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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71화 (71/92)
  • 71화. 부부 사이에 비밀 없기

    ***

    장씨 저택.

    장현봉은 아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 모양이 어찌 그리 이상하냐? 건달들을 따라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니옵니다. 그나저나 아버지, 세자빈 마마가 무슨 말씀 안 하셨습니까?”

    장진한은 세자의 용서를 기대하고 물었지만 장현봉은 세자의 형에 대해 생각하느라 아들의 뜻을 눈치채지 못했다.

    “세자 저하께 형이 있다고 하더라.”

    “예?”

    “전하와 대비마마께서 복권시키려고 한단다. 그런데 어디의 누구인지는 모르겠구나.”

    “목선후! 목선후입니다. 어사중승의 둘째 말입니다.”

    장진한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무슨 말이냐? 소년 수재라던 그 아이?”

    “맞습니다. 그자가 세자 저하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합니다. 아니, 제가 보기에도 쌍둥이 같았습니다.”

    “뭣이?”

    장현봉이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렸다.

    솜을 넣은 겨울옷이라 뜨거운 차가 흘렀지만 데이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사중승이 왕자를 아들처럼 키웠다고? 전하의 코앞에서? 전하도 알고 계시고? 세자 저하는?

    “세, 세자 저하는 아시느냐?”

    “전혀 모르십니다. 일전에 안씨 포목점에서 안부자의 사위가 저하와 닮았다는 말을 듣자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만 그때는 목선후가 다리를 다쳐서 멀리서 요양 중이었습니다. 세자 저하의 태도로 봐서는 단순한 호기심 같았습니다.”

    “세자 저하도 모르게 한다라……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버지.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 떳떳하다면 세자 저하께 숨길 필요가 있겠느냐?”

    “어, 하지만.”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목선후는 밖으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고수가 호위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민아라는 아이를 납치한 이유도 안씨 집안과 목선후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던 거였다. 겸사겸사 세자 저하 앞에서 연극을 한 그 깜찍한 계집아이를 혼내주고 싶었고.

    예상대로 누구인지 모르나 너무나 쉽게 소녀들을 구출해 갔다. 보통 실력이 아니다. 안씨 집안이 아니라 목선후가 힘을 쓴 거라고 장진한은 확신했다.

    장진한이 준비한 무사들은 그들의 머리털 하나 건들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상투만 잘렸다. 그런 무위를 가진 자들이 갑자기 나타나 평민 여아를 구출하는 일은 이야기 속의 영웅에게나 있는 일이다. 현실은 다르다.

    현실이라면 안부자는 인질이 장씨 집안에 있다고 해도 함부로 침입해서 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터. 세자빈의 친정에 있는 무사들이 평민인 안부자의 호위무사들보다 실력이 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고수라면? 설마 왕궁의 무사들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합니다.”

    장진한의 손이 저도 모르게 머리로 올라갔다. 손끝에 두건이 닿자 소름이 돋았다. 그 무사가 마음만 먹었으면 이 머리도 지금쯤 떨어져서 흙 속에 묻혔겠지.

    장진한은 잘린 머리털을 숨기기 위해 민아라는 계집아이를 납치한 사실조차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염려 마라. 이 아비가 그 정도 힘도 없겠느냐?”

    장현봉이 여유롭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자신의 명령이라면 무슨 일이든 시행하는 두 사람을 떠올렸다. 모두 배신해도 그들은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일을 마무리 지을 사람들이다. 장현봉은 아들인 장진한은 못 믿어도 그 두 사람은 믿었다.

    ***

    민아는 당분간 안씨 학당을 쉬기로 했다.

    “납치됐다는 사실보다 안씨 학당을 못 오게 됐다는 사실 때문에 민아가 울었대요. 공부하는 게 그렇게 좋은가? 솔직히 난 싫었는데. 안 하고 놀 수만 있다면 안 했을 거예요.”

    내가 말하자 목선후가 대답했다.

    “그래서 공부를 안 했잖소.”

    아니거든. 잘했거든.

    “나를 무시하는 거예요?”

    목선후의 팔베개에서 얼굴을 들었다. 마누라를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을 좀 봐야겠어. 보니까 화를 못 내겠다. 도로 팔베개를 했다.

    “안용, 비누를 많이 만들었다면서? 그걸로 뭘 할 거요?”

    “비누 가게를 열 거예요. 공자님의 문제가 해결되면요.”

    “먹고살 것이 없을까 봐 그러는 거요? 걱정 마시오. 입적이 성사되면 내가 과거를 보고 관직을 얻으리다.”

    남자만 돈 벌라는 법이 있어? 비누가게를 열면 내가 버는 돈이 목선후가 버는 돈보다 많을걸. 나는 상등을 설치해 매출의 두 배를 달성한 경험이 있다. 비누는 상등보다 더 대박을 친다는 데 내 손목을 걸 수 있다.

    “과거시험은 아직 2년이나 남았어요.”

    “올가을에 임시 과거시험인 증광시가 있소.”

    “에? 어떻게 알아요?”

    “음, 그건…….”

    목선후의 관자놀이가 붉어졌다. 자기도 모르게 비밀을 말하고는 부끄러워했다.

    “전하께서 말씀하셨구낭.”

    크크크. 아, 순진한 고대 남자여. 내가 툭 내뱉었다.

    “부부 사이에 비밀 없기.”

    “그거 그대에게도 해당 되는 거지?”

    그건 아닌 거 같아. 나는 너무 큰 비밀을 가지고 있어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그냥 잘 거예요. 잠이 너무 부족하단 말이에요. 낮에 병든 닭처럼 존다고 정오가 그랬다고요.”

    “오호, 그렇다면 오늘은 한 편만 합시다.”

    “정말이죠?”

    의심스럽다는 듯이 곁눈질을 하자 목선후가 씨익 웃었다. 보조개를 찔러 보려고 손가락을 내미는 찰나 목선후가 내 어깨를 잡고 침상에서 가뿐하게 일으켰다.

    “아! 싫다. 내가 과거시험을 볼 것도 아닌데.”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선비상 앞에 앉았다. 두 손에 턱을 괴고 우아하게 먹을 가는 목선후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목선후가 시경을 펴서 내 왼편에 놓고 종이를 편 다음 종이의 양 끝을 문진으로 눌렀다. 내 손가락에 먹물이 묻은 붓까지 살뜰하게 쥐여 주었다.

    “오늘은 한 편 만이오.”

    시경에는 30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하루 한두 편 목선후의 지도를 받으며 필사하는데 길지도 않은 싯구를 빨리 못 쓰는 이유는? 한 글자만 틀려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원전에 쓰인 이야기라 내용이 재미가 없다. 모니터를 보며 우주 정복을 꿈꾸는 악당과 맞서 싸우던 내가 기원전 시를 쓰고 있다.

    나는 천년의 갭을 극복하느라 온 에너지를 다 써 버린 후라서 이천 년 전의 문물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시경 말고 다른 거 공부하면 안 될까요?”

    “공자는 시경을 학문의 시작이라고 했소.”

    “너무 재미없어요.”

    “안용, 공부하겠다고 한 건 그대요.”

    “그만할래요. 공자님 말대로 내가 과거를 볼 게 아니니까요. 네?”

    일 등급 목선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시작해 놓고 끝을 내지 않겠다는 말이오?”

    그게 뭐 어때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시작만 해놓고 끝내지 않은 일들이 태반이라고. 천재도 그랬는데 내가 뭐라고? 나는 주제파악을 잘하는 사람이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목선후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어서 얌전히 붓을 들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해피 스마일, 하트, 네잎 클로버. 각종 이모티콘.

    그러자 목선후가 내 손에서 붓을 빼앗았다.

    “공부는 신성한 것이오. 이렇게 장난을 치면 안 되오.”

    안 뺏기려고 실랑이를 하다가 붓이 내 뺨을 긁었다. 윽, 먹 냄새.

    놀라서 굳은 목선후의 뺨에도 예쁘게 그어 줬다. 검은색 조커 탄생이다.

    푸하하하! 정말이지. 저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 놔야 되는 건데.

    “안용, 붓을 이리 주시오.”

    “오늘은 공부 안 해도 되는 거죠?”

    내가 붓을 달랑달랑 흔들며 묻자 목선후가 한숨을 쉬었다. 아주 땅이 꺼지겠다.

    “그럽시다. 오늘은 휴가요.”

    아싸. 나는 붓을 건네주고 잽싸게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목선후가 선비상 위를 정리하고 유등을 끄고 방문 앞의 휘장을 점검하고 내게 다가왔다. 작은 상등 불빛에 저세상 미남의 얼굴이 반짝거렸다.

    이전에 나는 과외선생이 저 정도 미남이면 무조건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 미남 남편이 가르쳐도 공부는 하기 싫다.

    ***

    장현봉이 부른 무림인들은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자들이었다. 장현봉은 가끔 그들을 이용했는데 늘 만족한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불렀다.

    “목선후란 자를 찾아서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 알아 오너라. 주의할 것이 있다. 그자는 세자 저하를 아주 많이 닮았기 때문에 위험에 빠지면 자신이 세자 저하라고 주장한다. 속지 마라. 세자 저하는 궁 안에 계시고 목선후는 목씨 가문에 있다. 그자가 나올 때마다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도 알아오너라.”

    “대인, 들키면 어찌합니까?”

    장현봉은 미간을 찌푸렸다. 목선후는 소년수재로 알려진 자다. 들키면 장진한이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한다. 세자 저하를 위해서도 어쩔 수 없다. 장현봉이 결심한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입을 막아야겠지.”

    “알겠습니다.”

    은밀하게 장씨 저택을 찾았던 무림인들이 은밀하게 저택을 떠났다.

    ***

    날씨가 따뜻해지더니 봄이 되었다. 세자빈의 산달은 초여름.

    본격적인 출산 준비에 들어가면 외부인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세자빈은 마지막으로 부친을 보고 싶어 했다.

    세자는 세자빈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어의의 말을 듣고 점심을 같이 하도록 허락했다.

    장현봉이 세자빈궁에 왔을 때 세자빈은 음식을 차려놓고 부친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아버님,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으로 준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마.”

    “산실에 들어가면 초여름까지는 뵈올 수가 없으니 그동안 건강하시길 바라옵니다. 그리고…… 지난번 부탁드렸던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장현봉이 주위를 둘러보자 세자빈이 모든 시녀를 물렸다.

    “아버님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다. 모두 나가거라.”

    “네, 마마.”

    넓은 방에 두 사람만 남자 장현봉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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