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9 82. 명동 데이트 =========================
주말. 그것도 음식 노점들이 줄줄이 들어서는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명동에 사람이 득실득실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러다 우리 멍멍이 잃어버리는 거 아닐까. 나처럼 우글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는 도란이를 힐끔 쳐다봤다.
똥글똥글한 눈을 하고서 놀라는 것도 마냥 귀여운 내 멍멍이를 보니 더욱 결의가 다져진다.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겠노라.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힘을 주어 꽉 꼈다. 그제야 나를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는 도란이다. …예뻐. 너무 예뻐 죽겠어. 실외에서 데이트하면 이게 별로라니까. 스킨십을 맘껏 못하잖아.
하긴, 집에서도 뜻대로 못하는구나. 망할 권이혁 자식.
우리는 팔짱을 꼭 끼고서 명동 거리로 들어갔다. 사람이 많아서, 지나갈 틈도 없을까 봐 지레 겁먹었었는데, 그래도 우리가 들어갈 틈 정도는 있나 보다. 비좁긴 해도 생각했던 것만큼 불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멍멍이를 놓치긴 싫으니까,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노점들을 둘러보았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 종류가 더 다양해진 듯하다. 예전에는 끽해야 레모네이드랑 회오리 감자, 문어 꼬치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먹었던 게 그 정도뿐이라 그런가.
어떤 걸 먹어야, 내 멍멍이가 맛있게 먹으려나. 신중하게 고민하며 둘러보던 내 눈앞에 새우 버터구이 꼬치가 보인다. 새우 킬러인 우리 둘을 위한 길거리 음식이잖아. 첫 음식은 이거다!
도란이를 이끌고서 새우 꼬치 노점 앞으로 갔다. 도란이 역시, 버터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칵테일 새우들을 보고 환히 웃으며 기뻐한다. 크흑, 너무 귀여워. 역시 내 선택은 훌륭해.
“새우 꼬치 4개 주세요.”
하나는 양이 너무 적어서 아쉬울 것 같으니 인당 두 개씩 주문했다. 시작부터 만원을 가볍게 넘겼다. 역시, 명동. 물가가 좀 비싸긴 하지만, 모처럼 제대로 된 데이트니까. 게다가 다른 건 몰라도 내 멍멍이를 위한 건 하나도 안 아까운걸.
우리가 주문한 새우들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맛있게 익어간다. 그러고 보니 아침 먹고 곧바로 잔다고 점심을 걸렀네. 자각하니 더욱 배가 고픈 것 같다. 꼬르륵거리는 배꼽시계를 느끼며, 새우가 익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마침내 먹음직스럽게 익은 새우 꼬치가 파인애플과 함께 나왔다. 크, 늘 생각하는 거지만, 새우는 언제나 옳아. 탱글탱글한 새우의 식감과 버터의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맴돈다. 도란이도 만족스러운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내가 먹는 것보다, 도란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더욱 배가 부른 것 같다. 왜 부모님들이 자식이 먹는 걸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하는지 이제 좀 알겠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배고픔 따위는 금세 잊혀버려.
“맛있다. 그치.”
“응. 역시, 새우는 언제나 옳다니까. 다음에는 뭐 먹을까?”
“어, 저기 랍스터 판다. 저건 내가 사줄게.”
이리저리 둘러보던 도란이가 나를 이끌고 랍스터구이 노점으로 왔다. 한 마리 15,000원…. 만일 이혁이를 여기에 데리고 왔다면, 내 통장 잔액 거덜 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다.
“두 마리 주세요.”
“두 마리나? 비싸지 않아?”
“괜찮아. 모처럼 데이트니까.”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는 도란이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조금 전에 내가 생각했던 건데도, 도란이 입으로 직접 들으니 왜 이렇게 설레지. 어쩐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도란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행복해.
랍스터 꼬리에 치즈를 듬뿍 얹어 토치로 치즈를 녹이는데, 비싸긴 해도 먹음직스러워 보이긴 하다. 해산물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것도 꽤 맛있다. 우리 집 음식을 자주 먹어서인지, 마찬가지로 해산물을 잘 먹는 도란이도 맛있게 잘 먹는다.
어떻게 해. 오물거리면서 먹는 게 너무 귀여워. 꼭 볼 빵빵해진 햄스터 같아.
살짝 부풀려진 볼을 만지작거리니 도란이가 눈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에 치즈가 녹듯 내 맘도 사르르 녹는다. 행복해. 그나저나 요새 열심히 먹여서 그런가, 볼살이 조금 붙은 것 같기도 하고. 으아, 뿌듯해라. 더욱 많이 먹여야지.
우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맛있어 보이는 길거리 음식들을 사 먹었다. 각자의 취향을 잘 알기에 메뉴를 정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닌데, 값을 지급할 때마다 자잘하게 티격태격하는 우리다.
서로에게 사주고 싶어서.
결국, 번갈아가면서 사주기로 결론지었긴 하지만, 뭐랄까. 100%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꽃게 튀김을 먹던 도란이가 내 입에 쏙 넣어주면서 말했다.
“신기하다. 진짜 이런 걸로 트러블이 있긴 하구나.”
“뭐가?”
“데이트 비용 말이야. 친구일 때는 이런 거 딱히 신경 안 썼던 것 같은데.”
“그러게.”
28년 동안 친구로 지내면서, 이런 문제로 티격태격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하긴, 사주면 사주는 거고, 아니면, 그냥 내 돈으로 사 먹고 치우는 거였으니 트러블이 생길 것도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상태이니, 트러블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어쩐지 달라진 우리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도란이도 마찬가지인지, 키득거리며 웃는다.
“재밌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늘 한결같을 줄 알았는데. 관계가 변하고, 마음이 변하면, 익숙한 것도 조금은 달라지는 거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응. 처음이니까.”
놀리듯이 말하긴 했지만, 나도 처음이네.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된 건. 그리고 이렇게까지 진지한 연애를 하게 된 건.
물론, 연애횟수가 열 손가락을 가뿐히 넘기긴 했다.
대부분은 단순히 연애하고 싶다는 충동적인 생각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사귀었거나, ‘오는 놈 안 막는다’라는 마인드로 가볍게 사귄 탓에 흐지부지 끝났었지만. 박원호 그 개자식과는 나름 진지하게 연애하긴 했었어도, 도란이만큼은 아니었다.
박원호를 많이 좋아했긴 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쿨한 태도를 고수했었으니까. …일방적으로 박원호가 잠적했을 때 빼고.
하지만, 도란이에게 쿨하게 구는 건 전혀 못 하겠다.
강한 소유욕을 느낀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까지 매달리게 된 것도 처음이다. 다른 여자가 도란이를 잠깐 쳐다보는 것에도 지금처럼 질투와 소유욕이 부글부글 끓는걸. 나만 볼 거야. 나만 가지고, 나만 느낄 거니까 얘 쳐다보지도 마. 도란이를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나를 바라보며, 생긋 웃는 도란이 때문에 또다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무엇보다 여태 했던 연애와 가장 큰 차이는 …네가 내 곁에 없으면, 나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게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겠지만, 너는 아냐.
네가 없으면, 나는 죽어. 란아.
명동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전화인가 싶어서 확인했더니, 오면서 맞춰뒀던 알람이 울리는 거였다. 7시네. 제한시간이 겨우 한 시간밖에 안 남았잖아. 아, 우울해. 얼마 놀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끝이야. 내가 시무룩해 하자, 도란이가 걱정스레 묻는다.
“왜? 무슨 일 있어? 피곤해? 아니면, 어디 아파?”
“아니, 7시야. 너 한 시간 뒤에 약 먹어야 하니까 이제 집에 가자.”
“…눈치 보니까 더 있고 싶은 것 같은데. 아냐?”
“그렇긴 한데, 너 이제 쉬어야지. 가자.”
내 말에 고개를 젓던 도란이가 생긋 웃는다. 이윽고 내 손을 잡더니 점점 더 거리 안쪽으로 들어간다. 되돌아가는 것도 오래 걸릴 텐데, 더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고. 황급히 도란이를 멈춰 세웠다.
“야, 어디가. 주차장이랑 반대 방향이잖아. 집에 안 가?”
“응, 안 갈래. …아니, 가긴 가겠지만, 한 9시쯤?”
“그건 완전히 시간 초과잖아. 괜찮으니까 그냥 가자. 응? 다음에 오면 되지.”
“그렇게 아쉬워하면서? 나도 괜찮아. 낮잠 자서 그런가, 피곤하지도 않고.”
좋긴 하지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 정도 약을 안 먹는다고 죽진 않겠지만, 그래도 약도 챙겨 먹고, 잠도 제시간에 자야 빨리 낫는 거잖아. 계속 데이트하고 싶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도란이가 이전처럼 건강해지면 좋겠으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집에 가자고 도란이를 설득했다. 내 말을 잠자코 듣던 도란이가 어깨를 으쓱인다.
“사실, 신경 안정제는 끊을 수만 있으면, 언제든지 끊어도 상관없는 약이야. …물론, 지금은 완전히 끊는 게 불가능하지만, 하루 정도 안 먹는다고 별 탈은 없어.”
“…괜찮겠어?”
“응, 괜찮아. 신경 안정제보다 너랑 같이 있는 게, 더 좋고, 편안하고, 안정되니까.”
아, 또 심장이 쿵쿵거려. 마치 온몸이 나풀거리는 깃털이 된 것 같아. 날아갈 듯이 설레. 이 멍멍이, 진짜 모태솔로 맞느냐고. 어떻게 연애 한 번 안 해본 놈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마음을 뒤흔들 수가 있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도란이를 흘겨봤다. 내가 한창 의심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내 손등에 입 맞추더니, 나를 보며 생긋 웃는 도란이다.
“그럼 나랑 계속 데이트해주는 거야?”
“…응.”
“아하하, 그럼 저거 먹으러 가자. 문어 꼬치. 맛있을 거 같아.”
도란이의 말에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못한 손등 뽀뽀에, 이제는 아주 그냥 격렬한 비트박스를 하는 내 심장이다. 연애 한 번 못 해봤는데도 이 정도인데, 연애경험까지 많았더라면…. 잠시 상상에 빠진 나는 이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상상이라도 도란이 옆에 다른 여자가 붙어있는 건 싫으니까.
그래도 예상보다 데이트를 오래 하게 돼서 기분 엄청 좋다. 너무 좋아서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도란이가 먹고 싶다던 문어 꼬치를 바라봤다.
…어째 먹다 보니 꽃게 튀김이나 새우튀김, 키조개 버터구이 같은 해산물만 먹는 것 같다.
이것만 먹고 해산물은 그만 먹어야지. 이제 도란이가 좋아하는 달달한 디저트나, 목을 축일 음료 같은 거 먹어야지. 아니면, 옆에 스테이크랑 야끼소바 먹을까? 맛있어 보이던데. 그나마 식사 같은 거기도 하고.
“이소야, 뭐 먹을래?”
“응? 문어 꼬치잖아.”
“문어 말고 다른 것도 있는데? 소라도 있고, 주꾸미도 있고.”
“나는 그럼…, 소라 먹을래.”
도란이는 원래대로 문어, 나는 조금 독특한 게 끌려서 소라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꼬치를 건네받은 우리다. 가쓰오부시와 데리야끼 소스를 듬뿍 끼얹은 꼬치. 어느 정도 배가 채워졌는데도 비주얼이 장난 아니라, 군침이 저절로 돈다.
소라를 한 입 먹으려는데, 나보다 먼저 내 소라를 앙하고 먹는 도란이다. 하여튼 내 거 뺏어 먹는데 도가 텄어요. 소라가 들어가 볼록해진 볼을 살짝 꼬집었다.
“맛있어?”
“응, 맛있어. 내 거 먹을래?”
“응.”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시킨 것보다 서로의 것을 더 많이 먹은 우리다. 서로를 먹여주는 데에 재미가 들려, 이후에도 사이좋게 서로에게 먹여주었다. 그러다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해, 줬다가 뺏거나, 고의로 입가에 묻히기도 하고.
킬킬 웃으며, 딸기 모찌로 입 주변을 쿡 찍었더니 도란이가 툴툴거린다.
“아아, 가루 묻었어.”
“…야, 야! 엄지로 입 주변 훑지 마!”
“…묻었는데 안 닦으면 어떻게 하라고?”
“그건 그런데…, 아, 아무튼 훑지 마! 할짝거리지도 마! 기다려. 티슈로 닦아줄게.”
바깥에서 데이트하니까 좋긴 한데, 무방비한 내 멍멍이 간수하느라 힘들어 죽겠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눈독 들일까 봐, 빠르게 입가를 닦아주었다. …다음에는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에서 데이트해야지.
물론, 너랑 함께라면, 어디든지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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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ae님// ㅋㅋㅋㅋㅋㅋㅋ<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에서는 멍멍이가 사람을 조련합니다! (?)
완결이 코앞이니 슬슬 달려볼까요!
저녁에 한편 더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