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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71화 (71/97)
  • 00071 64.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

    도란이한테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긴 했지만, 막상 도란이가 사용했던 욕실에 들어오니까 선명하게 실감이 난다. …우리 진짜 동거하는구나.

    자취하고부터는 나 혼자만 욕실을 쓰니까 이렇게 수증기가 자욱할 일도 없었는데. 도란이가 쓰는 샤워코롱 냄새도 욕실에 자욱해서, 꼭 도란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내 온몸을 뜨겁게 감싸는 것 같다. 어떡해. 미치겠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도저히 진정이 안 돼.

    진짜 신혼 첫날밤 같잖…. 아, 미치겠다. 심장이 더 세게 날뛰어.

    이래서 제대로 씻을 수는 있겠냐고. 욕실에서 늦게 나오면 도란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아아, 심장도 머리도 펑 하고 터질 것 같아. 너무 괴롭다. 근데 행복해.

    살면서 고작 욕조에 몸을 담구는 것 가지고 이렇게 긴장했던 적이 있던가.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이랬던 적은 처음이다. 분명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몸이 노곤해지면서 피로가 풀려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바짝 긴장 상태다.

    오죽하면 욕조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앉아있다. 이래서 어떻게 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만, 긴장돼서 그런가, 도무지 자세가 편해지지를 않아.

    결국, 도저히 긴장이 풀리지 않아 대충 샤워만 하고 나온 나다.

    샤워만 한 거라도 개운하긴 하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인가, 몸도 마음도 맑고 시원해지는 것 같고. 다행히 밖에 나오니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리기는 개뿔.

    정작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잖아. 저 방문을 열면, 나처럼 씻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도란이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것도 나랑 같은 샴푸, 나랑 같은 샤워코롱 향기를 마구 발산하면서.

    게다가 나랑 같은 침대에…. 오, 세상에.

    신이시여. 한심하게 흥분해서 코피 쏟지 않게 해주시고, 물기 젖은 도란이가 너무 섹시해서 또다시 음란마귀가 불쑥 튀어나와 덮치지 않도록 자제력을 제게 선물해주세요. 어째 도란이를 짝사랑하고부터 신한테 비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 같은데. 나 이러다 종교 생기는 거 아닐까.

    어쨌든 결전…이 아니라, 자러 가는 거지. 응, 그래. 잠만 같이 자는 거다, 이소야. 그렇게 세뇌에 세뇌를 거듭하며, 천천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란아, 나 왔는데 …자냐. 온종일 자놓고도 잠이 오냐. 남은 문밖에서 생쇼를 하다가 왔는데! 그렇게 평온하게 잠들어 있으면, …귀엽긴 하네.

    그래도 나를 기다리려고 노력하긴 한 건지, 침대 등받이에 기댄 채로 잠들어버린 도란이다.

    목 아프겠다. 어두운 걸 무서워하는 도란이를 위해 방의 조명은 끄고,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 조명을 켠 다음 침대에 앉았다. 도란이 머리카락은 어디 보자, 내가 욕실에서 난리를 친 동안 다 말랐네. 하긴, 내가 씻으러 들어가기 전에 대충 말려줬으니까.

    불편하게 자고 있는 도란이를 편하게 눕혔다. 어째 동거가 아니라 육아하는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래도 귀여우니 봐줬다. 넌 진짜 귀엽지만 않았으면 …어휴.

    그나저나 점점 걱정이다. 도란이가 평소에도 잠을 많이 자는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많이 자지는 않는데. 한 달 동안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만약 안 좋은 병이라도 생긴 거면. 아니, 상상하기도 싫어. 끔찍해. 난 너랑 천년만년 무병장수하면서 같이 살고 싶단 말이야.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도란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프지 마, 란아. 물론, 아프더라도 나 때문에 아프게 된 거니까 최선을 다해 간호하겠지만, 네가 아픈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아팠지, 네가 아픈 건 몸도 마음도 전부 너무 아프다고.

    내일 꼭 도란이랑 같이 병원 가봐야겠다.

    불안감을 계속해서 돋우는 걱정을 간신히 달래고는 도란이에게 굿나잇 키스를 했다. 제발 아프지 마. 아니, 아프더라도 심각한 병만 아니면 돼. 감기처럼 몇 밤 자고 일어나면 금세 낫기를.

    전날 신청했는데도 일이 별로 없어서 월차도 무사히 허락받았겠다, 여유롭게 점심시간쯤에 일어나려 했지만, 생각과 달리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나다. 사실 더 자려고 했는데 잘 수가 없었다. 도란이 때문에.

    긴장돼서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새벽에 도란이가 악몽에 시달리는지, 식은땀까지 흘리며 끙끙 앓아서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다행히 꼭 끌어안고서 괜찮다고 다독여주니 금세 평온해지긴 했지만, 또 악몽 때문에 잠을 설칠까 걱정이 돼 새벽 내내 뜬눈으로 지새운 나다.

    내가 없으면 또 악몽을 꾸는 건 아닐까 불안하긴 하지만, 아침에 엄마를 만나야 그나마 덜 맞을 테니까. …설마하니 도장 문까지 걸어 잠그고 딸내미를 개 패듯 패겠어?

    하하하. 우리 엄마라면 그럴 것 같긴 하다.

    대충 나갈 채비를 마친 나는 이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이 자식, 밤새 게임을 하고 퍼질러 자는지 전화를 도통 안 받는다. 와서 도란이 좀 지키라고 부탁하려 했더니. 이놈 자식은 필요할 때는 연락 두절이지.

    아, 몰라. 최대한 일찍 돌아오면 되겠지. 아니면, 집에 들러서 이혁이를 강제로 깨우거나. 그렇게 생각하며 인사차, 도란이 입술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자 슬며시 감았던 눈을 뜨는 도란이다. 헉, 깼다.

    “깼어?”

    “…몇 시야?”

    “7시.”

    “일하러 가?”

    “아니, 월차 냈어. 엄마… 아니, 볼일이 좀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예 일어날 작정인지, 도란이가 침대에 앉아 눈을 비빈다. 비몽사몽인 모습도 마냥 사랑스러워 이번에는 이마에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응. 아까 이혁이한테 같이 좀 있어 달라고 전화 걸었는데 자는지 안 받더라. 내가 올 때까지 집에서 꼼짝 말고 있어. 알았지?”

    “…언제 오는데?”

    “아마도 이른 오후? 아니면, 좀 늦을 수도 있고.”

    내 말을 듣는 도란이 표정이 뭔가 미묘하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는 도란이다. 뭐지? 무슨 일 있나?

    “이소야, 급한 볼일이야?”

    “…어, 좀? 왜?”

    “나 혼자 나가는 건…, 허락 안 해줄 거지.”

    “당연하지. 무슨 중요한 볼일 있어?”

    “응. 은유 누나 3주 전쯤에 딸 낳았거든. …그런데 한 번도 보러 간 적이 없어서. 자형이 누나한테 내가 바빠서 못 오는 거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그래도 누나가 분명 서운해할 테니까 오늘 누나 집에 한 번 가보려고.”

    …확실히 서운해하고도 남겠다. 그렇게 귀여워하는 동생이 출산할 때도, 하고 나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코빼기도 안 보였으니.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긴 하지만, 안정을 취해야 할 사촌누나한테 차마 말하지도 못했을 거고. 도란이도 여러모로 누나 걱정에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그럼 점심때 도란이랑 같이 사촌 누나네 갔다가, 나는 바로 엄마한테 가면 되지 않을까. 아직 이른 시각이니까 누나 집 들리기 전에, 병원에 들러서 도란이 건강상태도 체크하면. 완벽해.

    도란이에게 내 계획을 말했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계획이 조금 변경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엄마한테 맞아 죽을 시간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부터 도란이랑 같이 있어서 좋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할래.

    ***

    계획했던 대로 가장 먼저 병원으로 이동한 우리다. 나는 종합병원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 온 도란이다. …신경정신과. 종합병원에서 검진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내 말에 도란이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치료받으면 돼. 전이랑 비슷한 증상이니까.”

    “…전이랑?”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도란이는 내 손을 잡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순백색에 무시무시한 분위기일까 봐 바짝 긴장했는데, 내부는 그냥 평범한 병원이다. 도란이는 익숙한 듯 접수처로 가더니, 접수대 카운터에 턱을 괴고서는 생긋 웃는다.

    “오랜만에요, 누님.”

    야!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는데 어디서 추파를…이 아니라, 추파 날리기에는 음, 상당히 연령대가 높으신 분이구나. 아무래도 이 병원의 수간호사인지, 다른 간호사보다 연령대가 높으신 간호사께서 인자하게 웃으신다.

    “이게 누구야. 란아, 오랜만이네. 우리야, 자주 안 보면 좋은 사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안부 차 들르지 그랬어.”

    “하하, 그러고 싶었는데, 요새 너무 바빠서요. 죄송해요. 선생님은 안에 계시죠?”

    “그래, 이번 환자 다음에 바로 들어가면 돼.”

    “네, 감사해요.”

    수간호사 분과 간단한 얘기를 끝내고는 내 옆에 앉는 도란이다. 내 어깨에 기대는 도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접수처를 노려봤다. 저기요, 보셨죠. 아까부터 도란이 빤히 쳐다보시던 젊은 간호사님. 얘 임자 있으니까 그만 시선 거두시죠. …나도 아직 임시직이기는 하지만.

    “이소야, 뭐해?”

    “응? 아냐, 아무것도. 그런데 여긴 언제부터 온 거야? …혹시 그때부터?”

    “…응. 여기 선생님이 아버지 친구분이시거든.”

    어쩐지 안쓰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다. 아저씨께서 도란이의 심리 치료를 위해서 애쓰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오게 되니까 듣기만 하는 거랑은 또 다르네. 도란이가 두 사람을 잃고 힘들어했던 모습을 떠올리니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왠지 도란이를 위로하고 싶어져서, 품 안에 안고서 다독였다. 그러자 웃음을 터트리는 도란이다. …웃지 말라고. 나는 심각하니까.

    뭔가 약 올라서 도란이 볼을 꼬집고 있는데, 아까 도란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수간호사님께서 음료수를 들고 이쪽으로 오셨다.

    “어, 누님. 알로에 주스네요. 저 주시는 거예요?”

    “응, 란이 네가 좋아하는 거잖니. 마셔. 아가씨는 오렌지 주스 괜찮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수간호사님이 주신 음료수를 얌전히 받아먹었다. 오, 맛있다. 역시 과일주스는 오렌지가 최고지. 그런데 아까부터 나를 빤히 쳐다보시는 수간호사님이시다. …뭐, 뭐지?

    “…저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물어봐도 될까요?”

    “네, 뭐가 궁금하신데요?”

    “혹시, 아가씨가 란이 여자친구?”

    옆에서 도란이가 알로에 주스를 마시다 말고 콜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야, 너 그 반응 뭐냐. 네가 그러니까 더욱더 당당하게 여자친구라고 대답해 드리고 싶어지잖아.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자친구 맞아요.”

    “어머,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자기는 결혼 못 할 것 같다고….”

    “콜록. …누님, 제발.”

    수간호사님의 옷깃을 잡고 애타게 바라보는 도란이다. 영문을 알 턱이 없는 나는 그저 두 사람의 미묘한 눈빛 교환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이윽고 다른 간호사가 도란이의 이름을 부르자, 도란이가 재빨리 나를 이끌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네가 이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 작품 후기 ============================

    이루네님// 왜 본인 위주 외전이 있는데도 혼란을 야기하는가. 너란 남자 ㅠ_ㅠ

    soae님// 장하다 이쏘!

    류x님// 미친놈들은.... 상상이상이니까요....(절레절레)

    샤냥꾼님// ㅠㅠ 더 있었으면 이소 해탈해서 열반의 경지에 올랐을 듯

    이른 아침에 등장했어요 XD

    도란이는 깡다구는 센데,

    한편으로는 쿠크다스인 복잡한 남자입니다. TㅅT..

    얼마나 신경정신과를 자주 다녔으면, 수간호사님과 안면이 텄을까...

    다음 연재는...

    왠지 오늘은 연참을 하고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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