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24화 (24/92)

24화. 진상 고객

“자네 왜 이러나? 대낮에 취했나?”

“이 재수 없는 옷을 입고 과거를 봤으니 안 떨어지고 배기겠나? 어? 점주 나오라고오!”

“알고 팔았겠나? 아무런 표시도 없지 않나?”

“왜 없어? 여기 봐. 눈이 있으면 보라니까!”

가게 안쪽에 편히 앉아 간식을 먹으며 남편을 모델처럼 변신시킬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가 이런 대화를 들으니 기분이 팩 상했다.

딱 들어도 진상이다. 옷 때문에 과거시험에서 떨어졌다니.

이런 개진상 고객은 현대에서도 못 봤다. 연장 탓도 정도껏 해야지.

삼선 슬리퍼에 잠옷 입고 공무원 시험을 봐도 합격할 사람은 합격한다.

“가 봅시다.”

나는 점주와 함께 입구로 나갔다. 겁에 질린 민아의 손을 잡고 목선후가 뒤따라왔다.

긴장한 점주와는 달리 목선후의 얼굴에는 가벼운 흥미가 떠올라 있었다. 골목의 조무래기를 보는 태권도 유단자처럼 여유가 있다.

이전에는 목선후의 이런 부분을 눈치채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좋지만 뜻을 못 펴는 까닭에 매사에 관심이 없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목선후의 뒷배를 봤다. 노부인이 누구인지, 그녀와 목선후의 관계가 무엇인지, 유주라는 땅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댁과 친정이 합작해서 덤벼도 노부인의 새끼손가락도 건들지 못한다는 것.

평소 목선후의 느긋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의 여유였다.

“네가 점주냐?”

황색 비단 도포를 입은 남자는 이십대 초중반. 흰 얼굴에 덩치도 크고 머리도 단정했다. 의외로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 상습범 같지도 않았다.

남자를 보자 두어 달에 한 번씩 소나기처럼 찾아오는 진상 학부형들이 생각났다.

눈앞의 이 사람은 내가 겪은 수많은 진상 학부형들 중 중간쯤 되려나. 어쨌든 최악은 아니니 다행이다.

“반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평민인 점주가 젊은 남자를 공자님이라고 부르며 허리를 굽혔다.

황색 도포의 남자는 황금 동곳에 비단 말액을 이마에 두르고 허리에는 옥패를 두 개나 찼다.

세습 귀족이거나 고위 관리의 아들이라는 뜻. 이 시대 금수저 되시겠다.

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다 온 흙수저라 이런 자를 보면 그냥 창자가 꼬인다. 현대의 금수저는 돈만 있으면 되지만 이 시대의 금수저는 신분이 좋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내 뒤에 점잖게 서 있는 목선후도 금수저다. 만약 오늘 만난 노부인의 신분이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수저일 거고.

“네가 점주냐?”

이렇게 큰 가게의 점주쯤 되면 평민이어도 반 존대를 해야 하는데 이 남자는 익숙하게 하대를 했다.

“네. 소인이올시다.”

아버지가 핍박받는 모습을 보는 민아가 걱정되어 뒤돌아보니 목선후가 민아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젠틀맨 목선후.

우리의 시선이 부드럽게 얽혔다. 평소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그의 눈빛이 지금은 투명한 유리처럼 분명하게 보인다.

“이 옷을 알아보겠느냐?”

“네.”

상대방의 무례함에도 흔들리지 않은 점주는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보자마자 내 가게 물건임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업무에 열정과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이 무슨 실수를 했지?

“이 옷을 입고 과거를 봤는데 떨어졌다. 떨어졌다고! 내가 떨어질 리가 없는데 이 옷 때문에 재수가 없어서 떨어졌단 말이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 엉? 엉? 삼 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됐단 말이다.”

진상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숨을 헐떡이는 친구를 대신해 설명했다.

“여기를 보게.”

친구의 도포 자락 밑을 잡고 뒤집어서 점주의 눈앞에 들이댔다.

“이것은 극추생마포(極?生麻布 가공하지 않은 마포, 상복의 재료로 사용됨)가 아닌가? 안감을 극추생마포로 만들다니? 이 친구의 춘부장이나 자당께서는 아주 멀쩡하시다네. 그런데 상복 쪼가리를 붙이다니 웬 말인가? 향시를 보러 갈 때 입겠다고 특별히 맞춘 옷인데 이게 말이 되나?”

가까이 가서 보니 안감의 일부가 손바닥크기만큼 달랐지만 자세히 봐야 알 정도로 큰 차이가 없었다. 도포도 황색, 안감도 황색, 문제의 천도 황색이다.

목선후에게 몸을 붙이고 조용히 물었다.

“심각하게 잘못한 거예요?”

목선후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보조개가 예쁘게 패었다. 보조개에 한 번 꽂히니 계속 보이네.

안안용, 목 성애자인 줄 알았는데 보조개 성애자였어?

***

풍월문주 궐향의 은신처.

“주군, 공자님 소식입니다.”

“무엇이냐?”

“안씨네 포목점에 시비가 붙었습니다. 지난번처럼 공자님께서 말려들까 염려됩니다. 애들을 보낼까요?”

“혼자시냐?”

“아씨도 계십니다. 팽문이 있긴 한데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서는 무리가 아닙니까?”

“그에게는 숨어서 보호하는 자들도 있으니 염려 마라. 그런데 무슨 시비냐?”

“반옥금이 향시에 떨어지고서는 그 핑계를 안씨 포목점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완전 미친놈이지요. 극추생마포 한 조각을 안감에 사용한 모양인데 티도 안 납니다.

만든 사람 빼고는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향시에 떨어지고 나니까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부친의 처벌을 피하려는 거죠. 이번에 떨어지면 양주로 끌려내려가야 하니까요. 그놈이 여기서 데리고 있는 첩만 해도 열 명이라는데 내려가고 싶겠습니까?”

“양주자사 반 대인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모자란 자식이 나왔는지. 주지육림에 빠진 버러지 같은 놈. 그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향시에 합격하지 못할 놈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어떡할까요?”

“구경 가자.”

“네에?”

“지난번에 아씨가 나를 뚫어지게 보던걸.”

“그때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계셨잖아요. 볼 게 뭐가 있다고요?”

“내 이마가 좀 잘났느냐?”

궐향이 자신의 이마를 툭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하와 함께 은신처를 나온 궐향은 무공 고수답게 번잡한 시내를 피해 지붕을 타고 달렸다. 급한 일이어서가 아니라 재미있는 일을 놓치기 싫어서였다. 얼마 안 가 안씨네 포목점 근처에 이르렀다.

평범한 복장에 얼굴에 살짝 역용을 한 궐향과 수하는 포목점 앞에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

반 공자라는 자는 문간에 서서 점점 더 크게 소리쳤기 때문에 문 밖에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된다고 그냥 쫓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안감의 일부가 상복에 쓰는 천으로 만들어졌음은 사실이니까.

차라리 돈으로 보상할 수 있다면 편할 텐데.

향시에 떨어진 걸 보상하란다. 미친 놈. 짜증이 팍 올라오는 순간.

나와 시선을 마주친 개진상의 등급이 떴다.

구 등급!

저자가 삼 년 후에 육 등급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

뒤에 있는 목선후에게 살그머니 물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인가요?”

“그 반대요.”

“개과천선할 가능성은요?”

느닷없는 내 말에 귀엽다는 시선을 던지며 내 머리 위에서 속삭였다.

“그대가 향시를 볼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

여자인 나는 향시를 볼 수 없다. 흐흥. 그렇단 말이지.

“반 공자님.”

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내가 나서자 점주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 이 아저씨, 사람을 막 무시하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니까.

“나는 안안용이라고 해요. 이 포목점 주인의 여식이죠.”

반 공자는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더니 큰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더 의기양양해져서 어깨를 쫙 폈다. 점주보다 더 윗사람이 마침 가게에 있으니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하자 내가 손을 들어 척 막았다.

인질도 없는데 길게 협상할 필요가 어디 있어. 나는 이미 네 찢어지는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다고.

“반 공자님,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지금 옷값의 다섯 배를 배상해 드리겠습니다. 이 방법이 싫으시다면 두 번째 방법도 있습니다. 삼 년 후 향시에 합격하시면 황금 만 냥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합격하지 못하시면 옷 탓이 아니니 공자님께서 우리 가게에 사과문을 써 주셔야 합니다. 자,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내가 이 시대 쩐에 아는 게 별로 없지만 황금 만 냥은 어마어마한 액수일 거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반 공자의 옆에 있던 친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자 뒤에서 구경하던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크고 똑똑하게 말했다

“반 공자, 지금 은 서른 냥 정도를 받겠소? 삼 년 후 향시에 합격해서 황금 만 냥을 받겠소? 둘 중 선택을 하라는 아씨의 말씀이오.”

비로소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황금 만 냥이라니. 평생 황금 한 냥도 보기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황금 만 냥이라니.

액수가 너무 크면 실감이 안 나는 법이다.

“황금 한 냥이면 한 가족이 몇 년은 풍족하게 산다오. 만 냥이라, 아무리 써도 다 못 쓰겠구려.”

이렇게 덧붙인 남자가 고개를 들어 문간에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등급이 떴다.

얼마 전에 보았던 그 일 등급.

등급 표시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나는 바로 청운각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남자임을 알아보았다.

주변을 살피니 역시나 호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재미있네. 저 사람이 여기 있는 게 과연 우연일까?

우리는 날카로운 눈빛을 교환했다.

너는 진짜 일 등급, 나는 영혼만 일 등급. 하지만 영혼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근데 잠깐, 황금 한 냥이 한 가족이 몇 년을 쓴다고? 그렇게 큰돈이란 말이야? 그럼 황금 만 냥은?

혹시 국가의 일 년 예산?

헐,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