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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90화 (90/97)
  • 00090 83. 옆에 있어서 =========================

    시간 연장까지 했는데,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데이트 종료 시각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냐고요. 아주 잠깐 논 것 같은데. …배는 빵빵하지만.

    더는 미룰 수가 없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어느덧 입구 근처까지 다다랐는데,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았다. 뭔가 싶어서 보니까, 화장품 가게 나레이터모델이다. 나레이터모델에게 붙잡혀, 호객행위를 당하던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안으로 들어갔다.

    절대, 도란이보고 남자친구라고 얘기해서라거나, 이대로 집에 가기는 뭔가 좀 아쉬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둘러보다 보면 살게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온 거다. 응.

    가게를 한 바퀴 쓱 둘러본 나는 립제품 코너에 멈춰 섰다. 사실, 저번에 마트에 갔을 때, 립스틱이 슬슬 바닥을 보이길래 겸사겸사 사려고 했었는데. …이 쓸데없이 섹시한 멍멍이한테 단단히 홀리는 바람에, 그만 홀라당 까먹어버렸다.

    역시, 돌아다니다 보면, 사야 할 게 하나쯤은 나온다니까.

    나는 립스틱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색상이 있길래, 샘플을 바르고서 도란이에게 물어보았다.

    “짠, 이거 어때?”

    “…음.”

    가만히 바라보더니 내 입술을 엄지로 쓱 훑는 도란이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뭐, 뭐지? 별로라서 닦고 싶었나? 아니면, 너무 취향이라서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간 건가?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도란이를 쳐다봤다.

    잠시 손을 쳐다보더니, 립스틱이 묻은 손가락을 할짝거리는 도란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에 내가 놀라거나 말거나, 도란이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린다.

    “…맛없어. 별로야.”

    …잘 어울리는지 봐달라니까 맛을 평가하냐!

    아이고, 머리야. 잘 있다가도 꼭 한 번씩, 자기가 사차원인 티를 팍팍 낸다니까. 그마저도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게 문제지만. 이쯤 되면 나도 내 눈에 단단히 씐 콩깍지가 좀 무섭다.

    “색상이 잘 어울리는지 봐달라니까, 맛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면 어떻게 해!”

    “나한테는 맛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거 먹는 건 나잖… 읍.”

    이 멍멍이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누가 들을세라 황급히 도란이 입을 틀어막았다. 순간적으로 얼굴에 열이 확 오르네. …물론,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암만 나라도 그런 돌발발언은 좀 부끄럽다고.

    “…그래. 뭐, 그것도 중요하긴 한데, 일단 나한테 잘 어울려야 할 거 아냐.”

    “넌 뭘 발라도 예쁘니까 상관없어.”

    …단언컨대 내가 화산이었더라면, 지금쯤 펑 하고 터져서 대한민국을 용암으로 덮었을 거다. 순간적으로 몸에 열이 확하고 올라서 어질어질하다. 립스틱을 고르는 것도 포기하고, 그대로 도란이 품에 맥없이 기댔다.

    “응? 이소야, 왜 그래?”

    너 때문에 이러지, 몰라서 그러냐?!

    아, 이 멍멍이랑 연애하기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싫다는 건 아니고. 단지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 어떻게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가 있냐고! 그것도 모자라서, 뭐 때문에 내가 이러는지 자각도 못 해.

    근데 그마저도 너무 귀여워.

    “…전에 네가 딸기 맛난다고 했던 그 틴트 사러 갈까?”

    “진짜? 응. 나 이거보다 그게 좋아.”

    입구까지 온 우리는 도로 안으로 들어가, 딸기 맛 틴트를 팔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가게에 왔다. …살면서 립스틱 맛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편식 심한 내 멍멍이 때문에 앞으로는 그걸 1순위로 둬야겠네.

    결국, 도란이가 딸기 맛이 난다고 주장하는 틴트 2개와, 같은 제품이지만, 다른 색상의 틴트를 1개 구매했다. 차 안으로 와서 새로 산 틴트를 대충 입술에 발랐다. 그러고서는 도란이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러자 아무렇지도 않게, 내 입술을 할짝거리는 도란이다.

    “역시 이게 아까 거보다 나은 거 같아. 맛있어.”

    …이 인간, 아무리 생각해도 모태솔로 아니라고! 여자 경험 없는 인간이 스킨십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리가 없잖아! 아닌가? 역으로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이렇게 서슴없이 해내는 건가?

    이젠 진짜 모르겠어. 혼란스러움에 창문에다 대고 머리를 쾅쾅 박는 나다.

    그러자 도란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한 손으로 내 머리를 감쌌다. …아무래도 좋아. 그냥 너무 사랑해, 멍멍아. 안전벨트를 풀고서 사랑해 마지않는 멍멍이를 꼭 끌어안았다.

    “머리 괜찮아? 왜 갑자기 창문에다가 박고 그래. 놀랐잖아.”

    “…응, 괜찮아. 그냥 박고 싶었어.”

    “아하하, 그게 뭐야. 그래도 그러지 마. 걱정되잖아.”

    웃고 있기는 하지만, 눈빛에 걱정이 가득 담긴 게 느껴진다.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가 하지 말라는 건 안 할게. 단지, 방금 건 너무 기뻐서, 그리고 너무 좋아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이 안 가길래, 확인 차 박아본 거야.

    …응.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꿈만 같다. 도란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단둘이 오붓하게 데이트하고, 서로를 애정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몇 년 전, 아니, 몇 개월 전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었는데.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도란이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무척이나 불안했었던 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꿈처럼 느껴진다.

    …만일 이게 정말로 꿈이라면, 깨어나는 것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꿈.

    문득 왜 도란이가 내 마음을 받아준 건지 궁금해졌다. 물론, 전에 기다려달라는 말은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받아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적어도 몇 달 이상은 걸릴 줄 알았는데. 그것 때문에 더욱 꿈처럼 여겨지는 것도 같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조심스럽게 도란이에게 물었다.

    “…있잖아. 란아.”

    “응?”

    “왜 …나 좋다고 말한 거야?”

    내 물음에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도란이다.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지. 그럼 뭐라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아아, 뭐라고 해야 하지. 말을 못 하겠다. 도무지 생각이 안 나.”

    “하하, 그럼 생각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줄게. 천천히 생각해.”

    나와 마찬가지로 안전벨트를 푼 도란이가 운전석에 편히 기대어 나를 바라본다. 언제나 엄마 닮아서 말주변이 없고, 낯간지러운 말을 하지 못하는 게 내심 콤플렉스였는데. …지금은 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다정한 도란이의 눈빛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얼마든지 기다려준다는 말에 설레서 살며시 미소 짓는 나다.

    말주변이 없어도 조금 생각하니까 그럭저럭 틀은 잡히는구나.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한 나는 심호흡을 내뱉으며 도란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눈웃음을 치는 도란이다.

    웃지 마!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려서 무슨 말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릴 뻔했잖아!

    …그렇다고 평소에도 안 웃지는 말고. 그냥 지금만 웃지 마. 또 네 웃음에 홀려서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버리게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넘겨버리면, 내 성격에 반드시 후회할 테니까 확실하게 알고 싶어.

    네가 날 이렇게 빨리 받아준 이유.

    “네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빨리 받아준 건지, 좀 궁금했어. 솔직히 나는 최소한 몇 달은 걸리리라고 생각했거든. 네 상태도 그렇고, …아저씨 문제도 아직 해결 못 했잖아. 너.”

    “…그러게.”

    뭘 그러게야! 네가 받아줘 놓고 의아해하면 어쩌자는 거야!

    순간 발끈해서 도란이를 흘겨봤다가, 이윽고 시선을 거뒀다. 도란이 표정이 좋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그러게’인 듯하네. 아저씨 이야기는 괜히 꺼냈나 보다.

    미안해서 도란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도란이가 날 보고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인다. 도란이의 웃음을 보니,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더욱 커진다. 잠시 사색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여는 도란이다.

    “…아버지 문제는 여태 논외로 둔 채,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 최악인 상태로 깊이 생각했다가는 더 악화될 것 같았거든.”

    “미안. 내가 괜히 이야기를 꺼내서.”

    “아냐, 괜찮아.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는 문제잖아. 이제 차근차근 생각해봐야지.”

    그렇게 말하며 도란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내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것만 같다.

    “…사실, 네 마음을 빨리 받아준 이유. 어떻게 보면, 아버지 때문인 것도 조금은 있는 것 같아.”

    “아저씨 때문이라니?”

    “가만히 있다 보면,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거든. 그럴 때, 문득 아버지 문제가 떠오르면, 이따금 견디기 힘들어져서. 집중해서 생각할 다른 게 필요했던 것 같아.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할 만한 거.”

    “그게 …나야?”

    도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니, 눈가에 고인 눈물이 불빛을 선명하게 반사한다. 이 울보야. 네가 울면, 내 마음이 찢어지니까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실언했어. 괜한 얘기 꺼내서 미안해. 다시금 말주변이 없는 내가 원망스러워진다.

    다행히 눈물 몇 방울만 흘리고서 그친 도란이다. 그마저도 가슴 아픈 게 문제지만. 눈물이 흐른 자국조차도 보기 싫어서, 재빨리 손을 뻗어 닦아줬다. 그러자 도란이가 자기 얼굴을 매만지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너랑 약속했으니까. 나한테 여유가 생기면, 전부 너로 채우겠다고.”

    “…란아.”

    “그래서 잡생각이 날 때마다 너만 떠올렸어. 네 얼굴, 네 목소리, 너와 함께했던 추억들. 하하. 하도 오래 붙어있어서인지, 시간 금방 가더라. 덕분에 다른 생각할 틈이 전혀 없었어.”

    도란이의 말에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푹 숙이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은 오롯이 도란이만을 바라보고 싶다. 조금이라도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자기 얼굴을 감싸고 있는 내 손에 살짝 입 맞추더니,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가는 도란이다.

    “처음에는 그런 이유로 네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는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했어.”

    “하고 싶었다고?”

    “응. 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런 마음들이 점점 커졌거든. ‘그때 이소가 이랬던 거, 엄청 재밌었는데.’라든가, ‘그때 이소 완전 웃겼었는데.’ 이런 거?”

    “…야.”

    “아하하. 반쯤은 장난이고. 아무튼, 네 생각 하면, 무척 즐거워져서 계속 네 생각만 했어. 그러다 보니 점점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고, 네 얼굴이 보고 싶어지고, …너와 쭉 함께 있고 싶어지더라.”

    “….”

    “그래서 깨달았던 것 같아. 나도 널…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로 생긋 웃은 도란이는 이윽고 나에게 다가와 서로의 입술을 맞댔다. 움직임이 전혀 없는 입맞춤이지만, 그마저도 달콤하고 황홀해서, 그저 눈을 꼭 감은 채, 이 순간만을 오롯이 새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입술에 다시금 가벼운 뽀뽀를 하고서 거리를 벌리는 도란이다. 어쩐지 조금 아쉬워서, 도란이의 입술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도란이가 살며시 눈웃음을 친다. …기습당했다. 젠장, 내 심장.

    “아, 맞아. 이 말 꼭 하고 싶었는데.”

    “응? 무슨?”

    “고마워. 이소야.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줘서.”

    생각지도 못한 도란이의 감사 인사에 내 눈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뭐야. 나 왜 갑자기 청승맞게 눈물 흘리고 난리냐고. 내가 멍청하게 눈물만 뚝뚝 흘리자, 손수건으로 닦아주던 도란이는 이윽고 내 눈물을 핥기 시작했다.

    얼굴이, 아니 온몸이 간질거려서 견디기 힘들다. 나는 그대로 도란이를 꽉 껴안았다. 내 등을 어루만지듯 토닥이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도란이다.

    “네가 내 옆에 있어 준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즐거웠고, 든든했고. 힘든 순간도, 살면서 가장 슬펐을 때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옆에 있어 줘서. …나 좋아해 줘서.”

    “응. 나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있어 줘서. 늘 옆에서 나 챙겨줘서. 언제나 내 편 들어주고, 나 걱정해주고, 신경 써준 거. 전부 고마워. 그리고… 약속 지켜준 거. 정말, 너무 고마워.”

    말하면서도 자꾸만 울음이 터진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도란이 품에 고개를 파묻고 서럽게 울었다. 너무 좋아서. 그리고 짝사랑하면서 쌓아뒀던 설움을 모조리 털어내려고.

    드디어 이어졌으니까 조금의 응어리도 남겨두고 싶지 않아.

    더는 울고 싶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도란이 품에 안겨 울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그런 나를 다정하게 품어주는 도란이다.

    ============================ 작품 후기 ============================

    다섯 자 제목에 집착하고 있는 에이온(...)

    약속대로 저녁에 뿅하고 나타난 저입니다 XD

    우리 이소는 좋겠네 ^p^..질투나서 갈라놓으려다 참았다.(사악)

    내일도 연참으로 찾아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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