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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수능 명강사의 비밀-7화 (7/92)

7화. 너두 빙의했니?

사 등급?

오호, 지금까지 만나 본 후보 중에서 제일 높다. 나이는 제일 젊은데.

목이후와 비슷한 실력으로 지금껏 관직에 나가지 못하다니 시험 운이 몹시 나쁜 사람인가 보다.

게다가 외모도 훈훈해서 학생이 공부에 몰입하기 딱 적당하다.

“더 이상 시간을 늘리기는 어렵고 환경을 바꾸거나 선생을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급하게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시대 과거시험은 교재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변화를 주려면 환경이나 선생을 바꾸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나는 미리 그 길도 막았다.

“절이나 서원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됩니다. 선생도 안 바꿀 거고요. 그러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배우는 방법을 바꿔야지요.”

“어떻게요?”

“주로 앉아서 몸을 흔들며 외우지 않습니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후원을 거닐면서 외워도 되고, 벽에 글귀를 붙이고 방 안을 거닐면서 외워도 됩니다.”

카드를 만들어서 외우면 더 좋다. 나는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앞에는 과일 그림이 있고 뒤에는 알파벳이 쓰인 작은 카드를 가지고 놀면서 배웠다.

산책을 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였다. 감히 정 공자를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특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5번 후보가 방을 나가자 정오가 들어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씨, 저 선생님은 너무 잘생기셨네요.”

“가르치기도 잘할 것 같아.”

“정하신 거예요?”

“왜 네가 좋아해?”

“헤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잖아요.”

“오늘 애들 선생님 후보는 이제 끝이지?”

“네. 마님께서 얼른 안채로 오시래요. 새로운 비단이 들어왔다고요.”

“어제 들어왔는데 또?”

“그럼요. 아직 몇 벌 더 마련하셔야 된대요. 단오에 아씨께서 제일 예쁘게 보이셔야 하니까요.”

오씨 부인은 취미는 외동딸을 예쁘게 꾸미기이다. 안안용이 두어 달 시댁에 있는 동안 억지로 참았던 욕구를 지금 정신없이 충족시키는 중이다.

나 역시 꽤 즐겁다. 돈과 시간과 퍼스널 쇼퍼까지 있는데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동생들을 쥐어짜야 하는데 빙의하기 직전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나는 죽었지만 김인수는 어떻게 됐을까? 9층 옥상에서 떨어졌으니 그 애도 죽었겠지?

겨우 고3인데.

인수가 고1 3월 모의고사가 끝난 직후 우리 학원에 왔을 때 눈동자를 보자마자 일 등급이 떠올랐다. 그런데 3월 모의고사에 오 등급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에게 확신을 주고 자신감을 갖게 하려고 일 등급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이기도 했고.

2학년 3월 모의고사에서 드디어 영어 1등급을 찍었다. 단 일 년 만에 네 단계를 건너뛴 것이다.

다른 과목은 모의고사의 범위가 그때마다 정해져 있지만 영어는 범위가 따로 없다.

난이도만 조금씩 높아질 뿐이므로 영어 모의고사는 벼락치기가 전혀 안 통한다. 수능 모의고사 등급이 진짜 영어 실력이다.

그런데 뒤늦게 사춘기가 온 아이는 방황하기 시작했고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일 년 만에 오 등급에서 일 등급을 찍은 아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성적이 곤두박질을 쳤으니 나도 그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부부 의사인 인수의 부모는 아이의 성적이 올랐다가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할 수 없는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아이잖아요. 증명됐잖아요. 일 등급을 맞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고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다시 사 등급이에요. 이건 자신에 대한 책임 회피고 직무 유기란 말입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고요. 부모로서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인수 아버지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런가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꼭 능력대로 살 필요가 어디 있나요?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내버려두면 안 되나요? 좀 부족하면 어때요. 좀 늦으면 어때요. 좀 등급이 낮으면 어때요.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이렇게 되받아치지 못했다.

야구 선수처럼 우람한 체격의 인수 아버지는 나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인수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맞고 사는 줄은 몰랐다. 알았더라면 절대로 일 등급으로 올려 주지 않았을 것이다.

***

팽문은 명현당 누각에 올라 별채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목 공자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초라한 나무 동곳에 나무 비녀를 꽂고 있어도 주군은 빛이 났다. 하지만 주군은 자신을 드러낼 수도 없고 드러내서도 안 된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인지.

“공자님, 안씨 장원으로 유생들이 한 명씩 불려 가고 있다고 합니다.”

“궐향이라는 자는 알아봤느냐?”

“그자는 머물고 있는 집에서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후가 누구인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몇 놈이더냐?”

“일선이 말로는 기척을 숨긴 자가 열, 드러내놓고 있는 자가 열 명이랍니다. 궐향이라는 자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고요.”

일선은 목 공자를 보호하는 비밀 호위 중 첫째다. 그가 한 말이니 믿을 만하다.

“궐향이란 자가 풍월문의 문주인 건 맞고?”

“풍월문의 문주 이름이 궐향인 건 맞지만 안 부자님과 계약한 자가 진짜 궐향인지는 모릅니다. 풍월문이 좀처럼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얼굴을 아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풍월문은 바람과 달처럼 일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다는 신비문파다. 사람들에게 나타나지는 않아도 오랜 역사 때문에 신뢰를 받고 있었다.

“장인어른이 가짜에게 당할 분은 아니지.”

“네.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하신 일은 어떻게 됐는지 그분께서 하문하셨습니다. 아씨께서 친정으로 돌아가신 소식을 들으신 모양입니다.”

“…….”

“소인은 이만 물러가옵니다.”

팽문은 딱딱하게 굳은 목 공자의 등에 인사를 하고 뒷걸음으로 물러 나왔다.

공자님과 아씨의 사이가 이토록 나쁜데 그분은 공자님이 어서 후사를 잇기를 바란다. 아씨가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듣고 매우 화를 내고 첩을 들여야겠다고 호통을 쳤다.

공자님께 이 말까지는 차마 전하지 못했지만.

***

사 등급 정 공자를 선생으로 채용하고 공부방을 꾸미고 커리큘럼을 짰다.

사흘 만에 중문 상가 사수 안씨 학당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의 기간은 3년. 학생은 나를 포함 다섯 명. 선생은 일단 한 명.

뒤늦게나마 치맛바람의 중요성을 깨달은 어머니는 세 살인 막내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막았다.

일반적으로 공부는 다섯 살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왔다. 목선후 같은 천재가 아니라면 제 나이에 맞는 공부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법.

너무 일찍 공부를 시작하면 공부에 질리게 된다. 틀림없이 안씨 집안은 공부를 일찍 시작하면 역효과가 날 거다.

“막내는 이 년 더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

공부 외에는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단순하게 꾸민 교실에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알았다. 근데 너 시댁에는 정말 안 돌아갈 셈이니?”

“안 돌아가기는요. 천자문만 떼면 돌아가야죠.”

“뭐? 어느 세월에 천자문을 뗀단 말이니?”

“한 달이면 될걸요?”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전의 안안용이라면 삼 년도 부족하겠지만 나는 수능 영어 명강사였다고요. 겨우 천 개의 단어를 외우는 데 한 달도 많다고요.

“너, 한 달 동안 시댁에 안 돌아갈 거니? 혼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목 서방이 허락하겠니? 허락해도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공부는 화끈하게 몰입해서 해야죠.”

눈앞에서 목선후 같은 인간이 얼쩡거리면 공부가 안될걸요.

돈 버느라 정신없었던 지난날, 간혹 소개팅이나 연애 비슷한 것을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인생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 모르고 정신없이 앞만 보면서 살았다.

물론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달랐을 것이다.

음주 운전을 했던 그 사람은 내 부모님을 죽였고 내 인생을 산산조각냈다.

아무리 학원이 잘 되고 돈이 쌓여도 헛헛했다. 무엇엔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학원에 몰두했다.

학원에 몰두할수록 연애와는 더 거리가 멀어졌고.

두 가지를 다 잘하기는 어려우니까.

“어머니, 왜 목씨 집안과 사돈을 맺으셨어요?”

어머니가 집어 주는 곶감을 입으로 받아먹으면서 물었다.

대대로 청렴 가난한 선비 집안인 목씨와 무식하고 돈만 많은 안씨의 결합은 아무도 예상을 못 한 일이었다고 한다.

“네 아버지가 혼자 결정하신 거잖니. 나랑 네가 아무리 사정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다. 평생 이렇게 고집을 부리신 일는 처음이었어.”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니에요?”

“무슨 이유? 너희 혼인에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이니?”

왠지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학원을 경영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좋아졌달까. 내가 본 시아버지는 돈을 보고 아들을 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친정아버지는 딸의 행복을 위해서는 돈이건 뭐건 아무것도 아끼지 않을 사람이다. 딸의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권력을 탐할 것 같지는 않다.

분명 뭔가 내막이 있다.

“너 혹시 혼인한 뒤로 한 공자와 만난 적 있니? 하다못해 서신이라도 받은 적 있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어머니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니요. 왜 그러세요?”

이렇게 친정어머니가 의심할 정도라면 안안용은 한 공자와 정말 특별한 사이였나 본데. 그건 사랑일까? 우정일까?

“우연히 알았는데 얼마 전에 한 공자가 환성에 돌아왔다는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자 내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입이 굳었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가 따뜻하게 내 손을 감싸 쥐었다.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만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서 말이다. 이제 너는 어사중승 목씨 가문의 둘째 며느리야. 어린 시절의 친구라도 남녀가 유별하니 조심해야 해. 그 애가 사람은 정말 좋은데 이제 가는 길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 않니?”

“네, 그럼요. 염려 마세요, 어머니.”

본 적은 없지만 한 공자가 트럭으로 와도 목선후에 비교가 안 될걸요.

내가 우렁차게 대답을 하는데 정오가 문을 확 열고 뛰어 들어왔다.

“아, 아씨, 마님. 헉, 저.”

“왜 그러니?”

“저, 저. 대문 앞에 한 공자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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