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76. 둘이 셋 되고 넷 되고 =========================
마트에서 쇼핑을 끝내고, 근처 시카고 피자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어머…아니, 성준이의 요구대로 고기가 가득 들어간 시카고 피자 포장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다.
“이 근처 카페에 초코케이크 맛있는 집 있잖아. 거기 들려서 케이크 한 판 살까?”
“아직 딸기 케이크도 남았는데? 케이크 좋아하긴 하지만, …자꾸 먹으면 살찔 것 같아.”
“살찔 것 같은 게 아니라, 살찌라고 먹이는 거거든?”
“왜?!”
내 말에 도란이가 화들짝 놀란다. 왜긴 왜야, 살이 쪽 빠져서 그 말랑말랑하고 귀엽기만 하던 볼살이 온데간데없잖아. 가뜩이나 살도 잘 안 찌는 체질이면서. 덕분에 갈 길이 구만리 같은데 엄살은. 나는 도란이 양 볼을 쭉 늘렸다.
“봐봐. 전에는 피자 치즈처럼 쭉 늘어나던 게 이제는 식은 치즈처럼 뚝 끊기는 느낌이잖아. 원상복귀 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이걸 왜 굳이 원상복귀 해야 해. 난 살 빠져서 좋은데. 얼굴이 좀 갸름해진 것 같지 않아?”
“전혀. 별로야.”
단칼에 자르자 시무룩해져서는 입술을 내미는 도란이다. 귀여워. 집이기만 했어도 키스를 퍼부었을 텐데. 아쉬움을 가득 담아 볼에다 가볍게 뽀뽀했다.
“난 얼굴 갸름한 것보다 말랑말랑한 볼살이 더 좋단 말이야. 훨씬 더 건강해 보이고, 귀엽고. 그러니까 현상유지 말고 원래대로 되도록 노력하자, 응?”
“…그럼 케이크 말고 마카롱.”
“응, 마카롱 사러 가자.”
하여튼 말도 잘 듣고. 예뻐 죽겠다니까. 다시금 도란이 볼에 뽀뽀하려는데, 테이블에 놔둔 내 폰이 진동한다. …진동이 멈추지 않는 걸 보니까 전화 같은데. 대체 누구야, 이 타이밍에.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서 액정을 확인했다. 응? 아빠네?
“아빠, 왜?”
“일전에 경호원 알아봐달라고 했던 거. 오늘 너희 집으로 보냈다.”
“응? 휴일인데? 하긴, 빠를수록 좋은 거지. 근데 어떤 사람이야?”
“…어? 그… 아빠 수제자. 하하. 다른 건 몰라도 무술 실력 하나는 끝내줘.”
“그렇구나. 알았어, 고마워. 아빠.”
“오냐.”
역시 우리 집안 통화는 짧고 간략하게가 모토지. 여러모로 도란이네 가족이랑 비교되는 통화시간이네. 내가 통화하는 걸 빤히 지켜보던 도란이도 그걸 느꼈는지, “통화 엄청 짧게 하네.”라고 중얼거린다.
원래 통화는 짧고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는 거지. 물론, 너랑 통화할 때만 빼고. 란이 너랑 통화하는 건, 보고 싶은 게 용건이라서 쉽사리 끊을 수가 없거든.
“아저씨랑 무슨 얘기 했어?”
“아빠한테 경호원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거든. 오늘 온대.”
“…경호원? 경호원은 왜?”
“그 인간이 너한테 해코지할까 봐 불안하니까. 너희 집에 감시카메라까지 달고 그랬잖아. 맘만 같아서는 내가 24시간 옆에 붙어서 지켜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경호원을 알아봤지.”
눈만 깜빡거리던 도란이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내 손을 꼭 잡고서 배시시 웃는 도란이다.
“고마워. 나 신경 써줘서.”
“…고맙긴. 나 때문인데. 수사 중이라서 꾹 참는 거지, 맘만 같아서는 그 자식 죽여 놨을 거야.”
“아하하. 오늘 경호원분이 오시는 거면, 피자 한 판 더 사가자. 경호원분도 드셔야지.”
“응, 그러자.”
우리는 치즈가 듬뿍 올라간 시카고 피자를 추가 주문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없는 동안, 내 멍멍이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도록.
***
혹시나 성준이가 내 멍멍이 간식을 뺏어 먹을까 봐, 그리고 내 멍멍이를 지켜줄 고마운 경호원분도 드셔야 하기에 넉넉하게 마카롱 3박스를 구매했다. 도란이가 계산하려고 했지만, 내가 막았다. 도란이가 이렇게 살이 빠진 건, 따지고 보면 내 책임이니까.
잔고가 비어가도 내 멍멍이의 살이 포동포동 오른다면 그걸로 됐어. 나랑 사귀면 디저트 무제한 제공이라고 영업할까. …어, 꽤 좋은 생각인데?
피자에 마카롱, 거기다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들까지. 짐이 많아서 혼자 들기엔 손이 부족하다. 도란이가 거들려고 하는 걸,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며 거절했다. 왜 네가 짐을 들어. 집에 짐꾼이 하나 있는데.
손에 든 짐을 내려놓고 성준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엉? 왜.”
“주차장으로 와. 와서 짐 들어.”
“오케이.”
통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키 큰 사람이 이쪽으로 오는 게 보인다. 딱 봐도 김성준이네. 그런데 성준이 옆에 한 사람이 더 있다. 누구지? 우리를 보더니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뭐야? 권이혁?!
육상선수 버금가는 빠른 속도로 우리 쪽으로 달려온 이혁이가 내 옆에 서 있던 도란이를 와락 끌어안더니, 번쩍 들어 올린다.
“형형형형형! 란이 형!”
“…어? 혁아!”
“응응! 형아! 진짜 보고 싶었어!”
“하하,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깜짝 놀랐잖아.”
야! 내 멍멍이한테서 떨어져! 이혁이가 도란이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도란이를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내가 도대체 왜 하나뿐인 남동생이랑 도란이를 사이에 두고 싸워야 하는 거지.
한숨이 저절로 나오긴 하지만, 일단 얘는 내 거야. 건들지 마.
“내가 형 경호하기로 했어!”
“…응?”
“…뭐?”
“아빠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니길래 내가 하겠다고 했지! 어떻게 딴 놈들한테 형을 맡겨. 나 형 지키려고 휴학신청까지 하고 왔다!”
…맙소사. 딱 봐도 권이혁, 이 망할 비글 자식이 자기가 하겠다고 아빠를 졸랐구먼. 어쩐지 아빠가 누군지 묻는 말에 머뭇거리더라! …고맙다는 말 전면 철회. 성준이가 들러붙은 것도 신경 거슬리는데, 그것도 모자라 하필이면 도란이 빠돌이인 남동생 새끼까지!
“필요 없어, 당장 사라져.”
“뭐! 왜!”
“차라리 내가 휴직계를 낸다. 꺼져.”
“웃기시네! 경호 자격증도 없으면서! 나는 합법적으로 형을 경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아침에는 김성준, 오후에는 권이혁이냐. 또 한바탕 샤우팅을 하면서, 망할 동생 새끼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진짜 성대가 남아날 일이 없겠네.
“야, 누구한테 걸래?”
“난 혁이한테 한 표. 넌?”
“나도 몇 대 맞긴 하겠지만, 권이혁이 이긴다에 한 표.”
그리고… 마트에서 사 온 감자칩을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싸움을 관전 중인 성준이와 내 멍멍이다. 김성준, 너도 이따가 몇 대 맞을 줄 알아라.
두 사람의 예언대로 응징의 주먹을 몇 대 날리긴 했지만, 망할 비글 동생을 막는 건 실패해버렸다. 셋도 모자라, 넷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는 나다. 젠장. 이게 뭐냐고. 란이 집이 무슨 게스트 하우스야?!
게다가 제집인 것 마냥, 비밀번호를 따고 들어가는 이혁이다. …우리 집 보안 상태도 처참하긴 하지만, 도란이 집도 만만치 않구나. 완전 셰어 하우스네. 저 자식들 사라지면, 비밀번호부터 바꾸라고 해야겠다.
가장 먼저 집으로 들어가더니, 이혁이가 뭔가를 손에 들고나온다. 뭐지 싶어서 보니까 …보약?
“이거, 엄마가 형 먹으라고 유명한 한의원까지 가서 지었대. 하루 세 번 식후에 먹으래.”
“…나 먹으라고?”
자기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 도란이가 당황한다. 나 역시, 이혁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엄마. 고맙긴 한데, 뜬금없이 보약을 주니까 란이가 당황하잖아. 괜히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이따 감사하다고 전화 드려야겠다. …그런데 왜 내 보약을 지어주신 거지.”
“울 엄마야, 워낙에 형 좋아하잖아.”
“으응.”
도란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관으로 들어갔다. 벼는 익어서 고개를 숙이는데, 나는 쪽팔려서 고개를 숙이네. 내가 얼굴을 못 들고 있자, 옆에 있던 성준이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햐, 예부터 사위 사랑은 장모라더니. 너희 어머니, 아직 예비 사위인데도 엄청 아끼신다.”
“…닥쳐.”
“으하하! 개 웃겨, 진짜.”
“몇 대 더 맞을래?”
“잘못했습니다.”
역시 그날, 그냥 끝까지 입 다물고 참았어야 했는데. …그래도 저거 먹으면, 도란이 건강이 빨리 회복되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 나다.
성준이랑 이혁이가 피자를 먹는 동안, 도란이가 저녁 준비를 하려는지 커다란 웍을 꺼낸다. …대식가인 이혁이가 추가되니, 조리도구 스케일부터가 달라지는구나. 어쩐지 일을 늘린 것 같아 미안하다.
“…음, 혁아. 볶음밥에 3분 짜장 괜찮아?”
“응! 난 형이 해주는 건 뭐든지 좋아.”
“아하하, 알았어.”
결국, 예정에 없는 볶음밥이 추가되었네. 하긴, 볶음밥을 추가하는 게 나으려나. 손이 많이 가는 양장피나 해파리냉채를 이혁이 배 채울 만큼 만들었다가는 내 멍멍이 죽어요.
요리는 못해도 칼질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나도 좀 거들어야지. 2인분이면 몰라도 …대식가가 하나 추가된 4인분은 혼자 만들기 힘들 것 같으니까. 마트 봉투에서 재료를 꺼내고 있는 도란이 옆으로 다가갔다.
“나도 도울게. 뭐 하면 될까?”
“응? 괜찮아. 그냥 앉아서 쉬어.”
“됐어. 그냥 너랑 같이 식사준비 할래.”
“음, 그러면 재료들 좀 씻어줄래?”
나는 개수대 쪽에서 정성 들여 재료를 씻어 도란이에게 건넸다. 내가 건넨 재료들을 능숙한 칼질로 손질하는 도란이다. 싱크대 앞에서 나란히 식사준비. 이러니까 진짜 신혼부부 같다. 내 멍멍이는 어쩜 이렇게 요리하는 모습도 귀엽고, 멋있고, 사랑스럽고.
오이를 씻다 말고 헤벌쭉 웃으며 도란이를 감상하는 나다. 아예 수도꼭지까지 잠가놓고 도란이를 보고 있는데, 뒤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어이구야, 뚫어지겠다, 아주.”
“응? 뭐가 뚫어져?”
“조만간 우리 중 하나가 얼굴에 구멍 뚫릴걸.”
“헐, 뭐야. 공포게임이야?”
뒤에서 들리는 지방방송에 성준이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내가 노려보자, 언제 떠들었냐는 듯 피자를 먹기 시작하는 성준이다. 얼씨구, 아주 피자에 코 박겠다, 인간아.
“그나저나 형이랑 누나, 사이좋아 보여서 다행이네.”
“뭐?”
뜬금없는 이혁이의 말에 나는 얘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어깨를 으쓱였다. 도란이도 하던 칼질을 멈추고서 이혁이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이혁이가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니, 엄마가 여기 오는데, 형이랑 누나 어떻게 지내는지 잘 살펴보고 알려달라는 거야. 엄마가 뜬금없이 그러길래 나는 둘이 싸웠거나, 누나가 형한테 뭐 잘못한 게 있는 줄 알았지.”
“….”
엄마! 젠장, 경호원 겸 감시역이냐! 분명 내가 도란이한테 스킨십을 하는 순간, 보나 마나 저 망할 자식이 엄마한테 호들갑 떨면서 보고할 텐데. 그러면 나도, 도란이도 엄마한테 시달릴 게 뻔한… 아이고, 머리야.
“우리 안 싸웠는데. …뭐지?”
“에이, 그냥 엄마가 괜히 그러는 거겠지. 란아. 하던 식사준비나 계속하자. 나 슬슬 배고파.”
“배고파? 서둘러야겠다.”
“풋, 큽. …푸핫.”
내 심정이 어떤지, 여기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성준이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다. 저 망할…. 내 고생문 열린 게 좋냐?! 3D 안경까지 끼고 감상하시지, 아주? 성준이를 보고 주먹을 치켜들고는, 다시금 식사 준비를 이어나갔다.
동거 생활이 박살 난 걸로도 모자라, 24시간 감시까지 붙어있고. …젠장. 그냥 내 멍멍이 데리고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 작품 후기 ============================
빗자루계인님// ㅋㅋㅋㅋㅋ ㅜ_ㅜ.. 다음엔 예고하고 연재하께여.. 나 미워하디망.. 너무 달달하길래 이혁이랑 성준이로 소금 좀 쳤어요!
이루네님// ......란아.. 왜 모니터에서 안 나와..? (오늘도 헛된 기도를 합니다.)
류x님// ㅜ_ㅜ..울디마여..(휴지를 건네며)
soae님// 네! 그래서 훼방꾼을 추가했어요! 망해라! (?)
ㅋㅋㅋㅋㅋㅋ 시어머니도 모자라 한 명 더 추가됐습니다.
본격 권이소 수난일기.
그러게 내 눈에서 눈물 쏟게 만들래?! (울컥)
힝.. 8-8...
옆집남자는 밤에 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