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65화 (65/97)
  • 00065 외전3. 또라이 VS 미친놈 =========================

    30분 정도 눈을 붙이고 짧은 잠에서 깨어난 도란은 습관적으로 베란다로 향했다.

    …웬일로 오늘은 없네. 이혁에게 박원호가 없다고 보고를 하고, 외출하기 위해 움직였다. 박원호를 감시한다고 외출을 거의 하지 않은 탓에 냉장고가 텅 비어버렸으니까.

    ‘이왕 살 거 한꺼번에 몰아서 사야겠다. 금방 썩는 건 조금만 사고….’

    간단히 정리해놓은 구매목록들을 읽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도란을 붙잡았다.

    “야, 거기서. 이 새끼야.”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엘리베이터 옆에 박원호가 서 있다. …뭐, 뭐야. 급작스러운 등장에 도란은 처음으로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 오피스텔 입구 비밀번호를 뚫고 들어왔다고? 저거 진짜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 아냐?

    도란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손에 있는 태블릿을 꽉 쥐었다. 여차하면 이거로 머리 한 대 후려치고 튀어야지. …그럴 틈은 있으려나. 숨을 몰아쉰 도란은 최대한 태연한 척 표정관리를 했다.

    “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스토킹을 3주 가까이 하면 오피스텔 입구 비밀번호는 껌인가 봐요.”

    “…말 가려서 해. 스토킹이라니. 네가 지금 이소 못 만나도록 방해하고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하하,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이소가 안 만나주는 거겠죠.”

    “닥쳐! 네가 가만히 있는 이소 꼬셨잖아. 나 만나지 말라고 설득하고 숨겨놓은 거잖아!”

    …진짜 상상 이상으로 정신 나간 놈이네.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피해망상도 저 정도면 병이다, 병. 여기서 살아남으면 호신용품이라도 사러 가야겠네. 대형마트에도 팔려나.

    도란은 마른 침을 삼키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쪽이 나타나고 나서 나도 이소랑 연락 끊겼거든? 이쯤에서 그만두고, 그냥 조용히 이소 옆에서 사라져. 그쪽이랑 이소 이미 끝났…”

    “안 끝났어! 우리 아직 안 끝났다고!”

    “…하.”

    그 순간, 이상함을 느낀 오피스텔 경비원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와,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경비원은 도란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외부인이 침입했다고 설명하니, 경비원이 박원호를 붙잡았다. 그 틈에 도란이 오피스텔을 빠져나가자, 박원호가 씩씩대며 소리쳤다.

    “네가 이소 어디 숨겨뒀는지, 내가 반드시 알아낼 거야. 알아?! 내가 이소 옆에서 너 떼어놓을 거라고, 개새끼야!”

    아무래도 오늘은 사람 한 명 불러서 집에 같이 들어와야겠다. 도란은 몸서리를 치며, 서둘러 차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바짝 긴장한 도란은 만일에 대비해 마트에서 간단한 호신용품을 구매했다. 박원호가 대기하고 있을까 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집 근처 카페에 앉아 누구를 불러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이혁이는 이소를 지켜야 하니까 제외, 성준이한테는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니까 무리고, 상우 형은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갔고….’

    한참을 고민하던 도란은 사촌 자형인 강현을 부르기로 결론지었다. 박원호에 대해 자세히 알아내려고 해커인 강현에게 협조를 구한 덕에, 강현도 도란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사촌 누나인 은유는 최근에 예쁜 딸을 낳아, 지금은 산후조리원에서 머무는 중이다. 덕분에 출산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누나의 귀에 안 좋은 소식이 들어갈 염려도 없었다.

    도란은 강현에게 전화를 걸어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예상대로 매우 놀라는 강현이다.

    “알았어. 윤호, 장모님께 맡기고 금방 갈게. 혼자 집에 들어가지 말고,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알았지.”

    “응.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와, 자형.”

    그래도 누군가가 온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이는 도란이다.

    1시간도 되지 않아, 강현이 카페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왔다. 천천히 오라고 했더니 엄청 빨리 왔네. 저 형. 도란은 강현에게 이쪽이라고 손짓하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강현의 손에 알루미늄 야구 배트가 들려있었으니까.

    “푸하하! 자형, 그 야구 배트는 뭐야!”

    “뭐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처남, 괜찮아?”

    “…솔직히 자형한테 연락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 무서웠어. 아까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도란의 말에 인상을 구긴 강현은 이내 도란을 끌어안고 다독였다. 누군가와 맞닿으니 떨림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도란이다. …와, 나 진짜 엄청 쫄았네. 자존심 상해.

    도란은 강현의 품에서 한동안 놀란 가슴을 다스렸다.

    ***

    박원호와 오피스텔 안에서 만난 지 사흘이 흘렀다. 경고와 달리 박원호는 오피스텔 근처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자형은 매일 같이 집에 들러서 도란에게 호신용품을 건넸다.

    그저께는 가스총, 어제는 삼단봉, 오늘은 전기충격기….

    이러다 호신용품 장사하게 생겼네. 강현에게 건네받은 호신용품을 보고 피식 웃는 도란이다.

    오늘은 검사인 도란의 사촌 형, 상우가 지방에서의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었다. 바깥을 확인해도 박원호는 보이지 않기에, 도란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상우와 상담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도란은 만일에 대비해 주머니 안에는 가스총을, 한 손에는 전기충격기를 들었다. 현관문을 재빨리 열어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왜 내 집 나오는 것도 이렇게 조심해가면서 나와야 하는 거냐고.’

    순간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 울컥했지만, 차에 탑승하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무사히 차에 탑승한 도란은 안도의 한숨을 쉰 뒤, 상우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상우는 도란과 만나자마자 커다란 가방을 건넸다. 인사도 나누기 전에 불쑥 내밀어진 가방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도란은 조심스레 가방 지퍼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별의별 호신용품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도무지 사용방법을 모르겠는 기이한 물품들도 보였다.

    ‘…이 형들이 나를 호신용품 세일즈맨으로 만들려고 하나. 내가 무슨 천수관음이야? 이걸 다 사용하게?’

    도란은 호신용품을 확인하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나 아직 상우 형한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강현 형이 말했나 보네. 강현 덕분에 상황 설명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었다고 생각한 도란이다.

    …감당이 안 되는 양의 호신용품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동갑에 비슷한 성격인 강현과 상우는 하는 행동마저도 이렇게 판박이라, 이따금 둘이 겉만 다른 복제 인간이 아닐까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어쨌든 형. 박원호가 나한테 해코지하는 걸 이용해서, 이소한테 접근하는 걸 막는 방법은 없어?”

    “없어. 그 친구는 피해를 받은 당사자가 아니잖아. 너한테 접근하는 건 막을 수 있어도 그 친구는 무리야.”

    도란은 쉽게 풀리지 않는 일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잠을 자도 악몽만 꾸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거지 같은 상황.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감 때문에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을 하루에도 몇십번 겪는, 이런 걸 이소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겪지 않으면, 막지를 못한다니. 무슨 이딴 더러운 경우가 다 있어.

    답답한 속을 환기하기 위해 숙였던 고개를 들고 깊은숨을 토해내는 도란이다. 그러자 상우가 다급하게 티슈를 내밀었다. 아, 뭔가 또 찝찝한 느낌이 든다 했더니 코피가 흐르나 보네.

    잠을 자지 않아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니 코피가 터지는 건 이제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안 되겠다. 오늘은 형이 너희 집에 있을 테니까 좀 쉬어. 형수한테 전화하고 올게.”

    “…어, 고마워. 형.”

    도란은 상우에게 운전을 맡기고는 조수석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누군가가 옆에서 지키고 있어서 그런 걸까. 잠깐이지만, 웬일로 악몽을 꾸지 않고 깊게 잠든 도란이다.

    상우와 함께 집에 도착한 도란은 하품을 하다말고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상당히 불쾌한 이질감이 느껴졌으니까. 어두운 걸 무서워하는 도란은 자신이 집에 있든 없든 늘 거실 불을 켜둔다.

    …그런데 지금은 거실 불이 꺼져있다.

    손이 저절로 가스총을 넣은 주머니 쪽으로 움직였다. 도란이 눈에 보일 정도로 긴장하자, 상우 역시 가방에서 전기충격기를 하나 꺼내 손에 쥐었다. 마른침을 삼킨 도란은 거실의 불을 켠 뒤, 집 안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상우도 경찰에 연락한 다음, 도란의 옆에 바짝 붙어 누군가가 덮치는 상황에 대비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 안에는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사라진 물건도 게임용으로 사용하는 공기계 휴대폰말고는 딱히 없어서 경찰에게 신고만 하고, 도로 돌려보냈다.

    “대체 남의 공기계는 왜 가져간 거야? 범인이 누군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고. …미치겠다. 진짜.”

    상우는 긴장이 풀려 쓰러지듯 주저앉은 도란을 토닥였다. 그러면서 검사답게 사건의 이상한 점을 하나씩 짚어가며, 추리하기 시작했다. 왜 공기계만 가져갔을까. 그건 얼추 짐작이 가지만, 그것보다 더 의문인 건 대체 어떻게 도란이 집에 없을 때를 알아챘냐는 거였다.

    ‘…혹시.’

    불현듯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 생각에 상우는 다급히 보안업체에 연락했다.

    상우의 예상은 정확했는지, 복도에 화재경보기처럼 생긴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도란은 막다른 길에서 독사와 마주친 쥐처럼 온몸이 바싹 얼어붙었다. …진짜 미친놈 아냐?

    그뿐만 아니라, 도란의 집 안 곳곳에도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은 박원호였다.

    보안업체에서 몰래카메라를 찾아낼 동안, 상우는 도어락 업체에 연락을, 도란은 상우의 지시로 없어진 다른 물건이 있나 뒤져보기 시작했다. 옷장 서랍을 뒤지다가 어질러진 흔적을 발견했다. 뭐가 없어진 건지 골똘히 생각하던 도란은 그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형! …뭐가 하나 사라지긴 했는데.”

    “어, 뭐가 사라졌는데.”

    “…은유 누나가 대만 춘절에 여행 가서 기념품으로 사 온 빨간 여성용 팬티.”

    “….”

    그대로 말문을 잃어버린 상우였다. 설마하니 동생한테 이 정도로 미친 변태 새끼가 붙을 줄은. 그리고 남자 동생에게 여자 팬티를 기념품으로 준 사촌 동생, 은유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우는 눈앞에 있는 동생이 안쓰러워,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며 도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작품 후기 ============================

    月光天女璉// 재밌다고 해 주셔서 감사해요 /ㅅ/ 1빠 축하드립니다!

    빗자루계인님// ㅠ_ㅜ... 다음엔 잘 될거예여! 63화에 계인님이 계셔주시지 않아 섭섭했어요 (흥칫ㅃ..(?))

    샤냥꾼님// 본인 중심 외전인데도 속을 모르겠는 남자(...) 확, 도란이 시점 외전을 써버릴까요?!

    은유란님// 독자님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복잡한 남자, 도란(...) 도란이가 뒤에서 막지 않았다면, 배드엔딩 떴을 수도...

    판소빠순이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원호 덕분에 로맨스릴러물이 되어버린 <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

    우리 도란이가 한달 동안 이렇게 힘들게 지냈습니다.

    아이고, 도란아 ㅜ_ㅜ....

    그래도 친척 형들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형·누나에게 여러모로(...) 사랑받는 막둥이인 도란입니다.

    그게 좀 이상한 방향이거나, 지나치다는 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