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두 번째 심정지
인수의 휠체어는 보통의 휠체어보다 밀기가 훨씬 까다롭고 무거웠다. 오늘 같이 오기로 한 김 원장은 갑작스런 수술이 있어서 비번인데도 병원을 비울 수가 없었다.
다른 날 가겠다는 닥터 조를 설득해서 병원에 나와 있는 자원봉사 학생의 도움을 받게 했다. 김인수도 병원 환자이므로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인수야, 햇빛이 참 좋아.”
겨울바람 때문에 인수의 몸은 아예 슬리핑 백 속에 들어가 있었다. 춥다고 핫팩이나 보온팩을 넣어놓으면 뜨거워도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저온 화상을 입기 쉬웠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인수의 눈 주변이 겨울바람에 빨개지고 있었지만 감고 있는 눈이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밖에 나오니 좋은 걸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인수야, 다음에는 더 멀리 가 보자, 속초 해변에 갔다가 그다음에는 해운대도 가 보자. 거기 해변에 네 작은 아버지가 뷰가 좋은 아파트를 사셨대. 자꾸 보러오라고 자랑하신다?”
닥터 조가 잠시 해변으로 눈을 돌렸다가 인수를 보는 순간. 인수가 작게 발작을 일으키더니 움직임이 멎었다. 닥터 조가 경동맥에 손끝을 댔다.
심정지!
하필 여기서. 순간적으로 까만 절망이 밀려왔지만 의사답게 침착함을 회복했다. 닥터 조는 밥을 먹고 있는 대학생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했다. 뒤이어 119를 불렀다. CPR을 해서 심장이 깨어나더라도 바로 가까운 대형병원으로 가야 했다.
마침 아까 꼭 붙어서 지나가던 커플이 보였다. 닥터 조가 도움을 청하자 커플이 달려와 인수를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주었다.
닥터 조는 목까지 채워진 슬리핑 백의 지퍼를 내리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자원봉사자가 차에 있던 자동 제세동기를 들고 뛰어왔다.
***
새해 첫날.
안씨네 사랑채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일 년에 한 번 누구나 안부자를 만나러 올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작년 새해보다 배는 많은 상인들이 인사를 왔다.
안부자 옆에는 총관들과 문객들이 손님접대를 같이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들의 손에 아버지를 맡기고 안채에서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했다.
뒤늦게 일어난 나도 정오와 말순의 도움으로 새 옷을 입고 합류했다. 빨갛게 부든 내 눈을 슬쩍 본 어머니는 아무 내색을 하지 않고 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앞에 모아 주었다.
“음식보다 잠을 더 자고 싶어. 난 새벽에 잠들었는데.”
둘째 안중이 투덜거리자 안신이 큰형이라고 눈을 부릅떴다.
“어서 식사하고 일어나자. 인사 가야 할 데가 많다.”
“나도 가요, 형님?”
넷째인 안열이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며 물었다. 늘 어리다고 위의 세 형만 친지들과 어른들께 인사를 갔다. 형들이 돌아올 때면 선물과 용돈을 한 아름씩 안고 왔기 때문에 무척 부러워했다.
“그래, 올해는 너도 간다.”
“안열이는 좋겠네.”
내가 놀리자 안열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씨, 아씨!”
밖에서 하녀가 나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울렸다. 정오가 나가보고 오더니 내 옆으로 와서 속삭였다.
“정 공자님께서 빨리 오시래요.”
“왜?”
자동적으로 물었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 정 공자가 나를 부르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한인수가 지난번처럼 쓰러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 나갔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비단 치맛자락을 올려 잡고 눈에 보이는 아무 신발이나 신고 달려갔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허둥대며 달려가는 것을 가족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손을 뻗다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어서 가라고 손짓을 했다.
젊은 문객들이 학당 뒤 선생들의 숙소에서 새해 첫날 푸짐한 아침상을 받고 있었다. 그 자리에 한인수와 정 공자는 없었다.
“아씨, 아씨가 왜?”
문객 한 사람이 내가 달려가자 소스라치게 놀라 물었다.
“의원이 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의원을 불러요. 어서.”
내 말에 다른 문객이 대답했다.
“새해 벽두부터 누가 오려고 하겠습니까?”
“정오야, 하인들을 데리고 가서 업어서라도 모셔 와라.”
이렇게 말한 나는 한인수의 방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쓰러졌다던 한인수는 반드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본 정 공자가 한인수 옆에서 일어섰다.
“또 다른 사람처럼 이상한 말을 합니다.”
“나가세요. 나가서 의원이 오는지 봐주세요.”
“아씨, 두 분만 이곳에 있으면…….”
미쳐. 지금 그게 중요해?
“나가세요.”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 댔지만 정 공자는 그다지 겁을 먹지 않았다. 나는 모르니 뒷감당은 혼자 알아서 하세요, 라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방으로 나갔다.
나는 후다닥 한인수에게 다가갔다.
“인수야, 인수야. 혹시 김인수?”
멍하니 천장을 보던 인수의 눈동자가 움직이더니 나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세요?”
“아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그 애다. 목소리는 아니지만 저 태도, 저 말투는 김인수가 맞았다. 이 년 반 동안 일주일에 다섯 번은 봤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인수야, 나야. 영어 쌤. 너 우리 학원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내가 잡았잖아. 기억 나?”
“쌤?”
인수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고는 일어나 앉은 자신이 이상한 듯, 괴상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훑어보았다. 이상한 내 모습보다 자신이 움직였다는 사실에 더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움직였어?”
두 손으로 뺨을 톡톡 치더니 머리를 감싸 안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빙의했어. 여기는 고대야. 나는 현대에서 죽었나 봐. 너는?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이제 깨어났어?”
인수의 눈이 혼란과 공포와 의심과 불안으로 사정없이 흔들리더니 어느 순간 형광등이 켜지듯 자각의 빛으로 가득 찼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이었다. 인수는 입을 열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생각을 정리해서 차분히 말하려고 노력했다.
“저, 저는 식물인간이었어요. 눈동자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소리는 다 들렸어요. 아빠와 엄마의 말소리도 똑똑히 들렸어요. 그동안 아빠의 병원에서 계속 누워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죽었나 봐요. 그렇죠? 쌤처럼 여기 이 사람에게 빙의했단 건가요?”
“식물인간? 9층에서 떨어졌는데 살았다고?”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나뭇가지에 걸렸나? 현대에서 김인수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나는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그동안 한인수의 몸 어딘가에 김인수가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 김인수는 현대에 살아 있었어.
나만 죽었구나.
“나는…… 죽은 거야?”
“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정말로 죽었구나. 나는 돌아갈 수 없다.
막연히 아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감정의 폭과 깊이가 달랐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목구멍을 막았다.
“죄송해요. 쌤. 쌤을 죽게 하다니.”
인수가 처절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러다가 상투를 튼 자신의 머리를 보고 기겁을 했다.
아, 나도 그 심정 알지. 나도 한 번 겪었어.
심지어 나는 혼자였고, 안안용은 등급외의 일자무식이었다고. 일 등급이었다가 등급외가 되는 심정을 너는 모를 거야.
“헉, 헉. 숨이.”
쟤는 나보다 젊은 애가 그 정도에 숨을 못 쉬고 그러냐.
“너무 놀랐구나. 내가 알아듣게 설명해 줄게.”
“쌤, 쌤.”
“그래, 인수야.”
이 세계도 살 만해. 그렇게 절망하지 마. 어떻게 사느냐, 가 중요하다고 늘 말했잖니. 이렇게 설득하려는 찰나 갑자기 인수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상체를 앞으로 꺾었다.
“쌤, 엄마가 불러요. 엄마가 CPR을 해요.”
나는 일그러진 인수의 시선을 붙잡았다.
팟! 인수의 등급이 떠올랐다.
1등급.
김인수 맞구나. 내가 목숨을 던져서까지 살리고 싶었던 아이. 이제 또 심폐소생술로 현대에서 살아나려고 한다. CPR을 하는 걸 보니 지금은 심장이 멈춘 상태다.
그에게는 부모님이 있고 젊은 청춘이 있다. 아무려면 고대보다 현대가 낫지.
“어서 가. 인수야.”
“헉헉, 쌤. 하지만 헉헉. 나, 나는 식물인간으로 살기 싫어요.”
“깨어나면 되잖아.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사람은 많아. 너는 젊고 영리한 아이야. 깨어날 수 있어.”
“쌤, 쌤.”
“응, 응.”
“엄마, 아빠가 저를 사랑하세요. 사랑하더라고요.”
내가 인수를 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과 뿌듯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사랑하고말고. 그분들께 한 번 더 기회를 드려 봐, 응?”
인수가 나를 밀며 내 얼굴을 보았다. 꼭 알고 싶다는 갈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쌤, 쌤은요?”
“난 괜찮아. 봐, 젊고 예쁘지? 돈도 많아. 공부는 좀 못하지만.”
“크흑.”
갑자기 인수가 발작을 일으키며 앉은 채 뒤로 넘어갔다.
“엄, 엄마.”
두 팔을 올리며 엄마를 부른 인수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인수야!”
내 부름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정 공자가 뛰어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인수를 부른 이유는 그 애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그 애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부르며 깨어났다면 이 세계로 오지 못한다.
아니, 와서도 안 된다. 최소한 앞으로 팔십 년은 거기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씨, 한 공자는 괜찮습니다. 잠든 거예요.”
방바닥에 주저앉아 줄줄 눈물을 흘리는 나를 정 공자와 문객들이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안 죽었어요, 아씨, 보세요.”
말순이 끼어들더니 과감하게 인수의 얼굴을 여기저기 쓰다듬었다. 그러자 푸푸, 하는 소리를 내며 인수가 눈을 떴다.
말순이 깜짝 놀라 뒤로 펄쩍 물러나고 정 공자가 다가갔다.
“이보게, 정신이 드나?”
“정 선생?”
“자네, 또 쓰러졌다네. 너무 허약한가 보이. 보약을 좀 먹게.”
“안용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인수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팟! 등급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