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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38화 (38/92)

38화. 방화

현대에서는 불이 나면 화학물질이 타기 때문에 고약한 냄새와 검은 연기가 나지만 여기서는 나무 타는 냄새가 났다. 나와 어머니는 아무 냄새도 맡지 않은 것처럼 서로의 눈만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가게를 산 다음 날 가게가 홀라당 타 버렸다. 직원의 사소한 실수였지.”

“아!”

“억울하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딱 하루 억울하고 속상해하셨단다. 그리고 그 불탄 자리에 물건을 늘어놓고 팔기 시작했지. 돈이 생기면 주춧돌을 하나 놓고 또 돈이 생기면 기둥을 하나 세웠다.

지나간 일에 매여 있으면 그럴 수 있었겠니? 다시 일어난 할아버지는 네 아버지에게 알짜배기 가게 두 개를 물려주셨다.

네 아버지는 거기에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네 아버지도 늘 어려움에 부딪힌다. 쉬워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어. 그러니 염려 마라.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너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머니…….”

잘해 보려고 했는데. 현대에서 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었고 등급을 보는 치트키도 있어서 고대로 와서도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화재에 약하다는 점주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촛불이나 유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대비를 잘하더라도 천장에 등을 매달아서는 안 되었다. 그것도 포목점에서.

내 오만이 불러온 결과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한차례 물을 뿌린 후여서 연기가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눈이 따가울 정도로 연기가 뿌옇게 거리를 뒤덮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상황을 구경하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맞은편 상가의 사람들이었고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물동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안씨 상가 사람들이었다.

“가구점은 어떻게 됐나? 다친 사람은?”

마차에서 내리면서 다가오는 사람에게 물었다.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하게 그을음이 얼굴 가득 묻었다. 하지만 시선이 마주치자 등급이 떴다. 4등급.

“아씨, 오셨습니까? 가구점은 괜찮습니다. 다른 가게에 불이 번지지는 않았어요. 다친 사람도 없고요.”

“너, 팽문이니? 너무 새까매서 못 알아보겠다.”

“네? 네, 아씨. 소인 팽문입니다.”

다친 사람이 없다니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물론 불이 번지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고.

“포목점도 절반만 탔어요. 절반은 멀쩡해요.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그렇지 생각만큼 심하지 않습니다.”

“공자님은?”

“가게 안에 계세요.”

내가 들어가려고 하자 팽문이 말렸다.

“아직 열기도 남아 있고 또 지저분해요. 아씨께서는 들어가지 마세요.”

“안용아, 따라오너라.”

팽문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시커멓게 그을음이 덮인 포목점이 아니라 그 옆의 가구점을 향해 걸어갔다.

물동이를 든 사람들이 까만 그을음에 덮인 채 포목점 안에서 나와 그 옆에 죽 늘어서 있는 각자의 안씨 상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포목점뿐 아니라 모든 안씨 상가의 직원들이 총동원해서 물을 뿌렸기 때문에 생각보다 불이 빨리 잡혔던 것이다.

타지 않은 천이 산처럼 쌓인 손수레가 가구점으로 연이어 들어왔다. 가구점에서는 가구의 일부를 급하게 옮기고 빈 공간을 만들었다.

중문 상가는 환성에서 가장 발전한 상권이기 때문에 이곳의 동향은 왕실에까지 보고가 된다. 오늘 불이 크게 번졌더라면 안씨 가문은 물질적 손해뿐 아니라 왕실로부터 크게 책망을 들었을 것이다.

가구점 안에 들어가자 연기를 빼기 위해 애쓰는 직원들이 보였다. 한구석에는 가구점에 설치하기 직전의 상등이 화려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한 직원이 그 옆을 지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걸 설치했더라면 어쩔 뻔했어, 라는 듯이. 나도 보기 민망해서 얼른 시선을 돌렸다.

“마님, 아씨. 이리 앉으시지요.”

가구점 점주가 탁자와 의자를 수건으로 잽싸게 훔치고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까지 연기와 먼지가 들어와서 가구 위에 뿌옇게 쌓였다.

가구점 점주가 차를 끓이기 위해서 작은 화로를 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불이라면 찻물을 끓이는 숯 몇 조각도 정나미가 떨어지나 보다.

어머니가 부드럽게 물었다.

“주인님은 옆에 계시나?”

“공자님들과 화재 원인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화재 원인이라니?”

가구점 점주가 허리를 굽히고 음성을 낮추었다.

“그게, 상등에서 불이 붙은 게 아닌 듯합니다.”

뭐?

내가 벌떡 일어섰다.

“가 보고 올게요, 어머니는 여기 계세요.”

마차를 타고 오면서 잔뜩 주눅이 든 채 자책하는 모습을 본 후라 어머니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정오와 말순을 데리고 뛰듯이 가구점을 나섰다.

***

내부의 반 이상이 까만 그을음에 덮인 가구점 안은 나무와 천이 타서 남은 재와 물이 섞여서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닥 중앙에 타다 만 나무 조각과 천들 위로 그을음을 잔뜩 입은 상등이 떨어졌다.

“서까래가 반이나 탔으니 곧 무너질 것 같군. 자네는 어서 버팀목을 가져오게.”

“네, 나리.”

“자네는 어서 남은 포목을 옮기게.”

“네, 나리.”

“자네는 천장을 살펴볼 수 있게 긴 사다리를 가져오게.”

“네? 네.”

“너희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공부하거라. 여기는 네 매형과 살펴보면 된다.”

“네. 아버지.”

안부자의 명을 받은 시종들이 흩어지고 그을음으로 얼굴에 지도를 그린 안신이와 안중이도 물러갔다.

곧 긴 사다리가 들어왔다. 문밖에는 안씨 상가의 점주들이 십여 명 모여서 안의 상황을 주시했다. 노련한 점주들의 표정 속에서도 숨기지 못한 불안이 언뜻언뜻 보였다.

“장인어른, 여기를 보십시오.”

구석에서 몸을 구부려 무엇인가를 보던 목선후가 안부자를 불렀다. 안부자와 포목점 점주, 그 외 안씨 상가의 안 총관과 팽 총관 등 중요 인물들도 다가왔다.

“상등에서 불똥이 떨어져 옮겨붙었다면 상등 바로 밑에 있던 포목에서 먼저 불이 났거나 불꽃이 천장으로 튀었다면 서까래를 태우고 천장을 훑으면서 아래 포목들에 붙었을 겁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불은 여기 바닥 구석에서 시작해서 위로 올라갔습니다. 상등 주변이나 바로 밑보다 여기가 제일 많이 탔지 않습니까?”

목선후의 말에 점주가 동의했다.

“맞습니다. 여기에서 불이 먼저 나서 촌각 사이에 벽을 타고 올라간 거 같습니다.”

부점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에는 만수절을 위해 귀족 부인들이 주문한 최고급 비단들이 비단 상자 채로 쌓여 있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상등에서 제일 먼 곳에 보관해서 내일 아침 각 댁으로 소인이 직접 가지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지, 지금은 까만 가루만 남아서 ……송구합니다.”

만수절이 보름 후다. 대갓집에는 침모들이 있어서 비단천을 구입해서 직접 옷을 짓는다. 그래도 보름이면 넉넉한 시간이 아닌 데다 타 버린 비단 중에는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비단들이 꽤 됐다. 돈을 떠나서 신용을 잃고, 위약금을 물면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요, 주인님. 갑자기 오늘 아침 민아가 학당에 가기 전에 큰 물동이를 하나 들여다 놓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저 커다란 물동이를 들여놓았던 거 아닙니까? 민아가 참 복덩이입니다. 덕분에 불이 빨리 잡혔습니다. 안 그랬으면 다른 가게는 몰라도 포목점은 다 탔을 겁니다.”

부점주의 말에 점주가 손사래를 쳤다. 자신을 믿고 맡긴 가게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제 딸이 한 영특한 행위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안부자가 점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건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능력 있는 부하는 구하기 어렵다. 그 부하의 총명한 딸은 더욱.

이래서 안용이 이 아이를 안씨 학당으로 들였던 것인가? 안부자는 귀여운 외동딸이 원한다니 별생각 없이 그런가 보다 했던 자신을 돌아봤다.

귀여운 안용이는 뭘 해도 귀엽구나. 앞으로는 더 믿어 줘야지.

지금까지 자신이 딸을 덜 사랑했다고 느낀 안부자가 깊은 반성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 딸의 앞날은 내게 맡기게.”

“네?”

“내게 아들이 다섯 놈이나 있어.”

그런 건 이 상황에서 할 말이 아니지 않나? 돈은 많지만 무식하기로 소문난 안씨 집 아들들이 떠오르자 점주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과거에 합격해야 관리의 길이 열려서 귀족이 될 수 있다. 부자인 평민은 그래서 자식을 기를 쓰고 가르쳐 과거를 보게 한다.

점주는 총명한 민아가 가난해도 유식한 사내와 혼인해서 귀족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안씨 가문은 오촌 이내로 생원 한 명이 없는 천하의 돌대가리들이다.

점주는 웃을 수도 고개를 저을 수도 없어 입속의 혀만 물었다.

지금 당장 딸을 며느리로 달라는 것이 아니니 일단 침묵으로 위기를 넘기기로 했다.

“방화입니다.”

목선후가 허리를 펴더니 이렇게 단정 지었다.

“무엇을 사용해서 불을 냈든 불길은 순식간에 타올랐을 겁니다. 그 전후로 해서 포목점 안과 밖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점주님도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방화라는 말은 퍼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범인이 도주할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공자님.”

그때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한 걸음씩 옆으로 물러나더니 치마를 모아 쥔 안안용이 나타났다. 시커먼 입구를 들어오는 딸에게 안부자가 소리쳤다.

“안용아,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 뭣하러 들어오느냐?”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우리 딸이 이 시커먼 검댕 속으로 들어오다니 안되지.

***

나는 포목점 앞에서 막 밖으로 나오는 안신이와 안중이를 만났다. 검댕을 뒤집어쓰고 있는 동생들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누이! 누이가 올 줄 알았지.”

“어머니도 오셨지?”

“당연하지. 너희들도 고생했다. 어머니 가구점에 계시니까 어서 가 봐.”

“응. 우리는 이제 집으로 가야 하니까 누이 집에서 봐.”

“그래.”

가게에는 아버지와 목선후, 그리고 몇 사람이 서서 이야기를 했다. 유난히 새까맣게 탄 벽 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방화의 증거가 저기에 있나 보다. 치마를 옆으로 말아 쥐고 더러운 바닥을 최대한 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보자 아버지가 기겁을 했다. 안용이 비록 두부 스타일이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아버지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역시 노련한 상인이다.

“아버지. 저도 볼래요.”

나는 21세기 현대에서 왔다고. 혹시 알아? 뭔가 단서를 발견할지. 아버지가 미소를 띠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요 녀석, 내가 끌어내기 전에는 안 나갈 거지?”

“금세 나갈게요. 보기만 하고요.”

나는 상등 때문에 화재가 났다고 여겼던 순간의 절망과 자책감이 억울해서라도 방화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내가 가게 중간쯤 들어갔을 때 내 눈앞으로 푸스스 그을음이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쳐든 얼굴 위로 더 많은 그을음이 떨어져 내렸다.

“아버지, 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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