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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61화 (61/97)

00061 58. 그쪽보단 내가 낫지 =========================

…세상에. 얘가 방금 뭐라고 말한 거야.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분명 나보고 ‘내 여자’라고 말한 거 맞지? 이거 꿈 아니지?!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볼을 꼬집었다. 진짜로 꿈꾸고 있는 거면 안 되기에, 내 모든 힘을 집게손가락에 바쳐 아주 세게.

하하하, 아프다. 굳이 세게 안 꼬집어도 괜찮을 정도로 너무 아파.

볼이 터질 것처럼 아픈데 너무 좋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건가! 지금 당장 죽어도 될… 아니, 이건 아니다. 아직 연애는 시작도 못 했는데 죽어서야 쓰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서 란이랑 백년해로할 거야.

너무 놀라서, 그리고 너무 좋아서 다리가 풀린다. 갑자기 내가 바닥에 스르르 주저앉으니까 도란이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따라 쪼그려 앉는다.

“이소야! 괜찮아?!”

너야말로 앞으로 안 괜찮을걸. 남아일언 중천금인 거 알지? 방금 했던 말이 진심이든, 박원호를 떼어내기 위한 거짓말이든 상관없어. 무조건 내뱉은 말에 책임져야 해. 도란, 넌 평생 나한테서 못 벗어나.

나를 부축하려는 도란이를 그대로 끌어당겨 꽉 안았다.

아, 진짜 너무 좋다. 땡볕 아래에 있는데도 계속 느끼고 싶은 도란이 체온도, 익숙한 체향도, 도란이 웃음소리도. 너무 좋아. 그리고 너무 그리웠어. 이렇게 좋아하면서 무슨 수로 놓을 수 있겠어. 절대 못 놓지.

그동안의 그리움을 씻어내기 위해 도란이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둘만의 황홀경에 빠지기도 잠시, 산통을 깨는 건 박원호의 목소리였다. …저 새끼, 진짜 더럽게 눈치 없네.

“이 새끼야! 이소한테서 당장 안 떨어져?!”

“…참나. 얘가 안은 거거든요. 그리고 그쪽이 뭔 상관이야. 내가 이소랑 붙어있든, 부둥켜안든, 키스를 하든. 이참에 뽀뽀나 할까, 자기야?”

도란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대로 도란이 입에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내가 진짜로 뽀뽀할 줄은 몰랐는지 도란이 눈이 동그래졌다. 이윽고 까르르 웃더니 내 볼에 자기 입술을 맞대는 도란이다.

…입에 해달라고. 물론, 볼도 고공 승천 할 정도로 좋긴 하네.

우리 둘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던 박원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그리고 박원호를 견제하다 말고 우리를 바라보는 성준이의 얼굴도.

박원호가 똥 씹은 얼굴 하는 것도 납득이 안 가긴 하지만, …넌 왜 표정이 썩어 가는데?

하긴, 쟤네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가 뭐가 중요해. 내 품 안에 얌전히 안겨있는 도란이만 중요하지. 도란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웃음으로 생글거리고 있으니 상관없어.

아아, 오랜만에 보니까 진짜 좋아. 도란이를 볼 때마다 소리 없는 흐느낌이 나온다.

나를 보면서 살짝 눈웃음을 짓더니 박원호를 아까와 같은 살벌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도란이다. 흑, 자꾸 귀요미와 상남자를 오가지 말라고. 심장에 너무 해롭잖아. 아니, 계속 그래 줘. 내가 심장 강화를 위해 힘쓸 테니까.

“박원호 씨, 그쪽이 아무리 발악해도 내 상대가 안 돼. 당신이 이소한테, 그리고 이소네 가족한테 얼마나 밉보이고 있는지는 알지? 그런데 난 당장에라도 이소 부모님께 교제 승낙 받아낼 자신 있거든.”

도란이의 말에 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승낙만 받아내겠냐. 우리 엄마·아빠라면 사귀는 김에 결혼까지 하라며, 혼인신고서까지 들이밀 게 뻔하다.

일전에 박원호와 어버이날에 집에 들렀을 때, 박원호를 냉대하는 우리 부모님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면, 도란이가 우리 부모님한테 남자친구로서 찾아뵙게 될 때는 다른 게 걱정이다.

…우리 엄마·아빠가 도란이를 얼마나 귀찮게 할까, 그리고 나를 얼마나 들들 볶을까.

“그리고 솔직히 내가 조건도 그쪽보다 훨씬 낫지. 돈도 잘 벌어, 얼굴도 이만하면 귀엽고 잘생겼어, 집안일도 잘해. 뭐 하나 꿀리는 게 없잖아.”

“키는 저 인간보다 좀 작긴 하지.”

나한테 죽고 싶냐? 김성준?! 란이 시무룩해 하잖아! 저건 도와주는 거야, 아니면, 지능적으로 방해하는 거야! 꼭 싸움을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참견을 하는 동네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다.

아냐, 란아. 괜찮아. 177도 작은 건 아냐! 오히려 네 얼굴에 딱 맞는 키지. 그리고 설령 네가 진짜로 난쟁이 똥자루가 된다고 해도 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렇게 생각하며, 내 품에 안겨 혼내달라는 듯 칭얼대는 도란이를 다독였다.

“…야! 내 키가 어때서! 우리나라 남자 평균보다 크거든? 멀대같이 키만 큰 게!”

“어쭈? 멀대? 키 때주는 수술 있으면 3cm 때주려 했더니.”

“앗, 사랑합니다. 성준님.”

야! 나도 아직 못 들어 본 ‘사랑해’ 소리를 누구한테 하는 거야! 그것도 손으로 하트까지 만들면서! 씩씩거리며 도란이의 양 볼을 쭉 잡아 늘였다. 살이 많이 빠진 건지 전과 다르게 잡히는 게 별로 없다.

뭐야, 왜 이렇게 살이 쪽 빠진 건데. 말랑말랑하던 볼살이 하나도 없잖아. …속상해.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이라 도란이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 대신 다시 도란이를 끌어안았다. …저 새끼 떼어내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줘야지. 매일매일 도란이가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도 사다 바칠 거야.

내 등을 토닥이는 도란이의 손길에 어쩐지 더욱 울컥한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도란이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솔직히 그쪽이 이소랑 사귀었을 때, 얼마나 잘해줬는지는 모르겠어서 내가 더 잘할 거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단언할 수 있어. 난 내 여자, 절대 혼자 안 내버려 둬.”

“….”

“그리고 이미 끝난 마당에 구질구질하게 질척대지도 않을 거고. 하긴, 난 그쪽처럼 멍청하게 끝낼 생각 없으니까 그럴 일도 없겠지만.”

“…씨발.”

“머리가 제대로 달려있으면, 이쯤에서 알아듣고 꺼져야 할 타이밍이잖아? 다신 이소한테 집적대지 마, 새끼야. 감방에 처넣어서 유학까지 다녀온 인생 종치게 만들어버리기 전에.”

어이구, 예쁜 내 새끼. 가만히 있어도 예뻐 죽겠는 게 말도 잘하네. 기특해 죽겠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의 볼에 찐하게 뽀뽀했다.

…그때의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박원호가 얼마나 상상 이상의 미친놈이 되어버렸는지.

“…이, 이 개새끼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박원호의 목소리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박원호의 손에 들린 잭나이프를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햇빛이 반사돼 시리게 빛나는 칼끝이 너무나도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돌발행동에 견제하던 성준이도 미처 대응하지 못한 듯했다. 나처럼 잠시 굳어 있던 성준이가 이내 다급하게 달려오긴 했지만,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한발 늦었다고.

박원호가 다가오는 찰나의 순간, 내가 느낀 건 세 가지였다.

하나는 미친놈을 상대할 때는 반드시 대처할 수 있는 손을 만들어둬야 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위험을 눈앞에 두고도 미리 대처하지 못하는 지독한 무력감이었다.

마지막으로 도란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순식간에 온몸을 밧줄처럼 칭칭 휘감았다.

============================ 작품 후기 ============================

샤냥꾼님// 우리 도란이가 어디서 박력분을 먹고 왔나봐요 /ㅅ/

루룰룰라랄라님// ㅋㅋㅋㅋㅋㅋㅋ 저라도.. 애들이 단체로 골목에서 울고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요

마카로나주님// 오랜만에 남주력 뽐내는 도란이 ㅜ_ㅜ

soae님// 네(...) 상상을 더욱 초월했습니다..

이루네님// 그렇게 바라시면 제가 또.. 안 보여드릴 수가 없잖아요 /ㅅ/

빗자루계인님// 저도..계인님 늘 애정하고 있어요 (수줍)

violetmoon님// 이제 그 풍악 울리시던 악기로 박원호 머리를(...)

연화령님// 딴 말 못하게 만들어드렸습니다! (이게 아닌가)

모모w님// 헉, 기분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힘내세요, 모모님!

짧은 분량, 그것도 모자라 한 화만에 닥쳐온 위기입니다. 8-8

사실... 휴일이라 연참하고 싶었는데..

저... 어떻게 하죠.. 문명이 갑자기 하고 싶어져...ㅅ...

(주섬주섬 스팀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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