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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8화 (8/92)

8화. 과연 그가 올까

어머니와 내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는 멀쩡한데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 애가 또 왜 왔을까? 너는 꼼짝 말고 여기 있거라. 아니다, 안채로 들어가 있거라. 내가 나가 보마.”

새로 꾸민 안씨 학당은 대문에서 가까운 사랑채 옆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나를 더 안쪽인 안채로 밀고 자신은 대문으로 향했다.

“한인수 공자님께서 왜 오셨을까요? 지난번에 그렇게 수모를 당하셨으니 다시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인수? 뭔가 굉장히 익숙한 이름인데.

“한 공자 이름이 인수라고?”

“……?”

내가 한 공자의 이름을 되묻자 정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순을 돌아보았다.

“아씨, 왜 그러세요? 무섭잖아요.”

“나가 보자.”

“어머나, 안 돼요!”

“얼굴만 볼게.”

왠지 조급해져서 대문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익숙지 않은 긴 치마와 비단 신발 때문에 걸음이 비틀거렸다.

“안 돼요, 아씨. 이제 아씨는 혼인한 몸이라고요.”

누가 뭐라니? 세상 잘난 남자와 혼인한 거 나도 알아. 감지덕지하고 있다고.

말순이 내 손목을 움켜쥐고 정오가 내 앞을 막아섰다.

“얼굴만 본다니까. 확인할 일이 있어서 그래.”

“아씨.”

“비켜라.”

내가 엄숙하게 명령하자 놀란 말순이 내 손목을 놓았다. 하지만 내가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어머니가 돌아왔다.

“너, 안 들어가고 뭐 하는 거냐?”

“어머니, 한 공자는 갔어요?”

“그래, 갔다.”

“왜 왔는데요?”

“우리집에서 애들 선생을 구한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이더라. 그 애가 상인 집안답지 않게 학문이 깊었지 않니. 에휴, 꼴이 말이 아니더구나. 마음이 아파서 혼났다.”

“어머니, 그러면 동생들 선생으로 고용하면 안 될까요? 한 분으로는 부족한 거 아시잖아요.”

“그러게, 왜 한 명만 골랐니?”

나머지는 기준 미달이었거든요. 처음에 잘못 가르쳐놓으면 고치기가 더 힘들답니다.

어차피 선생을 더 채용할 생각이었다.

“어머니, 한번 고려해 보세요. 중문 상가가 날아가면 우리 집도 한씨 집안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좋은 선생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잖아요.”

중문 상가라는 말에 어머니의 안색이 변했다.

“아버지에게 상의해 보마.”

“꼭 부탁드려요.”

김인수 때문인지 인수라는 이름을 듣자 친근감과 조바심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비논리적이지만 어떻게든 현대의 나와 관계된 무엇인가가 여기에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

온 가족이 하는 저녁 식사가 끝나고 동생들이 학업 보고를 한 다음 각자의 방으로 물러가자 나와 부모님만 남았다.

아버지가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용아, 혼인한 지 얼마 안 된 네가 불미스러운 이유로 친정에 와 있다는 소문이 퍼졌구나. 소박맞았다느니, 이혼당했다느니 말이 많다. 덕분에 내가 한 내기도 환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어.”

아버지는 처음에는 내기에 대해 소문이 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며칠 지나자 자포자기하신 듯 내버려 두었다.

아버지와 계약을 한 사람은 신비문파인 풍월문의 문주 궐향으로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소문이라 들불처럼 성내에 번지고 있다.

“사실이 아니면 되죠. 우린 떳떳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안다. 하지만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겠니?”

“남들 생각까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죠. 제 책임도 아니고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단다. 그래서 내가 목 서방에게 서신을 보냈다.”

“…….”

“당분간 목 서방도 여기서 지내면 어떠냐고 했다. 목 서방이 장남도 아니고, 신혼에 처가에서 지내는 게 그다지 흉도 아니니 와서 지내면 좋겠다고 했다. 우환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어쨌든 중문 상가 문제도 있고, 아이들의 공부도 좀 봐주면 좋겠어서 말이다.”

“그래서요?”

“아직 답이 오지 않았다.”

“마침 별당을 새로 단장하지 않았니? 너희가 쓰면 딱 맞겠구나.”

어머니가 거들었다. 두 분 다 안안용이 거부할까 봐 슬슬 눈치를 보는데 남의 귀한 딸의 몸을 가로챈 터라 양심이 따끔거렸다.

어떻게든 이 좋은 분들을 힘들게 하거나 슬프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네, 그럴게요.”

“정말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꼭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 침 발라 놓은 남자가 내 홈그라운드에 들어온다는 건데.

하지만 과연 그가 올까?

“그런데 목 서방이 올까요?”

“안 오면 네가 시댁으로 다시 가야지. 소문을 그대로 두면 안 되는 법이다.”

“애들 공부는 어떡하고요. 제가 없으면 선생님들이 계셔도 공부를 안 할 거라고요. 중문 상가가 걸려 있는데.”

중문 상가라는 말이 나오자 아버지가 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내게 눈을 끔벅였다. 그러니까 왜 그런 커다란 일을 벌이셨냐고요.

어머니가 다시 폭발하기 전에 아버지가 얼른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안용아, 왜 정 공자를 선생으로 뽑았느냐? 향시에 합격하거나 선생 경험이 많은 이들도 있었다면서?”

그야, 그들의 진짜 등급을 알기 때문이죠.

“질문을 해 보니 이 사람이 가장 아는 게 많더라고요. 염려 마세요, 아버지. 결과가 말해 줄 거예요.”

내가 학원을 경영할 때 처음부터 인기 있는 강사는 없었다. 이미 이름난 강사는 강사료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스카웃하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내가 채용한 강사들은 무명이거나 초보였지만 탄탄한 실력과 뜨거운 열정으로 강의를 엄청나게 잘해서 자신들을 발굴해 준 내게 갑절로 보답했다.

“아버지, 두고 보세요.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니까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등급외인 안안용이 너무 똑똑해서 놀라셨나?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다고 굿판을 벌이거나 하면 곤란하니 다음에는 이 똑똑한 머리를 자제해야겠다.

자신 있게 들었던 손을 주춤주춤 내려놓는데 어머니가 내 어깨를 툭 쳤다.

“호호호, 얘는, 여전히 허풍을 잘 떠는구나. 누굴 닮았는지, 참.”

“하하하, 안용아, 아버지는 언제나 네 편이다. 네가 말한 대로 안 되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네.”

안안용이 허풍을 많이 떨었구나. 원래 무식하면 무식한 것을 감추려고 더 아는 체하는 법이지. 이해해, 나님.

독선이라는 말을 독을 넣었다고 해석한 참신함에다 허풍이라.

“그런데, 저기, 아버지. 한 공자 말인데요.”

“얘, 안용아. 너 이제 그만 건너가거라.”

내가 말을 꺼내자 어머니가 눈을 끔벅이며 신호를 했다. 내가 없는 새에 말할 계획이구나.

“네, 저는 이만 물러갈게요. 두 분 편히 쉬세요.”

눈살을 찌푸리며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어머니가 중문 상가를 들먹이며 협상을 잘하셔야 할 텐데.

***

목선후의 안씨 집안 방문을 위해 팽문이 짐을 싸는 동안 일선은 안씨 장원의 구조가 세세하게 그려진 종이를 책상 위에 폈다.

“공자님과 아씨는 여기 이 별당에 머무실 겁니다. 안채와 사랑채 중간이고 정문보다는 후문이 더 가깝습니다. 소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자님을 호위할테니 안심하십시오. 그리고 아씨께서 불편하시더라도 별당의 하녀는 정오와 말순 외에는 허락하지 마십시오.”

“꼭 가야 하느냐?”

복잡한 안씨 집안의 구조를 순식간에 파악한 목선후가 고개를 들며 미간을 좁혔다.

“안 그러면 첩을 들이셔야 될지도 모릅니다.”

일선은 공자의 손등에 남은 희미한 흉터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분께서 저 상처를 보셨다면 아씨의 목이 지금까지 붙어 있었을까? 그런 분이니 목선후에게 첩을 밀어 넣겠다고 마음먹으면 말릴 사람이 이 나라에는 없다.

“치우거라. 다 외웠다.”

공자의 말에 일선이 지도를 둘둘 말아서 소매 속에 넣었다.

일선이 나가자 책상 앞에 앉은 목선후는 지난 며칠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안안용을 떠올렸다.

의외였다.

다시 저녁 식사 시중을 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는 내심 긴장했다. 의도적인지 원래 그런 성품인지 말과 행동이 너무 거칠고 무례했던 안안용이었기에 혼인한 이후로 가족 중 누구와도 친근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두의 우려를 비웃듯이 봄 감기에서 회복된 안안용은 차분하고 단정한 태도를 보였다. 아침 문안을 올릴 때는 분명 힘들어 보이는데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얌전을 떠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첫날과 다름없이 똑같은 시간에 나와서 아침 문안을 드리거나 저녁 식사 시중을 들었고 그가 염려했던 무례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새 그도 긴장이 풀리고 가족들의 냉정한 시선도 누그러졌다.

그런 와중에 장인어른의 내기 사건이 일어나 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친정으로 짐을 싸서 가 버렸다.

그녀를 안 보게 되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이지 않으니 무엇인가 허전했다. 별거 아니야. 아침, 저녁으로 마주치다 보니 익숙해졌던 것뿐. 목선후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갈무리했다.

이제 또 매일 보겠군. 친정에서는 어떻게 행동할까?

***

다음 날 오전 공부를 끝내고 교실을 나오니 말순이 기다리다가 목선후가 왔다고 전했다.

거절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다.

시아버지가 어사중승이라는 중책을 맡은 관리이므로 나쁜 소문을 피하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르신께서도 들어오셔서 점심을 같이 하시려고 기다리십니다. 어서 가세요, 아씨.”

“누이, 우리도, 우리도 갈게. 응? 우리도 매형 보고 싶어.”

네 명의 동생들이 내 팔에 매달렸다. 정 선생은 흥미 있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너희는 저녁에 봐. 이런 일로 시간표를 어기면 안 돼.”

단호하게 동생들을 떼어 놓았다. 한 번 학교에 들어오면 나가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지. 엉덩이가 거듭나야 성적이 오르는 법이라고.

“어서요. 아씨, 이미 오래 기다리셨어요.”

말순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너 왜 이렇게 서둘러? 팽문이 때문이니?”

“어떻게 아셨어요?”

말순이 놀라서 우뚝 섰다. 아, 순진한 이 시대 사람들. 한국 아침 드라마 한 편만 완주해도 이 정도는 그냥 알게 되는 거라고. 그냥.

“근데 그 애는 너 좋아한대?”

지금까지 나는 고개 숙인 팽문을 지나치기만 했다. 생각은커녕 얼굴도 제대로 못 봐서 말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모, 모르겠어요.”

귓불이 빨개진 말순과 사랑채의 중문을 지나자 막 마루를 내려오던 팽문과 마주쳤다. 말순이 좋아한다니 아무래도 눈여겨보게 된다.

팽문은 빛바랜 푸른 하인복을 입고 머리는 하나로 묶어서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냈다. 단정하고 절도 있는 움직임이 하인치고는 꽤 품위가 있다.

“아씨, 오셨습니까?”

나를 본 팽문이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팽문의 등급이 팟! 떠올랐다.

사, 사 등급?

잘못 봤나? 아닌데? 제대로 봤는데?

말이 돼? 마당쇠 수준이 목이후와 같다고? 게다가 색도 좀 이상하다. 현대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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