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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79화 (79/97)
  • 00079 72. 멍멍이와의 동거 =========================

    일주일 중에 가장 기다려진다는 불금. 게다가 오늘은 평소보다 일이 일찍 끝나 퇴근 시간이 당겨졌다. 가방을 싸 들고 재빨리 회사를 빠져나오려는데, 다른 팀 입사 동기가 나를 붙잡았다.

    “응? 왜?”

    “오랜만에 한잔하자. 혜선 언니도 나오고 있어.”

    “아, 미안. 나 집에 빨리 가봐야 해서.”

    내가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헐”이라고 말하며 눈을 크게 뜨는 동기다. 왜. 나는 술자리 거절하면 안 되냐. 물론, 셋이서 술 마시자고 하면, 90% 이상의 승낙 성공률을 자랑하긴 하지만.

    “뭐야. 권이소가 거절을 다 하고. 그냥 한번 튕겨보는 거지?”

    “뭐래. 나 진짜 가봐야 해.”

    “이소. 어디가?”

    그새 혜선 언니도 다가오더니 나를 붙잡는다. 어허, 이러지 마세요. 저는 이미 집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몸입니다. 내가 계속 거절하자, 언니가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집에 뭐 좋은 거라도 숨겨놨어?”

    “아, 설마. 너 한동안 꽃 선물 받더니. 흐흐, 권이소. 딱 봐도 내 님과의 불금을 보내려는 거네. 능력 좋다잉.”

    동기의 장난스러운 말에 잠깐 인상이 찌푸려졌다. 야, 내 앞에서 한동안 꽃 얘기하지 마. 없던 꽃 알레르기가 생길 것 같으니까. 그래도 내 님과 함께 보내는 불금은 맞긴 하지.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헐, 그 꽃 계속 버리더니 결국은 받아준 거야?”

    “아뇨. 전혀요. 실은 꽃보다 더 예쁜 게 집에서 상시 대기 중이거든요.”

    “뭔데?”

    언니의 물음에 나는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멍멍이.”

    ***

    내 멍멍이가 좋아하는 달콤한 간식을 사 들고, 우리 집 층수보다 한층 더 높이 올라왔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습관적으로 우리 집이 있는 층수를 눌렀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위층을 누르는 나다.

    현관문 앞에 선 나는 오늘은 어떻게 들어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처럼 일찍 왔으니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서 멍멍이를 깜짝 놀라게 만들까. 아니면, 평소처럼 초인종을 눌러서 멍멍이의 환영 인사를 받을까.

    잠깐 고민한 나는 평소처럼 초인종을 누르기로 했다.

    놀라는 반응도 궁금하긴 하지만, 역시 현관문 앞에서 나를 반기는 모습이 더 보고 싶어. 혼자 지낼 때는 이따금 아무도 없는 집이 쓸쓸해서 싫었었는데. 요새는 집에 재깍재깍 들어오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고 좋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멍멍이가 꼬리를 흔드는 대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로 배시시 웃으며 나를 맞이하니까.

    역시나 내가 초인종을 누른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긋 웃으며 문을 열어주는 도란이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도란이가 웃는 건 자꾸 봐도 좋아. 아니,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좋아져.

    “일찍 왔네?”

    “일이 일찍 끝났거든. 다녀왔습니다.”

    “응, 어서 와. 오늘도 고생 많았어.”

    평소와 같은 환영 인사를 건네며 양팔을 벌리는 도란이다. 예뻐 죽겠어. 나는 씩 웃으며 도란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 따뜻하고 포근해.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구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거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가 좋은 것 같아.

    이러니까 내가 집에 일찍 안 들어오고 배기겠느냐고요.

    “짠, 이거 뭐게?”

    “어? 이 상자, 딸기 케이크 유명한 카페 거 아냐?”

    “딩동댕. 정답입니다. 딸기 케이크 사 왔지요.”

    “와,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다니까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것 좀 봐. 진짜 귀여워. 사흘 전에 예약해둔 보람이 있구나. 새삼 월급 타면, 맛있는 걸 사 들고 오는 가장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나저나…, 어째 나보다 케이크를 더 반기는 것 같은데. 슬그머니 질투가 싹튼다.

    “…뭐야. 너 지금 너무 좋아한다? 케이크가 좋아. 내가 좋아.”

    “그야 당연히 케이크.”

    “야!”

    “를 사온 네가 좋지.”

    …하여튼, 나날이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만 늘어서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장난치는 것도 예뻐 죽겠다니까. 결국, 오늘도 참지 못하고 현관에서 도란이에게 키스를 퍼붓는 나다. 신발장에 기댄 도란이를 가둬둔 채, 부드러운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면서 장난치듯 키스했다.

    근데 잠깐만.

    “케이크를 사 온 내가 좋은 거면, 빈손으로 오는 나는? 싫어?”

    “싫을 리가. 단지 순위가 케이크보다 아래로 낮아질 뿐이지.”

    “…어쭈?”

    “아, 아하하. 잠깐만. 장난, 장난이야. 잘못했어요. 항복. 항복.”

    장난기 많은 멍멍이를 응징하기 위해, 옆구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간질이며, 약점인 귀에다 대고 계속해서 바람을 불었다. 계속되는 항복 선언에도 까르르 웃는 게 너무 귀여워서, 내 괴롭힘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샤워하고 나오니까 식탁에 저녁 상차림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다. 이런 걸 보면 느끼는 거지만, 진짜 이 멍멍이는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겠다. 돈은 내가 벌고, 집안일은 도란이가 하고. 크크, 완벽해.

    …나보다 멍멍이 쪽이 수입이 많다는 게 문제지만.

    식탁으로 다가가서 밥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전히 우리 엄마의 손길이 가득 담긴 반찬들밖에 없구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삼시 세끼 도시락까지 챙겨가며 꼬박 먹었는데도 왜 자취를 감추질 않는 거야?! 맛은 있는데, 슬슬 물리기 시작한다. 도란이가 해준 거 먹고 싶어. 흑흑.

    “…저녁도 엄마가 해준 것뿐이네? 지겨워.”

    “지겹다니. 아주머니께서 힘들게 해주신 건데, 감사하게 먹어야지.”

    “나도 알긴 아는데, 벌써 5일째 똑같은 것만 먹고 있잖아. 똑같은 사료만 먹는 뽀삐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내 말에 도란이가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린다. 오늘 저녁도 도란이의 웃음을 반찬 삼아 먹겠노라. 그래도 주말에는 도란이가 해준 음식 먹고 싶다.

    “엄마가 해준 음식 얼마나 남았어?”

    “음, 새우장은 하도 많이 주셔서, …아직 김치통으로 한 통 남아있고, 장조림은 반 이상 줄었고, 나물 반찬도 시금치랑 콩나물 빼고는 거의 다 비웠고, 잡채랑 쥐포 조림이랑 멸치볶음, 오징어채 조림은 여전히 한가득 남았어. 아, 소 불고기도 한참 남아있구나.”

    …울고 싶다. 남은 양만 보면, 앞으로 일주일은 더 먹어야 할 것 같잖아. 도란이가 질리지 않도록 잡채밥이나 비빔밥 같은 걸로 변화를 주곤 있지만, 그걸로 미각이 속아 넘어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뿌리는 똑같은 재료, 똑같은 손맛이잖아.

    “…진짜 싫다. 지겨워.”

    “어제까지는 얌전히 먹더니, 갑자기 왜 반찬 투정이야.”

    “그야 주말에는 네가 해준 음식 먹고 싶으니까 이러지.”

    오물거리며 밥을 먹던 도란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내일 일어나서 양장피랑 해파리냉채 재료 사러 가자.”

    “양장피랑 해파리냉채?”

    “응, 너 전에 먹고 싶으니까 해달라며. 싫으면, 까르보나라랑 라자냐 해줄까?”

    벌써 몇 달이나 지난 일인데, 그걸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네. 진짜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하면 어쩌자는 거야, 우리 멍멍이.

    “둘 다 좋은데. 토요일은 중식, 일요일은 양식 안 됩니까, 셰프님.”

    “알았어. 해줄 테니까 오늘 저녁은 그만 투덜대고 얌전히 드세요.”

    도란이의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 참으면, 그리고 내일 아침만 참으면 도란이가 만들어준 음식 먹을 수 있다. 으아, 상상만 해도 행복해. …입맛과 행복은 별개인지, 너무 물려서 쉽사리 안 넘어가긴 하지만.

    함께 산지는 이제 겨우 일주일 될까 말까 해도, 그 사이에 암묵적으로 정해진 룰 같은 게 생겼다. 이를테면, 내가 퇴근하면, 식사준비는 도란이가 하고, 식사가 끝나면 뒷정리는 내가 하는 거. 그동안 도란이는 씻고 잘 준비를 한다.

    설거지를 끝마치고, 반 이상 남은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는데, 욕실에서 도란이 목소리가 들린다.

    “이소야.”

    “응? 왜?”

    “내 방 두 번째 서랍에 있는 잠옷 좀 가져다주라.”

    “알았어.”

    아무 생각 없이 잠옷을 찾아 욕실 문을 노크하려는데, 불현듯 짓궂은 생각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잠옷을 달라고 한 걸 보면, 끽해야 실오라기라고는 속옷만 덜렁 입었을 거 아냐?

    음란마귀와 장난을 좋아하는 소악마가 속삭이는 유혹에 홀라당 넘어간 나는 도란이가 잠옷을 받는 틈에 욕실 쪽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까꿍! …쳇, 뭐야.”

    “…나야말로 ‘뭐야’라고 하고 싶거든?”

    내심 기대했는데! 왜 다른 잠옷을 입고 있는 건데! 아무래도 옷을 들고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입고 있는 잠옷이 겨울용이라 다른 걸 달라고 그랬나 보다. 흑흑.

    “힝, 기대했는데. 두근두근 노출 이벤트 같은 건 없어?”

    “푸하하, 그게 뭐야! 없어, 돌아가. 옷 갈아입을 거야.”

    “싫은데. 뽀뽀해주면 돌아가지.”

    “…하아.”

    사악하게 웃으며 장난치는 나를 보고 한숨을 쉬던 도란이가 훌렁 윗도리를 벗는다. …어, 이런 사태는 예상하지 못해서 당황스럽다. 너무 놀라서 음란마귀도 쏙 들어갔는지, 원하던 노출인데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다.

    내가 건넨 잠옷 윗도리를 입던 도란이는 단추를 잠그려다 말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관능적인 미소를 띠고서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한쪽 팔로 내 허리를 감싸 안는 도란이다.

    “…이제 아래 벗을 건데, 계속 볼 거야?”

    “아, 아뇨. …얌전히 소파로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아하하, 응.”

    …다시금 저 멍멍이는 마냥 순진하고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멍멍이의 탈을 쓴 요물인지, 요물의 탈을 쓴 멍멍이인지 언젠가는 반드시 실체를 파악하겠노라.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도란이 머리를 말리는 게 내 의무처럼 느껴진다. 사람 당황할 정도로 색기를 흘릴 때는 언제고, 다시금 평소의 멍멍이로 돌아온 도란이다. …어쩐지 얄미워서 보통 때보다 거친 손놀림으로 머리를 말려줬다.

    머리를 말려줬더니, 식탁으로 가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도란이다.

    저녁이면 늘 보는 모습이지만, 가슴 아픈 건 변함이 없다. 빨리 약을 끊을 만큼 좋아져야 할 텐데. 의사 선생님의 처방대로 8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활동을 하지 않는 도란이기 때문에 8시가 되기 전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활동 중에 대화도 포함되니까. …사실, 그것보다는 약기운이 돌면 도란이가 멍해지므로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 몽롱한 모습도 무척이나 귀엽긴 하지만.

    “오늘은 뭐했어? 집에만 있었어?”

    “응, 아, 자형이 오늘 잠깐 들러서 수박 주고 갔는데. 먹는다는 걸 깜빡했네.”

    “냉장고에 없던데?”

    “…어디 뒀더라. 아, 냉장고 공간이 없어서 베란다에 뒀어.”

    조금씩 약 기운이 도는지 도란이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이기 시작한다. 안타까우면서도 귀여워. 언제나처럼 소파 가장자리로 이동하니, 도란이가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나는 익숙하게 도란이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면 내일 사이다도 사자. 화채 해 먹고 싶어.”

    “화채. 찬성.”

    “마트 가서 과일 사려고 했었는데, 수박 있으니까 안사도 되려나?”

    “…음. 냉장고에 넣을 자리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소량만 사두자.”

    “오케이.”

    10시 전에 자야 하는 도란이 때문에 자주 보는 예능도 못 보고 있는 나다. 그런 나를 배려해, 도란이가 어제 예능을 다운받아 틀어주긴 하지만, 사실 도란이랑 얘기하다 보면 예능은 자연스럽게 뒷전이 되어버린다. 지금처럼.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계가 9시 가리키고 있다. 슬슬 침대에 누워야겠네. 어째 도란이랑 동거하면서, 어릴 때도 해본 적 없는 바른 생활 어린이의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 같다.

    TV를 끄고는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의 도란이를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처음에는 같은 침대에서 지내는 걸 신경 쓰더니, 이제는 편해진 건지 내 쪽을 바라보고 잠드는 도란이다. …아닌가. 내가 등 돌리고 자지 말라고 자꾸 귀찮게 해서 아예 체념한 건가. 어찌 됐든 자는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나야 마냥 좋을 뿐이다.

    며칠 일찍 잤다고, 슬슬 수면 리듬이 맞춰지는지 내 눈에도 졸음이 몰려온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동거하면서 처음으로 단둘이 맞이하는 주말이네. 저번 주 일요일은 이 잠탱이가 오후 늦게까지 잠만 퍼질러 잤으니 패스. 그래도 온종일 붙어있을 테니, 뭔가 조금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나. 그런 기대를 품고서 도란이 손을 꼭 잡고서 꿈나라로 향했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는 깨어나자마자 산산이 박살 나버렸다.

    ============================ 작품 후기 ============================

    8ㅇ811님// 우리 이소는 두부멘탈 란이도 보듬을 만큼 강인한 아이니까요...!

    빗자루계인님// 사실, 이소의 어머니는 대한민국에 몇백명 있다는 태권도 9단으로.. 이소는 속으로 발차기 안 맞은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

    soae님// 여태 사귄 남자만 열 손가락을 넘는다고..(소근)

    류x님// 맘스터치...ㄷㄷ

    즐거운 불금이에요, 여러분! XD

    은... 청소년 분들은 시험기간, 대학생 분들은 기말의 마지막 날이려나요.

    연참하려고 했는데,

    시험 공부에 방해될까 죄송스러워져서 OTZ...

    다음 연재는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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