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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40화 (40/92)
  • 40화. 오 여사, 놀라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버지가 위험했었다는 말에 놀라고 두 번째는 외동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놀랐다. 아마 진짜 안안용도 이 말을 들었더라면 놀랐을 것이다.

    “똑똑한 우리 딸이라고요?”

    잃어버린 자식을 찾았다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되물었다. 어머니, 그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그렇소, 정말 총명하고 슬기로운 우리 딸이오.”

    어머니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에게 자식에 대한 칭찬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정오야, 말순아, 아씨를 잘 모셔라. 좀 쉬게 해 드려야 해. 알지? 절대 무리하게 두면 안 된다.”

    “네, 마님.”

    “그러면 나는 집에 가 있으마. 너는 포목점이고 불이고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알았지?”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집에 가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안씨 상가 옆에 있는 고급 객잔으로 향했다. 다리가 돌처럼 무거웠다.

    상쾌하게 시작한 아침이었는데 닭발을 가진 뱀장어 옷을 보더니 가게에 불이 나고 남편이 부상을 당했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객잔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가서 단둘이 되자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안용아, 오늘 너 때문에 이 아비가 목숨을 구했구나. 포목점의 화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방화범이야 잡으면 그만이지.

    내가 부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그중 누군가의 꾐에 넘어가 악행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겠느냐? 이런 일을 두려워하면 장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큰 손실이란다.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가 없거든. 사람은 언젠가는 모두 죽으니 언젠가는 나도 죽겠지. 하지만 지금 죽는다면 너와 동생들은 어찌 되겠느냐? 너는 우리 가문을 살렸다.”

    “아버지…….”

    빙의해서 가장 좋은 점은 좋은 부모님을 만난 일이다. 오 여사님처럼 표현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가끔 멀리서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안부자의 시선을 느낀다.

    그럴 때는 내가 정말 안안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너는 집에 돌아가서 쉬어도 된다. 방화범은 이 아비가 잡을 수 있단다.”

    누가 우리 얘기를 엿들을 수 있는지 주변을 살핀 다음 음성을 더 낮췄다.

    “알아요. 아버지.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남았어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부터 입 밖으로 내는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버지는 목 서방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하시죠?”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그 마차는 대비마마께서 보내신 거예요. 오늘도 소녀가 대비마마를 뵙고 왔어요. 벌써 두 번째예요. 그런데도 저는 목 서방의 진짜 신분을 몰라요. 짐작만 하고 있어요.”

    차마 용포를 입어 봤다는 말은 못 했다.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비밀이다. 대비마마를 알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왕실 종친들, 대비마마의 친정 가문 사람들.

    하지만 아무에게나 용포를 입히지는 않는다. 가슴이 둥둥 뛰었다. 막연히 짐작만 하는 것과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다르다.

    “네가 짐작하고 있는 대로다. 전하는 세자저하가 되시기 전 그냥 왕자 신분일 때 사랑하는 여인이 계셨다. 그분은 평민 과부셨단다. 네 남편은 전하와 그 평민 여인 사이에서 태어나신 왕자님이시다. 그 가엾은 분은 돌아가시고 전하께서는 선왕을 두려워하여 왕자님을 목씨 집안에서 숨겨서 기르셨다.”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그럼 공자님의 진짜 신분을 아는 사람은 시부모님, 그리고 아버지, 그리고 왕궁에 계신 전하와 대비마마시네요. 어머니는 전혀 모르실 테고요.”

    어머니의 태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늘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것처럼 둘째 아들을 대하던 시어머니가 생각났다. 자신이 길렀으나 왕의 아들이다. 기른 정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4등급 하인. 나도 참 순진했다. 과연 누가 4등급 실력자를 하인으로 쓸 수 있겠어. 왕자니까 가능했던걸.

    “왕비 마마와 세자 저하는 모르시겠죠? 혹시 아시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분들 생각을 내가 어찌 알겠니? 나는 왕실 사정을 잘 모른다. 내가 왕비마마라면 흠,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세자위가 위협을 당한다고 생각된다면 말이다. 그 과정에서 목씨 집안과 안씨 집안이 방해가 된다면 두 집안도…….”

    끔찍한 말을 저렇게 냉정하게 말하다니 이게 안부자의 진면목이구나.

    안부자는 그 모든 것을 예상하고도 혼인을 시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 사정을 다 듣고 나자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고 힘을 주었다.

    “네 어머니께는 절대 말씀드려서는 안 된다. 알지?”

    어머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고민하는 게 싫으신 거다. 뜨거워지는 눈자위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 겁내지 마라. 이 아비가 너와 어머니를 반드시 지킬 것이다.”

    “동생들도요.”

    안부자는 가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나 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애들이 모두 양자인 줄 알겠어.

    “그래. 약속하마.”

    능력 밖의 약속인 걸 알지만 아버지가 최선을 다할 것도 알기에 감동했다.

    “아버지, 그렇게 귀한 분이 왜 소녀랑 혼인을 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른다. 너와 목 서방을 혼인시키라는 명만 받았다. 나도 거절하려고 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역시 내 생각대로다. 안부자는 한인수의 집이 쫄딱 망해서 알거지가 됐어도 안안용과 한인수를 혼인시켰을 것이다.

    전하의 명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안안용은 한인수와 다정하게 잘살고 있을 텐데. 불쌍한 안안용.

    안안용이 한인수와 결혼해서 마음 편하게 살고 있었다면 내가 안안용의 몸에 빙의하지 못했을지도. 안안용은 사랑하는 사람과 억지로 헤어지고 시댁의 엄격한 가풍에 숨이 막혔던 것이다. 꽤 그럴듯한 추리다.

    “안용아, 아직도 인수를 마음에 두고 있느냐?”

    심각한 내 표정을 보던 안부자가 물었다.

    “아니요. 한 공자의 배가 무사히 돌아와서 예전처럼 편안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동생들 공부에 진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인수를 한 공자라고 부르는 걸 보니 정말로 마음을 정했구나. 잘했다.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너는 대비마마를 어디서 뵈었더냐?”

    “처음에는 무슨 호숫가의 배에서 뵈었고 오늘은 작은 절에서 뵈었어요. 마차의 휘장도 열지 못해서 장소는 몰라요. 지금 목 서방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비마마는 지금 북행궁에 머무신다. 목 서방을 북행궁으로 데려갔는지 아니면 다른 장소로 데려갔는지는 모르겠구나.”

    “북행궁에는 사람이 많겠지요?”

    “그래. 북행궁에서는 보는 눈이 많으니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지 싶구나.”

    내가 고개를 저었다.

    “대비마마는 손자가 치료받는 것을 직접 보고 싶으실 거예요.”

    오늘 장손에게 용포를 입히시는 그 어려운 일을 하셨답니다. 실제로 입혀 주지도 못하면서.

    “네 말이 맞다. 사람 눈이 무서우니 목 서방을 북행궁으로 데려가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 순간 발소리가 나더니 정오가 문밖에서 말했다.

    “주인님, 팽 총관님과 점주님, 그리고 민아가 왔습니다.”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들어오세요.”

    정오가 문을 열자 민아를 앞세운 일행이 들어왔다.

    “정오야, 말순아. 가서 저녁 식사를 이리로 충분히 내오라고 해라. 너희들도 먹고. 오늘은 나도 여기서 자야겠으니 잘 준비도 해라.”

    “네, 아씨.”

    포목점의 점주와 부점주, 그리고 민아는 그을음을 씻고 새 옷을 입고 왔다. 아버지와 나만 아직 씻지 못했다.

    “주인님, 아씨. 아무래도 연씨 상가가 의심스럽습니다.”

    “이유는?”

    팽 총관의 말에 아버지가 조용히 물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조용한 음성인데 더 힘이 있다. 나하고 말할 때와는 다르게 권위가 넘친다.

    “연씨 상가와는 겹치는 가게가 많은데 이번에 포목점에 상등을 단 후로 단골들이 우리에게 많이 넘어왔습니다.

    게다가 다른 상가에 달 상등도 오늘 가게마다 들여 놓아서 내일 달 예정이었습니다. 만수절이 가까우니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들도 많지 않습니까?

    만수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많은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큰 대목인데 안씨 상가에서 상등을 모두 달면 사람들이 어디로 몰리겠습니까? 그러니 다급했겠지요.”

    “증거는?”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나?”

    “민아야, 네가 본 것을 말해 보아라.”

    팽 총관의 권유에 민아가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불이 난 후에 상등 때문에 불이 났다는 소문이 금세 상가 골목에 퍼졌어요. 제가 동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어른들 몇이 그렇게 떠들고 다녔대요. 한 아이에게 엿을 주고 얼굴을 확인시켰어요. 연씨 상가의 하인이 틀림없다고 했어요. 제가 묻고 다녀도 어려서 그런지 아무도 의심을 안 했어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잘했구나. 또 다른 증거는 무엇인가요?”

    이번에는 부점주가 대답을 했다.

    부점주가 기억을 더듬으며 자세히 설명했다.

    “오늘 처음 본 여자 손님 둘이 와서 꽤 오랫동안 구경을 했습니다. 처음 뵈었는데 어느 댁에서 오셨느냐고 했더니 시골에서 왔다고 얼버무리면서 모처럼 환성에 왔으니 제일 좋은 비단을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입은 옷도 고급스럽고 머리에도 비싼 비녀를 꽂고 있어서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게에서 제일 좋은 것은 내일 배달할 비단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미 임자 있는 물건이지만 구경하셨다가 마음에 드시면 나중에 들르시라고 했습니다.”

    “그 비단을 본 사람이 또 없나?”

    “있기야 있지만 다 아는 사람들이었고요. 구경을 다 한 다음 제가 다른 손님을 응대하는 동안 그 여인들이 가게를 나갔습니다. 문을 지키던 점원이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불이 났나?”

    “네. 처음에는 흰 연기가 작게 나더니 금세 화르륵 타오르더군요. 비단 상자가 쌓여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때는 불을 꺼야 된다는 생각만 하느라고 이미 나가 버린 여인들을 뒤쫓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아니 이걸 방화라고 생각 못 했습니다. 상등에서 불티가 날아가서 불이 났다고 착각을 해서…….”

    힐끔 내 눈치를 보고는 말끝을 우물거렸다. 충분히 이해한다. 상등을 단 뒤로 부점주는 늘 조마조마했겠지. 그러니 불이 나자 당연히 상등에서 튀었다고 생각했고.

    “부점주님 탓이 아니에요. 그 상황에서 누가 그 여인들을 뒤쫓을 생각을 하겠어요?”

    “송구합니다, 아씨.”

    “민아야, 너는 오늘 아침에 큰 물동이를 하나 구석에 들여놓자고 했다면서? 왜 갑자기 오늘이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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