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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72화 (72/92)

72화. 사라진 편지지

“마마, 마마의 우려가 사실이었습니다. 세자 저하의 형이 있습니다. 진한이 말로는 어사중승의 둘째인 목선후의 생김새가 세자 저하와 매우 비슷하답니다.

무엇보다 나이가 맞습니다. 그리고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열셋에 향시에 합격했는데 그 뒤로는 사주팔자 타령을 하면서 과거를 보지도 않고 집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평범한 서생에게 무림 고수가 몰래 호위를 한답니다. 이 애비가 고용한 무림인들이 감히 접근을 못 할 정도로 고수라면서 그 정도면 궁에서 보낸 자가 아니겠느냐고 하더군요.”

“아버님께서 목선후란 자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못 봤습니다. 도무지 만날 수가 없어요.”

“이제 어떡합니까?”

“안심하십시오.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마마께서 세자 저하의 새 서신용지 한 장을 주십시오. 집에 모사를 잘하는 자가 있으니 세자 저하의 필적을 흉내 내어 서신을 보내면 됩니다. 목선후란 자는 제가 얼굴만 보고 돌려보내겠습니다.”

장현봉은 자신이 보낸 무사들이 목선후 근처로 접근도 못 했던 것을 알게 되자 이 방법을 생각 해내었다. 세자의 서신에는 왕실 문양이 찍혀 있으니 누가 봐도 세자의 서신라고 믿게 되어 있다.

다만 세자의 서신용지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세자 시강원의 선생이었지만 왕실 문양이 찍힌 서신용지는 엄중하게 보관되었기 때문에 보기만 하고 한 장도 가져올 수 없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새 서신용지를 시녀를 통해 보내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계세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요. 그리고 그분을 만나면 꼭 얼굴만 보고 돌려보내셔야 합니다.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셔서는 안 됩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이 아비가 약조합니다.”

후우, 세자빈이 한숨을 쉬었다. 아이를 가진 어미로서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당연한 일이긴 한데.

강직한 성품의 세자는 그녀도 무서웠다.

게다가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해서 왕실을 실망시킬까 봐 진심으로 두려웠다.

임승휘가 아직까지 회임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확인만 해 주세요.”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 부친에게 세자빈이 떨리는 음성으로 한 번 더 당부했다.

***

봄이 지나갈 때까지 세자빈은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산실청에 들어온 뒤로 세자를 만나기도 어렵고 세자의 서재에 가기도 어려웠다.

“마마, 오늘 제가 마마의 명이라고 차를 가지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차를 두고 오며 서신이지 한 장을 빼 오겠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 들키면?”

“연서를 쓰려 했다고 하지요. 죽을지라도 마마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세자빈은 자신의 커다란 배를 바라보았다. 다음 달이 막달이다. 제발 아들이어야 하는데. 초조해진 세자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거라.”

“네, 마마.”

시녀가 조용히 뒷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

임 승휘는 세자가 활 연습을 하는 동안 서재를 청소하려고 시녀들을 불러 서재로 갔다.

서재를 들어가려는데 한 시녀가 찻 쟁반을 들고 나왔다.

“너는 누구냐?”

“소인은 세자빈 마마의 명으로 세자 저하께 차를 올리려왔사온데 아니 계셔서 도로 가지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차분하고 공손한 시녀는 세자빈의 시녀가 맞았기에 임 승휘는 별 의심 없이 보내주었다.

며칠 후.

세자궁의 어린 내관이 황급히 서재의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서신이지 한 장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냐?”

내관과 함께 서신용지를 찾던 임 승휘가 물었다. 세자는 세자 시강원에서 공부하는 중이라 임 승휘가 내관을 도와주고 있었다.

“왕실 문양이 찍힌 서신용지는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 새 서신용지가 다섯 장이었다가 어제 저하께서 두 장을 쓰셨고 저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는데 오늘 아침 정리를 하면서 보니 남은 게 세 장이 아니라 두 장뿐이었습니다.”

“확실하느냐?”

“네, 마마. 소신이 담당한 일이라 똑똑히 기억하옵니다. 소신의 죄입니다.”

“없어진 서신용지는 한 장이고?”

“그러하옵니다.”

“서신용지 한 장이 그렇게 중요하단 말이냐?”

“규례가 그러하옵니다.”

임 승휘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 특이하게도 세자빈 처소의 시녀가 왔다 갔다. 평소에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넘겼는데.

“그만 찾으라. 벌써 세 번은 찾지 않았느냐?”

“하지만, 소신의 목이 걸린 일이옵니다.”

임 승휘는 한숨을 쉬고 처소로 돌아왔다.

“마마, 왜 그러시옵니까?”

측근 상궁의 말에 임 승휘가 고개를 저었다. 세자빈과 관계된 일이다. 아무 일도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궁도 모르는 게 나았다. 저녁에 업무를 마친 세자의 식사 시중을 들면서 넌지시 물어봐야지.

세자빈이 억울해서도 안 되지만 저 어린 내관이 억울한 일을 당해서도 안 된다. 판단은 세자 저하께 맡기기로 했다.

저녁에 임 승휘의 시중을 들으며 식사를 하던 세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말하는 임승휘의 태도에 속지 않았다.

서신용지의 분실은 중대한 문제였다. 세자의 처소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세자빈과 임 승휘, 그들의 명을 받은 시녀와 내관이다. 아무나 드나들면 일국의 세자궁이라 할 수 없다.

“승휘는 염려 말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저하, 세자빈마마의 산달이 다음 달이옵니다. 하필 이럴 때.”

세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임 승휘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걱정하기는 하지만 세자빈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척 연극해 봤자 영리한 세자는 믿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경멸할 것이었다.

차라리 사실만을 말하고 입을 다무는 게 현명한 일이었고 임 승휘는 그 점을 잘 알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세자는 세자궁에 돌아와서 내관을 보내 조용히 문제의 시녀를 데려오게 했다. 가능하면 세자빈이 모르게.

하지만 내관이 가자 겁을 먹은 시녀는 세자빈의 침소로 도망갔고 내관은 할 수 없이 돌아와 사정을 아뢨다.

세자는 생각에 잠겼다. 왕실 문양이 찍힌 서신이지 한 장이 없어졌다고 무슨 큰일이겠는가? 그러나 냉정한 머리는 보통 일이 아니라고, 반드시 흑막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장진한을 용서해 주었고, 부친을 만나게 해 주었거늘. 세자빈은 심계가 깊어 이런 무리한 짓은 안 할 줄 알았는데.

후우, 세자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리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야 뒤탈이 적었다.

세자가 가자 세자빈은 각오한 듯 옷을 갖춰 입고 침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배가 산만 해서 반듯이 앉아 있기도 힘든 상태라 무릎을 꿇고 싶어도 꿇을 수가 없었지만 표정은 처절했다.

“너무 염려하지 말고 사실대로만 말하시오. 그대가 몸을 상하는 것이 내게 더 불충이오.”

“네, 저하.”

세자빈이 울면서 목선후란 자가 수상한데 도무지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세자의 명으로 불러낼 계획이며, 단지 부친이 얼굴만 확인할 뿐, 그 이상의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세자빈 입장에서는 진실이었다.

“저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 닮았다고 해서…… 소첩이 잘못하였습니다.”

“내 인장이 찍혔소?”

“절대 아니옵니다. 그런 죄를 어찌.”

세자빈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왕실 서신용지를 훔치고 내 필적을 모사하는 것도 대역죄요.”

“죽여주시옵소서. 소첩이 백번 천번 잘못하였나이다.”

세자빈의 눈에서 맑고 뜨거운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가녀린 어깨와 부른 배 때문에 둔한 자세가 안타까웠다.

“그대는 현명한 여인인데 오라비와 부친에게는 너무도 약하구려.”

이래서 부왕께서 외척을 경계하셨던가? 세자의 생모인 현 왕비 마마의 친정도 쥐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세자는 몰랐지만 왕비 역시 초기에 친정 때문에 몇 가지의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고 그 결과 친정이 거의 몰락할 지경에 처했다.

“그대는 이제부터 출산에 힘쓰고 마음을 편히 하시오. 당분간 부친과 만날 기대는 하지 마시오.”

“송구하옵니다, 저하.”

세자가 몸을 돌려 침전을 나서자 세자빈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가늘게 흘렀다. 울면 아기씨에게 좋지 않다고 달래는 시녀들의 음성이 멀어졌다. 세자는 쓸쓸하게 달이 높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목선후. 어사중승의 아들이자 안부자의 사위.

어사중승의 청렴함과 올곧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안부자는? 안씨 상가만 봐도 그의 성품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이십 년간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다니, 아무리 과장이 섞였더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화재가 있던 날 목선후를 만났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걸. 그자가 나와 닮았다는 소문이 이렇게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과거의 사실을 전혀 모르는 세자는 세자빈 친정이 벌이는 일이 지나친 기우라고 생각했다.

출산을 앞둔 세자빈이 이 일로 충격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구나.

생각을 마친 세자가 천천히 산실청을 벗어났다. 푸른 달빛이 고뇌에 빠진 세자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날 저녁 시녀를 신문한 익위사 대장이 와서 보고를 했다.

“저하, 약속 장소는 청운각이라고 합니다. 시각은 내일 신시 일점이옵니다. 서신은 장씨 집안의 시녀가 전하기로 했답니다.”

“너는 평소처럼 익위사 네 명만 데리고 나를 따르라.”

“저하, 위험하옵니다.”

“더 많이 움직이면 부왕께서 아시게 된다. 그러면 세자빈이 어떻게 되겠느냐. 평소에도 네 명이면 충분했다.”

“네, 저하.”

세자는 한 번 결심하면 번복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청운각이라니 무슨 일이 생기기에는 너무 번화한 장소였다. 익위사 대장은 안심했다.

***

서신을 가져온 세자궁의 시녀는 내가 문맹인 줄 알고 서신 겉봉에 적힌 이름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 주었다.

“목. 선. 후. 친. 전.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세자 저하의 개인적인 서신이오니 아씨의 부군께 꼭 전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됩니다.”

눈꼬리가 야무지게 올라간 시녀가 내 손바닥에 서신을 놓으며 말했다.

목선후는 친가로 돌아가 있는데 세자궁에서는 아직도 우리 집에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 순간 팟!

시녀의 등급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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