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컨의 청혼-7화 (6/11)
  • 7

    매들린은 그날 밤 그와 사랑을 나누자마자 그가 미처 몸을 빼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어깨를 베개 삼아 베고 한쪽 다리를 그의 허리에 걸친 채로 말이다.

    리스는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다리를 폈다. 육체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매들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혹적이었다. 그녀 역시 그동안 그만큼이나 자제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의 몸에서 손을 떼고 싶지 않은 듯 그의 곁을 지나가면서도 은근슬쩍 애무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행동을 보면 말이다. 그녀는 아쉬운 듯 그의 갈비뼈를 지나 손이나 어깨를 살짝 어루만지기도 했고, 때로는 귀를 간질이기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턱에 가볍게 입을 맞추기도 했고, 가끔은 엉덩이를 툭 치고 지나가면서 불룩 튀어 나온 바지 앞섶을 대담하게 감싸쥐기도 했다. 오랫동안 욕망을 자제해야 했던 리스 역시 그녀에게서 손을 뗄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자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겨 침대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마음껏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다.

    그는 절정을 맛본 후에도 계속 그녀의 몸 안에 머문 채 잠깐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면서 그 친밀한 느낌을 한껏 음미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오려던 리스는 그녀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항의하듯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그의 품으로 파고들자 이내 그 시도를 포기한 채 잠을 청했다. 결국 밤새도록 그녀의 몸 안에 머무른 덕북에 리스는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날 여느 때처럼 새벽 4시 반에 자명종이 울리자 그는 잠결에 시끄럽게 울리는 자명종을 끄려고 팔을 뻗었다. 어느새 그의 몸 위에 엎드려 자고 있던 매들린이 잠에 취한 채 마치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똑바로 누워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니, 일어날 시간이오.]

    그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걸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매들린은 밤새도록 베개 대신 사용했던 그의 어깨에 다시 머리를 기댔다.

    [알아요?]

    여전히 잠에 취한 목소리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영어 단어 중에서 S자로 시작되는 단어가 제일 많대요.]

    [오, 이런......또 시자이군.]

    그는 못 말리겠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응수하면 안 되겠소?]

    [이제 보니 닭보다 더 겁이 많군요.]

    [닭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캐나다는 미국보다 20만 평방 마일이 더 넓지.]

    [1파운드의 깃털이 1파운드의 금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이유는 두 물질의 부피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캣 거트(고양이 창자로 직역되지만 실제로는 현악기 줄을 말함)는 사실 고양이가 아니라 염소의 창자로 만들지.]

    그녀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그 기회를 이용해 스탠드 불을 켰다.

    [그런 역겨운 사실은 안 돼요.]

    그녀는 명령조로 선언하곤 다시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푸른 고래의 심장은 1분에 아홉 번 뛰죠.]

    [알링턴 국립 묘지는 원래 로버트 E. 리의 생가였소.]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어요. 그 그림의 실제 모델은 라 죠콘다 부인이구요.]

    [유사(늪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모래 구덩이)는 물보다 부력이 더 크지.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과는 반대로 유사에 빠지면 더 깊숙이 기어 들어가야 빠져나올 수 있어.]

    그녀는 하품을 하곤 그의 강하고 규칙적인 심장 박동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의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의아한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느덧 강렬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몸을 굴려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가더니 그녀의 다리를 활짝 벌렸다. 매들린은 그에게 바짝 매달린 채 이제는 다소 익숙해진 절정의 파도에 자신을 내맡겼다.

    [오늘은 뭘 할 거예요?]

    그녀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리스에게 물었다.

    [소떼를 서쪽 목초지로 이동시킬 거요. 한쪽 목초지 풀만 몽땅 먹어버리면 안 되니까.]

    [나도 함께 갈래요.]

    그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표정의 그녀를 보곤 할 수 없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안 된다고 하진 말아요.]

    그녀는 엄숙한 얼굴로 경고했다.

    [벌써 저녁 준비도 다 해놨다구요. 스테이크는 냉장실에 넣어 놓으면 알맞게 해동이 될 테고, 감자도 나중에 굽기만 하면 돼요. 하루 종일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집에서 빈둥거릴 이유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내가 반대했던 이유는.]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오. 좋소, 어디 한 번 해봅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방해가 되면 다시는 목장에 따라나오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하오.]

    [물론이죠.]

    그녀는 30분 후 그에게 빌린 데님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부츠로 중무장한 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머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땋아 늘이고 손목까지 올라오는 장갑을 낀 그녀는 소몰이를 나가는 일꾼이 아니라 마치 세련된 모델처럼 보였다. 그녀는 집 밖으로 나오자 손에 들고 있던 밀짚모자를 쓰고는 리스가 안장을 올려놓은 말 가까이로 다가갔다.

    리스는 그녀가 말에게 자신의 체취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려고 손을 뻗어 귓등을 만져주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최소한 말을 두려워하지는 않는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이프릴은 말이 가까이 오기만 해도 기겁을 하고 멀리 달아나기에 바빴던 것이다. 매들린은 말의 콧등을 두드리며 뭐라고 얘기를 걸더니 고삐를 쥐곤 훌쩍 말에 올라탔다. 리스는 안장의 발걸이 높이가 그녀에게 잘 맞는지 확인한 다음 곧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그는 목초지로 달려가는 내내 주의 깊게 그녀를 살폈다. 그녀는 고삐를 쥔 손에 적당히 힘을 주고 있었고, 자세 또한 나무랄데 없이 완벽했다. 물론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말들에서 살아온 거나 마찬가지인 자신만큼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즐거운 듯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지금껏 계속 그녀와 함께 나가는 걸 거부한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소들을 풀어놓은 방목장에 도착하자 리스는 그녀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어느 한 곳만 풀뿌리가 모두 뽑혀 나갈 정도로 황폐해지는 일이 없도록 적당한 시점에 소떼를 이동시키는 건 목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그래야만 목초지의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 개의 그룹으로 무리 지어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중 한 그룹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둥그렇게 말린 로프를 건넸다.

    [말의 어깨 방향을 따라서 이 로프를 흔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요. 다른 건 다 말이 알아서 할 테니까. 소떼가 혹시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해도 그냥 내버려두고 다인은 그저 안장에 깊숙이 앉아 로프를 흔들어 주기만 하면 그만이오.]

    안장에 깊숙이 앉아 있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껏 익숙해 있던 승마용 안장에 비하면 카우보이용 안장은 마치 요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그녀는 로프 끝을 잡고 몇 번 휘두르는 연습을 했다. 혹시나 말이 그녀의 행동에 놀라지는 않는지 확인해 가면서.

    곧 즐거운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녀로선 야외에 나와본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고, 소떼를 따라 달리며 가끔 녀석들에게 로프를 흔들어 주는 것도 잘 훈련된 말을 타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즐거운 건 소몰이에 열중해 있는 리스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는 마치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너무나 능숙하게 소떼를 몰았다. 게다가 말과 한 몸이라도 된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그를 보는 건 너무나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어제 어후 리스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덤벼들었을 때부터 계속 그런 상태였다. 물론 육체적인 만족감도 컸지만, 감정의 고삐가 자유롭게 풀어진 탓인지 그동안 막아두었던 사랑의 감정이 마치 소나기처럼 그에게도 쏟아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단 한 번의 전투로 그와의 전쟁이 끝났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어쨌든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든 마음 내킬 때마다 그를 만질 수 있다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했던 그녀였다. 이른 아침부터 그와 사랑을 나눈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여전히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는 있지만, 그런 그를 대하기가 조금은 편해진 게 사실이었다. 지난 24시간 동안 일어난 변화를 하나씩 떠올려 본 결과 그녀는 리스가 지금껏 성욕을 억누르느라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던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오자 그들은 잠시 일손을 놓았다. 리스는 일단 가까운 샘으로 가서 말에게 물을 먹이고 녀석들을 근처의 나무에 메어놓은 다음 매들린이 식사 장소로 고른 조그만 둔턱으로 올라가 그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마음에 드오?]

    그는 모자를 벗어 옆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그녀는 미소를 띤 채 그에게 샌드위치를 건넸다.

    [난 이 평화로움이 너무 좋아요. 경적을 울려대는 차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울리는 전화도 없고, 숨통을 틀어막는 스모그 따윈 더더욱 없잖아요?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 게 좀 문제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죠.]

    [상으로 연고를 발라줘야겠군.]

    그는 은밀하게 눈을 반짝였다.

    [오늘밤에 말이오.]

    덕분에 그는 상으로 키스 한 번을 벌었다. 그녀는 몸을 바로 세우곤 자기 몫의 샌드위치 포장을 풀었다.

    [내 일솜씨는 어때요?]

    [잘하더군. 문제는 당신이 혹시 말에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내가 눈을 떼지 못한다는 점이오. 나도 여자 카우보이와 일해보기는 처음이거든.]

    그는 여성에 관해서는 확실히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서부 남자들이 다 그렇듯이. 하지만 그녀로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지 않는 한, 그가 어느 정도 과보호적인 성향을 보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야 그들의 삶이 결코 단조롭지 않으리라는 전조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그는 한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 채 늘씬한 다리를 앞으로 쭉뻗고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두 번째 샌드위치를 집어들었다. 비록 허름한 작업복에 낡아빠진 부츠 차림이었지만, 그는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은 그 어떤 남자 모델보다도 더 돋보였다.

    저런 사람을 놓아주다니. 그의 첫 번째 아내는 미국 최고의 머저리 클럽 회장이라도 맡아야 될 듯했다. 하지만 그 못된 여자가 그에게 저지른 짓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그 여자를 찾아가 한방 먹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복수심에 불타는 타입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리스에게 해를 입힌 사람이라면 누구든 본때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혹시 에이프릴을 만나게 되면 기필코 그 여자의 머리를 홀랑 뽑아버리리라, 그녀는 속으로 결심했다.

    리스는 어느새 그녀가 싸온 쿠키를 찾아내 차와 함께 죄다 먹어버린 후였다. 이 남자를 챙겨 먹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일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저 엄청난 식욕을 물려받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아마 하루 종일 부엌에 매여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 문제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그제서야 리스와 상의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참,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뭐요?]

    그는 풀밭에 몸을 쭉 펴고 드러눕더니 모자를 집어들어 눈을 가렸다.

    [아이 문제예요.]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모자를 치워버리곤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이런, 벌써 임신이 됐소?]

    [아뇨. 만일 그렇다고 해도 벌써 알 수는 없어요. 우린 아직 결혼한지 한 달도 안 됐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우리가 아직 아이 문제에 대해선 한 번도 상의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나중에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당장 아이를 갖게 되길 바라는지 잘 모르겠지에 일단 산부인과에 가서 피임약을 처방받았어요.]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거요?]

    [네. 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피임약 복용을 중단할게요. 그럼 곧바로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문제는 진작에 나와 상의를 했어야지. 혹시 이 문제도 당신 처녀성과 마찬가지로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매들린은 곁눈질로 살짝 그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죠. 난 아직 당신에 대해 잘 모르고,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완전히 편안한 건 아니니까요.]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아 거친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당장 임신하면 어떨 것 같소?]

    [난 상관없어요.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으니까요. 당장 아이를 갖는 게 부담스럽다면 조금 늦추는 것도 괜찮고요. 하지만 1년 이상은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난 벌써 스물여덟 살이니까요. 서른이 넘어서 아이를 갖고 싶진 않거든요.]

    리스는 자신의 커다랗고 거친 손과 그녀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을 비교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요즘 두 사람 사이의 강령한 육체적 흡인력에 완전히 항복한 상태였다. 너무 빨리 그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임신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사랑을 나누는 데 어느 정도 한계를 두어야 하고, 그녀를 지금처럼 완벽하게 즐길 순 없게 된다.

    마음을 결정한 리스는 그녀의 손바닥에 살짝 입술을 갖다댔다.

    [당분간 이대로 지냅시다.]

    그녀의 달콤한 맛에 취해 완전히 정신을 잃기 전에 그는 얼른 단서를 달았다.

    [가을이 되면 그때 다시 의논을 해보도록 하지.]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핥는 그의 혀놀림에 정신이 팔려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리스에게 거의 떠밀리다시피 풀밭에 몸을 눕히며 그녀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번엔 부츠를 벗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눈을 반짝이며 짓궂게 대답했다.

    [알 수 없지.]

    그는 결국 부츠를 벗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틈틈이 소떼를 이동시키고 예방 주사를 놓는 리스를 도왔다. 한번은 그가 건초를 베어내고 한 단씩 묶는 작업을 하는 곳까지 트레일러와 연결한 트럭을 직접 운전해 가기도 했다. 하지만 무거운 건초 더미를 트레일러에 싣는 작업은 리스 혼자서 해야 했다. 거초를 베어내고 한 단씩 묶어 트레일러에 싣는 작업은 사실 최소한 세 명이 매달려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리스 혼자 모든 작업을 해야 했던 예전에 비하면 한결 수월해진 셈이었다.

    매들린이 해야 할 일은 또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하러 나가지 않을 때면 하루 종일 집 외벽 페인트칠을 벗겨내는 작업에 매달렸던 것이다.

    다행히 그는 매일 어두컴컴해진 다음에야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한도안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리스에게 끝까지 그 일을 비밀로 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며칠 후 마침내 리스에게 그녀의 비밀 프로젝트를 발각당하는 날이 왔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부엌에 들어선 리스가 싱크대에 기대서서 팔짱을 꼈다.

    [당신, 혹시 외벽 페인트 칠을 벗겨내는 중이오?]

    [네.]

    [당신이 무슨 게리 쿠퍼라도 되는 거요?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소. 지금 당장 그 일을 그만두시오, 알겠소?]

    [대체 뭘 그만두라는 거죠? 게리 쿠퍼 흉내요, 아니면 페인트 칠 벗기기요?]

    [둘 다.]

    [하지만 일단 낡은 페인트를 벗겨내야 새로 하는 페인트칠이 깨끗하게 된다구요.]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어쨌든 그 일은 지금 당장 그만두시오. 그러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소?]

    [당신도 혼자 방목장에 나가잖아요. 그러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 아닌가요?]

    매들린은 곧바로 그의 말을 받아쳤다.

    [난 충분히 조심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구요. 게다가 조금만 더 하면 끝나는걸요.]

    [아니.]

    그는 잇새로 말을 밀어냈다.

    [내겐 새 페인트를 살 여유가 없소. 설령 여유가 있다 해도 당신이 직접 페인트 칠을 벗기는 건 절대 허락할 수 없겠지만.]

    [하지만 당신은 목장 일만으로도 바쁘잖아요. 그러니 내가 할 수 밖에요.]

    [다시 한 번 말하겠소.]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듯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겐 새 페인트를 살 여유가 없다고 했소! 그러니 그 일은 당장 그만두시오!]

    [그러고 보니 우린 아직 돈 문제에 대해서 한 번도 얘기를 해본적이 없군요. 대체 왜 우리에게 새 페인트를 살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당신도 알다시피 난 결혼하기 전까지 내 힘으로 벌어서 살았어요.]

    그녀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 결혼하면서 뉴욕 은행에 들어 있던 저금을 빌링스 은행으로 옮겨둔 상태에요. 그리고 할머니가 남겨주신 신탁 예금도 있어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페인트 몇 깡통 정도 살 여유는 충분하다구요.]

    리스의 얼굴이 화강암처럼 굳어졌다.

    [안 돼. 우리가 혼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는 걸 잊었소? 거기에 분명히 써 있잖소! 당신 재산은 당신 것이고, 내 재산은 내 것이라는 내용 말이오. 당신이 목장에 돈을 쓰게 하면 그 계약서를 부효화시킬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되는 거요. 난 절대 그런 위험을 무릎쓸 생각이 없소.]

    매들린은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 말 잘 들어요. 기드온 리스 던컨. 첫째, 난 당신과 이혼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러니 그 빌어먹을 혼전 계약서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구요. 둘째, 새로 페인트칠을 하는 데 얼마나 들 것 같아요? 백 달러, 아니면 2백 달러?]

    [적어도 2백 달러는 들 거요. 하지만......... 젠장, 어쨌든 안돼. 난 절대 당신이 페인트를 사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요.]

    [난 페인트를 사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칠도 할 거예요! 정 내가 당신 목장을 빼앗아 갈까 봐 걱정스럽다면 또 서류를 만들지 그래요? 나중에 사정이 나아지면 페인트를 산 비용과 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서류를 만들라구요! 기꺼이 서명해 줄 테니까요. 그럼 아무 문제도 없을 거 아니에요?]

    매들린은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단숨에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난 이 집의 외양을 멋지게 바꾸고 말 거예요. 내년 봄에는 정원도 가꿀 생각이구요. 그것도 반대할 거라면 아예 지금 그 문제도 매듭을 짓는 게 좋겠어요. 어쨌든 당신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건 외벽을 어떤 색깔로 칠할 것인지 하는 것뿐이에요. 물론 당신이 어떤 색을 선택하든 난 이미 흰색으로 칠하기로 마음먹었지만요. 흰색이요. 알아들었어요?]

    그녀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거의 고함을 치듯 말을 맺었다.

    리스 역시 다른 어떤 때보다도 심하게 화를 냈다.

    [빌어먹을, 당신 맘대로 하시오!]

    그는 그대로 부엌문을 꽝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매들린은 그의 말대로 며칠 후 크룩으로 쇼핑을 나갔을 때 페인트의 솔을 사고 수표를 내밀었다. 그리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페인트 통을 들고 나가 트럭 뒤칸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녀는 8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페인트칠을 완전히 끝낼 수 있었다. 그때쯤에는 칠장이를 우러러 보게 되었을 정돋로 그 일은 고됐다. 그녀는 매일 밤 어깨와 팔이 아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가장 지겨웠던 일은 베란다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 개도 넘는 자잘한 나무 기둥을 하나하나 칠하는 거였고, 제일 어려웠던 작업은 사다리에 몸을 동을 동여매고 2층 벽을 칠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나고 눈처럼 새하얀 집에 검정 애나멜을 칠한 덧창이 반짝이는 걸 보자 그녀는 생전 처음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리스조차도 집이 멋져 보인다고 퉁명스레 인정할 정도였다. 그는 마지못해 수고했다고 말은 했지만, 그녀가 끝까지 고집을 부려 일을 마친 점에 대해선 여전히 불만스러운 게 분명했다.

    그의 아내, 결혼한 지 두 달도 안 돼 매들린은 그의 생활에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집 안 구석구석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녀는 그의 속옷 서랍까지 다시 정리했다.

    리스는 종종 느긋하기 그지없는 그녀가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치우는지 궁금했지만, 그녀가 많은 일을 완벽하게 해낸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8월 말의 어느 무더운 날 아침, 매들린은 밀가루가 마침 똑 떨어졌다는 걸 발견했다. 리스는 이미 일을 하러 나간 후 였고, 점심때에도 돌아올 예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혼자서 쇼핑을 다녀오기로 했다. 2층으로 올라가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친 그녀는 몇 가지 생필품도 구입할 생각으로 쇼핑 목록을 챙겨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마을에 나간 김에 장을 다 봐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마을로 나간 매들린은 으레 그랬던 것처럼 플로리스의 카페에 들러 커피와 호두 파이를 시켰다. 카페에는 그녀말고도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다. 잠시 후 플로리스는 예의 그 무례한 언사로 손님의 화를 돋워 내쫓아 버리고 매들린의 자리로 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당신 남자는 어디 있어?]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플로리스가 물었다.

    [목장에 있어요. 마침 밀가루가 떨어졌기에 나 혼자 나왔죠.]

    플로리스는 여전히 심술궂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의 첫 번째 아내였던 여자는 한 번도 그런 걸 사러 나온 적이 없었어. 요리를 전혀 못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어쨌든 리스는 요리사를 고용할 수 밖에 없었지.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이야. 여자 하나 때문에 잘 돌아가던 목장도 엉망이 되고.]

    [이제 곧 재기할 거예요.]

    매들린은 자신 있게 말했다.

    [목장으 재건하려고 얼마나 열심인데요.]

    [그 사람은 확실히 일을 두려워하는 법이 없지. 여기서 빈둥거리는 저런 멍청이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플로리스는 조금 전에 툴툴거리며 나갔던 카우보이가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문 쪽을 흘겨보았다.

    플로리스와 얘기를 나누고 난 뒤 사교적인 글레나와 잡담을 주고받는 건 거의 문화적인 충격에 가까웠다. 글레나와 잠시 수다를 떤 매들린은 흡족한 기분으로 쇼핑 꾸러미를 스테이션 왜건에 싣고 목장으로 향했다. 아직 정오도 안 됐으니 저녁 디저트로 케이크를 구울 시간은 충분했다.

    차고에 차를 집어넣던 매들린은 놀랍게도 리스의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때 마침 집 뒤쪽에서 물 양동이를 들고 나오던 리스가 그녀를 발견하곤 곧장 다가왔다.

    [젠장, 도대체 어딜 갔다온 거요?]

    그는 이글거리는 초록색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며 우레처럼 소리를 질렀다.

    매들린은 그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써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마침 밀가루가 다 떨어졌기에 쇼핑을 나갔다 왔어요. 크룩까지 나간 김에 아예 필요한 물건들을 다 사왔죠.]

    [빌어먹을,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나가면 어떡해!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그녀는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점점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당신은 일을 나가고 없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나가라는 거죠?]

    [메모라도 남겨놓을 수 있잖소!]

    [당신은 항상 저녁때 돌아오잖아요. 그래서 굳이 메모를 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돌아온 거예요?]

    [말편자에 문제가 생겨서 다른 걸 가지러 온 거요.]

    퉁명스런 말투를 보아하니 그는 아직 말다툼을 끝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안 그랬으면 이렇게 당신이 혼자 여기저기 돌아 다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지. 나 몰래 돌아다닌 지는 얼마나 됐소?]

    [장보기 말이에요? 수백 년은 됐다고 말하고 싶군요.]

    그는 천천히 양동이를 내려놓고 다시 몸을 일으키면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매들린은 그제야 그가 단지 아내의 행방을 몰라서 기분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 완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저렇게 화가 난 리스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집에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문제로 의견 충돌이 있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악문 잇새로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겨우 크룩에 다녀오려고 그렇게 옷을 차려입은 건가?]

    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기 옷을 내려다보았다.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분홍색 치마에 소매를 걷은 하얀 실크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물론 스타킹을 신지 않은 맨발엔 시원한 샌들을 끌고 있었고.

    [그래요. 난 상점에 갈 때도 늘 이렇게 옷을 입어요. 변명이 아니라 혹시 당신이 모를까 봐 말해두는데, 청바지를 입기엔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웠다구요. 그래서 치마를 입었어요.]

    [물론 지나가는 남자들이 다 당신 다리를 쳐다보는 것도 좋았을 테고?]

    그가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 거렸다.

    [내가 아는 한 내 다리를 쳐다보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난 당신 전처의 죄를 대신 뒤집어쓸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진실이에요. 자, 이제 당신만 괜찮다면 난 그만 안으로 들어가 보겠어요.]

    그는 분연히 돌아서는 매들린의 몸을 홱 돌려세웠다.

    [난 아직 당신에게 할 말이 남아 있어! 내가 얘기를 마치기 전에 제멋대로 등을 돌리는 건 절대 용서 못해!]

    [그래요?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군요. 소인은 이만 안으로 들어가고 싶사오니 제발 윤허해 주시옵소서, 전하!]

    [마을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내가 데려다 주겠소.]

    리스는 그녀의 통렬한 비웃음을 무시한 채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앙증맞은 엉덩이를 이 목장에 단단히 붙이고 있으란 말이오. 그리고 이 집을 벗어날 경우엔 반드시 내게 행선지를 알려야 하요.]

    [내 말을 깊이 새겨듣는 게 좋을 거예요. 리스 던컨. 우선 난 당신의 아내에요. 죄수처럼 집에만 갇혀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구요. 당신이 만약 차를 뺏겠다면 그땐 걸어서라도 갈 거예요.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목장을 걸고 내기를 해도 좋아요. 난 에이프릴이 아니에요. 알아들었어요? 난 에이프릴이 아니라구요!]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마구 퍼부어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서로를 한껏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매들린은 천천히 몸을 숙여 물이 담긴 양동이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양동이에 담긴 물을 그에게 왈칵 부어버렸다. 그의 머리에서 어깨에 거쳐 아래로 흘러내린 물이 그의 발치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이걸로는 당신 머리를 맑게 할 수 없다면, 다시 한 양동이를 부어줄 용의도 있어요.]

    그녀는 냉기가 풀풀 도는 목소리로 제안했다.

    리스는 천천히 모자를 벗어 다리에 대고 물기를 털다가 갑자기 바닥에 내팽개쳤다. 매들린은 그가 이를 악무는 광경을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다음 순간 그가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들어 허리를 감아안고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자동차 앞 범퍼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허리를 움켜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팔뚝에도 경련이 일었다. 흠뻑 젖은 머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노기로 번뜩이는 눈에선 파랗게 불꽃이 이는 듯했다.

    그는 온통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아내는 절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설 여자가 아니었고, 그 역시 아내에게 상처를 입히느니 차라리 두손을 자르는 편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대로 성미를 가라앉히는 것뿐이었다.

    리스는 그녀를 자동차 범퍼에 밀어붙인 채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드은 긴장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족히 1분이 넘도록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턱을 곧추세웠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다리로 내려갔다. 다음 순간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엔 어느새 미칠 듯한 욕망이 어려 있었다.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초록색 눈동자와 은회색의 투명한 눈동자가 서로에게 휘감겼다. 리스는 그녀의 치마를 위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하얀 허벅지를 벌리고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그의 젖은 머리에 손가락을 찔러넣고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거칠게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그녀의 팬티를 벗겨낸 다음 자신의 바지 단추를 끌렀다.

    그리고........ 지난번 트럭 뒤칸에서 일어났던 일이 재현되었다. 그는 자신의 남성을 한손으로 쥔 채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힘차게 돌진했다.

    그녀는 거친 신음을 토하며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를 아래로 끌어내려 그와 눈을 맞췄다.

    [사랑해요!]

    그녀는 격렬하게 소리쳤다.

    [젠장, 당시을 사랑한다구요!]

    그는 마치 번개에라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회색 눈동자에 빠져들 것만 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미칠 듯이 거칠게 시작되었던 행위가 곧 느릿느릿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뒤로 젖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곤 그녀의 몸 안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그녀의 이름을 속삭였다.

    [매디.]

    그녀는 오로지 그를 위해 불타올랐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달려 뜨거운 정열을 만끽했다.

    그는 서둘러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었다. 그녀 역시 미친 듯이 그의 셔츠 단추를 끌렀다. 그는 다급한 손길로 브래지어를 풀어내고 그녀를 바짝 끌어안은 채 가슴을 비벼댔다. 까칠한 가슴털이 유두를 자극하자 그녀는 그의 품에서 활처럼 등을 휘었다.

    [정말이지 아무리 당신을 가져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난 당신이 내게 만족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정열에 취한 탓인지 그녀의 눈빛은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닉했다. 그녀가 환희의 정점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그의 이름을 소리높여 외칠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그녀의 입술을 점령한 채였다.

    그는 그녀의 몸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채 아찔할 정도로 강하게 조여오는 그녀의 여성을 마음껏 맛보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여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열정을 한껏 누렸다.

    먼저 절정에 오른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녀는 자동차 범퍼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리스는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쥔 채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남성이 거세게 밀고 들어오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사랑해요.]

    그녀는 다시 한 번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다시금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얼마나 그말을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처음 그녀가 공항에서 그를 향해 걸어오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그 순간부터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된 것이다.

    그는 커다랗게 신음을 흘리며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다음 순간 거대한 환희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그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를 느끼며 그녀의 부드러운 몸 속으로 가라앉는 것뿐이었다.

    그날 밤 그는 침대에 누워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매끈한 어깨 곡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미안하오.]

    그의 얼굴이 자책감으로 굳어졌다.

    [아까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어. 내가 너무 심했소.]

    그녀는 그의 턱에 입술을 살짝 갖다댔다.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이겠어요. 어쨌든 그 덕분에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에이프릴 때문이죠? 그러니까 그녀가....... 그랬나요?]

    매들린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어서 애매 모호하게 물었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냐고? 그랬지.]

    그는 씁쓸한 어조로 인정했다.

    [정말 바보였군요.]

    그녀는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그의 은밀한 부위를 감싸쥐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려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매디, 난 그때나 직므이나 결코 성인군자는 아니오. 난 확실히 같이 살기엔 꽤 힘든 타입이지.]

    그녀는 조롱하듯 눈을 글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짐짓 한숨을 내쉬더니 곧 껄걸 웃음을 떠뜨리며 다리를 쭉 뻗었다. 그녀는 정말 여자 중의 여자였고, 그녀의 손이 주는 느낌은 거의 외설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황홀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결말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지만, 그는 가능하면 몇 분이라도 이 근사한 느낌을 즐기고 싶었다.

    [당신 말이 맞소. 난 당신을 죄수처럼 이 목장에 가둬두고 싶었어.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요.]

    [난 절대 도망가지 않아요.]

    매들린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가 원하는 게 다 여기 있는데 왜 도망을 가겠어요? 그래도 당신이 한 가지는 바로 맞혔어요.]

    [뭔데?]

    [사랑을 나누는 거야말로 가장 좋은 화해 방법이라는 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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