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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16화 (16/92)

16화. 죽여 버릴까요?

일 등급!

헤, 딱 봐도 젊은데. 저 미끈하고 하얀 이마와 맑은 눈동자를 봐. 오늘 여기가 특별한 장소라더니 맞긴 맞나 보다. 빙의한 후 두 번째로 일 등급을 봤다.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부채남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평범한 심의를 입고 길고 검은 머리를 목 뒤에서 묶었다.

하지만 주변에 힘을 좀 쓸 것 같은 남자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신분이 높거나 큰 부자가 분명했다.

부채남의 표정은 부채에 가려서 보이지가 않지만 내 집요한 시선을 느낀 호위 중 한 명이 나를 마주 노려보았다.

호위의 등급은?

뭐? 오 등급?

일개 호위의 등급이 오 등급이면 저 남자가 일 등급인 것도 이해가 간다. 부채를 좀 내려주면 좋을 텐데. 나이가 궁금해. 신분도 궁금하고.

저 남자도 나와 접촉을 하면 목선후처럼 등급에 고리가 생길까?

“아는 사람입니까?”

내 시선을 따라가던 목선후가 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궁금해서 본 거예요.”

“저 사람이 누구든 이번 향시에 합격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장소가 좁은 탓에 목선후와 어깨를 붙이고 앉아 있으니 목선후가 말할 때마다 내 이마에 입김이 닿았다. 중저음의 목소리도 듣기 좋다. 틈만 나면 목선후의 목으로 가려는 시선을 억지로 돌렸다. 진짜 목성애자야, 뭐야.

“안용, 나를 봐요.”

내가 고개룰 돌리자 목선후가 탁자 위에 올린 내 손등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돌려 목선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등급과 함께 지난번에 봤던 고리가 떴다.

이제 고리는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기까지 한다. 도대체 저게 무슨 뜻일까?

일종의 가르치는 능력이라고 임시 결론을 내렸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알고 싶어 미치겠다.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본 목선후가 안심하라는 듯이 손등을 두드렸다. 별 뜻 없는 손짓인데 진짜 안심이 됐다. 나는 손을 뒤집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내 손바닥의 감촉에 목선후의 턱이 움찔했지만 손을 치우지는 않았다.

장미가시를 뽑으면서 손끝도 스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던 때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삼 년 후에는 처남 중 누군가 이 자리에 와 있을 겁니다. 아니어도 또 길이 있을 거고. 그러니 너무 조바심을 가질 필요 없어요.”

목선후는 모른다. 그 처남들이 향시에 합격하는 일은 정말로 하늘의 별 따기임을. 차라리 등급을 모른다면 나도 너처럼 어느 정도 희망을 가졌겠지.

“만약 안 되면요?”

이 사람은 원래 청렴 가난한 사람이었으니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고대로 와서 힘들게 사는데 돈까지 없으면 어떡하냐고.

아무리 잘생긴 남편이라도 얼굴만 본다고 배부르지는 않잖아.

서양 속담에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달아난다고 했다.

그리고 안씨 집안이 망하면 돈 때문에 혼인한 목씨 집안에서는 이혼을 시킬지도 모른다.

안 돼! 절대 안. 돼. 돈도 목선후도 포기 못 해!

나도 모르게 목선후의 손을 꽉 쥐었다. 우리의 손가락이 깍지 끼듯이 엉키자 목선후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돌아보았다.

반짝이는 남자의 눈동자에 빠질 찰나.

“목선후? 아! 정말 자네였어.”

누군가 이렇게 소리치면서 마구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오더니 우리 앞에 의기양양하게 섰다. 이십 전후의 평범한 얼굴에 화려한 남색 비단 도포를 입고 허리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옥패를 찼다.

너,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이런 느낌이다. 이 시대라고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대단한 아버지의 아들 중 한 명. 일명 신의 아들 나는 흥미가 솟아 남자의 시선을 잡으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내 시선을 느낀 남자가 목선후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를 보자 그의 등급이 떠올랐다.

육 등급. 육 등급은 처음 봐서 호기심이 생겼다.

“의자 가져와.”

비단남이 뒤따르던 누군가에게 소리치자 곧 의자가 제공되고 그는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털썩 앉았다.

“몇 년 만에 보는데도 첫눈에 알아봤어. 역시 군계일학이라니까.”

왜 비꼬는 것처럼 들리지? 아니, 확실히 비꼬는 게 맞다.

한 달에 한두 명씩 꼭 이런 애가 학원에 오는데 거드름을 피우던 학부형이 나를 우러러보기까지 오 분이면 충분하다.

나는 학부형이 대놓고 젊은 여자 원장을 무시하고 학원의 크기를 대형학원과 비교해서 무시해도 절대로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저 카리스마가 절절한 눈빛으로 쏘아보면서.

‘너는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는 단어 몇 개로 추리를 하고 있어. 결국 마지막에는 너 스스로 짧은 소설을 한 편 쓰는 거지. 이러면 시험이 끝나고 나서 다 맞은 것처럼 느끼지. 실제로는 다 틀렸는데.’

‘맞아요. 정말 그래요.’

‘네 등급은 지금 오 등급일 거야.’

‘네, 네.’

‘여기 오면 한 달이면 한 등급은 그냥 올라가. 내가 문제를 푸는 요령을 가르쳐 주거든.’

그동안 영알못인 엄마에게 실력을 뻥튀기했던 학생의 풀죽은 눈빛과 학부형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짓는 나.

거의 신기가 있어 보이는 원장님을 보며 학부형은 주저하지 않고 카드를 꺼낸다.

눈앞의 남자는 현대의 치맛바람과 고딩들에 비하면 껌이다. 어떻게 요리할까 궁리하는데 목선후가 내 손을 꼭 잡더니 입을 열었다.

“진남, 여기서 뭐 하나?”

냉정한 어조다. 친한 척 다가왔지만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은 사이구나.

“부친께서 영전하셔서 환성으로 돌아왔어. 나도 이번 향시에 급제했다네. 이왕 시험 보는 김에 바로 전시를 치르고 싶은데 부친께서 삼 년 후를 기약하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러기로 했지.”

전시를 볼 실력이 못 돼서라고는 절대로 말 안 하지. 가소로워서 웃음이 나왔지만 입술을 꼭 붙였다. 허세남에게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으니까.

진남이 육 등급인데 상급 시험인 전시를 포기했다면 향시의 안정권이 육등급이상이란 뜻. 등급외 동생들이 삼 년 안에 최소 육 등급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사실 나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팔 등급이나 칠 등급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에휴, 쉽지 않겠어.

그때.

“너는 어느 집 기생이냐? 곱상하구나.”

미처 막을 틈도 없이 진남이 통통한 손을 앞으로 쓱 뻗더니 내 턱을 손바닥으로 쓸어 올렸다.

너무 기습적이라 멍해진 사이 목선후가 진남의 팔을 쳐 냈다.

나는 뒤늦게 분노가 밀려와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세가 있는데? 계집이 아니라 사내였어? 난 또 남장 여자인 줄 알았지.”

나 여자 맞거든? 이 새끼, 너는 두 가지 잘못을 했어. 내 성별을 바꾼 거하고 그 더러운 손을 내 얼굴에 댄 것.

“공자님.”

무섭게 굳어 있는 목선후를 불렀다.

네가 어떻게 안 하면 내가 할 거야. 수백 명의 학부형을 일 대 일로 만났어도 내 몸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갑시다.”

내 표정을 본 목선후가 시선을 피하더니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역시 사내가 아니라 계집이 맞네.”

진남이 서 있는 우리를 보며 뒤를 향해 소리쳤다.

“술을 가져와라.”

“넵.”

“앉아, 앉아. 네가 따라 주는 술을 마셔 보자. 얼굴이야 목선후가 낫지만 나머지는 이 공자님이 훨씬 낫지. 어떠냐? 내게 오지 않겠느냐?”

진남의 목소리가 커서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 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내 손목을으스러져라 잡고 있는 목선후와 수많은 남자들의 시선과 눈앞의 돼지새끼 때문에 뜨거운 열기가 내 목과 뺨을 달궜다.

“이, 이대로 가자고요?”

어이가 없어서 목선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봐, 계집. 그 손을 놓고 당장 내게 오면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주겠다. 비단옷? 패물? 집? 말만 해라. 이 공자님이 네 옷고름을 푸는 날…….”

그 순간 옆에서 구경하던 누군가가 앞으로 넘어지며 진남을 덮쳤다. 고개가 꺽인 진남과 넘어진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누가 밀치는 거야?”

“비키지 못해? 이 자식 너 뭐야?”

가까스로 일어선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돼서 두 손을 휘저었다.

“나도 모르오. 누가 나를 밀쳤소.”

“누가 밀었다고 그래? 자기가 혼자 넘어져놓고.”

“누구야?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찾아내면 가만 안 두겠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찾겠소?”

“그러게.”

시끄러운 아우성을 뒤로 하고 나는 목선후에게 이끌려 청운각을 나섰다. 우리가 나가자 마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오와 말순이 다가왔다.

“아씨!”

아직까지 잡고 있는 목선후의 팔을 세차게 뿌리쳤다.

“비겁해!”

어느새 나타났는지 팽문도 목선후 뒤에 있다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냥 나올 수가 있어요! 그 나쁜 놈이 나를 모욕하고 나를 추행했는데 어떻게 그냥 두냐고요!”

“안용.”

“그러고도 내 신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남이라는 개망나니가 내 얼굴을 손대고 모욕했다는 사실보다 그 상황을 무력하게 보기만 한 목선후에게 더 화가 났다.

목선후가 무언가를 해 주기를 기다리다 그 미친놈에게 아무런 반격을 못 했다는 사실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런 사람을 믿고 어떻게 사냐고!

“얘들아, 집에 가자.”

나는 마차에 탄 후에 목선후가 탈 기회를 주지 않고 마차의 문을 닫아 버렸다. 도저히 좁은 마차 안에서 목선후와 나란히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목선후, 가죽 신발이 닳도록 걸어왓!

***

멀어지는 마차를 보던 목선후가 걷기 시작하자 팽문이 조용히 뒤따랐다. 두 사람이 어두운 골목에 들어서자 담벼락 아래의 그림자 속에서 일선이 불쑥 나타났다.

일선 역시 청운각에서의 일을 똑똑히 보았다. 마지막에 탁자 옆에 있던 남자를 진남 위로 밀친 사람이 일선이었다.

주군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참지 않을 것 같아서 수를 썼다.

명령이 없으니 대놓고 나서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피를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상장군의 아들 진남은 과거에도 여러 번 아무 이유 없이 목선후를 괴롭혔다. 주목을 받아서는 안 되는 목선후가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고 피했기 때문에 더 무시했다.

“공자님, 이참에 죽여 버릴까요?”

“…….”

일선의 물음에 목선후가 대답을 하지 않자 팽문이 참견했다.

“지금까지 살려 둔 게 아까워서 안 돼. 죽이려면 처음에 죽였지. 다리만 부러뜨리는 걸로 하지. 바닥을 북북 기어 다니게. 어떻습니까, 공자님?”

“다른 일도 아니고 아씨를 모욕했는데 다리만요?”

일선이 불만스레 입을 내밀었다. 진남을 처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상장군의 집에 몰래 침입해도 되고, 진남이 외출했을 때 사고처럼 처리해도 된다. 어떤 방법을 쓰든 평범한 선비인 목선후에게 혐의가 돌아갈 일은 없다.

생각에 잠겨 있던 목선후가 입을 열었다.

“일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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