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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61화 (61/92)

61화. 궐향의 정체

4등급.

예상대로였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김인수가 아니라 한인수다. 김인수는 심장이 소생해서 현대로 돌아갔다. 김인수의 심장이 다시 정지된다면 한인수에게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김인수가 나처럼 죽지 말고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 그를 사랑하는 부모님과 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나는 눈앞의 한인수에게 말했다.

“인수야, 괜찮을 거야. 병은 아니야.”

의원도 아닌 내가 그런 말을 하자 모두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막 문지방을 넘을 때 한인수의 말소리가 들렸다.

“안용아, 앞으로 내 걱정은 마.”

“응.”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차마 한인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내가 걱정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으니까.

“말순아, 내 방으로 가자.”

“별당으로요, 아씨?”

“그래.”

내가 별당으로 다가갈수록 현대의 삶이 사라짐을 느꼈다. 나는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간 김인수가 부럽냐고 묻는다면 부럽다. 익숙하고 편안한 현대의 생활. 신분의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세상. 완벽한 세상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사회로 당연히 돌아가고 싶다.

“아씨, 이젠 한 공자님에게 가까이 가지 마세요. 아씨는 혼인한 몸이니까요.”

대답할 기운도 없어 별당에 이르자 벌러덩 누웠다.

나는 죽었고 김인수는 죽지 않았어!

이 사실만이 내 귓가에 꽹과리소리처럼 울려 댔다. 머리가 터지는 것 같았다.

***

아들의 심장이 뛰는 순간 닥터 조는 울음을 터트렸다. 12분만의 일이었다. 이 이상 지체된다면 그렇잖아도 취약한 인수의 뇌는 산소부족으로 뇌사에 빠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심장이 뛰자 냉정한 닥터 조도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통곡하면서 소리쳤다.

“됐어, 됐어. 인수야, 됐어.”

식물인간이어도 좋아. 살아만 있어 줘. 언젠가는 깨어날 거라는 희망마저 없으면 엄마는 어떻게 살 수 있겠니?

“어, 어, 엄마?”

아아아! 얼마나 간절하면 인수의 목소리가 들릴까.

“선생님! 선생님! 깨어났어요. 세상에! 이건 기적이에요.”

자원봉사 학생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닥터 조는 울음을 그쳤다.

뭐라는 거야?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온 구급차가 해변에 서고 들것을 든 구급요원이 모래밭 위를 달려왔다.

닥터 조는 마치 꿈처럼 느꼈다. 그녀의 손은 나뭇가지처럼 마르고 힘이 없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들의 음성을 더 잘 듣기 위해 닥터 조는 아들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댔다.

“엄마.”

아들의 음성은 더 또렷해졌다.

“인수야, 우리 아들. 돌아왔구나. 고맙다. 고마워.”

끊임없이 고맙다, 를 되풀이하는 닥터 조를 진정시키며 구급대원들이 인수를 차에 태웠다.

엄마의 손을 잡은 인수는 방금 꾼 이상한 꿈이 기억나지 않아 눈살을 찌푸렸다. 눈살을 찌푸리는 행위마저도 처음이라 닥터 조는 그 모습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엄마, 꿈이 생각이 안 나. 쌤이 있었는데.’

인수는 입을 벌렸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은 굳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닥터 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괜찮아.”

“쌤, 쌤은……?”

하지만 인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들것에 실리는 동안 닥터 조가 인수의 손을 놓쳤기 때문이다.

들것을 따라 구급차에 타면서 닥터 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를 살리려던 학원 선생님이 너 때문에 죽었다는 말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할게. 미안해, 인수야. 미안해요, 선생님.

***

일선이 목선후를 안내한 곳은 중문 상가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골목에 위치한 궐향의 거처였다.

새해 첫날 모든 집이 음식 냄새를 풍기며 떠들썩한데 이 집만은 무덤 속처럼 고요했다.

대문과 중문을 지나자 아름답게 조성된 작은 정원이 나왔다. 정원을 가로질러 전각 앞으로 다가서자 안에서부터 문이 열렸다.

목선후는 주변을 살펴보지도 않고 쓰윽 안으로 들어갔다. 살펴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미 고수들이 겹겹이 둘러싼 곳이라고 듣지 않았던가.

넓은 방 안에는 두터운 방석이 놓여 있고 화로에 차가 끓고 있었다. 풍월문의 문주라는 자는 들어오는 목선후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찻주전자를 내려서 따뜻한 차를 찻잔에 부었다.

“목선후라 합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자신의 도리는 다하는 목선후다. 그런 목선후의 성품을 잘 아는 궐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앉으시오.”

목선후는 거만한 상대방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스스로를 억눌렀다. 풍월문의 문주는 생각보다 매우 젊었다. 겨우 몇 살 위처럼 보였다. 이렇게 젊은 자가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풍월문의 문주지?

문주는 젊고 수려한 용모이긴 하나 무인다운 날카로움과 싸늘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아니 어쩌면 목선후를 향해 일부러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새해 첫날부터 나를 찾아오다니. 보통 일은 아니겠지요?”

“네.”

“나는 안부자와 계약했소. 목 공자는 별개로 계약을 원하오?”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그러면 왜 왔습니까?”

“문주님은 그동안 제 주변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안부자와 계약을 해서라고 생각지는 않으시오?”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진남을 죽이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진남과 이씨 둘째 공자 일은 문주님이 독단적으로 하신 일이지요. 왜 그러셨습니까?”

“거기까지 아시다니 내가 목 공자를 과소평가했군요.”

“풍월문은 태극회 이후로 대부분의 문파와 동맹을 맺었지요. 안 그렇습니까?”

궐향의 표정이 굳었다. 이 사실은 안부자도 모른다. 동맹을 약속한 문파들도 각개로 계약을 했기 때문이고 서로 간에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다. 비밀이 드러나면 양쪽 다 막대한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커다란 세력을 무림인이든 조정이든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궐향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무림인도 아닌 목선후가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부하 중에 배신자가 있는가?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궐향은 곧 그 생각을 털어 버렸다. 모두 한꺼번에 배신하지 않는 한, 한두 사람만으로는 전체의 그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살고 싶지 않은가 보군.”

“내가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하지만 굳이 알 필요 있나? 입을 막으면 그만인데?”

“제 입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목선후가 빙긋이 웃자 어둑한 방 안이 환해졌다.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 궐향은 고개를 돌렸다. 사내자식이 뭐 하는 짓이야.

그동안 목선후를 감시하고, 돕고, 방해자를 제거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없다. 늘 멀리서 보기만 했지. 그래서 그런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절세미남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고 있다. 어이없는 자신을 탓하는 대신 목선후에게 트집을 잡았다.

“나를 너무 믿는군. 그렇게 어리숙해서 이 난관을 어찌 타개하겠소?”

“그게 문주님께 중요합니까?”

궐향은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목선후는 찻잔을 잡고 손을 녹였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왜? 차에 독이라도 탔을까 봐 그러시나?”

“그럴 리가요.”

목선후가 두 번째로 싱긋 웃었다. 보일 듯 말듯 작은 보조개가 패었다.

궐향이 찻잔을 내려놓고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엇을 원하시오? 하지만 그전에 어떻게 알았는지부터 말해 주시오.”

“당연하지요. 하지만 제가 비밀을 말하면 문주님께서도 내 질문에 대답을 하셔야합니다.”

“좋소.”

“태극회가 끝난 후 잠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달 후부터 쇳값이 오르기 시작했지요. 그리 크게 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쯤 또 지나자 금창약 같은 지혈제가 품귀현상이 일어나더군요. 이 현상도 누구의 주의도 끌지 않았습니다.”

딱딱해진 궐향의 표정을 보면서도 목선후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또 한 달 후쯤 이번에는 쇠와 금창약이 넘치는데 아무도 사지 않아서 값이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누군가 싸울 준비를 했으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게다가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할 정도면 단순히 한두 문파의 일은 아니고. 누구일까요?”

궐향이 꿀꺽 침을 삼켰다. 목선후가 총명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놀라웠다.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태극회 직후의 일이니 태극회와 관련이 있는 문파. 갑자기 도성에 나타난 신비문파. 태극회 기간 동안만 도성을 비운 풍월문의 문주. 이 정도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풍월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문파에게 싸움과 동맹 둘 중의 하나를 제시했고, 문파들은 싸울 준비를 했지만 결국 손을 잡았지요. 그래서 더 이상 칼이나 금창약을 살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후우, 궐향이 한숨을 내쉬었다. 배신자가 있던 게 아니었다. 사소한 몇 가지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린 목선후의 혜안이었다.

“대답이 됐습니까?”

목선후의 미소는 이제 천상의 향기까지 불러왔다. 궐향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밖을 향해 소리쳤다.

“점심상을 들여라. 두 사람 분으로.”

“자, 이제 제 질문이 남았습니다. 문주님은 누구십니까?”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이렇게 물으면 어떻습니까? 문주님은 저와 무슨 관계입니까?”

찻잔을 든 궐향이 눈꺼풀을 반쯤 내리고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장진한이 아버지인 장현봉 옆으로 다가오며 살며시 물었다. 신년하례의 공식적인 순서는 모두 끝나고 이제 어주를 내리고 유흥을 즐길 순서만 남았다. 왕과 세자는 잠시 어서방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문부백관과 종친들은 편하게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진욱 왕자가 나를 보고 비웃었다.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구나.”

“그러시면 소자가 진유운 대군에게 살짝 물어보겠습니다.”

진유운 대군은 진욱 왕자의 막내아들이다. 장진한과 동갑이라 몇 번 어울린 적이 있었다. 친한 편은 아니지만 사소한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정도의 사이는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라.”

이십 년 전 세자가 두 명이나 연이어 폐위되는 상황에서 은근히 왕좌를 노린 많은 종친이 있었지만 세력이 제일 큰 진욱 왕자만은 순수하게 셋째 왕자를 지지했었다. 결국 종친들이 숙청을 당하는 비극 속에서도 진욱 왕자는 조금의 해도 입지 않았다.

진욱 왕자를 야망이 없고 미련하다고 비웃던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비웃지 못했다. 오늘 신년하례에서도 진욱 왕자의 자손들이 가장 많았다.

잠시 후 장진한이 자리로 돌아왔다. 장현봉이 성급하게 물었다.

“뭐라 하더냐?”

“아버지, 사마의가 언제 병이 들었냐고 묻던데요? 사마의가 여기서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마의가 언제 병이 들었냐고?”

장현봉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마의는 위나라의 재상이었다.위나라 재상 사마의의 세력이 커짐을 견제하던 정적들이 그를 탄핵하려 하자 꾀병을 부리며 집 안에 칩거했다. 정적들이 안심하고 경계를 풀었을 때 그들의 뒤통수를 깔끔하게 후려친 제갈공명의 영원한 맞수였다.

사마의에 관한 고사를 골똘히 생각하던 장현봉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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