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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87화 (87/97)
  • 00087 80. 좋다고 말해 =========================

    아까 먹을 때만 해도 꿀맛같이 느껴지던 순두부찌개인데, 지금은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영혼이 반쯤 가출해버린 상태니까. 일단 반 남은 정신머리로 밥을 쑤셔 넣고는 있지만, 어떻게 먹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까 환청을 들었나. 분명히 도란이가 아까 뭐가 좋으냐는 말에 ‘너’라고 말했었는데.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여서, 지금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간다.

    “잘 먹었습니다!”

    “…와, 진짜 그걸 다 먹었네. 대단하다.”

    “헤헤, 이 정도쯤이야. 디저트 먹을 배도 한참 남았지롱!”

    “그럼 수박 화채 해 먹을까?”

    “응!”

    두 사람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 의사를 묻는 듯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도란이다. 으, 또다시 부정맥이 재발한다. 차마 도란이를 볼 수가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끄덕였다.

    “그러면, 오늘은 이소가 요리했으니까. 혁아, 나랑 가위바위보 하자.”

    “아냐, 됐어! 형은 요리를 살렸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하하, 그럼 부탁해.”

    “옛썰!”

    이혁이와 도란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옮겼다. 두 사람이 치우고 있는데도 멍하니 있던 나는 도란이가 부엌을 빠져나가려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도란이를 붙잡았다.

    줄곧 바닥만 내려다보던 내가 자기를 잡자, 도란이 눈이 동그래졌다.

    “왜?”

    “…어디 가?”

    “옷 갈아입으러.”

    “아, 응.”

    살짝 눈웃음을 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도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묻고 싶다. 그리고 다시 듣고 싶다. …나 좋아한다는 말.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설렘이 감돌아 온몸이 간질거린다.

    처음이란 말이야. 도란이가 나 좋다고 말한 거.

    친구였을 때, 좋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내 마음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한 이후로는 이런 말 한 번도 해준 적 없다고.

    나…, 좋아해도 되는 거야? 잘못 들었다거나, 친구로서 좋다고 말한 걸 잘못 이해했다거나 그런 거 아니겠지? 아무래도 제대로 확실하게 듣고 싶다.

    싱크대 앞에서 한창 설거지 중인 이혁이를 바라봤다. 이런 이야기 저 멍청이 앞에서는 못하니까 어떻게든 떼어놔야 하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나. …아!

    기막힌 생각이 떠오른 나는 재빨리 작업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작업실로 들어가니, 순두부 사러 가기 전에 게임 한 판을 때리고 있었는지, 컴퓨터에 게임 화면이 켜있다. …한마디로 오늘 온종일 게임으로 불 싸지르겠다 이거구먼. 미안하지만, 불허한다. 동생아.

    누나가 일생일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거든.

    부디 내 계획이 무사히 성공하기를 바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받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는 지연 씨다.

    “네, 선배님. 즐거운 주말 보내고 계세요?”

    “응. 지연 씨는?”

    “하하, 저야 뭐, 텔레비전 보면서 뒹굴뒹굴하고 있죠.”

    나이스! 내 계획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저기, 지연 씨. 오늘 선약 있어?”

    “아뇨, 전혀요. 내일은 약속이 빠듯하게 잡혀있는데, 오늘은 희한하게 하나도 없어서 방구석 신세예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괜찮으면, 내 망할 동…이 아니라, 이혁이랑 좀 놀아줄 수 있을까?”

    “네?! 매니저랑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지연 씨다. …왠지 폭탄 처리반을 담당하게 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진다. 미안해, 지연 씨. 내가 월요일에 맛있는 거 사줄게. 제발 저 찰거머리 좀 하루만 떼어내 주라.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는 통화를 재개했다.

    “응, 이혁이가 오키드 작가네 집에서 당분간 지내는데, 아무래도 글 쓰는데 옆에 누가 있으면 신경 쓰이잖아. 그래서 그래.”

    “…아아, 그렇겠네요. 잠깐만. 그럼 오키드 작가님 새 작품 들어가시는 거예요? 드디어?!”

    “…어, 응. 아직 틀만 잡아놓은 거긴 하지만.”

    순수하게 기뻐하는 지연 씨를 속이는 것 같아 죄책감이 싹튼다. 아니, 아니지. 이것도 엄연히 새 작품의 일환이잖아. 도란이 입으로 로맨스 소설 쓰고 싶다고 그랬으니까…. 연애를 해 봐야 로맨스 소설이든 뭐든 쓰는 거지. 응, 그래.

    “세상에나. 꺄, 만세! 어쩌지? 카페 회원들한테 알려야 하나? 하지만 작가님께 허락받고 나서 알리는 게 도리일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 기쁜 소식을 혼자서만 알고 있을 수도 없고! 아아!”

    “…저기, 지연 씨?”

    “헉, 죄송해요. 선배님! 통화 중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너무 좋아서 깜빡했어요. 아하하.”

    도란이 작품이 그렇게 좋을까. 어쩐지 내 멍멍이가 인정받는 느낌이라, 괜히 내가 뿌듯하다. 하긴, 인정이야 예전부터 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키드 작가의 팬과 직접 마주하니, 또 느낌이 색다르네.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할 수 있을까? 내가 월요일에 맛있는 거 사줄게.”

    “와, 저 그럼 비싼 거 먹어도 돼요? 그저께부터 팔보채가 땡겼는데. 헤헤.”

    “응, 사줄게. 내 동생 좀 하루만 데리고 놀아줄래? …내가 시켜서 노는 거라는 말은 하지 말고.”

    “아하하, 네. 그럴게요!”

    만세! 지금 이 순간, 지연 씨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느껴진다. 진짜 고마워, 지연 씨. 복 받을 거야! 지연 씨가 이혁이한테 연락을 해야 하니,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바깥으로 나오니 이혁이가 설거지를 하다 말고 전화를 받고 있는 게 보인다. 누군지 안 봐도 알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식탁 의자로 가서 앉았다.

    “아, 싫어! 내가 왜 너랑 놀아야 하는데!”

    …지연 씨도 딱히 너랑 놀고 싶지는 않을 거야. 어쩐지 지금 지연 씨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된다. …미안, 지연 씨. 팔보채에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기꺼이 사줄게.

    “…고기? …돼, 됐어, 필요 없어. 나 오늘 란이 형이랑 놀아야 하거든.”

    세상에. 도란이가 어지간히도 좋긴 한가 보다. 저 고기 킬러가 고기를 마다하다니. 하지만, 도란인 내 거야. 너 대신 이 누나가 얼마든지 도란이랑 놀아줄 거니까,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 먹으러 썩 꺼지렴. 내 원수 같은 동생 자식아.

    “뭐? 진짜지. 놀아주면 그 판다 수저 세트 나 주는 거 맞지?! 앗싸! 얻어서 형 줘야지! 어디? 어디로 가면 돼?”

    마침내 지연 씨가 빅딜로 이혁이를 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새삼 내 동생이 여자가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인데도 저렇게나 도란이를 좋아하는데, 여자였으면 20살 되자마자, 란이 손잡고 결혼식장으로 달려갔을 것 같다.

    이혁이가 전화를 끊더니 다시금 설거지를 재개하려고 하길래, 재빨리 고무장갑을 뺏어들었다. 누나는 네가 하루 빨리 꺼지길 바란단다.

    “뭐야! 나 빨리 설거지하고 나가야 해!”

    “중요한 약속인 것 같은데, 누나가 대신해줄게.”

    “…누나가? 웬일로? 아까 그 특제 사약이 부작용을 일으켰나.”

    “맞기 싫으면 1절만 하고 꺼져!”

    내가 고무장갑으로 따귀를 날리려 하자, 그제야 꼬리를 말고 내빼는 이혁이다. 진작 그럴 것이지. 욕실로 들어가는 이혁이를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한창 설거지에 열중하고 있는데, 도란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부엌에서 설거지해야 하는 이혁이가 없으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혁이는 어디 갔냐고 묻는 도란이다.

    “씻으러 욕실. 약속 있어서 나간대.”

    “…아아. 설거지 내가 할까?”

    “됐어. 거의 다 끝났으니까 소파에 가서 앉아있어.”

    앉아있으라니까, 도란이가 내 허리를 양팔로 감싸며 뒤에서 끌어안는다. 어이구, 진짜. 누가 말 안 듣고,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하래. 네가 그러니까 또 키스하고 싶어지잖아. 짧은 입맞춤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나다.

    “…혁이가 약속 있어서 나간단 말이지.”

    “…어, 응.”

    내 어깨에 턱을 괴고 있던 도란이가 중얼거린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괜히 심장이 두근거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약 먹고 침대에서 낮잠 자야지.”

    “….”

    …내 설렘 돌려내, 이 잠꾸러기 멍멍아. 때마침 설거지도 끝났겠다, 뒤로 돌아서 도란이 양 볼을 꼬집었다. 내가 기껏 둘만의 시간을 만들었는데, 잠으로 때우겠다고?!

    “안 돼! 자지 마. 할 얘기 있으니까.”

    “…졸리는데. 그럼 커피 좀 내려줄래? 세수 한 번 더 하고 오게.”

    “알았어.”

    이혁이가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도란이가 하품을 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평소 기상 시간보다 일찍 깨서 졸리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절대 못 자. 잘 땐 자더라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해주고 자. 그 전엔 안 재울 거야. 그런 말을 꺼낸 네 책임이니까.

    이혁이가 나가고, 단둘이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커피 타임을 보내고 있는 우리다. 단둘이 있는데도 아까부터 아무 말이 오고 가지 않고 있다. 도란이야, 졸려서 그렇다 치지만, 나는… 도무지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 지를 몰라 이러고 있다.

    대놓고 “나 여자로서 좋아?! 연인으로서 좋은 거 맞지?”라고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직접 내뱉으려니 도저히 못 하겠다. 그래도 듣고 싶긴, 듣고 싶은데.

    자연스럽게 들을 방법이 없으려나.

    “그런데 할 얘기라는 게 뭐야?”

    “…어?”

    “아까 할 얘기 있다며.”

    도란이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말을 꺼내려고 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나는 도란이 입에서 먼저 “좋아.”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도란이가 좋다고 말하면, 은근슬쩍 “그럼 나는?”이라고 물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전에 샀던 마카롱 있잖아. 그거 또 사러 갈까? 어때? 좋아?”

    “마카롱? …음, 그것보단 폭신폭신한 게 끌리는데. 이를테면 다쿠아즈라든가.”

    “다쿠아즈? 다쿠아즈가 좋아?!”

    “응, 오늘은 마카롱보다 그게 끌려.”

    …젠장. 그래, 처음부터 넘어올 거란 생각은 안 했어. 심호흡을 하고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응, 그럼 다쿠아즈 산 다음, 카페에서 네가 좋아하는 토피넛 라떼 마시자. 좋아?”

    “…내 기억으로는 그 카페에서는 토피넛 라떼 안 팔걸?”

    이 망할 카페 자식아! 당장 신메뉴로 토피넛 라떼 추가… 아, 너무 흥분해서 애먼 카페에 화풀이했다. 도란이가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음료가 뭐더라.

    “그럼 카페 모카? 그건 좋아?”

    “…음, 글쎄. 지금 바로 갈 거야? 아니면, 이따가 갈 거야? 늦게 가면, 약 먹어야 하니까 커피는 좀 그래서.”

    “…아, 응. 그러네. 너 편한 시간에 가자. 언제가 좋아?”

    “나는 낮잠 조금 잔 다음에 가고 싶어. 커피 마셨는데도 졸려.”

    …어쩜 이렇게 교묘하게 다 피해갈 수가 있지. 덕분에 그나마 생각했던 얘기 소재가 동이 나버렸다. 도란이 말에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필사적으로 다른 소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또다시 말이 없자, 하품하기 시작하는 도란이다. 젠장, 더 초조해져서 마땅한 대화 소재가 안 떠오른다. 도란이 입에서 “좋아”가 나올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아, 그거다.

    “란아.”

    “응?”

    “…판다 있잖아. 좋아?”

    이러면, 좋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 뜬금없는 타이밍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판다 이야기를 꺼내니 도란이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귀, 귀여워.

    “판다?”

    “응! 판다!”

    “그야 당연히 좋지. 아, 판다 하니까 생각났다.”

    …어, 거기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안 되는데. 내가 좋으냐고 물을 기회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내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도란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후드를 내린다.

    슬퍼하기도 잠시, 보자마자 귀여워서 도란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세상에. 그냥 평범한 블랙&화이트 후드티라고 생각했는데, 후드가 판다야! 너무 귀여워서 끙끙 앓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아, 미치겠다. 이대로 주머니에 넣고 납치하고 싶어.

    “이 옷, 올해 생일선물로 은유 누나가 사준 거다? 귀엽지.”

    “…응, 완전 귀여워.”

    “아하하. 판다 얼굴이 엄청 귀여워서 좋긴 한데, 이 나이에 이런 옷 밖에서 입기는 좀 그래서, 그냥 집에서만 입고 있어. 은근히 편하다, 이거?”

    응, 확실히 밖에서는 못 입겠다. 너무 귀여워서 누가 납치라도 하면 어떻게 해. 아아, 진짜. 누가 28살 먹고 이렇게 귀여우래. 이러니까 내 심장이 견디겠냐고. 귀여워죽겠는 내 멍멍이한테 연신 뽀뽀를 퍼부었다.

    간지러운지, 까르르 웃는 소리에 또다시 부정맥이 와, 가슴을 움켜쥐는 나다.

    한참을 껴안은 채, 뽀뽀를 퍼붓고서야 간신히 진정한 나는 도란이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도란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근데 판다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낸 거야?”

    “…어?”

    아, 멍멍이의 귀여움에 홀려버려서 내가 뭘 계획하고 있었는지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다. …역시, 여러모로 해로운 멍멍이다. 이대로 끝맺으면, 흐지부지될 것 같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서 말했다.

    “판다가 좋으면, …그럼 나는?!”

    “응? 너, 뭐?”

    “…나는 …그, 조, 조, 조…좋아?”

    저질렀다!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떠, 도란이 상태를 확인했다. 그저 눈만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줘. 쪽팔려 죽을 것 같으니까. 지금이야말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도란이가 눈을 반쯤 내리깔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씩 웃는다.

    “…아아, 알았다. 그래서 말끝마다 ‘좋아?’가 붙었구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내 호불호를 묻나 했네.”

    도란이의 말에 온몸에 열이 확 올랐다. 쥐구멍, 타임머신. 아악! 역시, 이런 건 나답지 않은 것 같아. 만화에서처럼 머리를 세게 내려치면, 도란이 기억이 소거되려나. 아아, 돌겠네!

    …그래도 이렇게까지 쪽팔리게 된 거, 듣고 싶은 건, 들어야겠다. 반드시.

    “…아무튼, 마, 말해줘. 나… 나는?”

    “…흐음, 글쎄.”

    왜 또 글쎄야! 아까는 “뭐가 좋아?”라는 말에 “너.”라고 대답해 놓고서는! 뭔데, 그 천연덕스러운 반응! 내가 잘못 들었나? 하다 하다 환청 증세까지 일어나는 건가? 내일 당장 이비인후과라도 가야 하나.

    내가 또다시 앓는 소리를 내자, 키득거리며 웃는 도란이다.

    “뽀뽀해주면 생각날 것 같기도 하고.”

    도란이 말이 끝나자마자, 입술에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뽀뽀했으니까 말해줘. 빨리. 내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란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역시, 뽀뽀보다는 키스가 더 효과가 좋으려… 으읍.”

    이번에는 키스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도란이에게 돌진했다. 평소보다 더욱 절박하게 도란이한테 매달려, 적극적으로 키스했다. 키스든 뭐든 다 해줄 테니까 빨리 말해줘. …나 좋다고. 잘못 들은 게 아니라고, 연인으로서 좋아하는 거라고 말해줘.

    너무 듣고 싶어.

    격렬한 키스가 끝나고, 다시 한번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도란이가, 한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진다. 살며시 웃는 미소에 심장이 떨려서일까, 아까보다 더욱 애타고 간절하게 되어버린 나다.

    “그냥 좀 놀리려고 한 건데,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 하면 내가 미안해지잖아.”

    “…씨, 놀리지 마. 나 지금 엄청 절박하다고.”

    “아하하, 미안. 좋아해.”

    기습적으로 들리는 좋아한다는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그렇다고 너무 빨리 말하면 어떻게 해. 예고하고 말해줘야, 내가 귀에다 오롯이 새길 거 아냐. 순식간에 끝나버린 말에 아쉬움이 진득하게 남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쉬었다.

    “좋아해, 권이소.”

    귓가에 나긋하게 들리는 도란이의 목소리에 얼굴을 감싸던 손을 내렸다.

    “…다시, 다시 말해줘.”

    “좋아해, 너를.”

    “다시.”

    “…너는 내가 이런 말만 하면, 계속하라고 시키더라. 내가 무슨 앵무새야?”

    도란이의 투정에 순간적으로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자꾸 듣고 싶은걸. 오로지 네 목소리로만.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아. …너무 설레고 좋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버려. 네가 잠시라도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해줘. 녹음하게.”

    “…잘래.”

    “아, 왜!”

    “내가 직접 해주고 싶으니까. 좋아한다는 말.”

    이보다 더 심장이 뛸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나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만, 너무 듣고 싶다. 나 좋아한다는 말.

    “…그럼 네 목소리로 해줘. 좋아한다고.”

    “얼마든지. 좋아해, 이소야.”

    다시금 참지 못하고 도란이에게 달려들어 키스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너무 좋아서 이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너무 커진 이 마음에 잡아먹혀 버릴 것 같아.

    그렇지만…, 그래도 좋을 만큼 널 사랑해. 란아.

    ============================ 작품 후기 ============================

    soae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 백번 맞아도 꿋꿋이 일어나는 남자(바보) 이혁입니다...

    밤을새님// 저는 귀여움으로 승부합니다! (당당, 뻔뻔)/ㅅ/

    감귤반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귤반지님의 발동동이 여기까지 전해져요 XD

    연화령님// 도란이가 이소 마음도 모자라, 연화령님 마음까지 설레게 만들었네요 /ㅅ/ 너란 도란, 마성의 멍멍이...

    후후후, 자그마치 20키바! 역대급 빠방한 분량으로 등장했습니다.

    2편으로 끊을 수 있는 분량인데도 1편으로 뭉쳤다고요! 빨리 나를 칭찬해줘요! (당당)

    그러니까 다음편은 토요일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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