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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41화 (41/92)

41화. 위기의 안씨 가문

“저, 며칠 전부터 그러고 싶었어요. 가을이 되려는지 바람이 좀 세졌거든요. 가게 문은 늘 열려 있고…… 바람이 불면 상등에 있는 촛불이 마구 흔들렸어요. 혹시 센 바람이 들이치면 …… 조그만 불꽃이라도 조심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먼지 같은 작은 불티 한두 개는 천에 구멍을 뚫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큰불로 번지기 어렵다.

그 여인들은 기름이라도 조금 뿌리고 불을 붙였을 것이다. 부싯돌은 한두 번 만 쳐도 불꽃이 튄다. 손님이 많아 시끄러웠으니 부싯돌 치는 소리가 들렸겠나.

“증거도 없으니 지금은 연씨 상가를 고발할 수는 없겠구나. 훗날을 도모하기로 하자.”

화가 나서 오히려 무표정한 음성으로 안부자가 결론을 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 스쳤다.

“주인님, 가게는 닷새면 다시 단장을 마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일 납품할 그 비단들인데.”

점주가 죽상을 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안씨 포목점이 약속을 어긴 일은 없었는데요.”

“그랬지. 모두 몇 필인가?”

“내일 열 필, 모레 스물다섯 필입니다. 내일 나갈 열 필은 환성에 더 이상 없는 고급품입니다. 모레 스물다섯 필은 웃돈만 넉넉히 주면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아버지도 드디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시대 한 필은 한 사람용 옷감이다. 내일 보낼 열 필은 환성에서 제일 좋은 비단이니 주문자는 만수절에 왕궁에 초대된 고위귀족이나 관리의 여인이다.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갈 옷이 없을 때의 여자의 심정을 잘 안다. 한국에서는 기성품이 잔뜩 있으니 돈만 있으면 원하는 디자인의 원하는 사이즈를 언제든 살 수 있다.

완전 부자들이 입는 디자이너 옷은 빼고. 그럼 이 열 필은 그런 디자이너 드레스쯤 되려나?

돈만 있으면 못 구할 물건이 없던 한국에서 온 나는 그냥 한숨만 나온다. 한국에서는 퀵서비스까지 있는데.

“환성에 없다면 다른 데는 있을까요? 가까운 지역에요.”

여러분, 세상은 넓어요.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떠 봐요.

내말에 부점주가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왕궁이라면 모를까.”

왕궁?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나만 알 수 있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렇겠지. 숨겨진 왕자 신분에 왕궁에 있는 비단을 빌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치료에 열중하는 대비마마께 부탁할 수도 없지. 부탁한다고 그렇게 많이 대비마마께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게 내일 아침 우리 손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귀한 왕족에게 부상을 입힌 포목점 따위 영원히 문을 닫게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많은 위약금을 물고 신용을 잃는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점주의 표정이 불 났을 때보다 더 어두워졌다.

그러는 사이 저녁 식사가 들어왔고 나는 간단히 먹고 하녀들이 준비한 목욕을 하러 갔다. 너무 피곤해서 탕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아씨, 물이 차가워졌어요. 어서 나오세요.”

“응, 혹시 공자님 소식은 왔니?”

“아니요.”

몸을 닦고 속바지와 속저고리만 입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겉옷만 벗고 자는데 나는 중의까지도 다 벗고 현대의 잠옷처럼 하나만 입고 자야 편했다.

“말순아, 무슨 소식이 오면 꼭 깨워. 내가 잘 못 일어나도 꼭 깨워. 알았지? 아버지는 아직 말씀 중이시니?”

아버지는 내일 배달해야 할 열 필의 비단을 어찌할지 의논 중이다.

연씨 포목점에서 정말 날을 잘 골랐다.

희귀한 비단이 배달 직전임을 알고 오늘로 날을 잡았음이 분명하다. 그 두 여인은 누구였을까? 연씨 상가와 관련이 있는 여인일 터.

잠들기 전에 창백한 목선후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가슴이 반으로 쪼개진 듯 아팠다. 후욱후욱, 심호흡을 하며 몸을 옆으로 동그랗게 말았다.

현대에서 연애를 할 때 길든 짧든 헤어짐은 늘 힘들었다. 헤어지고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 내 그림자만 어른거렸다. 그때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는 괜찮을까? 이 나라에서 치료를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보냈지만 상처가 너무 컸다. 붉은 살 속에 하얗게 드러난 뼈는 결코 잊지 못할 모습이었다. 피를 무서워하는 나는 의료드라마도 잘 못 봤는데.

목선후가 괜찮을 거라고 믿는 마음이 있었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래도 불안했다. 따라갔으면 좋았을걸. 나도 이렇게 불안할 줄 몰랐다.

대비마마, 잘 치료해 주셔야 돼요. 진짜로요.

중얼거리는 동안 피곤한 눈이 감겼다. 감은 눈꺼풀 안으로 붉은 피와 하얀 뼈가 어른거렸다.

미치게 피곤한데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사이 낯선 객잔의 밤은 깊어갔다.

***

북행궁의 대비마마 처소의 상방. 보통 숙직을 서는 시녀가 머무는 곳이다.

삼경이 지난 시각이지만 황 촛불이 환하다. 탕약 냄새가 대비마마의 침소 근처에서 은은하게 풍겼다.

어의 한 명과 의녀 한 명 그리고 팽문이 목선후를 돌보고 있다.

지친 대비마마는 저녁 식사 후 버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북행궁의 다른 사람들은 어의와 의녀가 연로한 대비마마의 사소한 기침을 치료하고 있다고 들었다. 평상시 자주 있는 일이었다.

무공이 대단하지 않은 팽문은 북행궁을 몰래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 심부름은 모두 일선이나 이선이 했다.

일선은 포목점의 상황을 보고하는 중이다.

“그리고 최고급 비단이 필요한데 구하지 못해서 낙심하던데요. 다른 일은 없고요. 아씨는 객잔에서 아주 편히 주무십니다.”

일선의 보고를 듣고 있던 목선후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흰자위까지 빨갛게 열이 올라 있다. 어의는 아무 말도 않지만 무사인 일선은 잘 안다.

이런 상처가 감염되면 다리를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더 나쁜 것은 그럴 기회도 없이 몸이 까맣게 썩어 가면서 반 시진 만에 죽는 경우다. 예전에 동료 중에 그렇게 죽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일선의 가슴은 타들어 갔지만 어쩌겠나. 왕자님 앞에서 감정에 싸여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래서 더 담담하게 보고를 했다.

이 노인이 이 나라 최고의 의원이라니 믿는 수밖에.

“일선아.”

힘이 없는 음성이라 일선이 귀를 가까이 댔다. 일선의 귀가 따가울 정도로 목선후의 입김은 뜨거웠다.

“명현당에 가 봐라. 내가 모아 둔 게 있다.”

대비마마나 부왕의 선물을 받을 때마다 안안용에게 주기 싫어서 처박아 둔 비단이 꽤 된다. 결국 주인을 찾아가는군.

“어서 가.”

이런 상황에서도 안씨 가문을 생각하시나. 아씨는 공자님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데. 우리 주군은 너무 착해서 탈이야.

“네, 소인 다녀오겠습니다.”

불만을 삼킨 일선은 촛불이 꺼지듯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일선마저 가 버리고 열 때문에 의식이 가물가물한 목선후를 보며 팽문은 처음으로 아씨가 여기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아씨가 곁에 있는 게 익숙해졌다. 최근에는 아씨의 모든 말과 행동이 온화하고 조리에 맞아 팽문도 초반에 가졌던 선입견을 버리게 되었다.

아씨는 가끔 뭔가를 안다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기도 했다.

너는 여기서 하인 따위를 할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쓸데없는 기우겠지만.

팽문은 재야 학자인 팽씨 가문의 둘째 아들이다. 목선후가 열다섯 살이 되어 관례를 올릴 때 아들을 처음 본 전하께서 친구 겸 하인으로 뽑은 아이가 팽문이다.

환성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그쪽에서는 이미 신동으로 이름이 났다.

어차피 과거를 보지 않는 집안 전통 때문에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을 것이고, 산속에서 시를 쓰는 생활보다는 나을 것 같아 얼른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분의 신분이 드러나면 네 목숨도, 우리 집안도 위험할 수 있다.’

‘아옵니다.’

‘그래도 가겠느냐?’

‘이미 그분의 신분을 아는데 안 간다고 모르는 것이 됩니까? 할아버지께서 전하의 의도를 듣는 순간 이미 정해진 겁니다.’

‘맞지만, 후유. 안빈낙도의 삶이 어째 오래간다 했느니.’

그렇게 목선후의 몸종이 되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언젠가 신분을 회복하시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저절로 포기가 됐다.

전하께서 왕자님의 신분을 회복시키실 마음이면 하필 무식하기로 소문난 데다 평민인 안씨 가문의 외동딸과 혼인을 시켰겠냐고.

팽문은 방 한구석에 단정히 앉아 어의가 목선후의 몸에 꽂힌 침을 지켜보았다. 왕자님은 얼굴뿐 아니라 몸도 훌륭하다.

책 보는 틈틈이 무술 훈련도 하고 팽문과 대련도 한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지키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 왕자라는 특권의식이 전혀 없는 탓이다.

보기 좋은 상체와 두 다리에 침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작은 상처와 열꽃까지 군데군데 피어 있다.

북행궁에 도착하자마자 정강이를 꿰맸는데 목선후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참았다. 너무 큰 상처라 꿰매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탕약을 대령하였습니다.”

문밖에서 탕약을 달이던 의녀가 약단지를 조심히 받쳐 들고 들어왔다. 어의 눈앞에서 삼베에 약을 짜서 반 종지쯤 되는 탕약을 만들었다.

“공자님 머리를 받치고 약을 숟가락으로 천천히 입안으로 흘려 넣어라.”

열에 지친 목선후는 의녀가 머리를 들 때도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입을 조금씩 벌려 약을 넘겼다.

왕자님. 힘을 내셔야 해요. 팽문이 고개를 숙이고 눈자위를 훔쳤다.

서까래 위에 있던 이선도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다. 이 사실을 전하께서 아시면 안씨 가문이 무사하려나.

***

다음 날 아침.

“아씨, 아씨. 일어나셨어요?”

정오가 기적이라도 본 듯이 눈을 빛내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왜? 공자님 소식이 왔어?”

눈꺼풀에 힘을 주며 베개에서 머리를 들었다. 벌써 나아서 돌아왔나? 하룻밤 사이에 나아서 돌아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대감에 정신이 번쩍 났다. 하지만 머리는 돌처럼 무겁고 눈두덩은 부어서 눈을 뜨기가 불편했다.

어제 조금 운 줄 알았는데 꽤 많이 울었던 거구나.

“아니요, 공자님 소식은 아직 안 왔고요. 놀라지 마세요. 비단이 왔어요! 그 구할 수 없다던 비단이요!”

“어디서 났는데?”

“몰라요, 아씨. 아침에 점주님께 누가 와서 전해 주고 갔대요. 스무 필이나요. 골라서 쓰시고 돈은 나중에 받으러 온다고 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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