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목선후의 아내가 너냐
목선후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아주 공손해야 하오.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분이 묻는 말에 대답만 해요. 그렇게 할 수 있겠소?”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이전의 안안용이라면 몰라도 내게 이런 건 누워서 떡 먹기인데.
“누군데요? 왜 만나는 건데요?”
시댁 사람인가? 목씨 가문은 유서 깊은 명문이고 재야에 묻혀 사는 학자도 많다니 그중 한 사람일지도.
뭐,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은 사업가로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못 했으면 내가 그 대단한 치맛바람 속에서 살아남았겠어?
“누군지 말할 수 없지만 그분이 내 아내를 보고 싶어 하시오.”
“그렇게 중요한 분이라면 이런 옷도 괜찮을까요?”
나는 지금 어머니의 취향대로 화려하고 고급지게 꾸민 상태다. 옥패를 차거나 봉황비녀만 꽂으면 왕족으로 보일 만큼.
사람은 보는 것에 80프로 영향을 받고 듣는 것에는 20프로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같은 설명이라도 화이트보드에 글씨와 그림과 도표를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야 효과가 좋다.
게다가 첫인상은 중요하다. 첫인상은 얼굴과 옷에 의존한다. 어려운 사람 앞일수록 단정한 옷이 좋은데 지금 이 옷은 너무 화려했다.
“이미 충분히 예쁘오. 더 이상 꾸미지 않아도 돼요.”
내 질문이 애매해서 그런지 대답도 애매하네. 뭐, 괜찮다는 것 같으니 그냥 가자.
“이걸 꽂아 주겠소?”
목선후가 소매 속에서 산호 뒤꽂이를 꺼내서 내밀었다. 관자놀이가 희미하게 붉어져 있다.
“내게 주는 거예요?”
안씨 가문에서도 보기 힘든 화려하고 큰 산호 뒤꽂이. 이게 어디서 난 거지? 목선후는 가난뱅이에 백수 아니었나? 고맙다기보다는 출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한심하다. 이놈의 현대인 병.
“그 머리에는 안 어울릴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목선후가 자신 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는 이장신구의 값어치를 전혀 모르고 있구나.
하기야 현대의 명품도 그냥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구제 상품 느낌이 나기도 한다. 로고 떼면 할머니 가방을 들고 온 줄 알 거라고 웃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저 산호의 크기와 조각으로 봐서 등급을 매긴다면 1등급짜리임을 확신했다.
“어울려요. 명품은 자체로도 빛나거든요. 꽂아 줘요.”
내가 뒤로 돌자 목선후가 조심스럽게 내 머리에 꽂아 주었다.
“그대는…….”
“네?”
“갑시다.”
무슨 말을 하다 말아? 궁금하게시리.
내가 인상을 쓰자 목선후가 내 손을 잡더니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어마, 어마. 뒤에서 정오와 말순의 작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 시대에 여자의 손을 잡고 걷는 남자는 없…… 구나. 가끔 목선후의 태도는 이해가 안 된다.
***
보통 내가 외출할 때는 화려한 안씨네 마차를 탄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느 가문인지, 신분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수 없는 평범한 마차를 탔다.
정오와 말순도 없이 팽문이 마부가 되어 마차가 출발한 시각은 정오경.
날은 덥고 마차는 좁아서 조금 지나자 참기 어려웠다.
에어컨 꺼진 엘리베이터 같아. 고장 나서 층 사이에 멈춘 엘리베이터. 아니 대낮에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 속에 있는 건가. 창문은 닫혀 있고 에어컨은 꺼져 있는 자동차 안.
나도 모르게 작은 창에 쳐져 있는 휘장을 걷으려 하자 목선후가 말렸다.
“왜요? 답답한데?”
“어디로 가는지 보지 않는 게 좋소.”
“대단한 비밀인가 보네요? 근데 더워요. 숨 막혀요.”
죽음의 강을 한 번 건넌 탓일까? 이전에 없던 갑갑증이 생겼다.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지와는 다르게 심박수가 쑥쑥 올라갔다.
목선후가 팔을 벌려 내 어깨를 안고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해 준 다음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부채를 풀더니 살살 부쳐 주었다. 좀 낫다. 아니, 훨씬 낫다.
“음, 좋아요. 계속 부쳐 줘요.”
안안용아, 두부보다 약한 이 몸을 가지고 어찌 살아온 거야?
혹시 심장이 원래 약했던가? 그래서 사소한 어떤 일로 심장마비가 온다거나 그런 거 아니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자다가 심장이 정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안안용도 그렇게 죽어서 내가 빙의했는지도 모르겠다.
안씨 집안에서 오냐오냐 컸던 안안용은 시집가서 스트레스를 머리 꼭대기까지 받고는 숨겨져 있던 심장병이 도져서 잠자는 사이에 죽었나 보다.
꽤 그럴듯한 추리다. 시선을 올려서 잘 난 남편의 턱과 목을 응시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목선후가 내려다보았다.
“아직 한참 가야 하니 눈을 감고 쉬시오.”
“보조개가 있네요.”
“음?”
“보조개가 있는 거 알았어요?”
“알았소.”
“…….”
“…….”
“누구예요?”
내가 상체를 세우고 물었다.
“무슨 말이오?”
“보조개가 있다고 알려 준 여자. 누구예요?”
우리의 시선이 얽혔다.
마침내 목선후가 먼저 시선을 비켰다.
“말 안 해 줄 거예요?”
“왜 알고 싶어 하는 거요?”
그러게 왜 알고 싶어 하지? 더구나 씩씩대면서.
기껏 침 발라 놓은 남편의 마음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옛사랑의 그림자라서? 어느새 그렇게까지 마음이 움직였나?
잘생기고 머리 좋아서 호감을 갖고는 있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는데.
힘을 빼고 넓은 가슴에 다시 머리를 기댔다.
“잊어요. 그 사람. 아니 그 여인.”
남자의 잔잔한 웃음 때문에 내 머리가 울렸다. 잊으라는 말에 웃는 걸 보니 그다지 중요한 그림자는 아니었나 보다. 내 뺨 밑에 있는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남자의 가슴에 코를 묻었다. 좋은 체향이 났다.
목선후의 계속되는 부채질에 갑갑증과 더위가 서서히 물러갔다.
***
마피아 영화를 보면 이런 경우 안대로 눈을 가리고 그러던데 다행히 나는 눈은 가리지 않고 호숫가에 띄워진 배 안으로 안내되었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서 휘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꽤 넓고 화려해서 놀랐다.
반백의 머리를 한 여인이 화려한 옷을 입고 높은 의자에 앉아서 우리를 맞이했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반백의 머리가 어울려서 품위가 느껴졌다.
재벌 시어머니 필인데, 이거. 하지만 내 시어머니는 목씨 가문에 잘 계시다.
“소인 목선후와 처 안안용이 인사 올리옵니다.”
목선후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자 나도 따라했다. 나는 바로 일어나려고 했는데 목선후가 고개를 들고 있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에 일어 나거라, 하는 낮은 음성이 들렸다.
고개를 들자 노인이 바로 앞에 놓인 낮은 방석을 가리켰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방석 위에 앉았다. 단정한 태도의 여인이 들어와 우리 앞에 차와 간식을 늘어놓고 나갔다.
고개를 들어 노인의 등급을 보고 싶었지만 힐끔 옆을 보니 목선후 조차 고개를 숙이고 찻잔만 내려다보고 있다.
“차를 마셔라.”
우리가 차를 마시는 동안 노인은 자기 앞에 놓인 차를 마시지 않고 내 얼굴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고개를 들어라.”
이젠 자동으로 명령에 따라 몸이 움직였다.
눈을 들자 노인의 맑고 까만 눈동자와 마주쳤고 등급이 떴다.
삼 등급!
평생 학문에 정진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어사중승이 이 등급인데.
목선후야 영재중의 영재이니 제외하고.
너무 놀라 떨어지려는 턱을 닫듯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 뺨이 달아올라야 되는데. 솔직히 나는 웬만해서는 뺨을 붉히거나 말을 버벅거리지 않는다.
그냥 타고 나기를 똑 부러지게 타고나서 맺고 끊음이 너무 분명해 문제였다. 이게 강의를 할 때는 엄청나게 이득인데 이럴 때는 곤란하다.
하지만 내 본성을 바꿔서라도 지금은 조신하고 수줍어야 된다. 수줍자, 안안용.
노인이 무미건조하게 명했다.
“어깨가 아프구나. 네가 와서 주물러라.”
안안용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속에 뼈가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운 희고 가녀린 소녀의 손가락들.
힐끔 목선후를 보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춤거리며 일어나서 노인의 뒤로 돌아가 목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일단 마사지를 시작하자 최선을 다하는 내 본능이 튀어나와 정말 성심껏 힘주어서 어깨의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 기본 열 시간을 서서 수업했기 때문에 정형외과를 단골로 다녔다.
이 나이에 벌써 퇴행성 관절염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편도선을 떼 버렸으며 보드마카를 하도 많이 사용해서 손목터널증후군에 시달렸다. 제때 식사를 못 해서 만성 위염에 걸렸고 봄가을에는 비염에 걸려 눈물콧물을 달고 살았다.
모두 쉬면 낫는 병이었는데 쉬지 못했다. 이렇게 일찍 죽을 줄 알았으면 쉬면서 할걸.
“살짝 거북목이신데요. 이럴 때는 목을 뒤로 젖히는 운동을 하시면 도움이 되실 거예요. 평소에 반듯이 앉으시고요.”
“흐흠.”
목선후의 헛기침에 정신이 번쩍 났다.
에휴! 이놈의 강사 본능. 뭔가를 가르치지 않으면 좀이 쑤시지, 응? 이 맹추야. 지금 입을 열면 돼, 안 돼?
어쩔 줄 몰라 두 손을 들고 얼음땡하고 있는데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되었다. 그만해라.”
나는 얼른 원래의 방석으로 돌아와 조신하게 앉았다. 마사지를 열심히 한데다 긴장해서 등에 땀이 흥건하다.
“유주는 곡창지대다. 만석꾼이 많이 나오는 곳이지.”
노인이 거두절미하고 툭 내뱉더니 그제야 찻잔을 들었다. 손가락마다 화려한 반지가 빛나고 있다.
“그래도 싫으냐?”
“네. 송구합니다.”
예상했던 질문에 예상했던 대답인 듯 둘 다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못된 놈. 물러가라.”
“소인 물러가옵니다.”
목선후를 따라서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절을 하고 뒷걸음으로 방을 물러나왔다. 뱃전에 나오자 시원한 강바람이 휙 지나가며 숨이 트였다.
우리는 조용히 타고 왔던 마차에 올랐다. 팽문이 작은 비단 보따리를 마차 안으로 들여보내고 마부석에 앉았다.
목선후가 소매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 주더니 갑자기 내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어머니가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뽀뽀하듯이 자연스러운 태도였지만 나는 기습이라도 당한 듯 놀랐다.
눈을 깜박이며 한 번 더 입술을 누르는 목선후의 목울대를 보며 호흡을 멈췄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이마에 닿자 온몸이 녹아 버리는 것 같다.
“대견하오. 너무 잘했어요.”
“저, 그게요. 하지 말란 말을 했는데 괜찮아요?”
목선후가 미소 짓자 귀여운 보조개가 패었다.
“나는 그대가 크게 떠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점잖게 행동할 줄 몰랐소.”
칭찬이야. 칭찬.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아무도 내게 이렇게 친밀하게 개인적으로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세로토닌이 분수처럼 솟았다. 고래처럼 춤추고 싶다.
“그럼 상을 줄 거죠?”
“무슨 상을 원하오?”
“그분이 누군지 말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