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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59화 (59/97)
  • 00059 56. 네 도움 받기 싫어 =========================

    사내자식들끼리 무슨 얘기를 할 게 그리 많은 거야. 두 사람이 옥상으로 간지 어느덧 1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얌전히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는 것도 지겹다.

    오랜만에 컴퓨터 게임이나 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컴퓨터가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문고리를 돌렸는데 문고리가 조금도 돌아가지 않는다. 뭐지? 문고리가 뻑뻑한가?

    재차 힘을 줘서 돌려도 열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잠가놓은 듯하다.

    도란이가 작업실 문을 잠가놓은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좀 당황스럽다. 뭐야? 작업실에서 중요한 거라도 만드나? 보안유지? …그딴 게 왜 필요해. 원고 지키려면, 컴퓨터 비밀번호만 걸어두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잠가놓은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뭔가 하려고 했던 걸 갑자기 못 하게 되어버리니까 김이 샌다. 아, 지겨워. 폰 게임이나 해야겠다.

    열심히 동물들 짝을 맞춰 신나게 터트리고 있는데 잠금장치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오는구나. 그런데 도란이만 들어온다. 성준이는 어디다 버려둔 거야. 망했네. 도란이랑 둘이서 있고 싶지 않은데.

    “…성준이는?”

    “각성제 사러.”

    도란이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대로 묵언 수행에 들어간 나다. 단언컨대 28년 동안 도란이랑 단둘이 있으면서 오늘이 가장 어색하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고,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긴, 굳이 애써서 그럴 필요도 없지. 하던 폰 게임이나 합시다.

    한창 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란이의 손이 내 폰을 가린다. 게임에 정신 팔린 사이, 어느덧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란이다. 차마 도란이를 마주할 수가 없어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가려는데, 도란이가 내 팔을 잡는다.

    “이소야, 너 스토킹 당하는 거 말인데.”

    “….”

    내가 전에도 말했지, 개자식아. 나한테 다정하게 대하지 말라고. 그렇게 내가 걱정된다는 어투로 말하지 말라고. 스토킹 당하는 것도 거지 같지만, 너한테 희망 고문당하는 게 더 거지 같다고.

    머릿속에서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는데, 설움이 울컥 튀어 올라서 도무지 입이 열리지 않는다.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입을 다물고 있으니 도란이가 계속해서 말을 한다. 그만, 제발 그만해.

    제발 나 걱정된다는 듯이 말하지 말라고. 나 잡지 말라고. 나 그만 흔들라고.

    “일단 그 자식 떼어내는 게 우선인 것 같아. 성준이랑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방안을 생각해봤는데, 이소 너랑…”

    “…그만.”

    “어?”

    “그만하라고, 개자식아.”

    도란이한테 만큼은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우는 모습 죽어도 보여주기 싫었는데, 일단 내가 사는 게 먼저겠다. 더 듣다간 내가 무너질 것 같아. 봇물 터지듯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도란이를 노려봤다. 도란이가 놀라서 내 눈물을 닦으려고 하길래 재빨리 손을 쳐냈다.

    “…권이소.”

    “오지 마. 나 건들지 마. 내가 전에도 말했지. 내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사태가 이런데 어떻게 상관을 안 해!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닥쳐. 네 도움 같은 거 필요 없어. 너 말고도 나 도와줄 사람 많아. 죽어도 네 도움 받기 싫으니까, 남의 일에 오지랖 부리지 말고 신경 꺼.”

    내 말에 도란이가 많이 화났는지 인상이 험악해졌다. 그래, 차라리 화내. 나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아. 너한테 정 떨어…질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체념하는 데 도움은 될 것 같으니까.

    잠시 나를 바라보던 도란이는 이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 한숨에 어쩐지 심장이 아파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한동안 눈을 감고서 가만히 있던 도란이가 나를 살벌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래. 그럼 나랑 상관있는 일이면 얼마든지 끼어들어도 되는 거겠네?”

    “뭐?”

    “나도 제대로 엮이면 되는 거잖아? 네가 내 도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처럼 나도 네 동의 필요 없어. 내 멋대로 할 거니까 너도 말릴 생각하지 말고 따라와.”

    “…도란, 너 뭐하려는 건데?”

    도란이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위험한 짓이라도 저지르려는 건 아닐까.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도란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도란이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얘가 나를 이런 눈빛으로 쳐다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체념하는 데 도움이 되긴 개뿔. 체념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너무 아프다.

    또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도란이 손을 놓으려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타이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성준이가 집 앞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성준이다.

    “뭐야, 너희들 설마….”

    그래, 싸웠다. 아니, 이게 싸운 게 맞나. 모르겠다. 그냥 …너무 아파.

    “벌써 사이좋게 악수까지 할 정도로 화해했냐! 일부러 자리 만들어주길 잘했네!”

    야, 이 눈치 없는 자식아. 그거 아니라고! 반대라고! 1년 치 눈치를 아까 모조리 소모했냐! 이게 어떻게 화해한 걸로 보이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콧방귀를 뀌는 나와 달리, 도란이는 언제 화내고 있었냐는 듯 까르르 웃는다.

    한 달 동안 무척이나 그리워했던 웃음소리. 어쩐지 아까의 아픔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뭐 사 왔어? 멍멍이 커피 우유로 사 왔지?”

    “아니! 효과 직방, 하이퍼 붕붕 드링크!”

    “…잠깐만.”

    웃으면서 성준이에게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사색이 된 도란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봉투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굳을 만도 하지. 일명, 하이퍼 붕붕 드링크라고 불리는 악마의 음료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음료가 모조리 들어있으니까.

    성준이가 신명 나게 하이퍼 붕붕 드링크를 제조하고 있을 동안에도 제자리에 멈춰있던 도란이는, 입에 붕붕 드링크가 들어가려고 하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너 나한테 무슨 악감정 있지?”

    “없는데? 맑은 정신이어야 뭐라도 해내지! 가뜩이나 거사를 앞두고!”

    “…이건 맑은 정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옥행 급행열차 티켓이잖아!”

    “하루 정도는 괜찮아. 자자, 착하지. 쭉쭉 들이키세요.”

    꼼짝없이 벽에 가로막힌 도란이는 그렇게나 싫어하는 피로 회복제의 집합체들을 억지로 몽땅 삼켰다. …어우, 저건 좀 안쓰럽다. 신경 끄고 싶은데 저절로 도란이의 안위가 걱정된다. 그도 그럴게, 사약을 수십 잔 들이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걸.

    “…으아, 먹자마자 속이 안 좋아.”

    “캔디 먹을래?”

    “…아니, 죽여줘.”

    무엇보다 진심이 가득 담긴 죽여 달라는 말에서,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절실히 느껴지니까.

    냉수 한 컵을 단번에 마신 도란이는 이제야 속이 좀 가라앉은 건지 숨을 돌린다. 도란이가 살기등등하게 째려보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성준이다. 도리어 “효과 짱이지 않냐?”라며, 자신의 신들린 붕붕 드링크 제조 스킬을 찬미하고 있다.

    “…됐다. 심장이 하도 쿵쾅거리는 탓에 일단은 잠이 달아난 것 같으니까.”

    “그게 붕붕 드링크의 매력이지.”

    그리고 무시무시한 후폭풍이 반드시 뒤따라오는 금기의 비약이고. 붕붕 드링크의 후폭풍을 대학 시절, 뼈저리게 경험한 적이 있어서인지, 도란이가 저절로 걱정된다. 괴로운 신음을 내뱉던 도란이는 마스터키를 들고 작업실로 가더니 문을 열었다.

    역시, 잠가놓은 것 맞구나.

    “권이소. 저기서 가장 큰 피규어 앞으로 가서 20초만 서 있어.”

    “…내가 왜?”

    “빨리.”

    도란이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더는 저항하지 못하고 하라는 대로 따랐다. 그리 어려운 요구사항도 아니니까. 속으로 20초를 세고 나서 그대로 뒤를 돌아 나오려는데, 뒤에 있던 도란이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뭐, 뭐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나다. 놀라서 심장도 멈춘 것 같다. 다행히 내게서 금세 떨어진 도란이는 내 팔을 잡고 작업실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다시 작업실 문을 잠근다.

    “일단, 스토커 소환 의식 완료.”

    “…뭐?”

    내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베란다로 나가는 도란이다. 잠시 뭔가를 찾더니 이윽고 손에 망원경을 들고 와서는 성준이에게 던진다.

    “얼른 씻고 나올 테니까 그동안 지켜보고 있어.”

    “Yes, Sir.”

    무슨 일인지 전혀 예측을 못 하겠는 상황에 황당해하고 있는 나를 두고, 한 놈은 수건과 옷가지를 들고 욕실에, 한 놈은 망원경을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 작품 후기 ============================

    soae님// 그저 갑갑할 따름입니다.(절레절레)

    빗자루계인님// 헉, 어쩌죠? 전 매일매일이 다 좋은ㄷ.....(?)

    한겻S2님// 일요일에 와 버렸는데... 8-8... 워, 월요일에도 올까요?

    오늘도 고통받는 도란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애도)

    (근데 난 네가 고통받는 게 너무 좋ㅇ..)

    신나는 주말, 1일 2연재! :D

    다음 연재는 언제가 좋을까요 /ㅅ/ 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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