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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66화 (66/97)

00066 외전3. 또라이 VS 미친놈 =========================

몰래카메라를 빠짐없이 찾기 위해 계속 이어지는 수색, 도란은 몰래카메라를 찾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대로 맥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윽고 초점을 잃은 도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마, 말도 안 돼.”

도란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신의 소중한 컬렉션에 다가갔다.

3개월 넘는 시간을 투자해, 힘들게 구한 한정판 거미맨 블랙 버전 피규어. 거미맨의 상징이 있어야 할 가슴 부분에 초소형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보안 업체 사람들이 몰래카메라를 제거하려는 걸 도란이 황급히 막았다.

‘…안 돼. 난 아직 이 아이의 심장이 뚫린 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넋이 나간 얼굴로 눈물만 뚝뚝 흘리며 피규어를 바라보는 도란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모습에 상우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도란을 감싸 안았다.

상우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훌쩍이던 도란은 이윽고 정신 나간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에 상우와 보안업체 직원들은 놀라서 흠칫거렸다. 상우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도란의 머리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도란의 눈에는 광기만이 남아있었다. 공포마저 분노로 바꿔버린 광기가.

“하, 하하하하하. …박원호. 넌 나한테 죽었어, 이 새끼야.”

박원호, 넌 이걸로 내 주변에서 건드려서 안 될 걸 두 개나 건드렸어. 좋아, 갈 데까지 가보자 이거야. 내가 반드시 네 인생, 나락 끝까지 떨어트려 줄 테니까.

잠자고 있던 또라이의 코털이 제대로 뽑히는 순간이었다.

***

헤어지기 전, 상우가 이런 말을 했었다. 공기계를 가져간 건 아마도 네 개인정보나 전화번호, 메신저 아이디 등을 알아내기 위해서일 거라고.

상우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도란의 휴대폰과 태블릿 할 거 없이 협박성 문자와 전화가 끝도 없이 오고 있었다. 하도 많은 양이 와서, 휴대폰 배터리가 금방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공포로 벌벌 떨만한 수준의 내용의 협박이었다. 음담패설에 욕설은 기본, 입에 담기도 힘든 끔찍한 살해 협박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협박의 강도는 높아지고, 빈도 역시 잦아졌다.

하지만, 피로와 분노로 인해 이성이 완전히 끊어진 도란에게는 감옥행 티켓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더 모여라, 더. 다시는 철창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하도록.’

박원호에게 쓰라린 고소미의 맛을 느끼게 해줄 요량으로 협박 문자들을 모으는 도란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자신이 고소로 인해 박원호의 집착에서 벗어나면, 그다음 타깃은 이소가 될까 봐.

고소한다고 해서 바로 재판이 진행되는 건 아니기에, 이소에게 해코지할 틈은 충분히 있다.

만일 자신이 이소 때문에 전과자가 된다고 여겨, 이소에게 분풀이를 한다면…. 여태 박원호가 도란에게 해온 짓들을 볼 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도란은 또다시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으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 뜻대로 머리 회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걸까. 갑자기 머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늘까지 잠자지 않으면, 박원호를 유치장에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요단 강 너머로 떠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도란은 문자로 성준에게 바뀐 비밀번호를 알려준 다음, 비틀거리며 침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피곤이 많이 쌓인 건지 잠옷을 갈아입다 말고,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진 도란이다.

***

언제나 그렇듯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성준이 자고 있는 도란을 깨웠다.

자려고 불렀더니 왜 깨우고 난리야. 그것도 배를 있는 힘껏 후려쳐서…. 피곤한 상태에서 억지로 깨어났더니, 머리가 팽팽 도는 것 같았다. 도란은 이 상태로 눈까지 뜨면, 그대로 고꾸라질 것 같아 눈을 감고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김쭌! 내가 배 때려서 깨우지 말랬지! …으아, 아파라.”

“지금 이렇게 퍼질러 자고 있을 때가 아니거든!? 이소한테 스토커 붙었다고!”

“…이송하다 스티커가 붙어?”

머리가 아파서 그런지, 귀에서 지잉 울리는 이명까지 들린다.

…와, 이거 설마 사망 플래그? ‘너 이제 곧 죽어요.’라는 저승사자의 예고 메…시지라든가…. 또다시 정신이 아득한 곳에 보내지려는 순간, 도란의 귓가에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려 퍼졌다.

“이소한테 스토커 붙었다고! 권이소! 네 소꿉친구!”

“…아악! 미친놈아!”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순간적으로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그대로 눈을 뜨고 씩씩거리며 성준을 쳐다보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성준의 뒤에 서 있었다. …뭐지. 요즘 저승사자는 권이소처럼 생긴 건가.

그러고 보니 죽기 전에는 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다는데. 아니면, 이거 설마 주마등?

다행히 아직 죽을 때는 아닌지, 이소가 도란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피하는 모습에 ‘진짜 권이소 맞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쓰게 웃는 도란이다.

성준에게 질질 끌려 옥상으로 온 도란은 성준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이럴 때 보면, 친구가 아니라 진짜 엄마 같다니까. 10년 동안 성준의 잔소리를 들어온 도란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듣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

“뭐?”

“권이소 스토킹 당하는 거. 나도 안다고.”

성준이 여기까지 알게 된 이상, 더는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도란은 잔다고 꺼놓았던 자신의 휴대폰을 성준에게 건넸다. 도란이 말을 하다말고 휴대폰을 건네자 성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 데이터 켜지면, 배터리 금세 닳으니까 보조배터리 끼워.”

“엉.”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바라보던 성준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도란의 예상보다 많이 놀랐는지 그대로 폰을 손에서 떨어트리는 성준이다. 그 덕에 액정이 완전히 박살 나버렸다. 야, 내 폰!

…하긴, 저거 다시 쓰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시금 휴대폰을 확인하던 성준은 잔뜩 화난 얼굴로 도란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이거 뭐야. …미친. 설마 아까 그 자식이 보낸 건 아니지?”

“하하, 맞는데.”

“뭐? 이 자식, 진짜 미친 거 아냐?!”

“내 말이.”

성준은 태연하게 웃는 자신의 친구를 보니 더욱 속상해졌다.

잠깐 봤는데도 인상이 저절로 구겨지는 내용뿐이었는데, 그걸 얼마나 많이 당했으면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하냐고. 성준이 훌쩍거리자, 도란이 김빠진 웃음을 내뱉으며 성준의 등을 토닥였다.

“…도란, 왜 나한테 말을 안 해. …제일 친한 친구가 미친놈한테 시달리는 것도 모르고. 나는 왜 너한테 아무것도 안 물었지? 진짜 병신인가? 왜 눈치를 못 챘지?”

“일부러 말 안 했어. 너 큰일 앞두고 있는데, 나 때문에 신경 쓰게 하기 싫어서.”

“야!”

성준은 도란의 멱살을 잡았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 건데도 이상하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친구가 언제나 주변인을 배려한다는 건 잘 알지만, 오늘만큼 도란의 배려가 싫었던 적은 처음이라고 여기는 성준이다.

도란은 성준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한 다음,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말이 작전 회의지, 성준 혼자 머리를 굴리고, 도란은 성준의 어깨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름대로 한참을 고민한 성준은 도란을 흔들어 깨웠다.

“…으아, 머리 울려. 왜.”

“네가 지금 고민인 건 이거 두 개잖아. 첫 번째는 이소한테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다는 거, 두 번째는 네가 그 미친놈을 고소했을 때, 이소한테 화살이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응, …그렇지.”

“그럼 안전해지기 전까지, 그냥 네가 권이소 남자친구 행세하면 안 되냐? 어차피 남자친구라고 오해사서 미친 짓은 다 당하고 있는데.”

성준의 말에 반쯤 감겨있던 도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도란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으로 엑스자를 그으며 신경질을 냈다.

“야! 누구 혼삿길 막힐 일 있냐?!”

“혼삿길 전에 목숨이 막히게 생겼거든?!”

“하아, 나는 일단 그렇다 치고, 이소 마음이 중요한 거잖아. 만약에 이소한테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이 자식, 역시 진짜로 눈치 못 채고 있었구먼. 성준은 한숨을 쉬며, 도란의 말을 끊었다.

“그거 너야.”

“뭐?”

“권이소가 좋아하는 거 너라고! 친구가 아니라 이성! 남자! 남사친이 아니라 남자친구! Like가 아니라 Love!"

메두사와 마주친 것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굳어버린 도란이다. 한참을 시체처럼 멍하니 있더니 도란은 자신의 뺨을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때렸다.

“…안 아프네. 꿈인가 보다.”

“꿈 아냐! 멍청아! …농담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야. 이소한테 직접 들었어.”

“….”

도란은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성준이다.

기나긴 고뇌에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란은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성준을 쳐다봤다. 성준은 자신의 친구가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 잘 알기에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이내 괜찮다고 다독이듯 도란의 등을 두드렸다.

“또란, 일단은 내 말대로 해. 그다음은 이소랑 네 마음이 판단할 문제니까. 머리로 백날 고민해봤자 답도 없다고. 이런 건 머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성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도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매만지던 도란은 한숨을 쉬었다. 울 것 같은 얼굴에 성준은 도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상황은 생각해본 적 없는데. 나… 진짜 어쩌면 좋을지,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아까도 말했잖냐. 머리로 고민해봤자 소용없다고. 일단 내 말대로 해봐. 시간이 지나면 답이 나올 거니까.”

“하지만, 만약에 내가 이소한테 상처를 주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소랑 멀어…”

“권이소라면, 네가 그런 걸로 삽질하는 것 때문에 자기한테 기회도 안 준다며 더 빡쳐할 걸.”

확실히 일리가 있는 성준의 말에 도란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성준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럴 때는 누구보다 권이소를 잘 아는 놈이…. 하지만, 도란이 왜 이렇게 방어적인 태도만을 고수하는지 잘 아는 성준은 도란을 책망하려 들지 않았다.

책망하고 싶지도 않고.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성준은 언제나 도란이 우선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연인인 다혜 만큼이나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소중한 친구니까. 성준은 도란의 어깨를 토닥였다.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난 언제나 네 편이다. 그냥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너 꼴리는 대로 해. 그 뒤가 어찌 되든, 적어도 난 늘 네 편으로 남아있을 거니까.”

“…응.”

“또란, 오랜만에 우리 내기나 한 판 하자.”

성준의 제안을 잠자코 듣고 있던 도란은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러다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구가 큰 용기를 내자, 성준은 기특한 마음에 도란을 꽉 끌어안았다.

‘잘 될 거야, 도란.’

성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씩 미소 지었다.

============================ 작품 후기 ============================

판소빠순이님//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자님들을 혼란 상태에 빠트리는 남자...

이루네님// 미워하기 힘든 도란이니까요. (하지만 평생 받을 미움을 박원호에게 받았ㄷ...)

nenotokn님// 또라이를 능가하는 미친놈입니다. (절레절레)

빗자루계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이 아니라, 오늘 왔습니다!

soae님// 알다가도 모를 남자, 그 이름 도란... 너란 도란.. 진짜 남들과 다른 또라이... (절레절레)

드디어 4편에 걸친 도란이 중심 외전이 끝났습니다!

제가 1일 2연참 할줄은 몰랐죠! XD

전 이렇게 불쑥 등장하는 게 넘나 좋아요 /ㅅ/

그나저나 오늘 2연재 했는데, <옆집남자> 연재는 쉬어도 될까요, 마법의 소라고둥님?

마법의 소라고둥 : 안 돼, 돌아가.

에이온 : (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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