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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63화 (63/97)
  • 00063 외전3. 또라이 VS 미친놈 =========================

    “경고하는데, 더는 내 일에 상관하지 마. …박원호보다 네가 더 나빠. 이 새끼야.”

    그 말을 끝으로 이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이소한테 한 방 먹은 도란은 그저 멍하니 사라지는 뒷모습을 구경만 했다. 뒷모습이 보이지 않고 나서야 ‘어, 설마 잡아야 했던 건가.’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이소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짧은 한숨을 토해낸 도란은 젖은 머리를 툭툭 털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도란은 오피스텔 앞에 여전히 박원호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박원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얽혀들었지만,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건 의구심이었다. 박원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전봇대 뒤로 숨은 도란은 박원호의 행동을 주시했다.

    ‘대체 왜 갑자기 이소 앞에 나타난 거지.’

    겉모습만 보면, 누가 봐도 사랑하는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남자였다. 역시 다시 시작하려고 온 건가. 도란은 들어가다 마주치기도 뭣하니 박원호가 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기다렸던 게 새벽 1시가 넘어가자, 점점 불쾌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보통… 이 정도 기다리면 지쳐서 돌아가지 않나? 늦은 시간이라 안 돌아올 게 뻔한데, 여태까지 기다린다고?’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도란은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 그런 거라 치부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박원호라는 남자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기에, 이소를 기다리는 행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도 만일에 대비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이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혁아, 안 자고 있지? 나와. 형이 술 사줄게.”

    부모님께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혁이한테 말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도란이다.

    한창 방학을 만끽하는 대학생과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밤을 새운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늦게 잔다고 해서 당장에 오는 불이익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저 좀 피곤하고,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뿐.

    술집과 오락실, 노래방을 전전하며 이혁과 놀다 보니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틀 밤을 새우며 격하게 놀아도 괜찮았었는데. 자신이 곧 있으면 30대라는 현실을 떠올리고는 시무룩해진 도란이다.

    얼굴은 여전히 어려 보이는데, 몸은 착실히 늙어가는구나.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도란을 보고 늙지도 않는다며, 뱀파이어냐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

    ‘아무래도 나는 뱀파이어는 아닌가 보네. 이렇게 피곤한 걸 보면.’

    도란은 저절로 나오는 하품에 빨리 집으로 가서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장 아이스크림을 사러 편의점으로 들어간 이혁에게 먼저 집에 간다고 말하자, 이혁이 얼른 들어가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도란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피스텔로 걸어갔다.

    혹시나 박원호가 있을까 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도란은 이내 스스로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 시간까지 있으려고. 괜한 걱정이었던 거지. 아직 이혁에게 박원호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도란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자신의 어깨를 갑자기 누군가가 붙잡았다. 반쯤 감긴 눈으로 누군지 확인하던 도란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혹시나 했었던 박원호가 자신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설마 진짜로 이 시간까지 기다린 거야?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확실히 아까 느낀 위화감이 잘못된 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도란은 박원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뭐예요?”

    “그쪽이 왜 이소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겁니까.”

    “자러 가는데요.”

    무덤덤한 도란의 말에 박원호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내가 내 집에 자러 가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도란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박원호를 노려봤다. 그러다 상대하는 것도 피곤하다는 생각에 도로 집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틀었다.

    하지만, 박원호는 도란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지 도란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뭐야, 이 애매한 자세. 누가 보면 내가 그쪽 전 여친인 줄 알겠네. 도란은 박원호에게 잡힌 손목을 신경질적으로 빼냈다.

    “그러니까 당신이 대체 뭔데, 이소 오피스텔로 자러 들어가냐고!”

    “그거야 나도 여기 사니까!”

    몇 번 봤다고 반말이야. 잔뜩 흥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박원호 목소리보다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른 도란이다. 누구는 목소리 작아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 도란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틀어막는 박원호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 친구에 동네 사람이라더니. 이소 가까이에 웬 날파리가… 잠깐, 그쪽 혹시… 이소 소꿉친구?”

    와, 날파리 취급 당한 것도 열 받기는 하는데,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 게 더 열 받네. 나는 그래도 그쪽 늦게나마 알아보기는 했는데. 어쩐지 앞에 있는 남자한테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술을 삐죽 내미는 도란이다.

    내가 그렇게 기억에 안 남는 흐릿한 인상인가? 이따 집에 가서 확인해야지.

    “네, 권이소 소꿉친구 맞는데요.”

    “하, 하하하. …진짜 어이없네.”

    난 그쪽이 소꿉친구 소리에 목 젖혀가면서 웃는 게 더 어이없어요. 도란은 ‘별 미친놈 다 보겠네’라는 눈빛으로 웃고 있는 박원호를 쳐다봤다. 박원호 역시, 웃다가 말고 도란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때야 뭐…, 23살이면 그럭저럭 어린 나이니까 넘어간다 치지만, 이제는 곧 서른이잖아? 왜 아직도 소꿉친구니 뭐니 하면서 이소 옆에 붙어있는 건데?”

    “나야말로 어이가 없네. 내가 이소랑 붙어있든 말든 그쪽이 뭔 상관인데요.”

    “하, 진짜 병신인가. 솔직히 그쪽도 뭔가 아니라는 생각 들지 않아? 어릴 때도 아니고, 다 큰 남녀끼리 소꿉친구라면서 옆에 붙어있는 게. 그쪽 때문에 이소가 좋은 남자 놓치게 되면 어쩔 건데?”

    박원호의 말에 도란은 깊게 숨을 내쉬면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 새끼가 피곤해서 그냥 넘어가려 했더니, 사람 성질 건드네. 도란은 고개를 치켜들고 박원호를 내려다봤다. 단번에 도란의 눈빛이 바뀌자, 박원호는 주춤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남들보다 분노 임계점이 높아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는 도란이지만, 그렇다고 얌전한 성질머리는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 앞에서는 더러운 성질머리를 조절하는 편이지만, 생판 모르는 타인. 거기에 자기 친구를 힘들게 한 개새끼면 예외였다.

    도란은 피곤해서 감기려는 눈을 지그시 누르고는 박원호를 살벌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내가 여기 사는 건, 이소 부모님께서 딸이 혼자 사는 게 걱정되니까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셔서 있는 거야. 부모님께서 부탁한 일에 그쪽이 뭐라고 나서서 지랄이야?”

    “다 큰 성인남녀가 근처에 사는 걸 부모님이 허락했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뭐가 말이 안 돼? 사실인데. 아, 하긴 그쪽은 워낙에 변변찮은 새끼라 이소 부모님께 그런 부탁을 받지도 못하겠다.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씨발.”

    도란의 비아냥에 부득부득 이를 가는 박원호다. 도발이 제대로 먹혀들었네. 약이 제대로 오른 박원호를 쳐다보며, 도란은 잠깐 키득거리는 비웃음을 내뱉었다.

    사실, 도란은 이소의 부모님께서 두 사람이 사귀었을 때도 박원호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걸 알고 있었다. 두 분이 종종 도란에게 전화를 걸어서 박원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셨으니까. 그때마다 이소가 좋아하는 사람이니 좋게 봐 달라고 말했던 도란이었다.

    박원호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이소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난 이후에는 그런 말을 했던 걸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새끼였다는 걸 알아보셨던 건가. 나랑은 다르게.’

    도란은 힘들어하는 이소를 다독이며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보다 내가 왜 그쪽한테 이딴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쪽이 이소랑 사귀고 있었을 때, 내가 언제 이소한테 먼저 만나자고 말한 적이 있었나?”

    “….”

    “그쪽도 알 텐데. 혹시라도 나 때문에 둘이 싸울까 봐 내가 일부러 이소 피했던 거. 내가 그쪽이랑 마주쳤을 때도 말했잖아? 소꿉친구라고 붙어있는 게 신경 쓰인다면, 되도록 이소랑 만나지 않겠다고 했던 거. 벌써 잊었어?”

    기억하고는 있나 보네. 자신의 말에 시선을 회피하는 박원호를 보고 한숨을 내뱉는 도란이다.

    언제나 가벼운 연애만 했었던 이소지만, 박원호와 만났을 때는 여느 때와 달리 진지했었다. 도란에게 박원호를 소개해줬던 날에도 결혼하고 싶은 상대라며, 수줍게 웃었던 이소였다.

    이소가 그렇게까지 말한 남자는 처음이었다.

    도란은 이소의 연애를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방해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신을 마주하자마자 부담스러워하는 박원호를 보고 이소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소와 집 근처에서 마주칠 때마다 ‘너 요새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라는 이소의 불평을 듣긴 했지만, 박원호에게 말했던 대로 도란은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 절대 이소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이소가 행복하길 바랐으니까.

    “이소한테 좋은 남자가 생기면 언제나 그랬듯 눈치껏 꺼져주겠지만, 적어도 넌 아냐. 새끼야.”

    “…한참 어린 새끼가 지금 나한테 새끼?”

    “2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한참 어리기는. 그리고 나보고 병신에 날파리라고 먼저 씨불인 건 그쪽이거든?”

    “…하, 씨발.”

    박원호는 도란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그러더니 도란을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기세로 노려보며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가 차네, 진짜. 그때는 이 정도로 쓰레기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었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잠자코 박원호의 욕지거리를 듣던 도란은, 박원호가 이소까지 들먹이며 개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자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남의 혼삿길에 악담을 퍼부어, 미친놈아. 고작 28살인 애한테 독거노인으로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니. 묵묵히 듣고 있던 도란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쪽 말대로 이소가 독수공방하는 신세가 된다면, 그땐 내가 책임져.”

    “뭐?”

    “내가 권이소 평생 책임지겠다고.”

    ============================ 작품 후기 ============================

    이루네님// 내가 도란이 이겼다.(뿌듯)

    은유란님// 독자님들이 그렇게 궁금해하시던 첫 도란이 중심 외전입니다 +_+

    빗자루계인님// 헉, 반드시 합격하실 거예여! 긴장하지 마시고! 화이팅 /ㅅ/

    연화령님// 귀여움과 멋짐을 오가는 란이 ㅠ_ㅠ

    sn님// 솔직히 란이가 이성에 관심이 많은 애였다면, 어장남이 되고도 남았을 것 ㄱ..

    드디어 독자님들이 그렇게나 궁금해 하시던 도란이 중심 외전입니다!

    나 분명 연재 쉰 거 아닌데.. 오늘 <옆집 남자> 연재했는데 ㅜ_ㅜ..

    그렇지만 연재안하고 논 것처럼 찔려서 연재합니다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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