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보라시먼스-늑대와굴뚝새-19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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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온은 웨섹스에서 더 이상 전쟁을 원치 않았기에, 억지로 웃음지으며 던스탄에

    게 삼촌이 무슨 속셈인지 알아낼 수 있도록 좀더 머물게 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

    만 그녀는 자신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저녁 식사 때만 겨우 얼굴을 내밀었다.

    오후 내내 조용히 방 안에서 태피스트리를 짜던 그녀는 저녁 식사를 하러 내려가려

    고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그때 침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프리나 사

    이먼이 그녀를 데리러 왔을 거라고 생각하며 들어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니었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 사람은 삼촌이었다. 마리온

    은 공포에 덜덜 떨었다. "그래, 네가 여기 있었구나, 마리온. 오늘 보고 싶었지. 손

    님을 소홀히 대접하는 건방진 버릇은 어디서 배웠니." 그는 방 안 여기저기를 거닐

    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긴, 넌 원래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애니

    까."

    삼촌의 목소리가 바뀌는 것을 듣고 마리온은 뒷걸음질쳤다. 삼촌은 술을 마신 것

    같았다. 삼촌은 취하면 몹시 사나워진다. 마리온은 침대 끝에 앉아 두려움에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넌 언제나 제대로 된 일은 할 수 없었지. 내 슬모없는 여동생이 낳은 쓸모

    없는 계집애 같으니라구." 삼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마리온은 가만히 앉아

    만 있었다.

    "내게서 배더슬리를 빼앗을 작정이겠지?" 삼촌이 저럴 때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

    는다는 게 상책이었다. "그럴 수 없어, 그럴 수 없다구! 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늑대가 문가에 서서 위협적인 시선으로 삼촌을 노려

    보았다. "내 방에서 뭘 하는 거요?"

    "아, 조카가 들어오라고 해서." 피슬리는 던스탄을 겁내기 않는 듯했다. 늑대로 말

    할 것 같으면,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자기 동생들조차 공포에 떠는 존재가 아닌가.

    "그 말이 맞소, 마리온?" 그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위험스럽게 반짝엿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그가 폭발할 수도 있다.

    침실에서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두려워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던스탄은 그대로 서서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피슬

    리에게 말했다. "이미 경고했소, 피슬리. 꼭 기억하도록 하시오."

    "물론입니다, 남작 나리." 삼촌의 건방진 태도에 마리온은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건가. 아마도 술 때문에 무모해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늑대를

    일부러 자극할리가 없을 텐데. 삼촌은 마지막으로 마리온을 노려보고 방에서 나갔

    다.

    "도대체 어찌된 거였소?" 던스탄은 채 화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리온

    은 던스탄이 자기 때문에 참은 것을 떠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에요. 그냥 날 놀리려던 것뿐이었어요. 무슨 짓을 하기도 전에 당신이 들어온

    거예요." 자신의 집에서, 그것도 자신의 방 안에서 삼촌에게 당했다는 게 부끄럽지

    만 삼촌은 언제나 그러지 않았던가.

    던스탄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거칠게 쥐었다. 하지만 그 시선만큼

    은 한없이 따뜻해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요샌 정말 울보가 된 느낌이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오. 마리온, 아무것도. 다시는 당신에게 상처입힐 수 없소."

    던스탄이 속삭였다.

    "알아요. 어리석다는 건 알지만 삼촌만 보면 다시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일곱 살

    때가 된 것 같아요." 던스탄이 그녀를 끌어안자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고는 마침

    내 그녀는 그의 목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던스탄은 목에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아내와 아내의

    삼촌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피슬리를 없애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감히

    내 침실에서 내 아내를 겁줄 수 있는지. 던스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리온은 내 거다. 내 것. 그리고 그녀를 보호할 것이다. 아내가 생긴다는 것은 정

    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마도 지하 감방에서 시간을 보낸 경험 때문에 마리온과의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일을 할 때는 마리온을 팽개쳐 두

    려던 예전의 계획은 이제 잊었다. 이제 마리온이 바로 그의 일이다.

    그녀를 되돌려 받고 싶었다. 싸울 때면 자신의 가슴을 작은 손가락으로 찌르고 하

    던 활기찬 아내를 다시 되찾고 싶었다. 이런 조용하기만한 그의 그림자 같은 여자는

    싫다. 그녀가 변한 것은 모두 피슬리의 탓이며 그런 인간은 죽어 마땅하다. 그것도

    당장.

    피슬리가 거칠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들으며 던스탄은 입을 꼭 다물었다. 피슬리

    와 스티븐은 술을 마시면서 점점 더 혀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스티븐을 무시하는

    데는 모두들 익숙해져 있지만, 피슬리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의 커다란 목소리도 싫

    고, 욕을 섞어 말하는 것도 싫고, 그의 외모도 싫었다.

    마리온의 시선이 잔뜩 주눅들어 있었다. 피슬리의 얼굴을 짓뭉개 주고 싶었다. 그

    래, 저 콧대를 부러뜨려 주자. 조프리가 어떻게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경고의 눈짓

    을 해왔다. 밖에서 머물고 있는 피슬리의 부하들을 떠올리며 그는 꾹 참기로 했다.

    "방으로 가겠어요." 마리온이 속삭이며 일어섰다. 던스탄도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 이곳에 남아 적을 감시하고 싶긴 했지만, 마리온이 자신의

    시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 피슬리가 그녀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조용히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이미 피슬리가 눈치챘다. "마리온! 벌써 우릴 떠나려

    는 건 아니겠지? 아직 밤도 이른데, 얘기할 것도 많잖니."

    "얘기는 내일 하시오, 피슬리."

    "하지만 난 지금 얘기하고 싶소." 피슬리가 쏘아붙였다. 그 말에 마리온은 얼른 순

    종적인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던스탄은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난 왜 가진 거라고

    는 변변치 않은 땅밖에 없는 남자가 배더슬리의 상속녀와 결혼했는지 말하고 싶다."

    방 안에서 모두들 경악의 비명을 지르는 것을 무시하며 피슬리는 자리에서 일어섰

    다. "그는 부자 아내가 갖고 싶은 나머지 자신을 이런 코찔찔이 아내에게 팔았어."

    그는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틀비틀 마리온에게 다가갔다. "그 유명한 웨섹

    스의 늑대가 자신의 부자 신부 뒤를 쫄쫄 따라다니다니. 정말 끔찍해! 그녀가 손가

    락질을 하며 그는 당장 달려오지. 뼈다귀를 바라는 개처럼 꽁무니나 쫓아다니질 않

    나!"

    던스탄은 니콜라스가 분개하며 일어서려는 것을 눈짓으로 막았다. 이건 피슬리와

    그와의 일이다. 그도 얼른 끝내 버리고 싶었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손님을 바라

    보았다. 그의 손은 칼집 근처를 맴돌았다. 그자는 계속 떠들어댔다.

    "내 생각에 내 작은 마리온은 자기 유산으로 늑대를 길들인 것 같군. 하지만 나까

    지 살 수는 없소, 나리. 여자는 원래 남자와 동등하게 만들어진게 아니오. 안 보이

    게 처박아 두는게 좋은 거요. 마리온의 자리가 어딘지 내가 똑똑히 가르쳐 주리다."

    놀랍게도 피슬리는 자리에 동상처럼 앉아 있는 그녀를 때리려고 손을 치켜들었다.

    너무 늦었다. 아내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던스탄이 고함을 치며 달려나

    가는 데 마리온이 비명을 질렀다. "안돼요!" 너무도 커다란 그녀의 목소리에 피슬리

    는 잠시 머뭇거렸고 그녀는 팔을 들어 그의 손을 쉽게 막아냈다. 그러고는 움츠리는

    대신 욕을 퍼부으며 눈을 할퀼 듯이 삼촌에게 달려들었다.

    술에 취한 피슬리는 바닥으로 넘어졌다. 마리온은 그의 몸위에서 작은 손톱을 마치

    야생 동물 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모두들 멍하니 쳐다보다가 마리온을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던스탄은 자신의 아내가 다시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온 것에 안도감을 느꼈

    다. 그것도 잠시, 이내 피슬리의 손에 은빛 물체가 번뜩이는 게 보였다. 단도였다.

    바로 그 순간, 던스탄은 아내의 큰 의미가 절절히 밀려왔다. 가슴의 상처처럼 날카

    롭고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사랑했다. 마리온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슬리가 그녀를 헤치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팔을 스친 단도의 칼날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강력한 분노로 눈앞이 흐려졌다. 던

    스탄은 천둥같은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려 피슬리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피슬리의 손목을 잡으려는 순간 단검이 던

    스탄의 가슴을 찔렀다. 피슬리가 빨랐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술과 조카딸의 반격에 흔들리고 있었다. 피슬리는 던스탄의 체중에 못 이겨 비틀거

    렸고, 마리온이 재빨리 조프리의 품으로 몸을 피하자 그는 중심을 잃었다. 던스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시무시한 힘으로 피슬리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모두들 말

    을 잊고 멍하니 서 있는 동안, 두 남자는 칼을 잡으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포도주에 취한 피슬리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나 된 듯 착각했지만 늑대에게 맞설

    수는 없었다. 던스탄은 상처 따위엔 연연하지 않기로 소문난 공격적인 군인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아내를 위협한 남자에 대한 분노로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난 경고했어." 그가 칼을 빼앗으며 말했다. 던스탄의 입술이 승리감으로 말려 올

    라갔다. 피슬리의 표정은 경멸에서 금세 공포로 바뀌었지만 이미 단도는 그의 심장

    에 깊이 박혔다.

    쥐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마리온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그녀에게 돌아섰

    다. 그녀는 던스탄의 상처를 살피려는 조프리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

    다. 그는 그녀 곁에 주저앉아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아, 굴뚝새." 그가 속삭였다. "오늘 밤의 당신은 정말 용감한 독수리였소."

    "좀 긁힌 것뿐이야." 던스탄이 항의했다.

    "피츠휴에게 입은 상처가 다시 벌어졌잖아요." 그의 아내가 입술을 귀엽게 움직이

    며 말을 하는 통에 던스탄은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한숨을 쉬고는 아

    내가 상처를 깨끗한 천으로 감게 두었다. 그는 먼저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라고 했지

    만, 마리온이 기어코 우기며 그의 가슴을 씻기고 연고를 발라 주고서 등에 베개를

    괴어 주는 등 온갖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는 한껏 즐겼다.

    "내 맹세컨대, 당신은 내가 여태껏 본 환자 중 최악이에요." 그녀가 사뭇 현모양처

    흉내를 내며 그를 나무랐다.

    "그래 봐야 당신 환자는 여지껏 나 하나였잖소!"

    "틀려요. 난 배더슬리와 캠피온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몇몇 사람들을 도왔어요.

    여기서 치료사로 일할까 봐요."

    던스탄이 투덜대자 마리온이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마리온은 그가 그녀에게 치료

    받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가 보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것, 그가 필요로 하

    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뭐든 알고 있었다.

    그는 본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그런면에서 그들은 더없이 완벽한 커플이었다.

    찬사와 선물, 애정 표시를 해달라고 귀찮게 구는 여자가 아니어서 그는 오히려 더

    만족했다. 심지어 결혼식 이후로는 한 번도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 하

    지만 사실 그는 그녀에게서 그런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요." 그녀가 붕대 감기를 마치고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려 놓은 채 그를 바라보았

    다. 이제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끼며 사랑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 확

    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강하게 끌리지 않았던가.

    그녀를 포옹하기까지 그 끌림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지하 감옥에서 자신을 버티게

    해준 것이 그녀에 대한 생각이었는 데도 그는 이 피할 수 없는 감정을 부인하려 했

    다. 그녀가 없던 그 시간, 그는 그녀에 대한 갈망을 다시 생생히 기억해 낸 것이다.

    "자, 이걸 마시면 고통이 멎고 잠이 올 거에요."

    컵을 내미는데 그녀의 손목을 던스탄이 잡았다. 오늘밤 약에 취해 죽은 듯 자고 싶

    지는 않았다. "싫소. 약은 필요없소, 굴뚝새. 이제 날 보살피는건 그만두어도 좋소.

    "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는 듯 고개를 들었지만 그의 상태를 생각해서인지 입을 다물

    었다. "그래요, 던스탄." 그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배가 아플 정도로 큰소리로 웃어 댔다. 그녀가 아기처럼 순진한 시선으로 그

    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쟁이." 그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뭐라구요?" 그녀는 침착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나의 마리온. 난 오래 전에 당신의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 할 수 있게 되었소."

    그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난 믿을 수 없어요." 그녀가 약올리는 듯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내가 당신을 보살피는 건 절대 그만두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으니까 들킨 것뿐이에요."

    던스탄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 아주 쉬운걸. 당신은 거짓말을 할 때면 더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다구."

    "흠." 그녀는 던스탄이 곧잘 하던 소리를 흉내냈지만 틀림없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당황하지 말아요, 굴뚝새 아가씨. 아마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쉽게 알아차

    리지 못할 거요. 난 당신 남편이니까.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거든."

    "던스탄?" 그녀는 그의 가슴을 바라보며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녀가 평

    범한 얼굴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던가?  아마 미쳤었나 보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

    다. 머리 끝부터 조그만 발 끝까지 아름답지 않은 구성이 없었다.

    "응? 왜 그러오?"

    그녀가 짙은 속눈썹 사이로 그를 훔쳐 보았다. "삼촌이 한 말에 화가 난 건 아니겠

    지요? 당신이 날 따라다닌다는 둥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얘기 말이에요.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모두들 당신이 배더슬리나 내 재산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난 당신이... 삼촌이 한 말 때문에 날 피하는 건 싫어요."

    "당신을 피하다니?" 그가 되물었다. "피슬리는 바보요. 난 그가 한 말엔 신경쓰지

    않소." 그 말에 그녀의 걱정스런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당신이 날 길들였다면, 그

    러라고 하라지."

    그녀의 미소와 함께 그녀의 보조개는 더욱 돋보였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

    의 행복한 미소를 매만졌다.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의 깊이에 스스로도 놀랄 지경

    이었다.

    그는 그녀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한번도 그녀를 안아 본 적

    이 없는 것 같은 느낌, 한번도 그녀와 사랑을 나눈 적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 상처요." 마리온이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입술을 떼었다. 던스탄은 낮

    게 투덜거리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당신은 누워서 쉬셔야 해요." 그녀가 좀

    더 완곡하게 말했다.

    그는 또다시 투덜대고는 그녀의 가운을 잡아당겨 그녀의 가슴을 드러내었다. 그녀

    의 피부는 크림처럼 매끈했다. 그의 몸이 깨어나고 다시 불꽃이 일렁이는 게 느껴졌

    다.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그녀의 가슴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녀에게선 야생화의 향기가 났다. 던스탄은 그녀의 향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그녀를 가볍게 들어서 이불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몸으로 꼭 감

    쌌고, 그녀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붕대 아래 드러난 가슴털을 만지작거렸다.

    "던스탄." 그녀가 열정으로 흐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리하면 안돼

    요."

    그는 투덜댔다. 그녀에 대한 갈망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녀는 그의 혈

    관을 타고 도는 열병이었다. 그녀를 안아야만 했다. 그녀가 필요했다. 그녀를 원했

    다. 매번 점점 더 강렬하게.

    마리온은 남편의 가슴 위에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던스탄은 가슴의 상처 따위에

    연연하지 않으리란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그는 그녀를 화내게 하고 그녀의 인내

    심을 시험했다. 그는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싸움을 걸지만

    가끔은 져주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로 거절당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다신 기운을 얻은 마리온은 그의 무릎 위에서 내려와 붕대를 확인하고 그의 등 뒤

    에 놓은 베개를 빼며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는 그가 편안한지 확인하고는 촛불

    을 끄고 그의 곁에 달라붙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마리온은 그가 고르게 숨을 쉬는 것을 들었다. 그는 언

    제나 곧바로 잠에 빠졌다. 가끔 코를 골기도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오늘 홀에

    서 그 일이 있은 후라 그 소리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피범벅이 되어 비틀거리던 그를 보고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마리온은 그를 잃을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길고도 끔찍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남편 없인

    절대 행복할 수 없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미래가 어찌되는 그녀는 늑대에게 남아 있으리라. 애정이 담긴 말을 한 마디도 하

    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가 그녀를 염려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늑

    대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눈동자와 그의

    거친 행동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던스탄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것에 익숙지 않

    은 사람이다. 하지만 수많은 세세한 일에서부터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삼촌

    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피슬리의 말처럼 늑대를 그녀의

    돈으로 길들인 것은 물론 아니다. 던스탄은 탐욕스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변했다.

    던스탄은 그녀를 찾아다녔고,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으며, 비록 그가 그녀의 로맨틱

    한 생각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의 행동은 아내를 염려하는 남자의 행동이었다. 마

    리온은 잠에 취해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늑대가 그녀에게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사랑이란 말을 그의 입에서 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의 행동을 지켜

    보면 알 수 있었다.

    "굴뚝새?"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 그가 그녀를 부드럽게 만지자 마리온은 깜짝

    놀랐다. 그는 커다란 손가락을 그녀의 작은 손가락에 깍지 끼며 평소와는 다르게 달

    콤한 몸짓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네?" 마리온은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피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처음 보았을 때

    와 조금도 다름없이 아름다운 그의 손이었다.

    "사랑해." 그의 거친 속삭임. 그 간단한 말에 마리온의 몸이 얼어붙었다.

    바보같이 눈물이 핑 돌고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알아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

    다. "하지만 당신이 말해 주니 기뻐요."

    그러자 던스탄이 익숙해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마리온은 다시 눈을 감았다.

    "굴뚝새?" 이번엔 그의 목소리에 못마땅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네?" 그녀는 잠 속으로 빠지려는 자신을 다시 깨우며 말했다.

    "나도 꼭 당신에게서 그 말을 들어야겠는데..."

    그녀는 어둠 속에서 환한 미소를 감추며 그의 입술에 입맞추었다. "당신을 사랑해

    요, 던스탄 드 부르그." 그녀가 속삭였다.

    만족한 듯 늑대는 커다란 팔로 그녀를 감싸고 그녀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만족스럽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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