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81. 둘만의 시간 =========================
맞닿아있던 입술을 떼고서 도란이를 바라봤다. 키스의 여운에 취해 눈이 반쯤 감긴… 게 아니라, 잠에 취해 눈이 반쯤 감겨있다. 많이 졸린 지, 고개를 꾸벅이던 도란이가 그대로 고개를 내 어깨에 파묻는다.
“란아, 여기서 잠들면 어떻게 해. 방에 가서 자야지.”
“…응.”
…대답은 해놓고 왜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거니. 나야, 너랑 맞닿아있으면 마냥 좋긴 하지만, 이렇게 자면 네가 불편하다고. 내 어깨에 기대어있는 도란이를 떼어냈다. 그러자 슬며시 눈을 뜨는 도란이다.
“침대로 가자.”
말하고 나니 뭔가 어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아니다. 이상한 건 내 마음이다. 들어가, 음란마귀야. 네가 나올 때가 아니라고 내가 누누이 말하잖아. 몽롱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는 도란이 때문에 더욱 뭔가가 불끈하는… 게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소중히 대할 겁니다.
비몽사몽인 도란이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면 내가 힘이 센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란이를 침대에 눕히긴 눕혔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에 사로잡힌 나다.
마음만 같아서는 옆에 같이 있고 싶은데, 아까처럼 들끓는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자는 애 깨울까 봐 염려스럽다. 그래, 이렇게까지 졸려 하는데, 잠이라도 편하게 자게 해주자. 이마에 참을 인을 여러 개 새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자.”
내가 일어나자, 내 옷자락을 붙잡는 도란이다. 아, 너무 좋아서 탄성이 터져 나올 뻔했다. 간신히 꾹 억누르고는 도란이를 바라봤다.
“같이 자자고?”
“응, 안아줘.”
…오, 세상에. 이 멍멍이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침대에 누워서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아, 아니다. 참아, 참아라. 권이소. 전혀 그런 게 아니다. 진정하자. 당장에라도 덮치고 싶은 심정인 건 나도 알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다. 음란마귀야. 착하지, 들어가 있어.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참았어, 나.
한숨 돌리고서 누우려 했더니 베개가 하나밖에 없다. …맞다. 원래 침대 위에 있던 베개 하나를 거실에 갖다 놓았지. 가지고 와야겠다. 내가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자, 시무룩해진 도란이다.
…아, 귀여워. 근데 내 심장에 너무 해롭다.
“같이 안자?”
“아냐, 같이 잘 거야. 근데 베개가 하나뿐이니까 가지고 와야지.”
“그냥 이거 베고 자.”
그러면서 한쪽 팔을 뻗는 도란이다. …얘가 나를 아주 심장발작으로 죽게 만들려고 작정한 건가. 멍멍이가 아니라, 프로 암살자 아냐?! 라고 생각하면서도 냉큼 도란이 팔을 베고 눕는 나다. 좋은 건 한시라도 빨리 누려야지.
아아, 너무 좋다. 내가 자기 팔을 베고 눕자, 도란이가 반대쪽 팔로 나를 꼭 끌어안는다.
“꼭 안고 자자.”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는데, 심장이 지하로 쿵 내려갔다 우주로 솟아올랐다.
미치겠다. 나 죽겠네.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생긋 웃으며 내 입술에 뽀뽀하더니, 이윽고 눈을 꼭 감고서 새근새근 잠든 도란이다.
역시, 머리가 닿자마자 잠들어버린다니까. 그런 아기 같은 버릇까지도 너무 사랑스럽다. 미소를 지으며, 잠든 도란이를 바라봤다. 어떻게 남자 피부가 이렇게 뽀얄 수가 있지. 어째 여자인 나보다 더 뽀얀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손을 갖다 대니 피부색 차이가 꽤 난다. …물론, 승자는 도란이. 젠장.
그러고 보니, 은유 언니도 도란이네 아저씨도 피부색이 전부 밝네. 집안 유전인가. 부럽다. 이다음에 도란이랑 나 사이에 애가 태어나면, 아빠 피부색을 물려받으면 좋… 나 지금 무슨 생각 하니.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벌써 결혼 생각이라니 김칫국도 유분수지. 멍멍이한테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긴, 이렇게 예쁜데 안 미치는 게 이상한 거겠지. 도란이 볼에 소리 나지 않게 뽀뽀했다.
이렇게 계속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긴 하지만, 언제 깰지 모르니까 나도 좀 자야겠다. …괜히 또 만지작거렸다가 깨울지도 모르고. 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눈은 감고 있어야지.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서인가, 우려와 달리 금방 졸음이 몰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란이를 꼭 끌어안고서 꿈나라로 떠난 나다. 꿈에서도 내 멍멍이와 함께이기를 바라며.
자고 일어나 눈을 뜨니, 여전히 사랑하는 내 멍멍이가 눈앞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팔 저리지 않으려나. 걱정되면서도 이러고 있는 게 너무 행복해서 도란이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내 멍멍이가 다쿠아즈 먹고 싶다고 했으니까 사러 가야 하는데. 모처럼 둘만 있으니까, 바깥에서 데이트하고 싶기도 하고.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4시 반. 곧 있으면 5시다.
…우리가 잠든 게 11시쯤이니까. 이거 낮잠 수준으로 퍼질러 잔 게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많이 잔거긴 하지만, 여전히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이 멍멍이는 뭐냐고요. 어쩌면 약 기운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잠이 많아서 밤마다 꾸벅꾸벅 조는 게 아닐까. 나는 여전히 자고 있는 도란이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란아, 일어나. 이제 곧 5시야. 너 5시간 후면 자야 하잖아. 그만 일어나.”
“…으으응.”
“너 이렇게 자면, 밤에 잠 못 자. 일어나.”
칭얼거리면서 나를 더욱 끌어안는 도란이다.
…아, 순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대로 있어도 좋긴 하지만, 낮잠을 오래 자면, 도란이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잘 테니까.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도란이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 모처럼 주말이니까 밖에서 데이트하자, 응?”
“….”
“이젠 대답도 하기 싫어? 너 다쿠아즈 사러 가겠다며.”
그제야 일어날 마음이 든 건지, 도란이가 눈을 비빈다. …어째, 나 지금 다쿠아즈에 밀린 기분이 드는데. 데이트하자고 할 때는 대답도 하지 않더니, 다쿠아즈라는 소리에는 반응하냐. 씩씩거리며 도란이 볼을 잡아당겼다.
“야! 다쿠아즈야, 나야.”
“…음.”
고민하지 말라고! 그게 고민해야 할 문제냐고! 아까는 나 좋다며! …설마, 좋긴 좋은데 디저트랑 판다, 히어로 다음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왠지 도란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우리 어디 가?”
“…응? 어, 일단 다쿠아즈 사러 가야지.”
“…아, 미안. 잠이 덜 깨서 질문을 이상하게 했다. 너 어디 가고 싶으냐고 묻고 싶던 거였어.”
도란이의 질문에 그저 눈만 깜빡이는 나다. 내가 어디 가고 싶은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너랑 데이트하는 건 어디든지 좋으니까. 내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도란이가 생긋 웃으며, 내 입술에 짧게 입 맞췄다.
“그럼 나 먼저 씻고 올 테니까 어디서 데이트할 건지 생각해 놔. 알았지?”
“응. …다쿠아즈는?”
“안 먹어도 상관없어. 그것보다는 네가 원하는 곳에서 데이트하고 싶으니까.”
도란이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이불을 덮고서 감격에 겨운 환호성을 내지르는 나다. 저건 분명 요물이다. 순진한 멍멍이가 아니라, 내 심장만 골라서 저격하는 영악한 요물이라고!
여기가 한계겠지, 더는 좋아지지 않겠지 생각하면, 또다시 이렇게 한계점을 늘려버리는 도란이다.
…진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밖에 나가기 위해 씻는 걸 끝마친 우리는 어디에 갈지 정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좋으냐는 내 물음에, 웃으면서 “네가 좋다면 어디든.”이라고 대답한 도란이 때문에 또 한 번의 심장발작을 격하게 겪은 나다.
“그러면, 우리 명동 가자.”
“명동?”
“응, 명동 가서 길거리 음식 먹고 싶어.”
어디에 앉아있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도란이랑 팔짱을 끼거나, 손을 꼭 잡고서 거닐고 싶다. 집 근처 공원 같은 데서 걷는 것도 좋긴 하지만, 도란이를 굶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뜩이나 8시가 넘으면, 도란이는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명동을 거닐면서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 식사도 해결하고, 함께 걷는 것도 맘껏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잖아. 크, 나 요새 머리 너무 잘 굴리는 것 같아.
도란이 역시, 내 제안이 마음에 드는지 배시시 웃는다.
“그래, 명동 가자. 오랜만이라 재밌을 것 같아. 그럼 이제 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해야겠다.”
“어, 내가 옷 골라줄래. 여름옷 어디에다 두는데?”
“응? 아하하. 저기 왼쪽 수납장.”
콧노래를 부르며, 도란이가 가리킨 수납장으로 향했다. 커플룩처럼 보이도록 골라야지.
눈치 없는 바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혁이한테 들킬까 봐 걱정돼서, 대놓고 커플룩 차림은 못하겠다. 그 대신 내 옷이랑 분위기가 비슷한 걸로 고르기 시작한 나다. 대충 후보들을 몇 개 골라서 도란이에게 이리저리 대봤다.
…내 멍멍이는 어쩜 이렇게 뭘 갖다 대도 잘 어울리는 거지. 이건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이건 깔끔하면서도 시크해보이고, 이건 은근히 많이 파여서 섹시할 것 같고. 아악, 전부 너무 예뻐서 결정 장애가 온다.
옷 고르는 걸로 지체했다간 명동이고 뭐고 못 갈 거 같아, 도란이에게 물었다.
“넌 여기서 어떤 게 마음에 들어?”
“나는 가운데.”
“오케이. 그럼 이거 입으세요.”
“네.”
애교를 듬뿍 담아 “네”라고 대답한 도란이 때문에, 입을 틀어막고서 흐느끼는 나다. 미치겠다. 너무 귀여워.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까맣게 잊고서 도란이에게 뽀뽀를 퍼부었다. 그러자 까르르 웃던 도란이가 나와 거리를 벌린다.
“뽀뽀 말고, 키스해주면 안 돼?”
한 손으로 내 볼을 감싸면서 요염하게 웃는 도란이다. 요 앙큼한 멍멍이가.
한 번 튕겨 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몸은 이미 도란이와 말캉한 혀를 섞으며,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 난 왜 이렇게 이 멍멍이한테 물러터진 걸까. …어째 내가 멍멍이를 길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멍멍이한테 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
사랑해.
============================ 작품 후기 ============================
로즈꾸님// 너무 달달해서 제 눈에서는 눈물...이... ^pT.... 그래도 독자님들이 좋아하시니까, 전 괜찮아여...☆
류x님// 열반의 길에서 탈출했습니다! (경.축)
연화령님// ㅠㅠㅠㅠㅠㅠㅠ 장장 79화 만에 이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초고난이도 남주 도란입니다...
오늘도 눈물을 흘리는 에이온.. (또르르)
다시금 언급하는 거지만, 도란이는 모태솔로입니다.
모태솔로인데도 이소를 들었다 놨다 하는데,
도란이가 연애 경험이 많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