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2 59. O.F.C =========================
“아악!”
그리고 내 귀에 들려온 비명은 박원호의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죽일 기세로 다가오던 박원호는 자신의 얼굴을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악! 내 눈에도 들어갔어!”
그다음 들려오는 건 성준이의 비명. 성준이 역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쿨럭쿨럭 기침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넋이 나가버려, 고통스러워하는 두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나다.
“오, 이거 효과 짱 좋은데?”
“…야! 잘 보고 쏴야 할 거 아… 쿨럭.”
“내가 무슨 바람의 신도 아니고, 어떻게 짧은 순간에 바람까지 체크해가며 쏘냐. 난 분명 저 자식 얼굴에만 발사했거든?”
툴툴대는 도란이의 목소리에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도란이를 쳐다봤다. 나를 감싸고 있지 않은 손으로 조그만 총을 들고 있다. 뭔가 싶어 가까이서 쳐다보니 눈이 따갑고 코가 찡하게 아려온다. 이거 설마 가스총?
…전기충격기에 가스총까지. 누가 보면 너희 집, 호신용품 판매하는 줄 알겠다.
그래도 일단 도란이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진짜 너무 놀라서 십년감수 하는 줄 알았어. 만약에 네가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아니, 생채기 하나라도 났으면 저 자식 내가 죽여 버렸을 거야.
정말 많이 놀랐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에서부터 끅끅거리는 울음이 튀어나온다. 그대로 도란이를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괜찮다면서 내 귓가에 대고 다정하게 속삭이는데, 그러니까 더 서러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눈물이 내 말도 안 듣고 줄줄 나올 만큼 서러운데, 그 와중에 다정한 목소리는 너무 좋아. 이 다정함이 내 것이 아니었을 때는 지독하게 달콤해서 쓰라릴 정도로 아팠었는데.
이제는 온전히 내 거라고 생각하니까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해.
…절대 아무한테도 안 줄 거야. 난 욕심쟁이라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이런 황홀한 기분 못 느끼게 할 거니까. 도란이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내가 이렇게 꽉 붙들고 살 거니까 아무도 넘보지 마. 이 남자 내 거야.
“형!”
가까이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 촐싹대면서도 듣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듣기 싫은 음성은…. 역시나, 내 동생 이혁이다. 아까 란이가 전화를 걸었던 게 이혁이었구나. 누구한테 걸었나 했네.
다급하게 다가온 이혁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박원호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더니 우리 쪽으로 와 도란이의 어깨를 덥석 잡는다.
“형아! 괜찮아?!”
“어, 괜찮아.”
…야, 이 망할 동생 자식아. 서럽게 울고 있는 친누나 걱정은 안 하냐? 네 누나 지금 눈에 눈물 그렁그렁한 거 안 보이니? 누나한테 관심조차 주지 않는 동생을 한 대 쥐어박으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먹에 들어간 힘이 풀렸다.
이혁이가 곧바로 박원호에게 달려가 칼을 뺏은 다음, 구석으로 끌고 가 멋들어지게 제압하고 있으니까. 오늘도 소고기 사줘야 되겠다. 기특하구나, 쪼꼬미지만, 듬직한 내 동생아.
이혁이가 박원호를 제압하자, 그제야 손에서 가스총을 내려놓은 도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차장 입구 쪽을 쳐다봤다.
“지연 씨, 방금 거 찍었어요?”
“네! 휴대폰 두 개로 하나는 동영상, 하나는 사진으로 아주 제대로 연사해서 찍었습니다!”
…엥? 설마 내가 아는 지연 씨? 목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진짜 내 직장 후배, 지연 씨다. 지연 씨가 왜 여기 있는데?! 지연 씨 쪽으로 가더니 지연 씨가 들고 있는 휴대폰을 확인하는 도란이다.
“오, 완전 잘 나왔는데. 지연 씨, 사진에 소질 있으시네요.”
“헤헤, 칭찬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다. 나에게 밝게 인사하는 지연 씨를 따라 나도 넋이 나간 멍청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던 도란이는 박원호에게로 걸어갔다.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잠깐 걱정되긴 했지만,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데 무슨 수로 덤비겠어. 게다가 이혁이가 있는 힘껏 관절기로 제압하고 있으니 빠져나가는 건 무리지.
박원호의 앞에 서서 지그시 내려다보더니 이내 웃으며 입을 여는 도란이다.
“와, 혹시나 해서 보험을 들어놓긴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저질러 주시네요. 박원호 씨.”
“이…! 으으….”
도란이의 비아냥에 뭐라 말하려 하다가, 이혁이가 힘껏 팔을 꺾으니 고개도 못 들고 앓는 소리를 내는 박원호다. 꼬시다, 이 자식아. 넌 나한테도 응징당해야 하니까 오늘 죽을 각오 해라.
“저한테 구질구질하게 군 것만큼 이소한테는 그러지 않으셔서, 법적으로 접근을 막을 방도가 없었는데. 저 사진만 있으면, 이제 이소도 접근금지 신청하고도 남겠네요.”
“…크읏.”
“최소 특수상해에 살인미수까지도 가능할 것 같은데. 축하해요, 박원호 씨. 범죄 계의 그랜드슬램 달성이시네. 협박, 주거침입, 절도, 하다 하다 살인미수까지.”
…주거침입은 나도 아까 들어서 아는 내용이지만, 절도에 협박은 또 뭔데?! 저 새끼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대체 란이한테 뭔 짓을 저질러 온 거야?! 그리고 도란, 너는 그런 일을 당했으면, 나한테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말을 마친 도란이가 다시 이쪽으로 와 가방을 뒤적거린다. 내가 씩씩거리며 매섭게 째려보자, 나한테 말 안 한 게 찔리기는 하는지,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하는 도란이다. …이 인간이 진짜. 너도 응징 타임 예약이야.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낸 도란이는 경찰에 연락해 특수상해범을 잡았다고 신고했다. 전화를 끊은 도란이는 이내 배시시 웃으며, 내 어깨에 기대 생존형 애교를 떨기 시작한다.
…이게 애교 떤다고 봐 줄 사안인 줄 아냐?!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도란이 이마에 ‘꽁’ 소리 나게 딱밤을 때렸다.
“아야!”
“이걸로 봐 주는 걸 다행으로 여겨.”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란이한테 약한 나는 딱밤 한대로 응징을 끝냈다. 됐어, 뒈지게 팰 샌드백은 하나 더 있으니까. 나는 뻐근한 목과 어깨를 스트레칭하며 박원호에게로 다가갔다.
엿 같은 면상을 가까이서 보자마자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경찰 오기 전에 끝내야 하니까 거두절미하고 너한테 이 말만 해줄게.
“나한테 집적댄 것도 열 받지만, 도란이 건든 건 죽어도 용서 못 해. 앞으로 란이 근처에 얼씬거릴 엄두도 안 날 만큼 조져줄게, 개새끼야.”
“누나! 조절해서 패야 해!”
“티 안 나도록 기술 좋게 두드려 팰 거니까 못 움직이게 꽉 붙들고 있어.”
“넵, 누님!”
이혁이가 멍이 안 드는 곳만 골라서 들이 밀어준 덕분에 시간 낭비 없이 아주 편하게 응징할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리기 전까지, 그야말로 바닥의 먼지가 휘날리도록 두들겨 팼다.
아, 후련해.
아무래도 다시 운동 시작해야겠다. 펀치가 영 예전 같지가 않네. 퇴근하고 도장 가서 운동하려면 피곤하긴 하겠지만, 바보 같은 멍멍이 지켜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
***
경찰서에 가 그동안 도란이가 모아온 증거와 고소장을 제출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증거들을 보며 다시 한번 놀랐다. 그야말로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수준의 협박 전화와 문자들이, 도란이의 휴대폰이며, 태블릿 할 것 없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으니까,
나는 그걸 보자마자 봐 주겠다는 말을 철회하고, 도란이의 양 볼을 잡아 뜯을 기세로 꼬집었다.
앞으로 조사가 더 진행되어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시름 놓은 것 같다. 많은 양의 증거도 그렇고, 도란이가 경찰서에 오자마자 검사인 사촌 형께 연락도 넣은 덕분에 사건이 아주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 같으니까.
…역시 빽의 힘이란.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피곤한지 하품을 하던 도란이는 지연 씨를 보며 인사했다.
“고마워요, 지연 씨. 여태동안 제 부탁을 들어주신 것도 고마운데, 휴일인데도 이렇게 친히 오셔서 도와주시기까지 하시고.”
“아니에요! 작가님을 도울 수 있어서 제가 영광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하도 경황이 없어서 두 사람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못 물어봤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그대로 내 말문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이혁이였다.
“야! 우리 형한테 친한 척하지 마!”
“웃기시네. 내 맘이거든요. 나도 이제 작가님이랑 연락처도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거든.”
…연락처? 무의식적으로 불쑥 튀어나온 질투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지연 씨가 도란이에게 품고 있는 건 연애감정이 아닌 빠심이라는 걸 알기에 이내 인상을 폈다. 그보다 나는 이혁이랑 지연 씨가 말까지 놓고 옥신각신하는 게 더 놀랍다.
“뭐야? 셋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혁이가 지연 씨 소개해줘서.”
“두 사람이 서로 소개해달라고 하길래.”
“작가님께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하셔서요!”
세 사람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가운데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한 건 다름 아닌 내 동생, 이혁이인 것 같은데.
도란이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는 옆집 형이니까 넘어간다 치지만, 지연 씨랑은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금시초문인데?!
게다가 두 사람. 동갑이긴 하지만, 사는 지역도, 전공도 달라서 동창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
“뭐야, 권이혁. 너 지연 씨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후후, 그야 내가 Orchid 작가 공식 팬 카페 매니저니까! 쟤랑은 정모에서 심심하면 만나거든.”
“…뭐? 미친놈아! 그런 건 또 언제 만든 건데!”
“형이 첫 소설 출간하자마자 ‘형의 1호 팬은 나니까!’ 하고 만들었는데.”
…역시 내 인생 최대의 연적은 권이혁 아닐까. 새삼스럽게 도란이를 향한 내 동생의 애정이 무섭다. 우리 남매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지연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저 엄청 놀랐었어요. 선배님께서 작가님의 전담 편집자인 거야 알고 있지만, 작가님과는 소꿉친구에, 저 자식이랑은 남매 관계라니.”
“…아, 지연 씨도 내가 혁이 누나인 거 몰랐던 거야? 야, 권이혁. 넌 우리한테 뭐라고 언질이라도 줘야 했을 것 아냐!”
“내가 왜 굳이 누나랑 남매인 걸 세상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는데? 난 누나랑 엮이기 싫어.”
“이 새끼가.”
사랑해 마지않는 동생의 멱살을 잡고 신나게 흔드는데, 성준이가 숨을 거칠게 쉬면서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야! 나 힘드니까 수다 그만 떨고 빨리 움직여! 란이 잠들었어.”
“엥?”
놀라서 성준이를 쳐다보니 도란이가 성준이 등에 업힌 채,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다. 깨어났을 때부터 피곤해하더니 긴장이 풀리니까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잠든 모습을 보니 어쩐지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도란이의 볼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이혁이 역시, 한숨을 쉬면서 다가오더니 눈을 덮고 있는 도란이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길바닥에서 잠들만도 하지. 형, 한 달 동안 잠도 못 잤으니까.”
“그 새끼 협박 전화 때문에?”
“아니, 그 새끼 감시한다고.”
“뭐?”
나는 성준이 차를 타고 이동하며, 세 사람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들었다.
============================ 작품 후기 ============================
연화령님// 이소가 막기 전에 최루가스가 막았습니다. ^p^
이루네님// 흐흥..! 연참..끄..끌...끌려욧..!(츤츤)
soae님// 아주 콩밥을 먹여버릴 거예욧!
한겻S2님// 도와주러와서 여러모로 고통받는 성준이입니다(왈칵)
빗자루계인님// 헉, 분명 더 좋은 직장에 떡하니 취직하실 거예요 /ㅅ/
진뽕쥬님// 연참! 연참! (말 잘들음)
흥흥 `ㅅ`..! 여러분이 소환한다고 해서 제가 순순히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정답이니까. (츤츤)
누구든 이소 앞에서 도란이를 건들면 ㅈ되는 거예요, 아주 ㅈ되는 거야.
다음화부터는 이소가 스토킹 당하는 동안,
도란이에게 있었던 일이 연재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