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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17화 (17/92)

17화. 그것뿐이야?

“네, 공자님.”

“죽여서는 안 된다.”

“네? 네.”

팽문과 일선이 시선을 교환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 맞아?’

‘응.’

‘웬일이야? 정말 화나셨나 봐.’

‘그래.’

눈으로 대화를 마친 일선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후 목선후와 팽문이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불같이 화를 내고 가 버린 안안용을 생각하자 목선후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떻게 달래지? 사실을 말할 수도 없는데.

안안용과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까의 태도를 보면 당분간 근처에도 못 갈 것 같다.

***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안씨 집안의 살림을 맡고 있는 안 총관을 불렀다.

“진남이라는 자를 알고 있나요? 부잣집 아들인데 좀 못 생기고 성격이 아주 개 같아요. 최근에 환성에 돌아온 관리의 아들이래요.”

이 정도 정보로 알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안 총관은 바로 알아챘다. 귀족 사회가 넓어 봐야 한 손바닥 안이라더니.

“상장군 진웅의 장남이 진남입니다. 상장군은 몇 년 전에 좌천되었다가 얼마 전에 다시 환성으로 돌아왔지요. 왜 그러십니까?”

“오늘 청운각에서 마주쳤는데 공자님께 아주 무례했거든요.”

“환성에 진남 공자님과 마찰이 없는 청년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망나니였어? 나는 또 목선후에게만 그러는 줄 알았지.

“나에게도 무례했어요.”

안 총관이 깜짝 놀라서 미간을 좁혔다.

목선후가 모욕을 당했다는 말에는 다른 공자들도 당했다, 식으로 말해 놓고 지금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

목선후와 나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어머니를 섬기다가 어머니에게 물들었나?

“아씨께 무례를요?”

“남장을 하고 갔더니 기생인 줄 알더라고요.”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진남이 내게 손을 댔다고 하면 문제가 커질까?

남편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내게 손을 댔다고 하면?

우리 오 여사님이 목선후의 머리 가죽을 벗기려 들지도. 물론 진남도. 세계평화를 위해 잠시 덮자.

“없었어요.”

“아, 네. 다행입니다.”

진남이 다행이라는 거야, 내가 다행이라는 거야? 안 총관은 뺨을 실룩거리며 가까스로 표정을 풀더니 공손하게 물었다.

“또 분부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없어요.”

안 총관을 보내고 커다란 나무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목욕을 했다.

간식을 먹으며 물속에 있자니 조금씩 마음이 풀어졌다.

오늘 청운각에 가서 두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삼 년 후 동생 중 한 명이 육 등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안안용의 남편 목선후는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

잘생기고 머리 좋아도 내 편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람.

살길을 찾아야 해. 안씨 학당을 발전시켜서 환성 최고의 학당으로 만들어 봐? 나는 등급을 볼 수 있으니 끝내주는 선생들과 학생들을 모을 수 있다.

잘하면 여기서도 친정과 시댁의 도움 없이 건물주가 될 수 있다.

물이 점점 식어서 그만 나올까 하는데 정오가 헐떡이며 들어왔다.

“아씨, 한인수 공자님이 오셨어요! 지금 주인님을 뵙겠다고 사랑채로 들어갔어요. 어떡해요.”

발을 동동 구르는 정오에게 팔을 흔들었다.

“괜찮아. 내게 생각이 있어.”

오늘 일로 목선후는 내게 빚을 졌으니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목선후가 간청하면 아버지도 허락하시겠지.

지금 심정으로는 목선후의 꼴도 보기 싫지만 필요할 때는 감정을 버리고 이성을 따라야지. 난 프로니까.

목욕을 끝내고 목선후가 주로 머무는 서재로 갔다. 원래는 오늘부터 저녁을 따로 먹으려고 했는데 할 말이 있으니 같이 먹기로 했다.

서재 문 앞에 서자 팽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흔적을 남겨서는 안 돼.”

무슨 얘기지? 뭐 하는데 흔적 타령이야? 말투로 봐서 목선후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누가 또 방에 있지?

“누구냐?”

문이 벌컥 열렸다. 나를 본 팽문이 문고리를 잡고 허둥댔다. 나도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하인 주제에 나에게 누구냐? 라고 소리쳤어?

너, 딱 걸렸어. 평소에도 은근히 오만하더니.

“아, 아씨.”

“내가 방해했니?”

“아닙니다.”

“정말?”

“예.”

꾸벅 인사를 한 팽문이 뒷걸음을 치더니 중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막 저녁 식사를 들고 중문으로 들어오던 말순과 부딪칠 뻔하면서.

“말순아, 식사를 이리로 가져와.”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목선후가 일어나서 다가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맑고 아름답고 빛나는 얼굴로.

훠이.

낮의 일로 끓어올랐던 분노가 사그라들까 봐 주먹을 꼭 쥐었다.

치얼 업, 안안용.

목선후가 울림이 있는 깊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녁 먹으러 가려 했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먹어요.”

나는 너에게 너무 실망해서 내 방에서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병아리 똥만큼도 없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았다.

목선후의 얼굴을 다시 보니 화가 이미 식었나 보다. 진짜로 참는 게 너무 쉬워서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런데 방을 은근히 둘러보아도 제3자는 없었다. 팽문이 혼잣말을 했나? 아니면 목선후의 음성을 잘못 들었나? 내게 한 말도 아니어서 모르는 척 넘어가고 본론을 꺼냈다.

“부탁드릴 게 있어요.”

밥을 두 번 정도 떠먹고 입을 열었다. 낮의 일이 미안했던지 목선후가 너그러운 표정으로 내 말을 기다렸다.

어디 내 말을 듣고도 너그러울지 보자고.

“한인수를 동생들 선생님으로 들이고 싶어요. 정 공자님도 좋은 선생님이지만 혼자서는 무리니까 한 분 정도 더 뽑을 생각이었어요. 한인수는 믿을 만한 사람이고 실력도 있어요.”

“내게 부탁할 게 그것입니까?”

“네. 공자님이 싫어할까 봐 부모님은 꺼리고 계세요. 지난번에도 말했죠. 한인수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어렸을 때 친했을 뿐이에요.”

“그대 말대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왜 굳이? 다른 많은 학자들 중에서 고르지 않고요?”

“형편이 어려워졌대요.”

“다른 방법으로 도울 수는 없습니까?”

자꾸 말을 돌리네. 싫은가 봐? 낮에 한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는데.

“공자님, 청운각에서…….”

“알았습니다. 내가 장인어른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과 표정을 읽은 목선후가 재빨리 대답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나는 만족한 웃음을 숨기고 젓가락을 들었다.

진남이 고마울 지경이다. 덕분에 한인수를 집 안으로 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음에 만나면 차라도 한 잔 사 줄까 봐.

화해의 표시로 목선후가 반찬을 집어 내 밥 위에 올려주었다.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한 수저 가득 밥을 떴다.

***

밥을 다 먹은 안안용이 나가자 서까래 위에 숨어 있던 일선이 가볍게 바닥으로 착지했다.

“아씨께서 들었을까요? 팽문의 음성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

“들었어도 무슨 뜻인지 몰랐을 거다.”

“공자님, 한인수가 들어오면 저, 그분께서 싫어하실 겁니다.”

“싫어하시겠지만 여기가 처가니 이해하시겠지. 사랑채에 가 봐야겠다.”

목선후가 일어서자 일선은 또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느새 돌아온 팽문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공자님. 아씨께서 오신 줄 몰랐습니다.”

“다음에는 조심해라. 여기는 명현당이 아니다. 명현당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여기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냐?”

“명심하겠습니다.”

“한인수가 아직 사랑채에 있느냐?”

“예.”

“가자.”

팽문은 평소보다 훨씬 조신하게 공자의 뒤를 따라갔다.

***

사랑채에서는 한인수와 함께 저녁식사를 끝낸 안부자가 차를 마시고 있다가 목선후가 가자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목, 목 서방. 무, 무슨 일로 왔나?”

“장인어른, 저녁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잘 했네. 이리로 앉게. 흠, 흠. 이 사람은 한인수라고 내 지기의 아들이야.”

안부자의 소개에 어색한 표정을 한 한인수와 목선후가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부자는 두 젊은이를 번갈아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은 쳐다보기에도 고귀한 핏줄의 사위고 한쪽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는 다 주고 싶은 친구의 아들이다.

물론 실제로 주지는 않을 거다.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흠, 흠. 목 서방, 인수가 아들놈들을 가르치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흠, 흠. 어,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정말인가?”

“네.”

“하하하, 아이고, 이제 한시름 덜었네. 하하하.”

과장되게 웃는 안부자를 한인수가 낯선 표정으로 응시했다. 친구의 아들보다 사위가 훨씬 어려운 상대인가 보다.

방 밖에서 귀를 쫑긋하던 말순이 별당으로 달려갔고 팽문은 아니꼬운 눈으로 방문을 노려보았다.

***

한인수가 들어오게 됐다는 소식을 말순으로부터 전해 듣고 당장 달려가서 만나고 싶었지만 하녀들이 뜯어말렸다.

“공자님께서 양보하셨으니 아씨께서도 자중하셔야죠.”

“가서 얼굴만 본다니까.”

가까이에 김인수인지도 모를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잠이 오겠어? 이건 정말 생명뿐 아니라 전생과 현생이 걸린 문제라고. 아니 이생과 내생인가?

이생 저생 구분하느라 흥분한 나를 하녀들이 기어이 붙잡아 앉혔다.

두부처럼 연약한 안안용의 몸은 하녀들의 손아래서 두부부침이 되어 침상에 눌러붙었다.

“그게 그거죠. 얼굴을 본다는 게 더 이상해요. 왜 외간남자의 얼굴을 보려고 하시는데요?”

“이번엔 공자님께서 허락하셨지만 원래는 안 되는 거예요. 아시잖아요.”

“왜 안 되냐니까?”

“아씨, 잘못하면 공자님께서 아시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뭘?”

“그걸 어떻게 말로 해요.”

“정오야, 난 생각이 안 나. 공자가 알면 안 되는 걸 모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말하면 그거야말로 큰일이잖아. 그러니까 말해 봐.”

홍시처럼 얼굴이 빨개진 정오가 입술을 꼭 물고 고개를 숙였다.

뭐야? 안안용, 무슨 짓을 한 거야? 한인수랑 친구라더니, 혹시 갈 데까지 간 거야?

안안용, 시대를 앞서 간 여인이었어?

“말순아, 네가 말해 봐.”

팽문을 짝사랑하는 말순은 연애 감각이 충만한 상태라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양 고개를 저었다. 정오가 말순의 눈치를 보더니 내 귓가에 입을 바싹 붙이고 속삭였다.

“두 분이서 이, 입을 맞추셨어요.”

“……?”

“…….”

“그래서?”

“예?”

“그것뿐이야?”

김이 빠져서 침상에서 벌떡 일어섰다. 괜히 두근댔잖아.

“뭐 별거라고.”

멍해진 정오를 제치고 방문을 열자 막 들어오려던 어머니와 마주쳤다. 아니, 들어오려던 게 아니고 방문 밖에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 가니?”

평소와 완전히 다른 어머니의 차디찬 태도에 말문이 콱 막혔다.

카리스마 쩌는 어머니. 이 모습이 오 여사의 본래 모습이겠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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