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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81화 (81/92)

81화. 마케팅은 어디서나 통한다

세자 부부와 갓 태어난 왕손에 대한 선물은 안부자가 공식적으로 보냈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왕비 마마.

친정의 몰락 이후로 조용히 살고 있는 왕비 마마에게는 어머니가 지난번 한씨 상단의 배에서 나온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보냈다. 그중에는 이 나라에 오직 하나뿐인 물건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왕비 마마 전용 비누와 유리거울을 따로 마련해왔다. 그녀를 만난 적은 없으나 친정이 몰락했다면 그녀의 마음은 꽤 공허하리라고 짐작해서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향을 배합했다.

궁문에 도착하자 대비전의 상궁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맞이했다. 대부분의 선물은 일일이 검수를 하기 위해 내무부로 가져가고 나는 대비마마를 씻겨 드릴 비누 한 장과 매뉴얼만 챙겼다.

대비전에는 왕까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비마마의 아들이자, 목선후의 아버지인 이 나라의 왕을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절을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이십 년 후의 목선후가 눈앞에 딱! 앉아 있었다. 자애로운 미소가 아니었더라면 위가 졸아들 만큼 묵직한 권위가 사방을 압도했다. 나는 이 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왕을 봤기 때문에 쫄면서도 신기했다.

“네가 안안용이로구나.”

부드러운 왕의 음성이 울리는 순간.

등급이 떴다.

2등급!

헐, 저 분을 속이거나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 왕들은 학문이 깊다기보다는 정치적 감각이 좋다. 그런데 이 나라 왕은 학문이 시아버지인 어사중승급이다. 그 말은 왕 자신이 과거를 봤다면 어전시에서 3등 안에 들 수 있는 실력파라는 뜻. 그런 왕이 역사적으로 몇 명이나 되겠나.

등급을 본 나는 더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전하.”

“아바마마, 할마마마, 오늘 안용이 만든 비누로 두 분의 손과 발을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

자랑스럽게 나를 돌아보며 목선후가 말했다.

그걸로 끝? 아니, 좀 더 어필을 해야지. 아침저녁으로 비누를 사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무언가가 씻겨 나가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 피부가 좋아지고 상쾌해진다는 점. 뭐, 그런 정보를 커다란 비밀처럼 그럴듯하게 말해야 하는데 목선후는 이 한마디만 하고 단정한 얼굴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묻지 않는 말은 하면 안 된다는 예법 때문에 할 수 없이 입술을 물었지만 궁을 나가면 목선후에게 자기 피알의 중요성을 강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똑같은 노력을 해서 결과가 두 배 이상 차이 난다는 사실 말이다.

시녀들이 미지근한 물이 든 대야를 가져오고 우리는 각각 대비와 왕의 손을 먼저 비누로 깨끗이 씻어주었다.

새물로 발도 씻어준 후에 뽀송한 면포를 꼼꼼히 닦아주었다. 나는 솔직히 남의 발을 씻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좀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효도 세리머니가 끝난 후 대단히 만족한 대비마마와 전하는 우리에게 다정하게 이것저것을 묻고, 식사도 같이하고, 선물도 넘치도록 안겨 주었다.

전하는 아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며느리인 나에게도 너그러웠다. 우리가 궁을 나올 때는 가지고 들어간 선물보다 더 많은 선물을 마차 안에 싣고 있었다.

이 선물의 절반은 우리가 했던 세족식 덕분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가장 부담스러운 시댁을 다녀오자 마음이 편해진 나는 오 여사님께 연회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목씨 집안과 진욱 왕자님 집안과 안씨 집안을 위한 화려하고 풍성한 연회가 한 달 뒤로 잡혔다. 라면만 끓일 줄 알았던 나는 다 오 여사님에게 부탁했다. 일을 맡은 오 여사님이 너무 좋아해서 일을 많이 안겨 줄수록 효녀가 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

예부시랑 남찬웅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퇴궐하여 첩인 향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신임 예부상서의 신랄한 말이 귓전을 때렸다.

“예부상서의 자리가 비어 있다고 이렇게까지 손 놓고 있었단 말이오?”

다시 열이 받쳤다. 그 비어 있는 예부상서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갈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손을 놓고 있기는 뭘 놓고 있어. 세자 시강원의 선생으로 있다가 전하의 은혜로 턱, 예부상서로 낙점을 받더니 오자마자 갑질이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수하들 앞에서 핀잔을 듣고 나온 남찬웅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아들 남우효가 향시에 부정 합격한 죄로 천리 밖으로 유배를 갔지만 자신은 예부에서 잔뼈가 굵은 예부의 터줏대감이다. 그런데 예부시랑인 자신이 바로 윗자리인 예부상서로 올라가지 못했다. 지난 몇 달 당연히 자신이 될 줄 알고 기대했는데.

자신의 뒷배는 실세인 장씨 집안이었다. 그런데 세자빈의 친정인 장씨 집안이 이렇게 쫄딱 망할 줄 알았나. 끈 떨어진 연이 되어 꽉 찬 나이가 되었는데도 예부상서 자리를 또 빼앗겼다. 신임 예부상서가 내일 벼락이라도 맞지 않는 한 자신은 예부시랑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누구에게 화풀이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이만 갈고 있는데 첩이 사람을 보냈다.

뒤뜰에 묻어둔 삼십 년 묵은 술을 개봉할 테니 오늘은 꼭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속이 터질 때는 술이 좋지. 삼십 년 묵은 술이라니 침이 꼴딱 넘어갔다.

예부시랑 남찬웅이 호기 있게 대문을 두드리자 향란이 직접 대문을 열었다.

“마당쇠는 어딜 가고 네가 나오느냐?”

“하인들은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나으리,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삼십 년 묵은 술은 십 리 밖에서도 향기가 난다는데 어째 술 향기가 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며 방 안으로 들어선 남찬웅의 눈에 거렁뱅이처럼 더러운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보였다. 그중 두 사람은 사람인지 곰인지 모를 정도로 덩치가 컸다.

“남 대인. 접니다. 장진한.”

깊이 쓴 두건을 뒤로 넘기자 아들의 친구였던 장진한의 얼굴이 드러났다. 털썩! 남찬웅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너, 너, 여,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한때는 친부처럼 다정하시더니 오늘은 왜 이러십니까? 우효는 잘 있습니까? 돌아올 날이 멀다지요?”

“여러 말 할 필요 없다. 왜 나를 찾아왔느냐?”

장진한은 나라에서 수배 중인 중죄인이다. 전하나 세자 저하의 성정상 당분간 장씨 집안이 재기할 가능성은 없다. 이 정도도 세자빈을 생각해서 특혜를 베푼 것이었다.

“네가 우리 집까지 망하게 하려느냐?”

아들놈 사건으로 이미 찍혔는데 장진한과의 왕래를 들키면 파면을 당하거나 유배를 갈지도 모른다.

“쯔쯔, 살길을 열어 줘도 마다하시네? 뭐,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요.”

장진한이 일어섰다.

“무, 무슨 말이냐? 살길이라니?”

힘겹게 일어선 예부시랑 남찬웅 앞에 장진한이 종이 한 장을 흔들었다. 남찬웅은 바로 알아보았다. 저 종이는 자신에게 뇌물을 준 사람들의 명단이다. 원래는 자신의 집 서재에 깊숙이 숨겨둔 책자 중간에 붙어 있어야 한다.

“이게, 어, 어떻게 네 손에 있느냐?”

“깐깐하고 청렴하기로 소문난 예부시랑이 알고 보니 상도둑이었다니. 쯔쯔, 나도 증거를 보기 전에는 믿기 어려웠다니까요.”

“책, 책자는 어디 있느냐?”

남찬웅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디라고 말하려면 이렇게 한 장만 찢어 가지고 왔겠습니까?”

“뭐, 뭘 원하느냐?”

이제 남찬웅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몸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저 책자가 밖으로 나돈다는 생각을 하자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저 책자가 전하의 손에 들리는 순간 자신의 목은 어깨 위에 붙어 있기 힘들다.

“말하면 뭐든지 하시겠소?”

장진한의 다짐에 남찬웅은 망설였다.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면 어떡하지? 이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지 않나? 차라리 저놈을 잡아서 책자가 어디 있는지 실토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남 대인,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나를 죽여도 그 책자는 못 찾을 거요. 만약 내 청을 거절하면 그 책자는 바로 어사대로 가도록 안배해 두었습니다. 우효는 안 됐지만 유배지에서 목이 떨어지겠군요.”

“안 돼! 뭐, 뭐든지 함세. 말만 하게.”

남찬웅의 말에 장진한과 두 명의 거인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장진한은 남우효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 책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대강의 위치도 파악해 두었다.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목표물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남찬웅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서 책자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생 향란이 남찬웅의 첩이라는 사실은 도성에 사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남찬웅의 집으로 직접 가면 눈에 띄기 쉽지만 한낱 기생의 집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다. 자신과 동행한 두 사람은 아무리 위장을 해도 감출 수 없는 거대한 몸집의 소유자다. 장진한이 만남의 장소로 향란의 집을 택한 이유였다.

“자, 배가 고프니 나머지는 저녁을 먹고 얘기를 할까요?”

구석에 서 있는 향란에게 말하자 향란이 남찬웅에게 눈으로 물었다. 남찬웅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사이에 그는 십 년은 늙은 기분이었다.

***

“그동안 말씀드리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아씨.”

말순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나를 속인 것도 사실이니 미안하다는 건데.

“괜찮아. 근데 한 가지만 묻자. 정말 팽문을 좋아했니?”

“…….”

“아니었구나. 너 그렇게 했다가 팽문이 정말 너를 좋아했으면 어쩌려고 그랬니?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소인도 팽문이 싫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동으로 소문난 사람이고 소인은 무식하고 평범한 시녀입니다.”

시녀는 궁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 어렵다. 그걸 알면서도 궁 밖으로 나와 나를 시중들었으니…… 미안한 건 나네.

“그런 걸로 팽문이 잘난 체하면 버렷! 내가 더 좋은 사람을 소개 시켜 줄게.”

“아씨.”

말순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가 기어이 후두둑 떨어졌다.

“너는 네 일을 했을 뿐이야. 게다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잖아.”

“아씨, 소인은 단 한 가지도 윗선에 고하지 않았어요.”

“알아.”

일일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으면 내 생활이 그렇게 편안하게 흘러가지는 못했다.

“정오한테는 말할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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