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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84화 (84/92)

84화. 성동격서

목선후는 가운데에서 샌드위치처럼 짜부라질 것처럼 보였다.

“안 돼!”

내가 소리쳤다. 왜 목선후는 뛰어내리지 않는 거지? 왜 풍월문은 그를 받으려 하지 않지? 왜?

죽음을 앞둔 목선후를 보니 논리적인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내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중문을 올라가려 하자 궐향이 내 팔을 잡았다.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다지 큰 덩치도 아닌데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기다려요.”

궐향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두려움이 한 올도 없었다.

비록 황금 고리는 없지만 그의 진실한 눈빛에 나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휙!

피슉!

몇 개의 화살이 궐향과 내 머리 위를 날아갔다. 화살은 정확히 장진한과 두 거인에게 집중됐다. 끊임없는 화살의 방해로 세 사람은 목선후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게 강하던 거인들도 계속 날아오는 화살에는 견디지 못하고 팔을 흔들며 화살을 쳐내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밑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웠던 그들은 무게만큼 강하게 부서졌다.

꺄악!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붉은 피가 그들 주변에 퍼지고 있었다.

나는 성문 위를 올려다보았다. 화살에 꽂혀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진한 앞에 목선후가 서 있었다. 목선후의 아름다운 얼굴은 무표정했다. 장진한에게 어떤 동정심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러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보는 눈빛은 정감으로 넘치고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흘렀다. 중문 위 한가운데 우뚝 선 목선후의 수려한 모습을 사람들이 넋을 잃고 올려다보았다.

***

한 시진 전.

말을 타고 정신없이 북문을 지나 십 리쯤 간 궐향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목씨 문중에 제사가 있어서 목선후가 집을 나서는 날이다. 하필 이런 때 장진한이 출현했다고? 그것도 도성 내가 아니라 도성 밖에서?

이건 함정이다!

목표는 목선후이거나, 안안용이거나, 혹은 둘 다겠지.

이런 어린애 같은 성동격서에 당하다니. 궐향은 자신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고 싶었다.

“돌아간다. 목씨 사당으로 먼저 간다.”

십여 기의 말이 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북문으로 달렸다. 북문을 지나 조금만 가면 목씨 사당이 있었다.

목씨 사당에 도착한 궐향은 목선후가 안전한 것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곧 상대방의 계략을 눈치챘다.

“함정이다! 네가 무사하다면 네 처가 위험해!”

궐향의 외침에 얼굴이 굳어진 목선후가 나는 듯이 말에 올라탔고 그들은 목선후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목선후는 안안용이 찻집에 간다던 말이 생각났다. 말머리를 중문 상가로 돌렸다.

목선후와 궐향이 도착했을 때 이미 안안용은 장진한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여러 번 절망했지만 이번처럼 가슴이 아픈 적은 없었다.

이 일이 무사히 지난다면 다시는 저 여인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겠다고 목선후는 다짐했다.

목선후가 성문 위로 올라갈 때 궐향은 수하들을 준비시켰다. 방법은 별것 아니었다. 최대한 부드럽게 여인을 받기.

무공을 익히면서 비슷한 일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로 떨어질지 얼마만 한 충격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문제는 저 연약한 여인이 조금도, 손톱 하나도 다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 손가락이나 팔이 부러지고 무릎이 꺾였지만 여인의 몸을 나비처럼 가볍게 붙잡았다. 다행히 여인은 정말 가벼웠다.

“아, 문주님. 풍월문에 얼른 가자니까요.”

수하가 손목을 덜렁거리며 말하자 궐향이 멀쩡한 손으로 수하의 뒤통수를 쳤다. 그는 손은 멀쩡했지만 가슴이 아팠다. 갈비뼈가 부러졌다.

“아주버님, 괜찮으세요?”

안안용이 다가와 물었다. 아주버님? 아주버님이래. 흐흐흐. 궐향의 입이 실룩거렸다. 웃고 싶은데 가슴이 아파 웃을 수가 없었다. 앉은 채 죽어 가는 장진한을 두고 성문 아래로 내려온 목선후가 감사와 기쁨의 표정으로 풍월문의 무사들에게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형에게 다가온 목선후는 옆구리를 잡고 웃고 있는 궐향을 향해 한마디 했다.

“형, 고마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 한마디가 가장 진실된 말 같았다. 정오와 말순과 팽문이 다가와 목선후와 안안용을 둘러쌌다.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온 작고 여린 몸집이 안안용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아씨, 아씨.”

민아였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안안용을 올려다보며 작은 손으로는 안안용의 팔과 손과 치맛자락을 더듬거렸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허깨비가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손이 절박했다.

“아씨,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안안용이 민아의 눈물을 소매로 닦아 주었다. 정오와 말순의 눈물도.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 덜덜 떨자 정오와 말순이 한 팔씩 잡고 주물렀다.

“아씨, 다 끝났어요.”

“그래.”

머리도 마음도 끝난 줄 아는데 몸은 여전히 떨렸다. 긴장감이 사라지자 힘이 빠진 다리는 자꾸 꺾였다. 안안용의 모습을 보던 궐향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들어가 봐라.”

궐향의 말에 목선후가 아직도 바닥에 앉거나 누워 있는 궐향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록 형의 수하이지만 아내를 살려 주었으니 무릎이라도 꿇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화살을 날렸던 궐향의 수하들이 인파를 헤치고 다가왔다. 화살을 날린 장본인들인데도 피웅덩이에 엎어져 있는 거인들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궐향은 안안용의 시야를 줄곧 막고 있었다.

아무리 적이라도 연약한 여인이 이런 끔찍한 모습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염려 마라. 이들이 데리고 갈 거다. 너희는 어서 가.”

목선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팽문이 끌고 온 마차에 안안용과 함께 탔다. 마차에 타자마자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안안용을 끌어안았다.

두 사람 다 무사하다니! 목선후는 이 기쁨과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그럴듯한 말을 해야겠는데 나오는 말은 평범하고 무뚝뚝한 맹세였다.

“안용, 앞으로는 그대를 혼자 두지 않겠소.”

“이젠 괜찮아요, 서방님. 악당은 지옥으로 갔잖아요.”

“서, 서방님?”

그래, 어쩌겠어. 닭살 돋지만 이 시대는 이게 ‘오빠’인 걸. 안안용이 목선후의 목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서방님, 오늘부터 절대로 높은 데는 가지 말자구요. 내 키보다 더 높은 곳은 절대로, 네, 네, 네, 네버, 안 갈 거예요. 진짜예요.”

이상한 말을 하는 아내지만 서방님, 이란 말 때문에 멍해진 목선후는 아무래도 좋았다. 세상이 온통 꽃분홍으로 넘치고 꽃향기에 싸여서 자신도 한 송이 꽃으로 변했으니까.

달그락달그락 마차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돌바닥을 울렸다.

***

얼마 후.

예부시랑 남찬웅의 비리가 드러나서 아들 남우효가 유배를 간 곳으로 자신도 유배를 갔다. 장진한의 죽음은 인과응보라고 생각했지만 세자의 처남이고 왕손의 외숙이므로 악인의 협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로 왕실이 소문을 냈다.

진정한 악인은 두 거인이다.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그들이 장진한을 협박했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받아들였다.

악인들에게 화살을 쏘았던 풍월문은 하루아침에 사라져서 과거처럼 신비문파가 되었다.

그날 한 마리 나비처럼, 한 송이 꽃처럼 떨어져 내린 예쁜 아씨는 하늘이 보호하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으니까.

하늘이 보호하는 선녀 같은 나는 긴장이 풀려서 살짝 몸살을 앓았다. 어의가 쌍화탕 비슷한 탕약을 지어오고 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와서 며칠 지내시며 나를 간병했다.

사실 어머니는 말로만 간병했다. 실제 간병은 목선후가 다 하고. 어머니는 내가 분가한 뒤로 대화 상대가 없어 너무 심심했던 모양이다. 그동안 안씨 집안에 있었던 일을 아주 세세하게 말해 주었다.

“아주 눈꼴이 다 시려서, 얘. 그 조그만 것들이 어찌나 애틋한지 볼 수가 없다니까, 너, 듣고 있니?”

“그래도 덕분에 안문이가 엄청 열심히 공부한다면서요? 또 알아요? 2년 후에 그 애가 소년 수재가 되어 향시에 합격할지. 그러니까 내버려 두세요.”

“그렇게 싸워 대더니 이제는 그런 사이가 됐으니 이해가 안 되잖니.”

우리 오 여사님,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내년에는 또 원수같이 행동할지도 모른다고요.

나는 안문이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민아와 안문이 계속 사이가 좋기를 바랐다.

“어머니, 집을 이렇게 비우셔도 돼요? 오늘 사흘째예요.”

“딸네 집에 와 있으니 이렇게 재밌는걸. 내가 왜 집 안에만 있어야 하니? 나도 이제 좀 돌아다니면서 살아야겠다.”

흐음, 중년의 위기인가?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오 여사님을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어머니, 비누 가게는 어머니가 하세요. 나는 몸이 약하잖아요.”

“아이고, 집안 살림만 하던 내가 그걸 어떻게 하니?”

딱 저렇게 말하다가 오십 대에 부동산을 열어 대박 난 이웃 아줌마를 알고 있다. 바로 그 부동산을 통해 건물을 살 계획이었다.

“애들이 다 커서 심심해서 시작했는데 내가 이런 데 재능이 있더라고.”

귀엽게 뻐드렁니가 난 그 부동산 사장님의 진솔한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서 나도 그 나이 돼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능 명강사는 해 봤으니까, 음, 뭘 할 수 있을까? 프랜차이즈?

“어머니, 비누 가게 잘되면 제가 또 다른 가게 열어 드릴게요.”

“정말이니?”

“그럼요.”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왜 안부자는 집에만 있으라고 했을까? 아내를 사랑했지만 시대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목선후도 그러면 곤란한데.

나는 지금 몸이 약하니까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는 어렵다.

어머니는 비누 가게를 드린다니까 아들들에게 자랑하겠다며 좋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도 입궁했다가 선물을 한 아름 받아온 목선후에게 저녁 식사를 하며 물어봤다.

“서방님, 내가 일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일? 무슨 일?”

“비누 가게나, 학당 같은 거.”

서늘하고 긴 눈매로 나를 바라보던 목선후가 빙긋 웃었다.

“그 정도로 건강해지면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학당에서 그대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요? 공부를 일이라고 하지는 않소.”

저 불신의 늪을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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