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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82화 (82/97)

00082 75. 연인처럼 보여요?  =========================

주말이라 그런지, 이른 시간인데도 마트에 사람이 꽤 많다. 오후에 왔으면 그야말로 사람한테 치였을 것 같다. 도란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일찍 와서 다행이라고 중얼거린다. 이심전심이네, 좋다.

남들이 보면, 별것도 아닌 걸로 좋아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행복하고 좋은걸.

쇼핑카트를 끌고 곧바로 식품매장이 있는 지하로 향하려는 도란이를 붙잡았다.

“응? 왜?”

“나 1층에서 살 거 있어.”

“아아, 응.”

우리는 함께 카트를 끌고서 1층 입구로 들어갔다. 내가 들르고 싶었던 곳은 화장품 매장. 여기에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화장품 매장을 보던 도란이가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화장품 살 거 있어?”

“음, 네니요.”

“으응?”

이도 저도 아닌 내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란이다. 귀여워. 도란이 볼을 만지작거리고는 화장품 매장으로 들어왔다. 우리 말고 먼저 온 다른 손님이 있어, 점원이 이쪽으로 오지 않는다. 다행이다. 점원이 옆에서 말하는 거 은근히 불편하다고.

사실, 여기 온 이유는 내 걸 사려는 게 아니라, 도란이 것을 사려고 왔다.

며칠 동안 쉬어서 도란이 피부가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의 말랑함과 뽀송뽀송함을 되찾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내 남자 피부는 내가 관리해야지. 마스크팩이랑 수면 크림, 그리고 영양 크림도 사야겠다.

스킨 코너로 향하다가 옆에 있는 립제품 코너로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했으니까.

“란아, 이리와.”

“응.”

“눈감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면서도 순순히 눈을 감는 도란이다. 우리 멍멍이, 말도 잘 듣고 예뻐 죽겠다니까. 그러니까 더 예쁘게 만들어줄게. 나는 킬킬거리며 도란이한테 발라줄 립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색이 진하고 매트한 립스틱을 바를까 했지만, 최후의 양심이 그건 아니라고 만류했기에 적당히 붉은빛이 도는 글로쉬한 틴트를 꼼꼼히 정성 들여 발라주었다. 갑자기 촉촉한 브러쉬가 입술을 훑으니 도란이가 어깨를 흠칫거리며 실눈을 뜬다.

내가 입으로 ‘씁’하는 소리를 내자, 다시 눈을 꼭 감는 도란이다. 하여튼 말은 엄청 잘 들어요.

“완성. 이제 눈 떠도 돼.”

“…뭐야. 내 입술에 뭘 바른 거야.”

도란이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양심에 찔려서냐고? 아니, 큐피드의 화살이 심장을 또다시 찔러버렸으니까.

눈감은 채로 가만히 있을 때는 몰랐는데, 틴트를 발라, 붉고 촉촉한 입술을 달싹이며 말하는 도란이가 무척이나 섹시하다. 거기다 시선을 내리깐 채, 엄지로 자기 입술을 훑는데,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떡해. 미치겠다. 당장에라도 키스하고 싶어.

아무렇게나 닦은 바람에 입 주변에 번져버린 틴트마저 나를 유혹하는 것만 같다. 권이소, 아주 그냥 셀프로 무덤을 팠구나. 앞으로 이런 건 단둘이 있을 때만 발라야지. 또다시 본능을 억제하느라 사리가 생길 것 같다.

가뜩이나 견디기 힘든데, 혀로 자기 입술을 할짝거리는 도란이다.

“어, 이거 맛있다. 딸기 맛나.”

“….”

엉뚱한 4차원 발언에 퍼뜩 이성을 되찾은 나는 리무버로 도란이 입술을 닦아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멍멍이는 무척이나 해로운 멍멍이다. …집에 가서 내 거 또 발라줘야지.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서 원래 사려고 했던 마스크팩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떤 게 좋으려나, 무난하게 수분 마스크팩이나 살까. 귀찮아서 마스크팩 같은 건 안 한지 오래돼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몇 년 사이에 종류도 엄청 다양해졌네.

나를 따라 마스크팩을 구경하던 도란이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갑자기 왜 웃어?”

“저것 봐. 완전 타이거 마스크잖아. 아하하.”

도란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진짜로 호랑이 얼굴이 그려져 있는 마스크팩이 있다. 저거 얼굴에 붙이면 프로 레슬링 선수 같겠다. 분명히 성준이가 자기도 해달라고 조를 텐데, 저거 하나 사서 붙여줄까. 상상만 해도 웃기다.

“…이소야, 이소야.”

“응?”

호랑이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인 성준이를 상상하며 사악하게 웃고 있는데, 도란이가 내 옷깃을 잡아끈다. 내가 자기를 쳐다보자, 어느 한 곳을 가리키는 도란이다. 도란이의 손끝이 닿은 곳을 보니 판다 얼굴이 그려진 마스크팩이 있다.

…누가 판다 마니아 아니랄까 봐, 구석탱이에 처박혀있는 걸 발견하냐.

“우리 저거 사면 안 돼?”

어떡해. 눈빛 초롱초롱한 거 봐. 마음만 같아서는 판다 마스크팩이든 뭐든 싹 다 사주고 싶다. 도란이를 계속 쳐다보면, 여기가 마트인 것도 망각하고 덮칠 것 같아,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채 사자고 대답했다.

기능 따위 뭐가 중요해. 내 멍멍이가 원하는 거면 장땡…이 아니구나. 기능이 짱짱해야, 내 멍멍이의 피부가 탱글탱글한 아기 피부로 원상복귀 되지.

나는 어떤 마스크팩이 좋을지 다시금 고민하기 시작했다.

판다 마스크팩을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도란이를 바라보느라, 집중이 안 되긴 하지만. 만일 도란이를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다면, 절대 직장에는 안 데리고 가야지. 도란이만 쳐다본다고 일을 못 할 게 분명하니까.

도란이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먼저 온 손님과의 볼일이 끝났는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점원이다.

“고객님, 어떤 제품을 찾고 계세요?”

“아, 마스크팩이랑 수면 크림 같은 거요.”

“고객님께서 사용하시려고요?”

“아뇨, 저기.”

나는 아직도 판다 마스크팩을 보고 있는 도란이를 가리켰다.

“아아, 남자친구 분께서 사용하시는 거구나.”

“…네? 네!”

“남성 제품은 이쪽에 있어요.”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성대한 축제의 장을 열고 있는 나다. 세상에. 남자친구래. 다른 사람 눈에도 우리가 연인처럼 보인다는 거 아냐. 너무 감격에 겨워서 점원이 추천하는 말소리도 전혀 귀에 박히지 않는다.

아, 이러면 안 되지. 내 멍멍이 피부에 바를 건데, 꼼꼼히 따져봐야지.

나는 우리를 연인으로 봐준 게 마냥 감사해, 계획에 없었던 제품들까지 구매하고는 화장품 매장을 빠져나왔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

1층에서 화장품을 한가득 구매하고는 지하로 내려왔다. 슬슬 점심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시식코너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도란이를 이끌고 가장 앞에 있는 군만두 코너로 갔다.

“입 벌려, 아.”

“아.”

도란이 입에다 군만두를 넣어주었다. 말 잘 듣는 것도, 오물거리면서 먹는 것도 너무 귀여워. 오물오물 잘도 먹길래 맛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도란이다.

“새댁.”

“…응? 네?”

“남편도 맛있다고 하는데 이거 하나 사요. 두 팩 사면, 한 팩은 공짜야.”

…새댁이라길래 나보고 말한 게 아닌 줄 알았는데, 도란이를 가리키며 남편이라고 말하는 아주머니다. 연인으로 보이는 것도 좋아 죽겠는데, 그걸 넘어 신혼부부로 봐 주시다니. 귀까지 올라간 입꼬리가 도무지 내려가지 않는다.

문득 도란이의 반응이 궁금해, 도란이를 쳐다봤다. 누가 마이페이스 아니랄까 봐, 아주머니의 말씀은 관심도 없는지 군만두만 바라보고 있다. 야! 군만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우리보고 남편에 새댁이라고 하시잖아!

나는 도란이 볼을 꼬집어 쭉 늘리면서 말했다.

“두 팩 주세요.”

아아, 오늘 충동구매 엄청 많이 하는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쇼핑을 하는 도란이를 보고 슬며시 궁금증이 싹텄다. 도란이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연인으로 보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그렇게 봐 주는 게 무척이나 기쁘고, 고마운데.

“아까 군만두 코너 아주머니께서 우리가 신혼부부인 줄 알고 계시더라.”

“그래?”

“응.”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쇼핑목록을 살펴보는 도란이다. 혹시나 다른 반응이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게 끝. 바라는 말은 안 하고, 당분간 셋이서 지내니까 식재료를 넉넉히 사는 게 좋겠다며 중얼거리고 있다.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거든?! 다시금 도란이 양 볼을 꼬집어 쭉 늘렸다.

“아야!”

“왜 반응이 미적지근한 건데!”

“…뭐가?”

“뭐가라니! 내가 아까 말했잖아. 다른 사람이 우리를 신혼부부로 보고 있다고!”

“그게 뭐 어쨌단 거야.”

다른 건 몰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나처럼 기뻐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어쩐지 맥이 빠져 도란이 볼을 잡고 있는 손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내 표정이 좋지 않은지, 도란이가 걱정스레 묻는다.

“왜 시무룩해 하고 그래. 응?”

“…몰라. 너 좀 미워.”

얼굴 보면, 괜히 꽁한 걸 도란이한테 퍼부을 것 같다. 싸우기는 싫어서 도란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고개를 도로 돌리더니 내 볼에 쪽 하고 뽀뽀하는 도란이다.

“왜 그래. 나 미워하지 마. 응? 응?”

내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도란이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면서 애교를 부린다. 도란이 애교에 꽁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하여튼 약아가지고. 내가 자기 애교에 엄청 약한 걸 귀신같이 이용해 먹지. 배시시 웃는 도란이를 따라, 살며시 미소 지었다.

기분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속상한 건 조금 남아있어서 툴툴거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 하냐고. 그런 얘기 듣고 좋아하는 내가 이상한 것 같잖아.”

“응? 좋다고?”

“그럼 안 좋아?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우리가 친구보다는 연인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거잖아. 왠지 인정받는 것 같고, …말로 하긴 좀 어렵지만, 아무튼 그래서 엄청 기분 좋았다고.”

내 말을 듣더니, 가만히 생각에 잠긴 도란이다. …그게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야 할 문제냐. 잠시 뒤, 생각을 끝마친 건지 도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나야, 타인의 시선 같은 건 신경 끄고 산 지 오래라, 솔직히 별 감흥이 없긴 하지만.”

“…감흥이 없어?”

“응. 타인이 어떻게 보든 간에 우리는 우리잖아.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본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부부가 됐다가 친구가 됐다가 하는 것도 아니니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기분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가치관의 차이인 거니까 뭐라 따지지도 못하겠고. 아무래도 이 문제는 그냥 다름을 이해하고, 넘기는 편이 낫겠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생긋 웃더니, 한쪽 팔로 내 허리를 감는 도란이다.

“그래도 네가 기분 좋다고 하니까. …그럼 다음에는 육류코너로 갈까, 자기야?”

“…어? 뭐?”

“남들한테 연인으로 보이는 게 좋다며? 친구 사이에 자기라고 부를 일은 없을 테니까. 아니면, 자기 말고 여보라고 불러줄까? 여보?”

야, 가슴 떨리게 그렇게 웃으면서 여보라고 부르지 말라고. 가슴뿐만 아니라, 온몸이 감전된 것 마냥 찌릿하다. 분명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졌을 텐데, 바깥에 있을 때보다 더 더운 것 같아.

“아하하, 우리 여보 얼굴 빨개졌다.”

“…아, 노, 놀리지 마. …됐으니까 빨리 가자.”

“응, 여보.”

도란이는 마트 안에서 계속 나를 여보라고 불렀고, 나는 그때마다 날뛰는 심장과 본능을 억누르며, 계속 부르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뇌했다.

============================ 작품 후기 ============================

soae님// 이소 말대로 심장에 해로운 멍뭉이인 도란이입니다 ㅜ_ㅜ.. 너란 남자, 넘나 귀여운 남자..

이루네님// ㅋㅋㅋㅋㅋㅋㅋ 질투 유발요소는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보내겠습니다 /ㅅ/ 제 글이 이루네님의 취적이라니 넘나 좋은 것

류x// 맞아!! 빨리 사겨라!!!!!

화창한 일요일 점심타임이에요! XD

너희를 누가 친구라고 보겠니

그렇게 꿀이 떨어지는데..

그리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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