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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86화 (86/97)

00086 79. 뭐가 좋은데 =========================

드디어 방해꾼 한 명이 에어컨 수리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자기 집으로 되돌아간 주말. 뭐, 사실 김성준은 그렇게 문제도 아니었다.

…철천지원수 같은 내 동생, 이혁이가 문제지.

지금도 도란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퍼질러 자고 있잖아. 경호한다는 이유로 붙어있으니까 떼어낼 수도 없고. 나는 이를 갈며 이혁이를 째려봤다. 내가 째려보거나 말거나, 도란이 등에 딱 달라붙어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이혁이다.

그래도 김성준이 집으로 가니까 좋은 점이 하나는 있네. 거실에 내가 누울 공간이 생겼다. 그것도 도란이 바로 옆에. 행여나 곤히 자는 애 깨울까 봐 조심조심하며, 도란이 옆에 누웠다.

역시 내 멍멍이는 자는 모습도 예쁘네. 두 주먹을 꼭 쥐어 볼 쪽에 갖다 댄 채로 웅크리고 자는데, 그 모습이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도란이 볼을 살며시 만지작거렸다. 내가 사준 수면 크림을 바르고 자서 그런지, 피부가 평소보다 더 보들보들하다.

사주고 나서 딱 한 번 말했는데. 시키는 대로 말도 잘 듣고, 예뻐 죽겠다니까.

도란이 볼에서 손을 떼자, 아무래도 간지러웠는지 주먹으로 볼을 비비는 도란이다. 그 모습이 꼭 세수하는 고양이 같다. 읔, 귀여워. 아아, 심장에 해롭다.

계속 만지고 싶긴 하지만, 깰지도 모르니까 자제해야지. …자제, 가능하려나.

슬며시 도란이 잠옷 단추를 두어 개 풀어 전날, 내가 만들었던 흔적들을 확인했다. …자제하지 못해서 만들어낸 흔적들. 몇 개는 지워졌지만, 심장 부근에 새긴 흔적들은 여전히 검붉은 형태로 남아있다.

어쩐지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뛴다.

순간적으로 도란이에게 다가가긴 했지만, 이내 자는 애 데리고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단추를 도로 잠갔다. 크, 내가 생각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으응?”

“미안, …깼어?”

나 때문에 깬 건지, 도란이가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이며 나를 쳐다본다. 깨우려고 했던 건 아닌데. 다시 자라고 말하려는데, 내 품으로 파고드는 도란이다.

“…이소야.”

“응?”

“…좋아.”

잠긴 목소리로 좋다고 중얼거리는 도란이 때문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것도 잠시, 심장이 또다시 쿵쾅쿵쾅 날뛰기 시작한다. …뭐야, 뭐야? 뭐가 좋다는 건데? 흥분해서 목소리가 크게 나오려는 걸, 꾹 억누르고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좋은데?”

“….”

1분이 지나도 2분이 지나도 대답이 없다. …자냐! 내 심장 브레이크를 아주 박살 내놓고 너는 자냐! 뭐가, 뭐가 좋은데! 흔들어서 도로 깨울까 싶었지만, 내 품으로 더욱 파고들어 자는 도란이를 차마 깨울 수 없었다.

몰라, 이대로도 너무 황홀하니까 그냥 있을래.

도란이한테만 식사준비를 시키는 게 미안해서 오늘 아침은 내가 직접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내 실력에 여러 가지 종류를 만들어봤자, 음식쓰레기만 늘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주력메뉴 한 가지만 하기로 했다. 바로 된장찌개.

레시피를 보니 육수에 적당히 된장만 푼 다음, 재료 넣고 소금만 팍팍 치면 끝인 듯하니까.

멸치·다시마 육수를 우린 나는 레시피대로 된장을 푼 다음, 재료를 통째로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맛을 보니 싱겁길래, 소금을 추가했다. 근데 어째 소금을 치면 칠수록 간은 맞는데, 된장찌개라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맛이 나는 거지.

…이건 그냥 된장 향이 조금 들어간 소금물이다.

때마침 일어난 이혁이가 배를 벅벅 긁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내 동생에게서 풍기는 아재의 향기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도란이보다 어리면서, 왜 귀염성은 도란이 발끝에도 못 미치는 걸까. 대체 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움은 어디다 갖다 판 건지.

“야, 이거 먹어봐.”

“뭐야. 신종 사약이야?”

“닥치고 퍼먹어.”

내가 주먹을 치켜들자, 이혁이가 질색하는 표정을 하며 한술 떴다. 찌개를 맛보고 잠시 굳어있던 이혁이가 싱크대에서 냄비를 꺼낸다. …뭐지. 내 요리 손봐주려고 그러는 건가. 불을 줄이고 이혁이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찬장에서 라면을 꺼내오는 이혁이다.

“야! 씨, 누나가 기껏 만들었는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나서 먹으라고 해! 뭐야! 그 정체 모를 음식은!”

“된장찌개.”

“….”

잠시 말이 없던 이혁이는 다시 찬장으로 가더니 라면을 한 개 더 꺼내왔다.

“그거 누나 혼자 다 먹어. 형이랑 나는 라면 먹을 거니까.”

“…이게 라면보다 맛없냐?”

“우리 누나는 얼마나 양심이 없으면, 나한테 그런 걸 묻는 걸까.”

“죽어!”

이혁이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데, 우리가 싸우는 소리 때문에 깬 건지, 도란이가 부엌으로 다가왔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끔뻑거리더니 나와 이혁이를 떼어놓는 도란이다.

“…내가 싸우면 쫓아낸댔지. 가스레인지 앞에서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누나가 이상한 음식을 강제로 먹으라고 하잖아!”

“야! 이상하다니! …맛은 좀 그래도 누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또다시 한바탕 티격태격하자, 고개를 젓던 도란이가 가스레인지로 시선을 돌렸다. 이혁이한테 먹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도란이는 찌개를 쳐다보기만 할 뿐인데도 괜히 온몸이 움찔거린다.

…진짜 이혁이 말대로 내 양심이 없긴 한가 보다.

잠시 된장찌개를 바라보던 도란이가 한술 뜨더니 입에 넣었다. 맛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긴장이 돼, 마른침을 삼키는 나다. 된장찌개를 맛본 도란이가 가만히 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입에 넣었다. …어째 표정이 좋지 않다.

“…써. 자다 깨서 그런가.”

“아니, 형아. 그거 원래 썼어.”

“….”

이혁이의 팩트 폭력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나다. 어깨를 으쓱이던 도란이는 하품을 하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짧고 강한 도란이의 심사평에 단숨에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잔뜩 기고만장해진 이혁이가 얄미운 표정으로 비아냥대는데도 차마 반박할 수가 없다. …젠장.

나란 인간, 하나를 만들든 열 개를 만들든 완성하는 건 음식쓰레기구나. 도대체 요리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요리를 하길래 그렇게 잘 만드는 거지. 분명 같은 재료를 사용했는데. 실패한 내 요리를 보며, 뭐가 문제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한심하게 보던 이혁이가 고개를 젓더니, 도란이 작업실로 들어갔다.

빡치긴 하지만, 솔직히 한심하게 보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한다. 나 역시, 백날 고민해도 요리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하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으니까.

됐어, 포기. 버려야 하니까 음식물쓰레기 봉투나 찾아야겠다.

익숙하게 싱크대 서랍장을 여는데, 있어야 할 음식물쓰레기 봉투가 없다. …뭐지? 때마침 도란이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길래 물어봤다.

“란아, 음식물쓰레기 봉투 어디 있어?”

“그거 서랍에 없어?”

“응.”

“…아, 작업실 수납장에 같이 넣었나 보다. 그런데 쓰레기봉투는 왜?”

“저거 버리게.”

된장찌개가 끓고 있는 냄비를 가리켰더니 도란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도 쓰다고 혹평했으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리지 말라고. 왠지 얄미워서 도란이 볼을 잡아당기다 말고,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물에 젖은 내 멍멍이, 너무 예뻐.

“저거 금방 버리고 머리 말려줄게. 저기 가서 앉아있어.”

“…아깝게 저걸 왜 버려. 네가 힘들게 만든 건데.”

“솔직히 …내가 먹어봐도 소생 불가인 것 같거든.”

내 양심선언에 도란이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쥐구멍에 들어가더라도 도란이 보려고, 얼굴을 내밀고 있을 게 뻔하지만.

내 허리를 감싸 안고서 내 볼에 가볍게 입맞춤한 도란이가 냄비뚜껑을 열었다. 그러더니 다시 한술 떠서 신중하게 맛보는 도란이다.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도란이는 이윽고 피식 웃으면서 작업실로 갔다.

“혁아.”

“응? 왜?”

“슈퍼 가서 순두부 좀 사와 줄래?”

“옛썰.”

도란이의 부탁이 떨어지자마자, 작업실에서 나와 현관으로 가는 이혁이다. …권이혁, 내 말은 죽으라고 안 들으면서 도란이 말은 그저 절대복종이지. 씩씩거리며 현관 쪽을 쳐다봤다. 다시금 내 쪽으로 와서 나를 끌어안는 도란이 때문에 분노가 쏙 들어갔지만.

“그런데 순두부는 왜?”

“음, 양파랑 순두부랑 물을 조금 넣고, 간을 조금만 손보면, 맛있게 될 것 같거든.”

“…그냥 잠깐 맛 본 건데도 뭐가 문제인지 알아?”

“응, 요리를 십 년 넘게 했으니까.”

오오, 자신감 넘치는 말. 갑자기 도란이한테서 광채가 나는 것 같다. 아니, 늘 반짝반짝 빛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뭐랄까, 존경의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요리의 달인을 영접한 느낌이다.

내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기를 바라보자,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는 도란이다. …진짜 귀여워.

“그러면 일단 가스 밸브는 잠그고, 양파부터 썰어야겠다.”

“…잠깐만.”

“응?”

냉장고로 향하려는 도란이를 도로 붙잡았다. 도란이가 멈춰 서자마자, 그대로 도란이 허리를 감싸 안은 나다.

“지금 이혁이 순두부 사러 갔잖아. 편의점은 가까워도 슈퍼는 꽤 멀리 있고.”

“응.”

“…그럼 그동안은 우리 둘뿐이네?”

“아하하, 그러게.”

짧은 시선이 오가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갰다. 서로의 타액이 섞이고, 혀가 서로를 원하듯 뒤엉키는 짜릿한 키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을 즐기며, 우리는 도어락 해제 소리가 들릴 때까지 싱크대에 기대 키스를 나눴다.

순두부와 양파를 넣고, 도란이가 찌개의 간을 다시 손보자, 소금 소태 같았던 내 된장찌개가 맛있는 맑은 순두부찌개로 재탄생했다. 순두부찌개를 맛본 이혁이가 눈을 크게 뜨며 “요리계의 화타”라고 도란이를 칭찬했다.

“…역시, 형은 진짜 대단해. 어떻게 죽은 요리까지도 소생시킬 수 있는 거냐고.”

“아하하.”

“야, 다시 씨불여봐. 뭐라고?”

“누나 요리 솜씨 쓰레… 악!”

결국, 네가 사랑의 매를 부르는구나. 이혁이의 관자놀이에 양 주먹을 대고 뚫어버릴 기세로 돌렸다. 싸운다고 또 혼날 줄 알았는데,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는 도란이다. 우리가 그렇게 웃긴가. 의아함에 잠시 어깨를 으쓱이긴 했지만, 그래도 내 남자가 좋아하니 그걸로 됐어.

아, 맞아. 좋아한다고 하니 생각났다. 아까 그거. 혹시라도 이혁이가 들을까 봐, 도란이를 거실로 끌고 온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란아, 란아.”

“응?”

“아까 다시 잠들기 전에 좋다고 말했었잖아. …뭐가 좋아?”

“내가 그랬어? 기억이 안 나는데.”

…하긴.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말한 게 떠오를 리가 있나. 보나 마나 꿈꾸다가 잠꼬대가 튀어나온 거겠지. 어쩐지 조금 맥이 빠진다.

“혁아, 찌개랑 밥 퍼서 식탁에 놓아줄래? 반찬은 내가 준비할게.”

“응응.”

도란이가 반찬, 이혁이가 밥이랑 국을 담당하면, 나는 수저라도 놓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부엌으로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도란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뭔가 싶어 빤히 보는데,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도란이다.

“너.”

내 볼에 짧은 입맞춤을 한 도란이가 생긋 눈웃음을 짓고는 부엌으로 이동했다.

“잠깐만, 혁아! 혼자서 냄비째로 먹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맛있으니까 다 먹을 수 있어!”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거실에 홀로 남은 나는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스르르 주저앉았다.

============================ 작품 후기 ============================

이루네님// 콜? 콜 /ㅅ/!

투격님// 헉, 부족한 소설인데도 재밌게 봐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ㅅ/

12시가 되기 전에 뿅하고 등장하면 연참 아닙니까 '-^!

자그마치 30분 전이라고요! (으스대기)

다음 연재는 ㅇ<-<... 언제로 하지(무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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