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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55화 (55/97)

00055 52. 나의 분노를 모조리 그대에게 =========================

바깥에서 다혜를 붙잡고 서럽게 운 탓에,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다혜 집으로 왔다. 평소 같으면 출근을 위해 꿈나라에 들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이불만 펴놓고 자고 있지 않다. 이불 위에 같이 누워 다혜와 함께 신명 나게 박원호 뒷담을 까고 있으니까.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하니 자기 일처럼 씩씩대는 다혜다.

“와, 연락 끊는 것도 자기가 먼저 일방적으로 해놓고, 인제 와서 다시 시작하자고 해? 그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이상한 사람이네.”

“내 말이. 내가 무슨 지 노예야? 하자는 대로 곧이곧대로 따르게?”

“그리고 언니 친구도 이상해. 아니, 언니한테 먼저 물어보고 얘기해줘야 하는 거 아냐? 왜 남의 신상을 함부로 남한테 알려주는데.”

“그러니까! 아, 진짜 내일 그년한테 전화 걸어서 바로 따질 거야.”

내 말에 다혜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그러다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윽고 좋은 생각이 났다며 물개처럼 손뼉을 친다. …귀, 귀여워! 역시 귀여운 게 최고야. 가슴 한구석이 힐링 되는 것 같아.

“도란 오빠한테 남자친구 행세 좀 해달라고 부탁하면 어때? 난 이미 임자가 있다, 그러니까 넘보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나가떨어지겠지. 거기다 그거 핑계로 도란 오빠한테 고백한다거나 하면…!”

“…나 이제 걔 안 좋아할 거야.”

“응? 왜? 오빠랑 무슨 일 있어? 싸웠어?”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다혜다. 아까 그렇게 울어놓고 또다시 눈물이 팽 돈다. 애써 울음을 참으면서 내가 그동안 그 망할 눈새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다혜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언니를 갖고 노는 거지!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나쁜 놈이네! 아니, 그 정도로 티 냈는데도 진짜 모르는 거면 오빠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만해. 도란이 까지마. 걔가 사람 마음 갖고 노는 애는 아…아닌데. 왜 눈치를 못…끕.”

“아아, 언니. 왜 또 울어. 그만 울어. 응? 언니.”

아까까지만 해도 속으로 그렇게 도란이 욕해놓고, 왜 다른 사람이 란이 까는 건 듣기가 싫은 거야. 도란이가 나 때문에 욕먹는 것 같아 서럽고, 그거 때문에 서러워하는 내가 싫고, 이 와중에 또 도란이 보고 싶고.

“으아앙, 란아. 이 바보 똥개 해삼 멍게 말미잘 눈치 없는 새끼야!”

“언니, 그만 울어. 아니, 울어. 실컷 울어. 오늘 그동안 참았던 거 다 울어.”

다혜 품에 안겨서 목이 나갈 정도로 꺼이꺼이 울었다. 누가 옆에서 달래주니까 그게 더 서러워서 울음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울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새벽 내내 울고, 또 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아침이다. 너무 울었나 보다. 알람시계에 맞춰서 일어나긴 했는데, 눈이 안 떠진다. 간신히 실눈을 뜨고서 세면대로 가 상태를 확인했다.

…맙소사. 눈꺼풀이 꼭 햄버거 빵 윗부분을 합쳐놓은 것처럼 되어있다. 얼마나 울었으면 눈도 붓고, 얼굴도 빵빵하고. 이 상태로는 화장도 안 먹겠다. 일단 냉수로 씻어서 붓기를 가라앉혀야지.

세수하고 나왔더니 내 알람 소리에 깬 건지 바닥에 앉아 눈을 비비고 있는 다혜다.

“잘 잤어? 미안, 알람 소리 때문에 깼지.”

“아냐. 난 이따 또 자면 되는… 헉, 세상에. 언니 얼굴이 왜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란다.”

내 얼굴을 보더니 반쯤 감겨있던 다혜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 정도로 충격이니? 하긴, 나도 아까 거울 보고 많이 놀랐다.

출근 전에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다혜가 응급처치로 녹차 팩을 만들어 내 얼굴에 올려놓았다. 탱탱하게 부어있는 내 얼굴 덕분에 한동안 녹차 파티를 하게 생긴 다혜다.

…미안. 오면서 생수 6묶음 사올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 때문에 옷을 챙겨 나오지 않아서, 다혜 옷을 빌려 입고 출근했다. 사이즈가 비슷한 옷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44사이즈인 다혜한테는 큰 옷이지만, 나한테는 아주 딱 맞다. 하하. 자괴감 들어.

망할 선아년은 아침부터 일이 있는지 연락이 안 되는 상태다. 덕분에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삼키며, 점심시간까지 꾹 참고 있는 나다.

…그리고 오늘은 도란이도 연락이 없다. 늦잠 자도 점심때가 되면 일어나서 비몽사몽으로라도 안부 전화하는 애가.

하긴, 어제 내가 그렇게 퍼부었는데 연락하고 싶을 리가 있나. 그나저나 나는 짝사랑 접겠다고 다짐해놓고도 연락 없는 게 왜 이렇게 섭섭하냐. 내가 이렇게 의지박약이었나.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다, 진짜.

아니, 아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차라리 잘 된 거야. 이왕 연락 두절인 거, 마음 정리될 때까지 하지 마라. …이러다 도란이랑 평생 연락 끊기는 거 아닐까.

잠깐, 걔랑 연락 끊기는 게 뭐가 대수라고! 끊기면 어때! …끊기면 어떻기는 하구나. 나한테 걔 만한 친구가 또 어디 있다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잊을 거다. 정리할 거다. 비울 거다.

…꼭.

새벽에 그렇게 울어놓고도 눈물이 남아있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이러다 눈 빨간 토끼 되겠… 망할. 토깽이 생각나. 집에 가면 버려… 아니, 안 보이는데 처박아둬야지.

싱숭생숭해도 시간은 잘 가는구나. 어느덧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에 한 사람도 없다. 요새 들어 점심을 안 먹으니 직장동료들이 죄다 내가 다이어트하느라 안 먹는 줄 알고 있다. 후배는 그저께 나보고 다이어트 힘내라며 레몬 디톡스를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자기가 먹어봤더니 이게 효과가 직방이라며, 영업사원처럼 효능을 줄줄이 읊는 모습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신 걸 좋아하니까 냉큼 먹었을 텐데. 지금은 그마저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저 자린고비처럼, 책상 위에 놓인 레몬 디톡스 통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는 나다.

점심시간 동안 뭐하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선아년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도 않고. 진짜 망할 년. 제 죄를 깨닫고는 지레 겁먹고 잠적 탄 건가. 너 진짜 연락되기만 해봐. 나한테 죽을…

선아년 얼굴을 떠올리며, 씩씩대고 있는데 타이밍 좋게도 스마트폰 벨 소리가 들려온다.

굶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했다. …나 왜, 순간적으로 도란이일 거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아까부터 신명 나게 연락했던 선아일 텐데. 연락이 닿은 거에 기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내 이 모든 분노와 울컥함을 이선아, 오로지 그대를 위해 쏟아 바치리.

“야, 이선아. 너 죽을래?”

“뭐야. 전화 못 받은 것 때문에 그래? 미안, 나 오늘 아침부터 예약 있어서…”

“그거 말고 미친년아! 너 왜 내 허락도 없이 신상 유포한 건데?”

“…갑자기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야. 내가 네 신상을 왜 퍼트려?”

“너, 박원호한테 내가 어디 사는지 알려줬다며!”

내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아아, 그거?”라고 말하는 선아 년이다.

야,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하지 말라고. 왜 자기 멋대로 내 정보를 허락도 없이 다른 사람한테, 그것도 전 남친한테 알려줘 놓고 태연한 건데.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거야, 오빠가 알려달라니까 알려줬지. 다 너를 생각해서…”

“야, 나를 생각하는 년이 그 새끼한테 나에 대해 알려줘? 너 진짜 정신이 있냐, 없냐?”

“…하, 진짜 어이없네. 권이소.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 난 너 생각해서 그런 건데 왜 화를 내고 그래? 너 전에 만났을 때 그랬잖아! 원호 오빠 못 잊었다고!”

“내가 언제!”

아무도 없는 사무실 한복판. 그야말로 눈에 뵈는 것 없는 미친년처럼 분개해서 선아에게 실컷 퍼부었다. 나만큼이나 한 성깔 하는 선아 역시, 물러서지 않고 빽빽거린다.

그거에 더 빡쳐서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나다.

아, 씨. 목 아파. 어느덧 점심시간이 끝나 가는데도 여전히 생산성 없이 싸움만 하고 있다. 내가 땅이 꺼지라 한숨을 푹 쉬자, 선아 역시 한숨을 따라 쉬더니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을 건넨다.

“…일단 너한테 안 물어보고 멋대로 알려준 건 미안. 근데 너 전에 나랑 마지막으로 봤을 때, 진짜 그랬어. 원호 오빠 못 잊었다고.”

“…하아,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나 이제 그 새끼, 꼴도 보기 싫거든?”

“왜, 만나서 너한테 뭐라고 했어?”

“자기가 일방적으로 연락 끊은 주제에 다시 시작하잔다.”

내 말에 태연하게 “그럼 다시 시작하지그래?”라고 말하는 선아 년이다. 야, 넌 귓구멍에 뭘 박았길래 꼴도 보기 싫다는 내 말은 가뿐히 무시하냐. 내가 어이없다는 듯 디스하자, 선아가 발끈하면서 말한다.

“아니, 다시 시작하는 게 뭐가 어때서. 너 그 오빠 좋아했고, 그 오빠도 너 좋아하고. 그냥 다시 받아주면 만사 오케이잖아.”

“싫다고! 난 이제 그 인간 안 좋아한다고!”

“참나,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길래 원호 오빠가 싫다고 그러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호 오빠 노래를 부르던 애가. 설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아니. 없어.”

어제까진 있었는데 이제 마음 비울 거거든. 반드시 비울 거야. 내 대답을 들은 선아가 그럼 자기 말대로 하라며 나를 부추긴다. 아니, 아까부터 싫다고 그러는데, 얘는 왜 자꾸 나랑 그 인간을 이으려 하는 거야.

일전에 도란이한테도 소개팅 권유하더니. 무슨 사랑의 전도사세요? 웨딩플래너가 아니라 커플매니저냐?

“원호 오빠는 너랑 결혼까지 생각하던데.”

“미친 거 아냐?!”

“너무 그렇게 화내지만 말고, 차근차근 생각해 봐. 너한테 죄진 게 있으니까 전보다 더욱 잘해주겠지.”

“그리고 그 죄진 행동을 언제 되풀이할지도 모르고.”

“….”

“됐으니까, 그 인간한테 내 신상 어디까지 불었는지 말해. 그리고 나랑 절교하고 싶지 않으면, 나한테 그 인간이랑 잘해보라는 말, 다신 하지 마.”

내 일침에 제대로 한 방 먹은 선아 년은 자기가 뭘 불었는지 순순히 실토한다. …회사에, 오피스텔에, 연락처까지. 아주 골고루 불었네. 불었어. 네가 무슨 얼굴책 프로필이냐? 상세하게 떠벌리게? 철없는 친구 년의 만행에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퇴근하자마자 연락처부터 갈아치워야지. 아니, 일단 그 인간 연락처는 알아야 차단하잖아. 연락 오면 즉시 번호 차단하고 갈아치워야겠다.

오늘도 다혜 집에서 묵어야 하나. 이혁이보고 내 옷 좀 갖다 달라고 할까. 아니, 내가 무슨 죄진 거 있나? 그냥 오늘은 집에 들어가자. 다혜한테도 민폐고.

그렇게 생각하며 회사를 나오는 내 생각이 단번에 바뀌었다. 응, 오늘도 외박이다.

하다 하다 회사까지 찾아오는데, 집 앞에 죽치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모른 체하고 벗어나려는데, 나를 발견한 건지 내 쪽으로 오는 박원호다. 젠장.

“…이소야.”

“미친, 스토커세요? 남의 회사 앞까지 찾아오고? 내가 어제 분명 얼굴 보기 싫다고 말했을 텐데. 당장 꺼져.”

“제발, 할 말 있어. 내 얘기 좀 들어주라.”

“난 그쪽이랑 할 얘기 없다고!”

빌어먹을. 어제는 집 앞, 오늘은 회사 앞에서 치정극이냐? 막 퇴근해서 회사를 빠져나오는 동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덕분에 쪽팔림이 온몸에 찌릿하게 퍼진다. 아오, 미치겠네! 회사에 이상한 소문 퍼지게 생겼다.

사태가 악화하는 걸 막기 위해 박원호의 팔을 잡아끌고 회사 근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이루네님//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니까, 두 사람한테도 그....러겠죠?

빗자루계인님// 저도 계인님 사랑해요 /ㅅ/

샤냥꾼님// ㅋㅋㅋㅋㅋㅋㅋㅋ 손들고 벌서게 만들까요!?

로즈꾸님// 그냥 이소 다른 남자한테 줘버릴까요!

soae님// 여러모로 속 터지게 하는 란이입니다 (절레절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깨지게 생겼는데 다들 기뻐하고 계셔.

2연참이네요 /ㅅ/ 3-4연참까지 가 볼까요!?

다음편은 퇴근시간이 가까운 오후에 올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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