행동이 하도 이상해서 따라와 보았을 뿐이다. 자신을 본 사이먼의 얼굴은 무엇인가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달리는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늘 하던 퉁명스런 대화마저 길고 숨막힐 듯한 침묵으로 여러 번 중단되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갑자기 숲 속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자 걱정이 앞섰다. 사이먼이 자신들을 배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벳시아는 그를 완전히 믿었다. 하지만 사이먼 드 부르그는 만약 그녀가 안다면 절대로 찬성하지 않을 무모한 모험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내였다. 벳시아는 그가 육체의 욕망을 참지 못해 숲 속으로 달려갔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특히 자신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는...그녀는 지금까지 남자들의 시선을 많이 받아 보지 않았다. 비록 남자의 옷을 입었을 때 존경의 눈길을 받은 적은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강한 기사가 자신의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벳시아는 다시 한 번 기억을 떠올렸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 역시 그와 같은 갈망에 고통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장이 세차게 뛰면서 가슴이 부풀고 하체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에게 달려가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의지를 동원해야만 했다. '거기에 키스해 주시오, 벳시아.' 그의 말이 귓가에서 윙윙거렸고, 벳시아는 사이먼 앞에 무릎을 꿇고 요구대로 해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심지어 지금도 그녀의 육체는 성취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욱신거렸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목놓아 울고 싶었다. 바로 그 남자 때문이야. 벳시아는 사이먼 드 부르그를 처음 노렸던 그 날을 후회하며 고통스런 신음 소리를 냈다. 이런 감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았다. 이번 전투가 지금까지 싸워온 가운데서 가장 힘들게 느껴졌다. 벳시아는 힘을 모으기 위해서 허벅지에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모든 것이 평상시로 돌아갔다. 적어도 벳시아는 사냥터로 돌아온 사이먼을 보았을 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이먼은 자신이 당한 사고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고 고백했고, 따라서 징벌의 위협은 사라진 셈이었다. 그들은 긴장을 풀었고, 그녀의 부하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광부들은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고, 벳시아는 버려진 오두막집으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었다. 사이먼이 가까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사로잡는 뜨거운 열기만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이먼은 다시 키스를 하거나 그녀를 향한 열정을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벳시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시선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마치 발화되길 기다리는 불씨 같았다. 그리고 사이먼을 흥분시킬 만한 행동을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열정에 대답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죄의식마저 느꼈다. 그녀는 할 수 있었다. 거친 남자의 옷을 입고 지내던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느꼈다. 갈망을 느끼는 여자...벳시아는 위협을 느꼈다. 이런 갑작스런 욕망은 그녀를 약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벳시아는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자신감을 보여 주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가르친 능력과 부유한 가문의 일원이라는 지위는 못된 친척들에게 괴로움을 당한 뒤에도 벳시아가 자부심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벳시아의 강인한 영혼은 오랜 동안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부서지지 않았고 브리스도 그것을 꺾지 못했다. 과거에 누렸던 자유를 되찾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목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이먼 드 부르그를 향해 싹튼 벳시아의 감정은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협했다. 그녀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눈으로 그 기사와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잘 살펴보았다. 생소한 감정들, 그에게 달려가 신비스런 여성스러움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결국에는 그의 아기를 갖겠지, 벳시아는 우울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브리스와 싸움을 벌일 수도 아버지를 구출하거나 부하들을 이끌 수도 없을 거야...그에게 이끌리지 말아야 해, 벳시아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러고는 일부러 그의 결점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너무 자주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미소도 지을 줄 모르며, 늘 거칠고 무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무뚝뚝함을 좋아했다. 아무리 나쁜 점을 찾으려 해도 자꾸 엉뚱한 쪽으로만 생각이 흘러갔다. 벳시아는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혼자 빙그레 웃었다. 자신의 믿음에 충실하고 완고한 사이먼은 내가 그를 정면으로 공격활 때까지 나의 능력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거야. 그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둘 때까지는. 마치 사이먼을 향한 열중을 반영이라도 하듯, 벳시아의 생각은 야영지로 돌아갔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그를 보자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이먼 드 부르그는 그녀가 아는 한 가장 단정한 사내였다. 이맘때는 물이 차가울 텐데도 그는 늘 시냇가에서 몸을 씻는 것 같았다.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 모습,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단단한 육체에 달라붙은 튜닉...벳시아는 그를 향한 원치 않는 이끌림을 억누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녀는 겁쟁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명한 여자라면 가능한 한 유혹은 피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타일렀다. 키가 크고 근육이 잘 발달한 몸, 열정적인 본능을 숨기고 있는 거친 얼굴의 소유자인 사이먼 드 부르그는 일종의 시험 대상이었다. 의문 섞인 부하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벳시아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사이먼은 벳시아가 떠나는 것을 보며 욕구 불만으로 인해 튀어나올 뻔한 거친 말을 꾹꾹 씹어 삼켰다. 그가 사냥터로 돌아온 이래 그녀는 부하들이 눈치챌 정도로 그를 피해 다녔고, 산적들은 조금도 대접할 필요 없다는 듯 위협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이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나와 나의 부하들을 사로잡고 미소로 고문했다! 여자의 악행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는 조프리의 귀중한 책 한 권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그녀를 돕기 위해 돌아왔어. 죽음을 가장하고 살아남은 그녀의 억지 같은 이야기도 믿어 주면서 말이야. 그런데 내가 받은 건 뭐지? 아무 것도 없어! 벳시아는 나의 존재를 견딜 수 없다는 듯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야...사이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가운데서 자신의 도움에 고마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얼마 전에 당한 사고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 퉁명스런 궁수가 일부러 저지른 것인지 모른다는 의심이 갔다. 사이먼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음식을 받아들고 나무토막 위에 앉았다. 드 부르그 가문의 사내로서 충성을 받는데 익숙한 그가 지금은 불신의 눈초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게다가 펄민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악의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펄민이 왜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벳시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벳시아와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데려 왔을 것이다. 물론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사이먼은 거친 산적들 몇쯤은 능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벳시아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린다면? 만약 지하 통로가 발각된다면 어떻게 그녀의 아버지를 보호하면서 앤스퀴스를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사이먼은 한 번도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결정을 내리면 재빨리 행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하 통로뿐 아니라 벳시아에 대해서도 염려를 해야 했다. 비록 벳시아는 자신이 산적들을 지휘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이먼은 의심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벳시아의 강한 기질과 능력뿐 아니라 뜨거운 열정이 폭력으로 돌변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빌어먹을,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만약 이들 오합지졸 가운데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그녀를 탐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벳시아는 무기는 잘 다루지만 자신을 범하려는 남자는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머리 속으로 걱정스런 장면이 똑똑하게 그려지자 사이먼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가슴을 문질렀다. 만약 저 뻔뻔스런 여자가 그토록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녀의 권리를 찾아 주고 보호해 주었을 텐데...그러나 벳시아는 드 부르그 가문의 아 들이자 기사인 그가 마치 이들 하층 계급의 오합지졸들보다 더 위험한 사람인 양 피해 다녔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사이먼은 그녀가 한 말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거부당하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선에게 <노>라고 말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오직 벳시아만이...그 고집쟁이 여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감히 자신에게 대항하며 무기를 내려 놓으라는 말도 듣지 않았다. 게다가 폭발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약을 올리는 버릇이 있었다. 사이먼은 자신의 모든 말에 <네>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벳시아를 흔들어 주고 싶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맹렬하고 뜨거운 감정들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계속 피해 다녔다. 벳시아는 부글거리는 나의 피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사이먼은 아직도 그녀가 자신을 거부한 이유를 몰랐다. 나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숱한 여성들이 관심을 보였는데...벳시아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손을 들어 단단한 턱을 만졌다. 벳시아가 다가오지 못하는 것은 나의 험상궂은 표정 때문인지도 몰라. 미소를 지어 보려고 했지만 나오는 것은 투덜거림 뿐이었다. 비록 자신의 형제들 가운데 뛰어나게 장생간 편은 아니지만 결코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맞설 만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왜 벳시아는 단호하게 나를 거절했을까? 잘난 척하는 스티븐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했다. 사이먼은 긴장했다. 남자들 가운데서도 남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세속적인 그의 동생은 여자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여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생각에 깜짝 놀란 사이먼은 아직도 왕성한 식욕을 보이며 먹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남은 음식을 불 속으로 던져 넣었다. 뱃속이 메슥거렸다. 머리 속에 뿌리박은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일단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새로운 좌절감이 몰려들었다. 한 남자가 어떻게 그것과 싸움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숨을 쉬기에 충분한 공기를 빨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림자가 무서워 도망친 바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진실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된 적은 없는데...나의 적과, 혹은 나의 대답들과 정정당당하 맞서야 해. 사이먼은 입을 꽉 다문 채 벳시아의 오두막집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벳시아는 찾아 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지 않을 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꼭 알아내고 말 거야. 지금 당장. 사이먼은 성급한 걸음걸이로 숲 속을 헤쳐나가면서 그녀와 나누었던 키스를 떠올렸다. 그는 그녀가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고나 탈선이 아니었어. 피가 무서운 속력으로 혈관 속을 달려나갔다. 벳시아가 거주하는 작은 오두막집에 도착했을 즈음, 사이먼은 마치 전쟁을 앞둔 사람처럼 잔뜩 긴장했다. 문으로 사용하는 얇은 판자를 두드리기 전에 손이 자꾸만 칼자루로 향했다. 필요하다면 판자를 부수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먹 관절이 표면에 닿기도 전에 문이 휑하니 열렸다.

    [무슨 일이죠?]

    벳시아는 전에도 종종 입던 남자의 옷을 걸치고 서 있었다. 사이먼은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세게 내려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엇을 입든지, 거친 튜닉이나 아름다운 드레스에 상관없이 지금까지 본 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 그녀는 경계하는 시선으로 그를 계속 쳐다보았다. 사이먼은 벳시아를 보자 혓바닥이 잘 돌아가지 않고, 입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달콤한 그녀의 체취를 맡자 허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녀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나 숲 속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훨씬 더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마치 온몸의 털구멍 하나하나를 통해 그녀가 몸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를 앞으로 몰아세운 것은 욕망이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그녀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사이먼은 그녀에게 다가 섰고, 벳시아도 피하지 않았다. 사이먼은 그녀를 꽉 끌어당기고 문을 세게 닫았다. 그러고는 돈을 주고 산 매춘부에게는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강한 압력으로 그녀의 입술을 빼앗았다. 벳시아는 거부하지 않고 허기진 사이먼을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혀로 혀를 감싸고, 팔로 허리를 감은 채 자신의 몸을 그를 향해 밀어댔다. 순간 사이먼의 걱정은 그녀의 열정 아래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떤 여자도 이토록 강한 욕망을 거짓으로 꾸며낼 수는 없으리라. 그는 키스 하는 동안 한 손으로 벳시아의 가느다란 목을 받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을 고동치는 자신의 남성을 향해 끌어올렸을 때, 그는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는 벳시아의 손가락을 느꼈다. 사이먼은 입술을 떼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여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사악하리만큼 매력적인 눈빛을 보자 몸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사이먼은 그녀의 옷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녀를 벌거숭이로 만들고, 강하고 매혹적인 그녀를 정복하고 싶었다. 사이먼은 벳시아의 목에 입술을 대고 누르면서 남자의 옷 아래로 손을 넣어 풍성한 육체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에서 즐거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튜닉을 조금씩 아래로 끌어당긴 다음 오두막 내부의 흐릿한 불빛에 드러난 연한 곡선에 입술을 댔다. 부드러운 가슴을 만지는 그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르고 가빠진 숨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렸다. 이런 기분은 평생 처음이었다. 마지 내부에서 불길이 솟아 온 몸을 태우는 듯,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이 가득 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몸을 수그리고 하얗게 드러난 피부를 맛보았다. 그의 뺨이 단단하게 부풀어오른 가슴에 닿자 벳시아는 몸을 활처럼 휘었다. 자신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순간 벳시아가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사이먼은 고개를 홱 쳐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벳시아의 숨소리가 자신만큼이나 거칠었다. 야성의 빛을 띤 눈동자를 본 사이먼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바지 속의 남성이 즉시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자신을 원한다고 생각하자 열광적인 기쁨이 그의 몸 속을 관통하며 현기증을 일으켰다.

    [벳시아...]

    그는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그녀를 눕히고 이 고동치는 욕구가 잦아들 때까지 그녀의 몸 속에서 쉬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벳시아.]

    어지러운 한순간, 사이먼은 자신이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두막집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사이먼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몸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벳시아는 그에게서 팔을 거두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사이먼은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일 수 없었다. 벳시아가 문 밖으로 나서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펄민과 벳시아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뭔가 완강하게 주장하는 듯한 펄민의 목소리를 듣자 사이먼은 분노가 치밀었다. 사이먼은 몸을 돌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확 열어젖혔다. 벳시아는 쓸데없는 참견을 받은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사이먼은 잠깐 망설였다.

    [내가 곧 가겠어요.]

    그녀는 펄민에게 말했다. 사이먼은 화가 나서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나를 이곳에 남겨놓을 생각이야. 이런 상태로. 사이먼은 일부러 눈길을 피하다가 마침내 마지못한 듯이 숲 속으로 사라지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펄민이 떠나자 벳시아는 몸을 돌려 오두막집으로 향하더니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조금 전까지 열정이 가득했던 얼굴이 무표정하게 바뀐 것을 보자 사이먼은 더욱 화가 났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잖아요.]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다시는 나에게 다가서지 말아요.]

    이 여자가 조금 전 내 어깨를 깨물던 여자란 말인가? 사이먼은 벳시아를 마구 흔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한 발자국 다가섰을 때 그녀는 물러섰다. 분노한 사이먼은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세게 쳤다.

    [당신도 그것을 느꼈을 거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우리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마시오.]

    [물론 나도 느꼈어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사이먼은 순순히 인정하는 벳시아의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왜 욕망을 억누르려는 것일까? 왜 나를 거부하는 것일까? 마치 그녀가 거짓말을 하거나 지신을 속이기라도 한 듯, 강한 배신감이 들었다. 사이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왜...?]

    그가 다그쳤다.

    [짧은 쾌락을 위해 큰 것을 잃고 싶지 않아요.]

    사이먼은 정곡을 찌르는 벳시아의 대답을 듣고 움찔했다.

    [물론 그것은 분명 쾌락을 가져다 줄 태지만 나는 당신의 사생아를 가질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당신은 그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사이먼은 마치 그녀에게 한 방 맞은 듯 현기증을 느꼈다. 자신의 씨가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돈을 주고 산 매춘부들 가운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후끈한 기운이 목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사이먼은 또다시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은 벳시아의 공격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만약 그런 위험에 대한 조심성 때문에 벳시아가 머뭇거리는 것이라면 그는 그런 뜻을 존중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소모되지 못한 열정으로 아직도 욱신거렸다. 지금까지 소위 여자를 다루는 기술에 관해 떠드는 스티븐의 장광설을 여러 번 들었다. 사이먼은 손과 입술을 사용하는 기술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가급적 빨리 자신을 여자의 몸 깊숙이 묻어 버리고 만족감을 느꼈는데...하지만 지금은...벳시아는 달랐다. 방법이나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녀를 갖고 싶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소. 쾌락을 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니까.]

    그가 중얼거렸다. 벳시아는 마치 자신이 들은 것을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그를 흘끔 보았다. 문명화된 사회 안에서는 그런 뻔뻔스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이먼은 더 이상 자신이 문명인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마치 야만인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여자 산적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사이먼은 뜨거운 피가 세차게 혈관 속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 든 욕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벳시아는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높이 들더니 체념한 듯 말했다.

    [당신이 자신의 열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믿죠? 나 자신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말이에요.]

    겨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그녀가 몇 킬로미터나 멀리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넓혀 놓고, 나를 밖으로 내쫓고, 또다시 나를 부정했어. 사이먼은 그녀를 오두막집 속으로 끌고 들어와 복종을 강요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벳시아를 완력으로 정복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싹튼 무엇인가가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사이먼은 벳시아가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주길 바랐다! 화가 난 사이먼은 씩씩대면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자존심을 다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여자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없어. 그렇게 되도록 가만 놓아둘 수 없어! 사이먼은 주먹 쥔 손으로 다른 손바닥을 내려지며 그녀가 스스로 실수를 인정할 때까지, 그녀가 스스로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 그녀를 무시해 버리겠다고 맹세했다. 빌어먹을, 그는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 벳시아는 나에게 애원을 하게 될 거야! 사이먼은 며칠 동안 자신의 결심을 확고하게 지켰다. 그녀의 손가락과 입술이 닿았던 뜨거운 기억과 어깨 위에 조그만 상처가 남아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흔적을 남겼다. 사이먼은 마치 자신의 세상이 뒤집어지는 충격을 느꼈다. 자신의 존재가 낯설었다. 지금까지는 여자란 약한 생물체이며 보호를 받아야 하고 숨겨 놓아야 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벳시아는 남자의 옷을 입고 허세를 부리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만큼이나 싸움에도 능했다. 사이먼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지하 통로의 감독자로서 자신의 역할이야말로 무용지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벳시아는 그를 마치 허울 좋은 장식품저렴 무시했고 그는 이를 악물며 배더슬리로 돌아가지 않고 버텼다. 기사들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수척해지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지만 지금 사이먼은 한 여자를 향한 욕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의 남성은 의지를 배반하고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었다. 만약 내가 어떤 질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플로리안의 짐작이 맞는 것이라면? 비록 욕망 때문에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지만 사이먼은 치료사를 찾아갈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의사나 치료사가 권할 치료법이 무엇일지 걱정스러웠다. 그는 강물에 몸을 식혔다. 하지만 마음의 열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가슴이 불타는 것 같았다. 펄민의 삽으로 맞았을 때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마치 심한 멍이 든 것처럼 내부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사이먼은 잡초가 우거진 강 둑에 튜닉을 던져 놓고 심장 부위를 문질렀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 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하지만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형 던스탄이 지금 자신의 나이에 이미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자 사이먼은 몸서리를 쳤다. 나의 이런 욕망은 성숙한 나이 탓이 아닐까. 어쩌면 한 남자 안에 들어 있는 무엇인가가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결혼을 하도록 부추기고 다음 세대를 위한 생명을 잉태하도록 만드는 지도 몰라. 그런 깨달음은 그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결혼에 대해, 아내를 거느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형제들도 드 부르그 가문을 위한 의무가 가장 먼저라고 생각했다. 형 던스탄과 조프리는 이미 그 의무를 이행했다. 하지만 그는 상속자를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잠깐 그 임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는 하루종일 여자와 노닥거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벳시아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그가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고, 관심사를 함께 나누며 강한 그의 의지와도 맞설 수 있고, 그의 남성을 계속 자극해 대는 바로 그 여자를 만나기 전의 생각이었다. 결혼을 하면 해결될 거야. 사이먼은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가능성들을 떠올리며 거친 숨을 들이마셨다. 임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벳시아, 자신의 침대 속에 누워 있는 벳시아...숲 속이나 강가에서, 자신의 봄 아래나 위에서. 그 생각을 하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모든 근육이 긴장했다. 벳시아, 영원한 나의 여자...그것은 확실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어, 사이먼은 떨리는 숨을 내쉬며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있을까? 그는 튜닉을 집어들며 미소를 지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대한 전투처럼, 이것은 그가 찾던 해답이었다. 그리고 빨리 해결할수록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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