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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30화 (30/92)

30화. 혼자 죽지는 않겠어

하루 진료를 마치고 와서 생명 유지 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들을 지켜보던 닥터 김이 소리쳤다.

“안 돼, 인수야! 박선생! CPR!”

병원장에게 인수의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와 있던 주치의가 모니터로 ECG(심전도)를 확인하고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차지 200줄.”

박 선생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병원장은 두 손을 모았다.

김인수는 짐을 내리던 트럭의 짐칸으로 떨어졌는데 짐칸에는 각종 야채가 커다란 푸른 비닐에 담겨 켜켜이 쌓여 있었다. 식당에 야채를 납품하는 트럭이었다.

구 층에서 같이 떨어진 학원 원장은 땅바닥으로 떨어져서 즉사했지만 짐칸에 떨어진 아들은 푸른색 대형 야채 봉투가 쿠션 역할을 해서 목숨을 건졌다.

아들은 지금 아버지의 병원에 누워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환자를 식물인간이라고 부른다.

***

“이보게, 정신이 드나?”

김인수는 눈꺼풀을 올렸다. 왜 이리 어둡지? 눈을 떴는데 방 안이 너무 어두웠다. 생일날 거실의 불을 모두 끄고 케이크 위의 촛불만 남아 있을 때처럼.

하지만 기분이 좋다. 호흡도 편하고 가슴도 아프지 않다. 무엇보다 눈꺼풀이 움직인다. 이제 볼 수 있다! 말도 할 수 있으려나?

“염려 말게. 탈진했을 뿐이라네. 자네도 참, 아무것도 안 먹고 그렇게 뛰어다녔으니 이런 꼴이 나지 않나. 죽을 가져오라고 했으니 좀 들게.”

이 사람은 누구지? 저 머리 꼬라지는 또 뭐야? 요새 의사는 저런 머리를 해도 되나?

“아, 자네는 못 들었지? 그놈이 입을 열어서 지금 안신이를 찾으러 갔네. 아씨도 괜찮고. 그러니 염려 말고 자네 몸이나 챙기게. 마당에 쓰러져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의사의 입을 쳐다보던 김인수는 문득 영어 선생님이 자신과 함께 떨어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살았으니 선생님도 살았을 거야.

제발, 그랬으면.

죽음이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절대로 죽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살아나면 정말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지.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은 신경 끄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최선을 다할 거야.

일단 영어 쌤이 무사한지 확인하자.

“여, 영.”

다급한 마음과는 달리 목과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보게, 억지로 말 안 해도 돼. 꿀물과 죽을 가져오니 목을 축이고 말을 하게.”

그게 아니라, 영어 쌤은 어떻게 됐냐고! 무슨 헛소리만 하는 거야?

김인수는 ‘영어 쌤’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온 의지를 모았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다시 눈꺼풀이 닫히고 낯익은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과 함께 생각도 끊겼다.

현대의 병실에서는 심장이 소생한 김인수의 손을 잡고 아버지가 눈물을 흘렸다.

아들아, 조금만 더 힘을 내다오. 나는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

“공자님, 팽문입니다.”

방 밖에서 소리가 나자 내가 누워 있는 침상 끝에 앉아 있던 목선후가 일어나려 했다. 얼른 그 소매를 잡았다.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어머니는 안신이의 소식이 급해서 아버지에게 갔고 정오와 말순은 문밖에서 대기 중이다.

별당 주변뿐아니라 집 전체에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다. 그러니 목선후가 잠시 내 곁을 비운다 해도 별일 없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쇼크를 받았고 아직도 떨렸다. 현대에서는 구 층에서 떨어지더니 여기서는 자객의 인질이 되었다.

사람이 이렇게 재수 없기도 힘들겠다.

“괜찮을 거요.”

목선후가 안심하라는 듯이 미소를 짓자 촛불 그림자 때문에 평소보다 보조개가 크게 패었다.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안 괜찮아. 안 괜찮다고.

이런 일을 겪으면 현대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준다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식 병명도 있어.

“팽문에게 들어오라 하세요. 나도 듣고 싶어요.”

“들어오너라.”

“네.”

조심스럽게 들어온 팽문이 문간에 서서 상황을 브리핑했다.

“큰 도련님은 마차를 타고 천천히 오고 계십니다. 묶여 있었고 먹은 것이 없을 뿐 몸이 상하지는 않았답니다. 창진의 하인 한 명이 지키고 있더랍니다.”

내가 부르르 떨자 목선후가 누워 있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제일 좋은 소식이 아니오? 그리고 또 있느냐?”

“창진은 몇 개월 전에 여장을 하고 하녀로 잠입했는데요. 원래는 사랑채에서 막일만 하는 출근 하녀였는데 오늘 분주한 틈을 타서 주방 일을 도왔던 모양입니다.”

“무슨 원한이었지?”

“얼마 전에 수로연맹이 문강 통행권을 창씨에서 안씨로 변경했습니다. 정상적인 경쟁이었지만 창씨 가주는 부당하다고 수로연맹에 항의를 했다가 수로연맹이 오히려 다른 이권까지 빼앗았답니다. 창씨 가주는 충격으로 급사했고요. ”

“그런데 창진의 얼굴을 어떻게 아무도 몰랐지? 창씨도 환성에 살지 않았나?”

“창진은 십 년 동안 시골에 있는 별장에서 공부만 했답니다. 그래서 환성 사람들이 그 얼굴을 못 알아본 거 같습니다.

세상에! 십 년쯤 공부를 해야 육 등급이 되는 거구나.

청춘을 다 바쳐서 공부를 하고 과거를 보려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집안은 망했으니 황당했겠지. 창진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그래도 복수의 방향이 틀렸다고. 어이없어서 투덜댔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원한을 우리한테 갚아요? 수로연맹에게 갚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장인어른께서 부당하게 사업권을 갈취했다고 생각한 거지.”

“그랬나요?”

“글쎄, 장인어른에 관해서는 나보다는 그대가 더 잘 알지 않소?”

너보다 내가 더 모를걸? 나는 안부자가 구 등급이라는 사실만 확실히 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았어요? 꽤 멀리 있었다면서요?”

내가 묻자 당황한 팽문은 시선을 돌리고 대답은 목선후가 했다.

“운이 좋았소. 그만 나가 봐라. 큰 도련님 도착하면 알려 주고.”

팽문이 후다닥 나가버리자 정오가 탕약을 들고 들어왔다.

이렇게 한약을 많이 먹어도 되나?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는데. 내가 한약을 노려보자 목선후가 나를 노려보며 엄격하게 말했다.

“꾀부리지 말고 어서 드시오.”

사람이 사람을 노려보는 이유는 참 많지만 이렇게 달콤하게 노려볼 수도 있구나.

“하녀가 수상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오?”

약을 먹은 내 입에 계피과자를 넣어주며 목선후가 물었다. 뭘 이런 걸 묻고 그래.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니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상대방의 말에서 모순과 허점을 잘 찾아내는 편인데 목선후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괜히 일 등급이겠어.

가슴에 손을 얹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어, 어. 그, 그 하녀의 눈빛이 흔들렸어요. 엄청나게요. 손도 떨었고요. 막 이렇게.”

두 손을 들고 목선후의 눈앞에서 덜덜 떨었다.

“대단하오. 그런 사소한 일로 범인을 찾아내다니. 하지만 다음엔 그러지 마시오. 직접 나서지 말란 말이오. 오늘도 위험하지 않았소?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조용히 물러나서 나나 장인어른께 말을 하면 되오. 알겠소?”

“네.”

목선후는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 못할 말이 너무 많다.

“이제 쉬시오.”

“가지 마세요.”

내 말에 멈칫하던 목선후가 촛불을 하나 더 켜서 탁자 위에 놓았다. 나를 살펴보기 좋은 위치에 의자를 옮기고는 먹을 갈기 시작했다.

***

안신이는 새벽에 돌아왔다. 안부자는 창진이라는 자와 그의 수하를 관아로 보냈다고 했다.

“아버지는 안신이를 납치한 것보다 네 생명을 위협해서 진짜로 화가 나셨단다.”

어머니가 내게 죽을 떠먹여 주며 말했다. 아버지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한다는 저 표정은 안신이가 보면 실망하지 않을까?

아들이 다섯이고 딸은 하나라지만 이렇게까지 딸을 편애하는 건 좀 심하다.

“안신이는 어때요?”

“몽땅 먹고 정신없이 자고 있다.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이번에 잘 알았을 테니 차라리 잘됐다.”

역시 오 여사님이다. 아들이 죽을 뻔했는데 남의 아들 얘기하듯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결론을 맺는다.

“어머니, 안신이는 천자문만 떼면 공부는 그만 시켜요, 장사에 소질이 있다고 하는데 굳이 공부를 시켜서 이것도 저것도 못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래도 되겠니?”

“어머니도 그 애가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거 아셨죠? 내가 해 보겠다니까 그냥 두신 거죠?”

“그래. 일말의 희망도 품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켜 보자고 생각했단다.”

어머니를 껴안았다.

“어머니, 안신이는 최고의 기업가가 될 거예요. 염려 마세요.”

“기업가가 뭐니?”

“장사 잘하는 사람요.”

더 이상 물으면 곤란하니까 죽그릇을 들고 후루룩 마셨다. 아, 매운 족발이 먹고 싶어.

“이번에 내가 목 서방을 다시 봤다. 아주 사내답더라. 너무 곱상하게 생겨서 내 딸을 보호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최소한 너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거 같더라.”

이거 칭찬인가?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칭찬이 맞다. 딸을 혼자 죽게 하지 않는 게 사위에게 바라는 최상의 행위라면 어머니는 정말 너그러운 장모다.

“그거면 됐다. 사주팔자가 그렇게 태어나서 과거를 못 보니 본인도 심정이 좋진 않을 거다. 그런 처지에 허허 웃고 다니는 것도 속없어 보이지.”

목선후는 죽을 맛일 거다. 겨우 스무 살인데 일 등급 실력을 가지고 처가 덕분으로 살고 있으니.

“어머니, 오늘 중문 상가에 가야 되는데 허락해 주세요. 저 이제 괜찮아요. 목 서방이랑 같이 갈게요. 네?”

“상등이라는 물건을 보고 싶은 거니?”

“어떻게 아세요?”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 그 상등 때문에 가게가 훤해서 손님이 늘었다고 다른 가게에도 달까 하던데?”

그러니까 더 빨리 보고 싶다. 안안용 표 샹들리에.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학생들을 잘 가르쳤지 장사는 해 보지 않았기에 이 시대에 조명의 변화가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었다.

샹들리에를 달아서 매출이 증대됐다면 다른 마케팅 전략도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

안안용은 마차 안에 앉자마자 눈을 감더니 코까지 골았다. 이 연약한 몸으로 어젯밤 큰일을 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 놓고 아침에 안신이의 자는 모습을 보더니 중문 상가를 가자고 목선후를 조르기 시작했다.

좀 더 친근하게 행동하는 안안용을 보면서 목선후는 자신이 대신 인질이 되겠다고 해서인가? 라고 생각했다.

창진이 안안용을 잡고 칼로 위협했을 때 처음에는 사태를 파악하느라 감정 따위는 느끼지도 못했다. 안안용은 체력도 약하고 정신은 더 약하다.

안안용이 너무 놀라서 함부로 움직이면 범인이 원하지 않아도 찌르게 된다.

일선은 이미 대청의 서까래 위에서 대기했고 자신과 팽문도 저런 녀석쯤은 간단히 막을 수 있었다. 이선과 오선은 큰 처남이 잡혀 있는 곳을 거의 찾았을 것이고.

그런데 제일 약한 안안용이 인질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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