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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69화 (69/92)
  • 69화. 안문의 갈등

    장진한은 궁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과 함께 경시서령 직에서 쫓겨났다. 상인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그 자리에서 하루 만에 쫓겨나다니 너무 억울했다.

    하필 그 자리에 세자가 있었다니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미리 눈치를 주지 않은 누이동생이 야속하지만 지금 누이동생이 자신 때문에 누워 있으니 원망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세자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장진한의 원망은 모두 안씨 상가로 향했다. 잘 어울리는 친구들을 통해서 알아보니 세자가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들은 곳은 한씨 상단이 아니라 안씨 포목점이었고, 저 통수라는 자를 이용한 사람도 안부자였다.

    대체 나와 무슨 원수가 졌다고 안부자가 이렇게 악한 짓을 하지?

    한씨 상단이라면 몰라도. 한씨 상단과 안부자의 친분이 상단주와 투자자의 사이라고만 알고 있던 장진한은 한씨 상단을 위해서 안부자가 이렇게까지 나선 이유를 알수 없어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아! 그렇지. 그 순간 망치로 치듯이 머리에 꽝 울리는 이름. 목선후.

    이 모든 일은 자신이 목선후의 뒤를 조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목선후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장인인 안부자가 나섰다. 안부자가 나서서 자신의 조사를 막을 정도라면 목선후에게 반드시 커다란 비밀이 있다. 이 비밀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안씨와 한씨에게 동시에 복수할 수 있다.

    “나를 만만히 봤겠다. 끝까지 파헤쳐서 무슨 문제인지 알아내겠어.”

    중얼거린 장진한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부두를 떠나 장씨 저택으로 들어갔다. 지금 장씨 저택에는 그가 어울리던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는 살인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해낸다는 무림인도 있고, 변장에 능숙한 사기꾼도 있으며 남의 글을 모사하는 글쟁이도 있었다. 그동안 호화롭게 먹이고 입혔으니 자신이 원하면 무슨 일이든 할 자들이었다.

    두고 보자, 목선후. 오늘 내 눈물이 내일 너의 피눈물이다. 장진한은 천천히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누구도 이 장진한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

    대청마루 끝에 멍하니 앉아 햇볕을 쬐는 나를 본 정오가 물었다.

    “아씨, 어디 불편하세요?”

    “왜?”

    “낮인데 계속 조시니까요.”

    그거야 내 밤을 훔치는 도둑이 있기 때문이지. 게다가 나는 그 도둑놈을 싫어하지 않아.

    나는 낮에 이렇게 비실거리는데 목선후는 낮에도 힘이 펄펄 넘친다고 했다. 그는 던져 놓았던 과거시험 준비를 하고 있으며 아주 커다란 그림을 몇 장 그리고 있다.

    “괜찮아. 봄이 되려고 그러는 거야.”

    내 말에 정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겨울에 봄을 느끼다니 아씨가 정말 이상해.

    “아직 경칩도 안 되었는데요?”

    “비누를 만드느라 피곤한가 봐.”

    아마씨 오일로 만든 비누는 코코넛오일 비누만큼 향기가 좋지는 않았지만 비누 자체로서는 훌륭했다. 향료를 넣어도 되지만 그러면 가격이 올라간다. 비누는 누구나 쓰는 실용적인 물건이므로 최대한 가격이 싸야 했다.

    빨랫비누는 폐식용유로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나중에는 빨랫비누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나는 낮에는 비누를 만드느라 바빴다. 그리고 비누를 사용해 본 하녀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있었다.

    첫날 한 내 강의 덕분인지 생각보다 비누가 용도에 합당하게 잘 쓰이고 있었다. 다만 코코넛 비누는 너무 부드러워서 크기가 쑥쑥 줄어들었는데 하녀들은 아껴 쓰느라 세수만 하고 머리를 안 감았다.

    나는 수제 비누의 한계를 느꼈다. 하인들을 가르쳐서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생각 중이었다.

    정오가 돌아서려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런데 민아하고 셋째 도련님이 오늘 또 싸웠대요.”

    “어? 민아는 괜찮대?”

    정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씨는 왜 민아를 걱정하세요? 도련님을 걱정하시지 않고요?”

    “걘 사내아이잖아.”

    “사내인 도련님이 민아에게 맞았답니다.”

    “푸하하!”

    깔깔깔. 오랜만에 배가 아프게 웃었다. 내가 아는 민아는 보통 아이가 아니다. 그 아이가 때렸다면 안문이가 맞을 짓을 했겠지.

    아니, 그래도 폭력은 안 되지. 폭력을 허용하다니 나도 어느새 고대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유가 뭐래?”

    “셋째 도련님이 민아 보고 못생겼다고 했대요.”

    “맞을 짓 했네. 나 같으면 머리카락을 뽑아 버렸을 거야. 그다음엔 어떻게 됐어?”

    “민아가 울면서 집으로 가 버렸어요. 셋째 도련님은 어쩔 줄 몰라 하시고요.”

    그런 말 듣고 남아 있을 아이가 아니지. 울면서 돌아갔다니 어리긴 어리다.

    “만약 내일 민아가 학당에 안 오면 가서 데려오라고 사람을 보내. 아씨의 말이라면 오겠지.”

    민아는 장래 내 계획의 일부를 담당할 아이로 내 시크릿 에이전트다. 인재 하나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셋째인 안문이는 서열이 중간에 있어서 성품이 제일 좋다. 형제들 중 누구하고도 잘 지내는데 유독 민아하고만 갈등을 일으키는 걸 보니 둘 다 사춘기로 들어갔나 보다.

    열한 살. 한국이면 초등부 5학년. 나는 고등부만 가르쳐서 초등부 아이들의 심리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둘은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

    다음 날.

    내 예상과 다르게 민아가 오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하루 정도 지나면 기분이 풀어져서 학당에 올 거라고 여겼다.

    “너무 추우니 마차를 타고 다녀와.”

    정오가 하인에게 말했는데 하인은 민아와 하녀가 아침에 이미 갔다는 말을 듣고 왔다.

    길이 엇갈렸나 싶어 정오가 직접 한 번 더 갔다 왔지만 역시나 민아와 하녀는 보이지 않았다.

    학당에 알리고 모두 찾아 나섰다. 정 공자와 우 공자, 그리고 둘째, 셋째 동생과 몇몇 하인들이 포목점 안채와 안씨 학당 사이의 길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또 어머니대로 하인들을 도성 전체로 보내서 민아를 찾게 했다. 오전 내내 찾지 못하자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나는 아동 실종의 골든 타임이 몇 시간이었는지를 기억해 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설사 기억해낸다 한들 시대와 상황이 다르니 의미가 없었다.

    사랑채 앞에 모인 우리는 모든 일을 신중하고 꼼꼼히 되짚어 보기로 했다.

    그때 얼굴이 새파래진 안문이 벽을 짚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속이 뒤집어진 모양이었다. 안중이 안문이를 방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안문이는 입만 헹구고는 고집스럽게 남았다.

    어제 자신과 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섬세한 아이의 얼굴이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일그러져서 보고 있는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나는 문객들을 가게로 보내서 출장 중인 아버지를 찾게 했고 목씨 집안에도 심부름을 보냈다. 목선후는 여기서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총명한 사람이다.

    물론 청운각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던 남자도 일 등급이었지만 그자가 누구인지 모르니 지금은 목선후의 도움이 절실했다.

    안신이가 납치되었을 때가 생각났다. 두 명의 연약한 여자들이 납치되었다면 안신이처럼 무사할 수 있을까?

    안신이는 여러 면에서 운이 좋았다. 하지만 이 경우는 직감이 안 좋다.

    민아는 납치당하기에는 너무나 영리한 아이다. 그런 민아를 끌고 갈 정도라면 상대방은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다. 안신이를 납치했던 범인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있었고 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아무리 원한이 사무쳐도 살인은 보통 사람들은 하기 어렵다. 안신이를 납치한 창씨 후손은 원한이 있어도 공부를 하던 유생이라 안신이의 몸을 상하게 하지는 못했다.

    전문가라면 다르다. 연약한 여자 둘은 너무 쉬운 먹잇감이다.

    안신이는 자신이 스스로 집을 뛰쳐나가서 헤매다 마수에 걸려들었지만 민아와 하녀는 누군가 작정하고 납치했다. 안신이는 목적이 안부자임이 명확해서 기다릴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민아와 하녀는 목적을 알 수 없어서 희망도 가지기 어려웠다.

    내가 충격을 받을까 봐 어머니는 나를 억지로 별당으로 집어넣었다.

    인신매매범이면 어떡하지? 이미 어딘가로 팔아넘겼다면?

    온갖 안 좋은 상상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방에 누워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삿갓을 쓴 목선후가 살그머니 들어왔다.

    “공자님!”

    “쉿!”

    목선후가 달려와 나를 안았다. 목선후의 목에 매달려 그를 꼭 껴안았다. 든든하고 푸근했지만 내 가슴은 새가슴처럼 통통통 뛰었다.

    “민아가 어떻게 됐을까 봐 너무 무서워요.”

    “내가 찾아오겠소. 염려 마시오.”

    목선후의 말과 익숙한 체향 때문인지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떻게요?”

    “풍월문의 도움도 받고 내 수하들에게도 찾으라고 하겠소.”

    “풍월문이요? 풍월문이 왜 도울 거라고 생각하세요?”

    “도울 거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사정이 어떻게 됐는지 말해 보시오.”

    침상에 올라온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와 마주 보자 개기일식 후 빛나는 반지처럼 화려한 고리가 보였다. 그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벌써 힘이 났다.

    “어제 안문이랑 싸우고 일찍 집에 갔어요. 하녀랑 동행했고요. 아침에 평상시처럼 집에서 하녀랑 나섰다는데 여기는 오지 않았어요. 수소문해 보니 중문 상가를 벗어날 때까지는 하녀랑 같이 가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어요.”

    “중문 상가를 벗어나서 사라졌군.”

    “어떡해요? 누군가 작정하고 납치한 거죠? 그렇지 않다면 그 영리한 아이가 이런 식으로 사라질 리가 없어요.”

    “짐작 가는 사람이 있소.”

    “누구요? 누군데요?”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장진한. 경시서령 말이오. 한씨 상단을 막다가 경시서령 자리에서 쫓겨났지. 장인어른과 포목점주, 그리고 민아가 관련이 있다더군. 게다가 다시는 입궁하지 못한다는 세자 저하의 명이 있었다 하오. 그자 때문에 세자빈 마마가 위험하다오. 그의 성격상 이 정도면 원한을 가질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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