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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89화 (외전) (89/92)

외전 1화. 에델바이스와 솜다리꽃

목선후가 암행어사로 나간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는 장원랑이 되자 암행어사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겠다고 해서 한동안 전하와 대비마마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었다.

하지만 목선후의 뜻을 꺾지 못한 전하는 완전히 따뜻해진 음력 3월에 목선후에게 가까운 지역을 맡겼다. 정 공자와 말순을 빼고 팽문과 비밀 호위들이 모두 따라갔다.

향시에서 떨어진 안중은 그 나이에 당연한 건데도 매형과 비교해 낙심하더니 다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고 안문이는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민아는 산법 선생을 찾아서 산법을 공부하는 틈틈이 내가 고안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디자인한다.

이 시대는 교통수단이 말과 마차, 가마밖에는 없기 때문에 나는 기억을 쥐어짜서 자전거를 만들어 보고 있다.

환성 같은 곳은 청석이 깔려 있거나 흙바닥이어도 반듯한 길이 많아서 자전거를 탈 만했다. 고무바퀴가 나오려면 아직도 수백 년은 더 있어야 하므로 일단 나무바퀴로 시작했다. 시작은 했는데 언제 완성될지는 모른다. 자전거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다섯 살이 된 막내 안국이까지 학당에 나가게 되자 오 여사님은 비누가게와 상등 가게에 전념할 시간이 늘어났다.

내 예상대로 오 여사님은 장사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손님 대하기를 안안용 대하듯 하는데 단골이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유, 오늘은 장사가 잘 안 되는구나. 그래서 점주에게 맡기고 일찍 들어왔다. 들어온 김에 너 좋아하는 수정과를 만들어왔다. 우리 애기, 날이 더우니 힘들지?”

겨우 음력 5월. 아직은 덥다고 할 수 없는데 어머니는 벌써 내 건강을 걱정하신다. 나는 작년에 한번 이 시대의 여름을 겪었기 때문에 나름 준비를 했다.

즉 우리 집 후원에 풀장을 만들어놓았다. 한여름에는 동생들이나 목선후와 수영하거나 물장난을 칠 수 있다. 물 높이는 안국이의 키를 넘지만 하인들과 유모가 하루 24시간 안국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으니 안전하다.

“안 더워요. 궁에서 이렇게 얼음도 자주 보내 주는걸요. 그런데 장사가 왜 잘 안 됐을까요?”

수정과에 얼음을 타서 마시며 묻자 오 여사님이 소녀처럼 배시시 웃었다.

“잘 안되기는. 네가 전에 그랬잖니. 저기 어느 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장사가 잘 되도 잘 된다고 자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도 흉내 내 봤다.”

헐, 우리 오 여사님. 동기가 확실하니 습득력이 장난이 아니다.

입시학원에서 학생들만 가르쳤던 나와는 다른 재능을 타고난 오 여사님은 마이다스 손처럼 만지는 모든 것을 잘 팔고 있다.

현대에서는 팔리지 않는 것은 만들지 말라는 말도 있을 만큼 파는 능력이 중요하다.

현대와 달리 물건이 풍부하지 않은 시대이긴 하지만 신문물에 해당되는 상등이나 비누를 저렇게 잘 팔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것은 거부감과 두려움부터 드는 게 인간이니까. 그런데 오 여사님이 어찌나 비누를 잘 팔았는지 환성의 웬만한 집에서는 이제 비누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덕분에 위생 상태가 고대치고 매우 좋아졌다.

내 비누 덕분에 이 나라 평균수명이 늘어날 것이다. 확실하다.

그동안 오직 안안용만 바라보던 오 여사님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후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했다. 사람을 빼고는 뭐든 팔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안안용에게 전처럼 매달리지 않는다. 조금 섭섭하긴 하다.

“얘, 괘종시계, 그건 언제 팔 수 있니?”

“빨리 잡아도 겨울쯤? 내년이 될지도 모르고요.”

“기다리다가 턱 빠지겠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불만스레 입을 삐죽이는 오 여사님이 소녀처럼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여전히 오 여사님은 등급외다.

한씨 상단이 가져온 괘종시계는 두 개였는데 하나는 궁에 납품하고 하나는 내가 가져와서 조각조각 분해했다.

민아와 안씨 철방의 도움으로 비슷한 제품을 하나 만들어 내서 시험 중이다. 수십 개의 톱니바퀴 중에서 어느 하나만 틀려도 시간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와 재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오 여사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시계점을 열면 어머니는 더 바쁘시겠죠?”

수정과도 하녀가 만들 테고. 뭔가 허전하고 섭섭하다.

“너 외로워서 그러니? 그러게 목 서방을 꽉 잡으라니까. 암행어사니 뭐니 그따위 직책을 맡으려고 장원을 했다니? 이번에 돌아오기만 해봐. 내가 두 다리를 묶어서라도 잡아 두마.”

“역시, 어머니가 최고예요. 두 다리랑 두 손이랑 꽁꽁 묶어 주세요.”

“묶어서 네 방에 던져줄 테니까. 그거 알지?”

“뭘요?”

“도대체 손자는 언제 안아 볼 수 있니?”

깜짝 놀라 기댔던 상체를 곧추세웠다. 왜 또 말이 그리 흐르냐. 우리 아직 신혼이라고요. 가짜 신혼이 끝나고 진짜 신혼이 시작되자마자 신랑이 장기 출장을 가버렸고요.

아기는 아직 머나먼 얘기인데 점점 전하와 어머니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서 부담스러워 죽겠다.

목선후는 전하의 장자이니 엄밀히 따지면 내가 낳는 아이가 장손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어머니에게는 첫 손자가 될 테니 기대할 만도 하다.

훨훨 손부채를 부치며 정오를 불렀다.

“아이, 더워라. 정오야, 얼음 좀 더 가져와.”

찰싹!

오 여사님이 세지 않게 내 등을 때렸다.

“여기 있는 건 얼음 아니니? 얘가 웬 얌전이야? 나하고 못 할 말이 어디 있다고?”

저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친구하고는 얘기해도 가족에게는 하지 못할 얘기가 있는 법이라고요. 부모와 얘기할 수 없는 게 더 많은 게 정상인데요. 특히 그쪽으로는요.

“어머니, 어서 가서 아버지 저녁 차리셔야죠.”

“내가 차리니? 주방에 손이 몇인데.”

“그게 아니라 아버지 식사하시는데, 요 아름다운 오 여사님이 안 계시면 얼마나 허전하시겠어요. 최고의 반찬은 오 여사님의 얼굴이죠. 안 그래요?”

말하면서도 닭살이 돋은 나는 등 뒤로 손가락을 꼬았다.

“호호호. 그건 그렇지? 그럼 나 간다.”

생각과 말이 하나도 다르지 않은 어머니다. 그래서 나는 갈수록 오 여사님이 좋아진다. 나를 사랑해 줘서가 아니라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어서다. 그 순수함과 정직함이 가능하도록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안부자도 너무 좋다.

웃으며 일어서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대청으로 돌아와 남은 얼음을 입에 넣었다.

대비마마는 목선후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얼음 같은 귀한 선물을 보내준다. 대부분의 물건은 목선후가 올 때까지 보관해 두고 얼음처럼 시간 안에 써야 되는 건 친정과 목씨 집안과 진욱 왕자님 댁으로 보내서 나눠 먹는다.

안안용이 더위를 많이 탄다, 라고 목선후가 말해 둔 탓에 궁에서는 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약재와 식재료를 많이 보내주더니 이제는 대놓고 귀한 패물까지 보내온다.

장원랑이자 종친이니 누가 뭐랄 사람은 없지만 겉보기에 평범한 상자와 보따리 속에 담긴 귀중품을 보면 이상하게 여길 터. 나는 되도록 큰 변화 없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띄는 패물은 착용하지 않고 있다.

“아씨, 인편으로 서신이 왔어요. 풍월문이래요.”

정오가 편지를 들고 대청으로 올라왔다.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

“누가 왔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다른 급한 일이 있다며 편지만 전하고 갔어요.”

중문에서 떨어지는 나를 받느라 어디 한 군데씩 부러진 궐향의 수하들은 모두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사람 위에 떨어지다니.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심장이 떨린다.

“저런, 궁금한 게 많았는데.”

“거기 사람들이 묻는다고 다 대답해 주겠어요? 신비문파라면서요.”

“신비문파가 별거니? 똑같은 사람이지.”

나는 정오가 내민 편지를 앞뒤로 살폈다. 안안용 친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목선후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내게 보낸 거였다. 서둘러 편지를 개봉했더니 편지 봉투 안에서 눈에 익은 작은 꽃송이가 잎이 몇 개 달린 채 툭 떨어졌다. 정오가 알아보고 작게 소리쳤다.

“어머나, 아씨, 솜다리 꽃이네요. 근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에델바이스…… 가 솜다리 꽃이구나.”

내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스위스 여행을 가서 봤던 꽃. 고산지대에서 피는 꽃이다. 알프스 산에 갔더니 말린 에델바이스를 작은 액자에 넣어 기념품으로 팔고 있었다.

“너는 이 꽃을 어떻게 아니?”

“제 고향이 산꼭대기였거든요. 이 솜다리 꽃이 바위틈마다 피어 있었는걸요.”

에델바이스가 알프스 산뿐아니라 동양에서도 피는 줄 몰랐다.

“아씨, 풍월문이 정말 높은 산에 있나 봐요. 이게 그런 뜻이죠? 그쵸?”

“그럼. 달리 무슨 뜻이 있겠니?”

있어도 안 되고.

“이제 소인은 나가서 저녁 차려올게요.”

혼자 편지를 읽을 수 있도록 정오가 대청에서 내려갔다. 한 줄기 바람이 석양에 물든 정오의 얇은 여름치마를 흔들었다. 정오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어 편지를 펴 보았다.

‘선후를 부탁합니다.’

하! 겨우 한 마디? 나는 앞뒤로 편지를 탈탈 털고 봉투도 털었다. 아무것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런 편지를 도대체 왜 보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목선후에게 이 편지를 보이면 빙긋 웃고 말 거다. 형제가 닮은 데가 있다.

이 짧은 한 마디 속에서 궐향과 목선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조용히 옷고름을 내밀던 세자의 향기도 조금 났다. 세 사람은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다.

나는 편지는 다시 봉투에 넣고 말린 솜다리 꽃은 논어 제7의 책갈피 사이에 꽂았다.

‘논어는 읽으라고 있는 거요.’

점잖은 목선후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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