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월의 신부-13화 (14/20)

13

시끄러운 소리에 마리온은 잠에서 깨어났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삼촌이

문 앞에 와서 자고 있는 그녀를 죽이려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금속으로 돌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

로 눈을 돌렸다. 어슴푸레한 달빛에 뭔가가 보였다. 창문턱에 뭔가가 매달려 있는 것

일까.

눈을 감고 조용히 모른 척하고 싶은 생각을 굴뚝 같았지만, 누군가가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누워 있을 수만도 없었다. 마리온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 창문 옆의

벽에 붙어 섰다. 가슴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열린 창문 틈으로 곡괭이가 박힌는

게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곡괭이 끝에는 밧줄이 단단하게 묶여져 있었다. 밧줄은

팽팽하게 잡아당겨져서 흔들리고 있었다.

곧 커다란 그림자가 창문 위로 나타나자 그녀는 공포로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

는 침입자를 공격할 수 있는 물건을 열심히 눈으로 찾았다. 창문으로 침입해 온 자라

면 그녀에게 해를 가하려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림자에 가려진 암살자의 얼굴

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마리온?" 마치 꿈속인 것처럼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다리가 꺾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미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어떻게 여기에?

"마리온!" 그가 방 안으로 뛰어들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근

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현실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그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던스탄." 마리온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따스하고 규

칙적인 그의 맥박이 꿈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입술을 대었다.

그는 신음하며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감싸고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했

다.

마리온은 입술을 벌려 늑대를 맞아들였고 그의 목에 매달렸다. 그에 대한 사랑이 온

몸을 타고 흘러넘쳤다. 가슴의 통증도, 두려움도, 숙녀로서의 몸가짐도 모두 흩어져

버렸다.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그가 온 것이다.

그는 입술을 떼며 마리온을 안고 일어섰다. "가야 하오, 굴뚝새 아가씨. 우린 시간

이 얼마 없소. 당신 삼촌의 부하들이 날 찾고 있소."

그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수없이 많은 질문이 떠

올랐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은 한가하게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바

라보는 가운데, 던스탄은 창 밖으로 다리를 내밀며 밧줄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

작했다.

그가 그녀를 손짓해 불렀지만, 마리온은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

다.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진 않았지만, 마리온은 이곳이 얼마나 높은지 잘 알고 있었

다.

"나요?" 그녀가 속삭였다. 마리온은 행여 자신이 그의 뜻을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

가 싶어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던스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가 자신과 함께 밧줄을 타고 내려가길 원하는 것이다. 기절할

것만 같았다.

"오시오, 마리온. 팔을 내 몸에 둘러요. 내가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 주겠소." 비록

무뚝뚝한 말이긴 했지만 그 말을 들은 마리온의 마음은 신기하게도 안정이 되었다.

마리온은 심호흡을 하고 창문턱에 올라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다리도 내 몸에

둘러요." 그의 명령에 그녀는 다리로 그의 몸을 감쌌다. 마리온은 수줍게 얼굴을 붉

혔다.

밧줄에 두 사람의 목숨을 맡기고 위태롭게 조금씩 그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모든 잡

념은 잊혀졌다. 바람에 밧줄이 흔들릴 때마다 속이 철렁철렁했다. 아래층에 도달했을

때쯤, 마리온의 마음은 그의 힘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그의 몸이 근육질이

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몸에 달고도 이렇게 쉽게 내려올 수 있다니...

바닥에 다리가 닿아서야 마리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던스탄은 황급히 그녀의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잠긴 방에서 탈출하긴 했어도, 그들은

아직 삼촌이 지배하는 배더슬리의 성벽 안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늑대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날 위해 여기에 와 있어.

던스탄은 근처 창고 안으로 그녀를 잡아당기며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용기를

내어 대문으로 나가는 게 좋을까?" 그가 자신의 충고를 기대하는 건지, 자신의 용기

를 시험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가 날 탈출시키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내가 본 바로는 대부분의 병사들은 술에 취해 있고, 경비도 허술한 것 같소. 누가

성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할지라도 크게 의심받을 것 같진 않은데 당신 생각은 어떻

소?"

마리온은 약간 흐뭇한 놀라움을 느꼈다. 던스탄이 지금 내게 의견을 구하는 게 사실

일까. "아까 삼촌이 당신을 찾고 있다고 말하셨잖아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래요. 하지만 날 길에서 죽여 버리려고 하는 것 같더군."

"오."

"따라와요, 굴뚝새. 당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들키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 하요."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이쪽저쪽 건물의 그림자 아래를 따라 움직이다가 한 오두막

뒤에 멈춰 섰다. 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 하고 있는데 그가 물었다. "여기가 양

조장이오?"

"네." 마리온은 놀란 눈으로 그가 창문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병 하나를 손에 들고 돌아와 입에 가져다 대었다. 목이 말랐었던 걸까? 던스탄

의 온몸에서 술냄새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당신, 술독에 빠진 거예요?"

확실히 그의 목소리에선 웃음이 배어 나왔다. "아니오, 굴뚝새. 하지만 우린 둘 다

술에 취한 것 같은 냄새를 풍겨야 한다구. 자, 당신 보석들을 감추시오." 그는 짊어

지고 있던 꾸러미에서 그녀의 낡은 망토를 꺼내주었다. 그녀가 망토를 두르자 그녀

위로 술을 훌훌 뿌렸다. "이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두 명의 천한 농노일 뿐이

오." 그가 속삭였다.

처음엔 마리온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던스탄이 그녀를 끼고 대문을 향해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하자 천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 역시 망토 비슷한 것을 둘러 자신

의 갑옷을 가렸다. 보초들이 자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기만을 빌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경비가 들을 것 같아 두려웠지만 던스탄이 다가가도 그들

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던스탄은 커다란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있었다. 그녀는 비

틀거리는 그를 부축하는 흉내를 내며 그의 곁에 붙어 섰다.

불안했다. 전에 탈출을 시도했을 때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공포가 그녀의 온몸

을 휘감고 있었다. 그녀는 던스탄을 한 번 바라보고는 자신의 공포의 원인을 알아냈

다. 그가 날 구하려 하고 있어. 그가 날 위해 목숨을 건 거야. 위협받는 데는 익숙해

진 그녀지만, 늑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뒤에서 쫓아올 것 같아 오금을 펼 수 없었지만 던스탄은 꿋꿋

하게 걸어나갔다. 배더슬리에서 멀어질수록 던스탄은 발걸음을 빨리 했다. 구름에 반

쯤 가린 달 덕에 길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갑자기 던스탄이 비틀거리더니 그녀를

잡아당기며 바닥에 몸을 붙였다. 순수한 두려움이 그녀를 덮쳤다. 그가 화살이라도

맞은 건 아닌지. 그녀는 조바심내며 갈라진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쉿, 누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오. 잠깐 여기 몸을 숙이고 있다가 풀밭으로 굴러요.

내가 달리라고 하면 몸을 최대한 낮추고 움직여요. 저 언덕을 지나면 일단 서쪽을 향

해서 그들을 혼란시킬 것이오."

혼란시키다니. "삼촌이 부하들을 보내 우릴 쫓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확실하오. 좀더 일찍 믿지 않아서 미안하오. 하지만 이젠 믿소. 당신 삼촌은 살인

자요."

"어떻게 아세요?" 마리온이 물었다.

"날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오."

몇 시간 동안이나 아무 말없이 걸은 후에, 그들은 강가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 잠

을 청했다. 다행히 날씨도 따뜻했다. 던스탄은 담요를 꺼내며 그녀가 오두막에 두고

왔던 그녀의 꾸러미를 꺼내 주었다.

"던스탄, 내것이잖아요!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내...  보석들은요?"

"여기 있소." 그가 그녀에게 웃으며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를 떠나야 했을 때, 그녀는 울지

않았다. 탑 속에 갇혀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지낼 때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

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늑대에 대한 사랑에 목이 메었다. 그의 목에 손을 감고 입술에 키스를 퍼붓고 그를

어루만지고 싶었다. 마리온은 이곳에서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그가 갑자기 그녀를 어루만졌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사

랑을 그녀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표현하리라. 그에게 기쁨을 선사하자.

마리온은 그가 자신 곁에 앉아 다리를 뻗는 것을 보았다. 그가 고갯짓을 하며 자신

에게 기대라는 시늉을 했다. 여태껏 본 적 없이 무척 지쳐 보였다. 그제야 그녀는 늑

대가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켤코 남들에게 보여 주지 않는 나약한 면을 그녀에게 보인

것이다.

"저... 갑옷과 칼 벗는 것을 돕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질문하듯 그녀를 바라

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의 무기를 풀어 그의 곁에 내려놓았다.

"쉬세요." 그녀는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녀가 그의

가슴에 손을 가져가자 그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

를 숙여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의 입술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의 열기와 그만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

는 그의 입술 윤곽을 혀로 따라 그렸다.

그녀는 아찔할 정도의 힘을 느꼈다. 크기로 따지자면 비교도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이 남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 생각에 그녀는 점점 대담해져 갔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길로 긴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신음했다. 그녀는 그의 턱선에

서 목을 따라 키스하며 그의 웃옷을 끌어올려 그를 만졌다.

크고 힘센, 용맹스런 전사가 그녀의 손에 몸을 맡기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

버려 두고 있었다. 늑대가 자신의 야성을 잠깐 접고 그녀 앞에 가만히 누워 있다는

것이 못 견디게 즐거웠다.

마리온은 그의 가슴위에 손을 얹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빛나는 게 보였다. 그

녀는 자신의 대담한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털을 코로 비볐다.

"아, 마리온." 그는 잠에 취한 사람처럼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요." 그녀는 속삭이며 다시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에 입

술을 가져다 대었다.

초조한 그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늑대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것

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손을 뻗자 그녀는 그를 피하며 그의 신발과 바지를

벗겼다. 전기에 감전된 듯 그녀 역시 몸을 떨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리온!" 그의 격한 목소리는 경고하는 듯했다.

"쉿."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는 그녀를 눈 깜짝할 사이에 품에 안았다. 자신이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있다고 생

각한 순간, 그는 어느새 그녀를 누이고 자신의 가슴 아래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미친듯이 그녀에게 키스하며 손으로 그녀의 온몸을 훑었다. 그녀가 그를 만지

려 하자 그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땅에 눌러 붙였다. 그의 눈과 이가 어둠 속에 반짝

였다.

"가만히, 나 역시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는 것뿐이오." 그가 약간은 조롱기 섞인 목

소리로 사악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처음

에는 그녀가 자신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 두었지만, 그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불과

힘으로 가득한 맹수일 뿐...

던스탄은 눈을 떴다. 새벽이 트고 있었다. 마리온은 그의 기운을 다 앗아가 버렸다!

너무 늦게까지 잤다. 서둘러야 한다. 그녀를 바라보니 짜증이 싹 가셨다. 발그스레

한 볼을 하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다시 그녀를 안고 싶은 욕망을 꾹 눌렀다.

던스탄은 찬물에 목욕을 하면 끓어오르는 열기가 가라앉을거란 생각에 꾸러미에서

비누를 꺼내어 무릎까지 차는 개울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의 온도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계속 마리온이 누워있는 강둑에 가 꽂혔다.

그가 보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요염한 포즈로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그는 다시 욕망으로 달아올랐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에게 과연 싫증이 날 수 있을까. "목욕을 하려면 서두르시오. 곧 떠나야 하오."

던스탄은 자기 역시 개울 안에서 꾸물거릴 게 아니라 빨리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옷

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옷을 벗었다.

"마리온! 날 미치게 만드는군!" 그녀가 그에게 다가서자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그 보조개가 팬 환상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버리가 가벼

워지는 것을 느꼈다. "서둘러, 우린 떠나야 하오." 그는 중얼거리며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그는 그녀를 팔 안으로 들어올린뒤 무릎까지 차 오르는 개울

안에서 그대로 그녀를 안았다. 해가 그들 뒤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숨이 제대로 돌아온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

다. 던스탄은 자신들의 처음 관계가 보통 이상으로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순수

함과 그들 사이의 강한 끌림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은 그보다 훨씬 더 성

공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몇 분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경험이 풍부한

여자와 몇 시간을 함께 지낸 것보다 훨씬 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던스탄은 이게 무엇이든 그들 사이에 오가는 이것을 간절히 원했다. 그것도 끊임없

이. 그녀와 밤마다 침대에서 열정을 불사르고 싶었지만, 그것도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훤한 대낮이든, 개울가든, 나무 아래서든, 틈이 날 때마다 원할 것이다.

평생 지속되길 원했다. 앞으로 그의 앞에 놓인 수많은 낮과 밤 동안 원할 것이다.

너무나도 강한 욕구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던스탄은 자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잇는 듯했으므로, 마리온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 강가를 걸었다. 길이 험하긴 했지만, 그녀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지난 몇 주간의 불행과 공포 끝에 던스탄과 보낸 몇 시간은 정말 꿈 같았다.

어젯밤 자신의 대담성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게 물들 정도지만, 그녀의 정열은 늑대

를 기쁘게 했다. 오늘 아침 물가에서의 일은 짧지만 격렬했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고개를 젖히고 강렬한 녹색 눈동자로 그녀를 보며 속삭였다. "아, 마리온. 내

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그 기억을 떠올리자 무릎이 휘청거렸다. 마리온은 얼른 그를 쫓아갔다. 늑대는 조용

히, 우아하게 걷고 있었다. 종종 멈춰서서 주위의 소리를 들은 후 다시 걷곤 했다.

아직까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리온 역시 불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별로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

았다. 마리온이 하고 싶었던 모든 질문들은 격렬한 사랑 행위에 날아가 버렸고, 그들

은 서둘러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던스탄을 쫓아가는 것으로 만족했다.

캠피온으로 되돌아가고 싶긴 했지만 그것이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님을 잘 알고 있

었다. 그녀는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할 지 생각해 보았다. 마리온은 이 꿈이 끝나지 않

길 바랐다. 그와 헤어지느니 차라리 험하긴 해도 늑대가 함께 이는 이 길을 끝없이

걸어가고 싶었다.

마리온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던스탄은 커다란 수양버들 그늘 아래 멈춰 서

서 꾸러미에서 커다란 빵조각을 꺼냈다.

"정말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군." 그가 툴툴댔다.

그는 빨리 음식을 먹어 치우고 나무에 기대었다. "이 강은 아마 스틸까지 이어질 거

요. 그곳에거 말과 제대로 된 음식과, 어쩌면 침대까지 있는 여관을 구할 수 있을 거

요. 그런 것에는 돈쯤은 아끼지 안고 낼 수 있소."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침대란 말에 마리온의 가슴은 갈망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쉬고 있는 그의 얼굴을

몰래 훔쳐보았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는데 매우 편안해 보였다. 마리온은 목에 뜨거

운 것이 왈칵 치밀었다. "당신은 날 구출하러 오셨어요." 마리온이 속삭였다.

던스탄은 뭐라고 툴툴댈 뿐이었다. 익숙한 그의 반응에 마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그

런 것에 겁먹을 마리온이 아니었다. "날 그 끔찍한 곳으로 질질 끌고 가다시피 했으

면서도, 결국 돌아서서 날 구하러 와주셨어요."

그는 눈을 감은 채 못마땅한 어조로 대답했다. "배더슬리까지 당신 일행들의 발자국

을 따라갔지만, 난 당신이 그곳에 안전하게 도착했는지 확인하진 않을 수 없었소."

감정없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배달해야 하는 물건. 충실한 던스탄은 아버지가 맡긴 임무에 충실한 것뿐이겠지. 기

분이 씁쓸했다.

"당신 삼촌은 당신이 거기에 없다고 말했소." 거친 목소리에 마리온은 정신이 들었

다. 그래, 결국 삼촌은 날 곧 죽여 버리려던 계획이군. 사람들에겐 내가 아직도 실종

된 상태라고 말하고 캠피온을 공격했을지도 모르지. 마리온은 그의 말에 모든 질문의

답을 얻고는 잔뜩 실망했다.

던스탄은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돌아온 거였어. 그가 탑을 기어오른 건 날

걱정해서도, 나와 잤기 때문도 아니었어.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였기에 말썽만

피우는 날 굳이 찾아온 것이었어. 마리온은 목이 칼칼했다.

그녀는 스커트에 손을 계속 문질렀다.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살인

, 재난, 되돌아온 기억이 그녀의 침착성을 빼앗아 가버렸다. 거친 숲속을 헤메던, 변

변하게 먹을 것도 없던 나날들이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늑대와 자는 것은 그 어

느 것보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 때문에 고통에 더 민감해졌을 뿐이다.

그녀는 갑자기 예전에 보았던 꽃병을 떠올렸다. 그 꽃병은 겉에 수많은 금이 가 있

는데도 멀쩡하게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 꽃병이 된 기분이었다.

멀쩡해 보여도 한번 건들기만 하면 산산조각이 나 버릴.

"당신 하녀인 머리가 하얗게 센 여자가 당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소."

던스탄은 자신의 말이 그녀를 어떤 상태로 만들었는지 꿈에도 모른 채 계속 말했다.

차라리 그가 모른다는 게 다행이었다.

"페넬라." 배더슬리에 살고 있는 사람 중 그녀를 도울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는데 놀

라며 말했다. 그녀는 페넬라의 행동을 삼촌이 평생 모르기를 빌었다. 들킨다면 목숨

을 부지하게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이제 미래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

관이람.

그녀의 행복한 꿈은 끝났다. 이젠 차가운 현실을 직시할 때다. "그녀와 당신에게 감

사드려요, 내 목숨을 구해 주신 것에 대해서." 떨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싫었다. "하

지만 난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겠어요. 날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죠, 던스탄?"

"우린 웨섹스로 가는 거요." 그가 눈을 뜨며 말했다.

화가 난 것이다. 그녀 때문에 그곳에 돌아가는 것이 늦어져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

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곳으로 갈 수는 없다. 그곳에

서는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삶을 꿈꾸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슬픈 표

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삼촌은 그곳까지 날 찾아올 거에요. 당신에게 해를 끼칠 거

예요."

던스탄은 빙그레 웃었다. "아, 그래서 이번엔 그가 당신에게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조처할 생각이오."

"어떻게요?"

"우린 결혼할 거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 말하고는 고개를 젖혀 나무에 기대

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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