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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청혼 (164)화 (164/164)

164화. 그 후의 이야기(7)

2021.09.27.

"축하드려요, 어여쁜 아가씨예요."

산파가 갓 태어난 아이를 내보였다. 알리시아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산파가 억지로 울게 하기 전까지 울음 한 번 터트리지 않은 아이는 아주 작고, 살구씨처럼 쪼글쪼글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따뜻했다.

"안녕, 아가."

단지 착각일까,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 것 같았다. 알리시아는 몰려오는 수마를 억지로 이겨내며 카벨레누스를 찾았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망부석처럼 굳어 있었다.

"뭐 해요. 당신이 탯줄을 자르기로 했잖아요."

"……내가 해도 되나?"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게…… 너무 작잖아……."

카벨레누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책은 몇 번이고 읽었다. 태어날 아기가 얼마나 작은지,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전부 공부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아이는 너무 작았다.

"내가 만지면 안 될 것 같아."

"그런 게 어딨어요."

"……."

알리시아의 재촉에 카벨레누스는 마지 못해 걸음을 뗐다. 산파가 들려준 가위가 있었지만 차마 그것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피를 봐온 손으로 작은 아이를 만져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아빠잖아요."

"……."

"괜찮아요."

땀에 젖은 얼굴로 알리시아가 웃었다. 카벨레누스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이례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하……."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탯줄은 쉽게 잘려나갔다. 카벨레누스는 그제야 거친 숨을 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찰나의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면포에 쌓인 아이가 내밀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 안아보세요."

"안아? 내가?"

카벨레누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솔직히 말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입술을 우물거리는 갓난아이에겐 예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감격스러웠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것처럼 작은 주제에 팔딱팔딱 뛰는 심장 박동이 너무도 기꺼웠다.

"안아보지 않으실 건가요?"

"아니. 이리 줘."

카벨레누스는 떨리는 손으로 산파에게서 아이를 받았다. 처음으로 갓난아이를 안아보는 사내의 모습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잘 보면 그대 얼굴이 있어."

"그런가요?"

"손가락 모양도 닮은 것 같은데, 아닌가?"

그제야 긴장이 풀린 카벨레누스가 알리시아의 옆에 앉았다. 알리시아는 똑같은 머리카락 색을 가진 부녀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거봐요. 괜찮을 거라고 했죠?"

"그래."

카벨레누스는 미소와 함께, 땀에 젖은 아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수고했어, 정말로. * * * 부스럭-. 수풀 속 복슬복슬한 솜뭉치가 빼꼼 튀어나왔다. 미카엘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꼬물거리는 솜뭉치를 응시했다. 태양 아래에도 변함없이 새카만 솜뭉치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기다 보면 분홍색 리본이 보였다.

"메르시아."

순간 솜뭉치가 파르르 떨렸다. 미카엘은 피식 웃으면서 몸을 낮췄다.

"머리카락 보여."

"……보여?"

"응. 너무 잘 보여."

솜뭉치에 강아지 귀라도 달려 있다면 축 처진 모양이 아니었을까. 미카엘은 키득거리며 수풀을 헤쳤다. 수풀 안에는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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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고 있어?"

"……."

"말하기 싫어?"

"깨트렸어."

"깨트려?"

메르시아의 두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미카엘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동생의 표정에 당황해 급하게 몸을 낮췄다.

"괜찮으니 울지마."

"그치만……."

"오빠가 어떻게서든 해결해줄게. 약속!"

"……."

"오빠 못 믿어?"

메르시아는 급히 고개를 휙휙 저었다.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런데 뭘 깨트린 거야?"

"꽃병."

"꽃병?"

"엄마 방에 있는 거."

메르시아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미카엘의 목에 매달렸다. 나이 차가 제법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미카엘이 키가 유난히도 큰 편이라 두 오누이는 신장 차이가 부쩍 났다.

"아야 하는 곳은 없어?"

"응. 아야는 안 했어."

"다행이네."

혀 짧은 소리는 옛적에 졸업했지만, 동생 앞에선 예외다. 미카엘은 반짝이는 동생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꽃병은 어쩌다가 깨트린 거야?"

"예쁜 꽃을 따서 꽂아주고 싶었는데, 꽃병이 너무 높이 있었어."

"그럼 꽃병이 잘못한 거네."

"응?"

"메르시아는 잘못한 거 하나 없어. 그냥 꽃병이 잘못한 거야."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야."

미카엘은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마는 동생을 너무 싸고돈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 여동생은 도자기 인형처럼 예뻤다. 천사 같은 얼굴로 헤실헤실 웃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나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메르시아 때문에 꽃병이 아야 했잖아."

"오빠가 고쳐주면 괜찮을 거야."

"오빠가 고쳐줄 거야?"

"오빠가 못 하는 거 봤어?"

"아니!"

메르시아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미카엘은 존경 어린 동생의 눈에 흐뭇해하며, 한시라도 빨리 똑같은 꽃병을 사 올 생각을 했다.

"있지, 나는 오빠가 진짜 좋아."

"아빠보다 오빠가 더 좋지?"

"아빠?"

"메르시아에게만 말해주는 건데, 아빠는 꽃병 못 고쳐."

"진짜?"

메르시아의 두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미카엘은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턱을 추켜세웠다.

"응. 그건 오빠만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오빠가 더 좋지? 미카엘은 기대 어린 눈으로 메르시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메르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꽃병 못 고쳐도 아빠가 좋아."

"왜?"

"아빠가 만든 케이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까."

"케이크보다 꽃병 고치는 게 멋있지 않아?"

미카엘은 일말의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웃었다. 메르시아는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다가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꽃병 고치는 건 멋있지만 그래도 케이크가 더 좋아."

"왜?"

"꽃병은 못 먹잖아."

"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다. 미카엘은 오늘도 짙은 패배감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럴 때면 요리를 배워야 하나 싶다가도 어제 먹은 케이크를 떠올리니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카벨레누스의 요리 실력은 나날이 늘어 이제는 범접할 엄두조차 나지 않게 되었다.

"둘이 뭐 하고 왔길래, 꼴이 엉망이야."

"아빠?"

카벨레누스를 발견한 메르시아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카벨레누스는 능숙하게 한 팔로 어린 딸을 받아 안았다.

"뭐 하고 놀았어. 메르시아. 응?"

"그게, 메르시아가 꽃병을 깨뜨렸는데-."

"안 다쳤어?"

말을 가로챈 카벨레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눈은 누구보다 빠르게 상처를 훑고 있었다.

"메르시아 말고 꽃병만 아야 했어."

"다행이네."

카벨레누스는 짧게 한숨을 쉬며 메르시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메르시아는 까르르 웃으며 아빠의 목에 매달렸다. 다들 눈만 마주쳐도 덜덜 떠는 슈바르한 대공도 메르시아에게는 다정한 아빠일 뿐이었다.

"그래도 다음부턴 조심해. 꽃병은 얼마든지 깨뜨려도 되지만, 잘못하다가 다치면 아프잖아."

"깨트리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럼?"

"엄마한테 꽃을 보여주려고 한 거야."

"다음에는 아빠랑 같이해. 아니면, 지금 꽃 따러 갈까?"

"진짜?"

"아빠가 새 꽃병도 구해놓을게. 거기다가 예쁘게 꽂아놓자."

카벨레누스는 자연스레 메르시아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 부서질까, 안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안고 다녔다. 알리시아를 쏙 빼닮은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꽃병은 괜찮아. 오빠가 고쳐준다 했단 말이야."

"오빠가?"

"아빠는 못 고치지만, 오빠는 고칠 수 있대."

"흐음, 그랬단 말이지?"

"응!"

카벨레누스의 시선에 미카엘은 슬쩍 눈을 피했다. 카벨레누스는 멋진 오빠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미카엘은 얼핏 보면 어른으로 착각할 정도로 훌쩍 커버렸지만, 카벨레누스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애처럼 보였다.

"그럼 오빠한테 꽃병 고쳐달라 한 김에 꽃도 같이 따자고 해."

사내의 자존심은 건드리지 말아야지. 카벨레누스는 미카엘의 거짓말을 눈감아주면서 메르시아의 뺨을 간지럽혔다.

"그럼 아빠는?"

"아빠는 엄마랑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 딸이 가져올 예쁜 꽃을 기대하면서 말이야."

메르시아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미카엘은 재빨리 동생을 안아 들었다. 슈바르한의 대공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 발로 걷기보다는 안겨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오빠가 가장 예쁜 꽃을 찾아줄게."

"꽃목걸이도 만들어줄 거지?"

"당연하지."

언제는 동생이 싫다더니. 이제는 메르시아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미카엘을 바라보는 카벨레누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려와 달리, 두 남매는 부러울 정도로 우애가 좋았다.

"구경은 다 했나?"

"들켰어요?"

"내가 그대가 오는 걸 모를 리 없지."

카벨레누스가 몸을 돌렸다. 알리시아는 미소와 함께, 기둥 쪽에서 나왔다. 그녀의 곁에는 네발 달린 짐승이 함께하고 있었다.

"지켜볼 생각은 없었는데, 셋이 노는 게 너무 귀여워서요."

"셋? 설마, 거기에 나도 포함인 건가."

"당연하죠."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알리시아에 카벨레누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귀엽다는 말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메르시아보다 당신이 더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는 걸요."

"그건 무리지."

"왜요?"

"우리 딸보다 귀여운 게 있을 리 없으니까."

"……."

"왜?"

"아니. 당신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하니까, 이상해서요."

알리시아는 대놓고 키득거렸다. 하지만 카벨레누스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카벨레누스는 진지하게 미간을 좁혔다. 아빠 소리를 연발하며 병아리처럼 졸졸 쫓아다니며 딸아이는 그 어떤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귀여웠다. 그는 아직도 어린 딸이 처음으로 아빠 소리를 하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다들 그러니까, 메르시아가 자꾸 어리광이 늘잖아요."

"어쩔 수 없어. 예쁜 짓만 골라 하는데, 안 예뻐할 수 없잖아."

"하여튼……."

"엄하게 굴어야 할 때는 그렇게 할 거야."

"할 수 있겠어요?"

"노력하는 건 자신 있으니까."

그게 노력까지 해야 하는 문제인가 싶지만, 그 말을 하기에는 카벨레누스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알리시아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카벨레누스에게 몸을 기댔다.

"메르시아만 너무 예뻐하는 것 같아서 질투가 나는데요?"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어째서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그대거든. 그건 절대 안 변하지."

카벨레누스는 고개를 내려 알리시아와 입을 맞췄다. 알리시아는 웃으면서도 카벨레누스의 목에 팔을 둘렀다. 마주친 입술은 오늘도 변함없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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