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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14화 (14/92)

14화. 검은색은 불길해

“지금 나를 놀리는 겁니까? 아니면 죽이려는 겁니까?”

“왜, 왜 그러세요?”

사람을 함부로 살인미수범으로 만들고 그러냐?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눈앞의 남자가 성질이 까칠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하는 줄 알았다. 잘난 남자가 성질 좋기란 엄청 힘든 일이니까.

도대체 닭 한마리가 사람을 놀리거나 죽이거나 할 수 있는 일이 뭐란 말인가? 게다가 죽은 닭이.

하지만 목선후의 다음 말 때문에 항의하려는 혀를 꽉 물었다.

“내가 옻이 오른다는 사실을 알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오골계탕에는 옻나무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설마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몰랐다고 부정하면 내 정체에 의심을 품을 테고 안다고 인정하면 남편에게 옻 알레르기를 일으키려 한 악처가 되는 건데.

쳇, 오골계 탕에 옻나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현대인인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오골계도 마트 정육코너에서 랩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로만 봤는데.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옻이라고는 나전칠기에 칠해진다는 사실만 안다. 친구네 할머니 방에 있는 눈부시게 화려한 나전칠기 장롱을 보면서 딱 한 번 설명을 들었다.

나는 검은 닭이 반신욕을 하고 있는 검은 물을 신중하게 내려다보았다.

이게 옻이라면 왜 나전칠기를 칠하지 않고 닭을 칠하고 있는 걸까? 목선후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더 화를 낼 것 같아서 나중에 어머니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어머니, 그냥 평범하게 흰 닭에 흰 인삼을 넣어주시지.

흰색은 결혼식, 검은색은 장례식이라고요.

알레르기는 꽤 심각한 문제이므로 상큼하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깜빡했어요.”

“거짓말 마시오.”

내 사과를 개무시한 목선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검은 닭을 멍하니 노려보다가 내일 청운각의 시회가 떠올랐다.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면 꼭 가야한다.

방문 앞에 서 있는 말순을 불렀다.

“주방에 가서 다른 요리를 준비해 달라고 해. 최대한 빨리. 공자님이 옻 알레르기가 있으니까 오골계탕 근처도 안 간 것으로 달라고 해.”

“네? 옻 뭐라고요?”

“공자님이 옻을, 옻…….”

옻을 입다? 옻이 타다? 옻에 걸리다? 동사가 뭐야? 아까 목선후가 뭐라고 했는데 너무 놀란 탓인지 까맣게 잊어먹었다.

“아! 공자님께서 옻이 오른다고요? 어머나, 그러면 저 오골계탕은 못 드시잖아요.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러니까 빨리 가서 다른 요리를 달라고 해. 공자님께서 배고프시겠다.”

“네.”

말순이 뛰어가고 나는 다시 식탁에 앉았다.

눈앞의 검은 닭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왔다.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들고 가슴살 한 조각을 집어 들다가 멈칫했다. 나도 옻 알레르기가 있으면 어떡하지?

아니지. 오 여사는 안안용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 안안용이 옻 알레르기가 있으면 오골계탕을 해 주지 않았을 터.

나는 안심하고 검은 닭의 살점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닭고기에서는 낯선 향기가 나긴 했다. 이게 옻인 모양이다.

먹다 보니 양념치킨과 맥주가 생각났다. 언젠가는 내가 직접 양념치킨을 해 먹어봐야겠다.

닭 한 마리를 반쯤 먹었을 무렵 말순이 새로운 식사를 들고 왔다. 내가 시킨 대로 술병도 하나 있다.

말순을 데리고 목선후의 방으로 가니 불이 꺼져 사위가 컴컴했다.

“서재에 계시나 봐요.”

“그래.”

역시 서재에서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팽문이 문 앞에 서 있다.

팽문의 표정이 좋지 않다. 내가 알면서도 옻이 든 오골계탕을 준 거라고 여긴다.

“저기, 배고프죠?”

일단 방으로 들어가서 한쪽에 놓인 다탁 위에 요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이미 배가 불렀기 때문에 먹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상은 이 인분이다.

나도 안 먹은 걸로 해야 조금 유리하지 싶어서 배고픈 표정을 지어 냈다.

“공자님이 안 드시면 나도 못 먹는데. 진짜 배고파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중얼거렸다. 열여덟 청춘아, 힘을 내 봐.

이 미모에 이 재력으로 남자 하나 못 꼬시니?

아, 그렇지. 목씨 집안은 머리가 좋아야 반하는 집안이었지. 그런 점에서는 나랑 비슷하네.

빨리 천자문을 떼고 사서오경으로 들어가야겠다. 목선후와 삐그덕거리는 관계가 점점 버겁다. 안씨 집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애지중지 하는데 정작 제일 가까워야할 남편과는 남보다 더 못하다. 이게 참 피곤한 일이었다.

나는 술병에서 술을 한 잔 따라서 입에 털어 넣었다. 굉장히 맛있어서 또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술잔 크기는 꼭 소주잔만 한데 모양만 공기처럼 동그랗다.

원래는 목선후를 달래려고 가져오라고 한 술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마시니 혀에 착 감겼다.

소주와 포도주의 중간 맛에 끝 맛은 보드카 같다. 혀로 맛을 음미하면서 다시 술병을 드는데 목선후의 옷자락이 눈앞에 확 다가왔다.

“그대가 사서오경을요? 그런 날이 오겠습니까?”

헉, 내가 소리 내어 말했나? 다탁에 와서 앉는 목선후를 멍하니 보며 무슨 말을 소리 내어 했는지 더듬어봤다. 모르겠다.

“이러다 정말 바보 되겠어요. 자꾸 생각이 안 나요.”

내가 방금 한 말도 생각이 안 나고 눈앞에 앉은 이 스무 살밖에 안 되는 초초 미남의 표정도 못 읽는다.

이러다가 진짜 바보 안안용만 남고 나는 사라지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코끝이 찡해졌다.

김인수를 구하려던 행동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건 본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시대로 와서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친정이 부자고 안안용의 부모가 좋은 사람이어도 나는 안안용이 아니니까 자꾸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매사에 화를 내고 오해를 한다.

현대처럼 뻥 하고 발로 차버릴 수도 없는데.

여자에게 주도권이 쥐뿔도 없는 시대로 떨어져서 눈치만 보고 있으니 정말 내 자신이 불쌍해 죽겠다.

“정말 까먹었어요. 정말이라고요.”

네가 옻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으면 좀 어때? 어쨌든 안 먹었잖아. 왜 매번 화를 내는 거냐고.

“사람이 진심을 가지고 말을 하는데 왜 안 믿는 거예요?”

나는 술병을 들어 술잔을 채웠다. 목선후가 내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이젠 술까지 못 마시게 하는 거야?

나는 이미 가득 차 있는 술잔마저 빼앗기기 전에 재빨리 입에 털어 넣었다. 빈 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려들어가는 혀에 힘을 주었다.

“더 줘요. 술.”

목선후가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술주정이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내 친구들은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대는 취했어요.”

“하! 세 잔밖에 안마셨어요. 내 주량이 소주 세 병이라고요. 취할 리가 없어요.”

“빈속이라 그래요. 그만 마셔요.”

“빈속 아니에요. 그 시커먼 닭을 다 먹었다고요. 아주, 아주, 아아주 맛있었어요.”

“또 거짓말을 했군요.”

“아이 씨, 거짓말 안 했다니까. 제발 한 잔만 더 줘요. 딱 한 잔 만요.”

“안 됩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이 사람에게 술을 구걸하지? 여기는 내 친정이고 나는 이 집의 귀한 외동딸이다. 안안용이 원하는 것을 부모님은 거절하지 않는다.

딱 한번 거절했다. 한인수와 혼인을 거절하고 이 남자와 혼인을 시켰다. 나를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막는 이 남자와.

“됐어. 됐다고. 내가 알아서 마시면 돼.”

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몸이 비틀거렸고 바닥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했지만 운전대를 잡을 거 아니니 상관없었다.

내 생각은 안안용과 본래의 나 사이에서 시소를 탔다. 한 순간은 안안용의 기억이 다음 순간에는 내 경험이 번갈아 떠올라서 점점 속이 불편해졌다.

“아씨, 소인이 모실게요.”

“말순아, 대리 불러 줘.”

“……?”

“아니다. 이 차 가자. 이 차.”

“아, 아씨!”

“두 잔도 아니고 딱 한 잔만 더 마시면 돼. 안 그럼 너무 빨리 깬다고.”

“아씨, 조심하세요.”

넘어지려는 내 팔을 말순이 잡아 당겼다. 무슨 방문턱이 이렇게 높지? 손님이 여기에 걸려 넘어지면 이 술집은 배상을 꽤 많이 해야 할 걸?

“이 차 가자니까. 싫어? 그럼 편의점에서 술을 사 가지고 집에 가서 마시자. 안주는 매운 닭발. 아씨, 문턱이 왜 이리 높아.”

발목에 힘이 없어 문턱에서 자꾸 걸렸다. 내가 문턱을 발로 차자 나를 부축하던 말순이 힘에 부쳤는지 정오를 불렀다.

“정오야, 얼른 와서 아씨를 부축해 줘.”

그 순간 내 몸이 붕 하늘로 떠올랐다. 목선후가 나를 가뿐하게 들어올렸다.

남자의 단단한 팔과 가슴속에 폭 싸이자 기분이 좋아졌다. 허공에 뜬 건 같은데 옥상에서 거꾸로 떨어질 때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목선후는 보기에는 날씬했는데 가슴 근육이 장난 아니게 단단했다.

두 팔을 뻗어 목선후의 목을 감았다.

너무 편하고 포근해서 이대로 한없이 걸어갔으면 싶다.

“내려놓지 마. 응? 나 버리지 마.”

가까스로 눈꺼풀을 올려 눈의 초점을 맞추자 까만 밤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들이 크리스마스 추리 장식처럼 반짝거렸다. 예쁘기도 해라.

나는 지금 현대로 돌아와서 모처럼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하고 고급스러운 내 차 뒷좌석에 앉아 집에 가고 있는 중이다.

넘실대는 한강물이 보이고 아름다운 성수대교의 불빛이 차창에 어른거린다. 현대에서의 삶은 미치도록 바빴지만 부모님이 안 계신 걸 빼면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깨어나고 싶지 않아.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어. 목선후,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줘.

조금만 더.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자 평안한 잠이 찾아왔다. 나는 이 세계로 온 후 가장 편안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안안용을 침상위에 내려놓은 목선후는 정오와 말순이 안용의 옷을 벗기려 하자 서둘러 방을 나왔다.

여인의 체온이 남은 팔과 가슴을 밤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목에 닿은 안안용의 흰 이마와 코끝을 감도는 여인의 체향에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공자님, 저녁 식사가 식겠습니다.”

“알았다.”

목선후는 서재로 돌아와 다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아까 안안용의 손에서 뺏은 술병이 눈에 들어왔다. 목씨 가문은 가풍이 엄격해서 어른이 내리는 술이라거나 연회자리의 공식적인 술이 아니면 거의 마시지 않는다.

어사중승은 식사 중간의 반주조차도 싫어했다.

목선후가 자신 앞에 놓인 술잔에 천천히 맑은 술을 따랐다. 향기를 맡아 보니 꽤 독한 백주다. 이걸 세 잔이나 마셨으니.

나를 버리지 말라고? 그녀가 한 말은 대부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몇 마디는 그의 가슴을 콕 찔렀다.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늘 오만하고 거칠었던 그녀의 행동 이면에는 이런 불안감과 외로움이 숨어 있었던가?

그것도 모르고 마주칠 때마다 비아냥대고 핀잔을 줬다. 모든 게 첫날밤 때문이다. 한 번 나쁜 인상이 박히면 웬만해서는 바뀌지가 않는 법이니까.

물론 그녀는 바꾸려고 시도조차도 안 했다. 얼마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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