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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21화 (21/92)
  • 21화. 나? 오너의 딸이야

    “네?”

    “어둡다고요. 해결해 봐요.”

    내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점주와 직원들이 눈을 끔뻑이며 내 앞에서 몸을 옹송그렸다. 그사이 누군가 내게 편안한 의자를 권하고 누군가는 다구를 준비했다.

    줄줄이 붙어 있는 다른 안씨 상가에도 사환이 달려갔다.

    떴다, 주인 아가씨! 뭐, 그런 말을 전달하고 있는지도.

    “저, 아씨. 무슨 말씀이신지요?”

    “가게 안이 어두워요. 좀 더 밝게 만들어 봐요.”

    “여기는 포목점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화재의 위험이 있어서 가게 안으로는 곰방대를 가지고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대신 창문을 크게 했고 해 질 녘이면 문을 닫기 때문에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만.”

    이 시대는 전등이 없으니 해가 지면 상가는 문을 닫는다.

    야간 초과근무가 없으니 직원 입장에서는 좋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조명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지.

    “낮에도 너무 어두워요. 화재 위험이 없게 불을 밝히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너무 황당하다는 점주의 표정 속에는 무식한 주인 아씨에 대한 무시도 들어 있다.

    흥, 그럴수록 막 의욕이 솟는단 말이지.

    내 말과 행동에 은밀한 불신을 드러내는 점주와 시선이 마주치자 팟! 등급이 떠올랐다.

    칠 등급.

    향시에 합격하기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커다란 상가의 점주를 하기에는 충분한 능력이다.

    총명하게 반짝거리는 눈동자 속에는 은근한 자부심과 오만함도 엿보인다.

    아버지가 큰 부자가 된 데는 탁월한 용인술도 한몫했을 터. 아버지가 이 커다란 포목점의 점주로 세운 사람이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내가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겠지?

    “사장님, 촛불 하나를 가져와 보세요.”

    “네, 네. 아씨.”

    자신을 사장님이라고 불러주자 입이 귀밑에 걸린 점주가 직원을 시켜서 어린애 팔뚝만 한 황촛대를 가지고 오게 했다.

    불을 붙이자 지금까지 충분히 환했다고 여겼던 가게가 놀랍게 환해졌다. 현대인인 내 눈에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말이다.

    “화려한 비단 아무거나 한 조각 가져와 보세요.”

    점원이 비단을 가져왔고 나는 황 촛불 가까이에서 비단을 펼쳤다. 사람들의 눈 속에서 저 비싼 비단이 촛불에 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보였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촛불 아래서 비단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화려하게 반짝였다. 자수 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빛의 방향에 따라 모양이 변했다.

    사람들은 내가 요술이라도 부린 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마술사가 아니야. 이건 당연한 거라고.

    헐! 이 시대 사람들이 조명에 대한 자각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생산성이 낮은 시대라 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건을 돋보이게 해서 잘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 하는 거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넘쳐나는 좋은 물건들 중에서도 내 물건을 최대한 돋보이게 선전해야 간신히 팔 수 있는 초초경쟁의 나라에서 온 나.

    그 많은 영어 학원 중에서 내 학원에 차별성을 두려고 고심하다 불면증과 원형탈모증이 생겼던 나.

    그에 비하면 여기는 정말이지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하지만 아씨, 이러다 불이라도 나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불이 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사장님이라면 충분히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당신을 믿어, 라는 눈빛을 쏘아 주었다.

    “아버지께서 사장님을 믿고 계시잖아요.”

    한 마디 덧붙이자 점주의 표정이 싹 변했다. 내 말을 아버지의 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점주가 내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도 한 개 씹어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간섭하면 역효과니까 오늘은 이 정도만 하기로 했다.

    이거 꼭 프랜차이즈 회사 오너가 된 느낌이네? 이 느낌 아주 괜찮아.

    화려하고 커다란 쇼룸을 휘둘러본 후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나가는 것이 내 로망이었지만 이 정도로 소원성취한 셈 치자.

    뿌듯한 가슴을 쫙 펴고 일어섰다.

    그 순간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점주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한 손으로 점주의 도포 자락 끝을 잡고 있다. 점주의 딸인가?

    나는 무심코 웃어 주고 지나치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치자 떠오른 등급은 오 등급!

    ‘왓?’

    내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점주와 부점주가 허리를 숙이며 눈치를 봤다.

    “무슨 분부가 더 있으십니까?”

    “얘야, 이리 와 보거라.”

    내가 자신의 뒤에 있는 아이를 부르자 점주가 화들짝 놀랐다. 저 태도는 뭐야? 이전의 안안용이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나?

    하긴 비글 같은 남동생을 다섯이나 두고 있으면 아이를 좋아하기가 어려웠을 거야. 이해해, 안안용.

    “이름이 뭐니?”

    작은 입술을 꼭 물고 앞으로 나온 아이의 꼬막 껍질 같은 귓불에서 작은 진주 귀걸이가 반짝였다.

    “제 딸아이 민아이옵니다. 안채가 가게 뒤에 붙어 있어서 가끔 오곤 합니다. 곧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냥 두세요.”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턱을 쳐들어 나를 올려다보게 했다.

    흙 속의 진주로구나. 까만 진주 같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는데 학원에 찾아온 일 등급 학생을 발견할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런 학생들이 내 학원의 명성을 드높이고 내 잔고를 불렸다. 이 아이도 포목점의 문제를 해결하고 명성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른다.

    “글을 배웠니?”

    “아니옵니다.”

    “산법은?”

    산법은 이 시대 계산법이다. 장사를 하려면 필수로 배워야 하는데 수학이란 게 시대를 막론하고 되는 사람만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과목이 아닌가.

    산법이란 말을 듣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다.

    “산법은 어디서 배우니?”

    아이의 손가락이 주판을 한 손에 들고 팔에 토시를 끼운 회계원 스타일 부점주를 가리켰다.

    부점주는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어쩔 줄을 모르고 더 몸을 옹송그렸다. 필사적으로 안안용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안안용, 그동안 어떻게 산 거야? 가게 사람들이 전부 겨우 열여덟의 소녀인 너를 무서워하잖아. 안안용이 떨어뜨려 놓은 명성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점주와 부점주, 그리고 아이를 두루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더 열심히 배워서 다음에 내가 올 때 보여 줄 수 있겠니? 잘하면 상을 줄게.”

    이 정도 말해 두면 알아서 잘 가르치겠지.

    “내가 네 아버지에게 숙제를 냈는데 너도 한 번 생각해 봐.”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고 가게를 나왔다.

    부자인 안씨네 아들들은 모두 등급외인데 점주의 딸이 오 등급이라니. 비교가 저절로 된다.

    아무리 정 공자와 한 공자가 애를 써도 한계가 있을 텐데. 공부를 못하는 자녀를 데리고 온 학부형들의 심정이 이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

    금씨 부인과 장양란은 완성된 전각 앞에 서서 어떻게 내부를 꾸밀지 의논했다.

    둘째 아들 부부가 없는데도 집안 분위기는 다름이 없다. 평소에 두 사람이 각기 자기 처소에 박혀서 다른 가족과 교류가 적기 때문이다.

    “너는 이제부터는 집안일에서 손을 떼고 아이를 가지는 데 힘쓰도록 해라.”

    시어머니의 말에 장양란의 뺨이 사과처럼 붉어졌다. 특별한 이유 없이 삼 년이 지나도록 임신을 못 하니 친정에서도 걱정이 대단하다.

    “그러면 어머님께 누를 끼치게 되옵니다. 어찌 그렇게 하겠습니까?”

    “손자가 우선이다. 그리고 나 아직 멀쩡하다. 네가 하는 일을 나는 못하겠니? 하녀도 더 들였으니 염려할 것 없다.”

    “……그래도요.”

    안안용의 친정에서 또 하인들을 보내왔다. 하인들의 품삯이라는 핑계로 과할 정도로 많은 돈과 함께.

    돈궤가 집 안으로 들어올 때 둘째네가 없어서 차라리 덜 무안했다. 받아야 하고 받고 싶기도 했지만 자존심도 상했다.

    목선후를 위해서 높으신 그분이 내리는 재물은 아무리 많아도 써서는 안 된다.

    출처가 불분명한 재물은 안 좋은 소문을 만들 것이고 누구보다 청렴해야 하는 어사중승이라는 직책에 해를 끼치게 된다.

    사소한 잘못만 드러나도 어사대에 있는 사람들은 파직되거나 귀양을 갔다. 남편은 명예를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니 살림은 늘 팍팍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 사돈을 두자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었다.

    거부인 사돈댁이 시집간 딸이 편하라고 재물을 주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동서는 돌아올 생각을 안 하네요.”

    큰며느리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대신 금씨 부인은 무엇인가를 메고 오는 하인들에게 다가갔다.

    큰며느리 나름대로 불만이 있겠지만 지금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준 사람은 둘째 며느리임을 잊었나?

    깔 때가 따로 있지 지금은 아니다.

    하인들은 두터운 마포로 잘 싸인 커다란 물건을 등에 지고 들어왔다.

    “무엇이냐?”

    “우리 마님께서 보내신 문갑이옵니다. 저 뒤에 장롱도 오고 있습니다. 새로 지은 집에는 새 가구가 어울린다고 하셨습니다.”

    장양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다니.

    그냥 돈만 보내는 것과 하인들을 보내거나 새 가구를 보내는 것은 정성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저희 가게에서 최상품으로 가져왔습니다.”

    하인들을 인도해 온 안씨네 총관이 말했다. 중문에 있는 안씨 상가 중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아주 커다란 가구점이 있다.

    평소의 목씨 가문이라면 작은 다탁 하나도 쉽게 살 수 없을 정도로 고급품만 취급하는 상점이다.

    “어, 수고했네. 어디 좀 보세나.”

    금씨 부인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아무리 물욕이 없는 여인이라도 아름다운 가구에는 본능적으로 끌린다.

    금씨 부인과 장양란은 하인들의 뒤를 따라 서둘러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큰며느리는 좋겠네. 금씨 부인이 입이 반쯤 벌어진 장양란을 힐끔거렸다. 시어머니인 자신에게도 없는 귀한 물건을 갖게 된 며느리가 부럽기만 하다.

    ***

    며칠 후에 포목점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외출 준비를 서두르는데 팽문이 와서 공자님이 뵙자는 말을 전했다.

    관음증 도둑 사건 이후로 처음 얼굴을 보는 거라 동경을 보며 머리를 한 번 더 단장하고 분첩도 한 번 더 두드렸다.

    서재 앞에 가자 외출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목선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출하시려는 거예요?”

    “그대와 갈 데가 있어요.”

    “어딘데요? 나도 중문 상가에 가 봐야 해요.”

    “왜?”

    “포목점에 숙제를 내줬거든요. 어떻게 답을 했는지 궁금해 죽겠어요.”

    “그건 조금 미룹시다. 이쪽이 더 중요하니.”

    이런 마초 같으니. 어쩌다 잠깐 만났는데도 가부장제 사회라는 걸 주지시키네. 내 용건보다 네 용건이 중요하다는 근거가 뭐야? 엉, 뭐냐고?

    “안용.”

    팽나무 아래 이르자 목선후가 내 어깨를 살며시 잡더니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목선후의 얼굴을 가까이 보자 또다시 분노가 피식 꺼져 버렸다.

    “잘 들으시오. 지금 만나는 분은 아주 중요하고도 무서운 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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