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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45화 (45/97)
  • 00045 42. 둘만의 레스토랑 데이트 =========================

    케이블카가 정상까지 태워주는 건 아니었다. 기껏 20분 넘게 마음 졸이면서 개고생해가며 탔더니! …물론 막상 탔을 때는 행복해서 내가 높은 곳에 떠 있는지, 천국에 가 있는지 분간이 안 가긴 했지만.

    어쨌든 남산타워까지 도란이 손을 꼭 잡은 채 벌벌 떨면서 올라왔다. 단언컨대 남산타워 계단은 내가 걸어본 계단 중에 가장 심장마비 걸릴 것 같은 계단 1위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래도 막상 올라왔더니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팔각정도 보이고, 연인들이 기념으로 건다는 자물쇠도 보이고, …바로 앞에서 보니까 더욱 무시무시한 남산타워도 보이고. 좋네, 응.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도란이를 쳐다봤다.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남산타워를 보며 한숨 쉬고 있다.

    나 그래도 생각보다는 괜찮은데.

    워낙에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가, 여기서 조금 높은 곳으로 더 올라간다고 해서 별다른 감흥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섭지 않다는 건 아니고…. 더러운 게 잔뜩 묻었는데, 거기에 더러운 게 더 묻는다고 해서 깨끗했을 때처럼 짜증 나지는 않으니까.

    쉽게 말해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체념상태다.

    “란아, 어디로 가면 돼?”

    “…7층.”

    “…후, 가자. 손잡아줘.”

    “응.”

    그리고 도란이 손을 쭉 잡을 수 있잖아. 내가 무서워하고 있으니까, 도란이가 놓지 않겠다는 듯 평소보다 세게 잡아주는 게 좋아. 그게 너무 좋아서 행복이 공포를 빈틈없이 감싸버려. 덕분에 물러서지 않을 용기가 생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레스토랑 직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오, 미친. 아니, 전망 좋은 곳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미치겠다. 고소공포증 환자는 죽어요.

    거기다 우리가 앉을 곳은 커플석.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아니, 왜 자리가 창밖을 바라보게 되어있는 건데요. 그것도 마주 앉는 게 아니라 기다란 소파에 둘이 같이 앉는 구조로 되어있다. 창가를 등질 수도 없잖아.

    도란이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예약된 자리를 보고 있다. 잠시 고민하던 도란이가 직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이 자리 말고 창가랑 좀 떨어진 자리는 없을까요?”

    “커플석은 전부 이렇습니다. 다른 좌석들도 모두 창가 쪽에 있고요.”

    “그래도 다른 좌석은 창가를 등질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면 커플석 말고 다른 좌석…”

    “아뇨! 괜찮아요! 저기 앉을게요.”

    재빨리 도란이의 입을 틀어막고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직원분이 잠시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이내 웃으면서 자리로 안내해주셨다. 자리에 앉으면서도 나를 빤히 쳐다보던 도란이가 직원이 떠나자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겠어? 여기 창가가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데.”

    “응, 괜찮아. …어차피 다른 좌석도 죄다 창가 쪽에 있잖아.”

    “그래도 이렇게 바로 보는 것보다 등지고 멀리 보는 쪽이 낫지 않아?”

    “아니, 이쪽이 나아. …네 옆에 앉을 수 있으니까.”

    내가 고집을 부리면서 여기 앉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 다른 좌석은 도란이랑 떨어져서 앉아야 하지만, 여긴 바로 옆에 앉을 수 있으니까. 맘껏 기댈 수도 있고,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체온을 공유할 수도 있잖아.

    게다가 소파 좌우가 막혀 있어 우리 둘만의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걸. 옆에 있는 도란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도란이다.

    “많이 무서워?”

    “무서워서 잡은 거 아니거든?”

    “그럼 다행이고.”

    …보통 왜 잡았는지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나. 왜 ‘다행이고’로 끝내는 건데? 넌지시 널 좋아해서 잡은 거라고 어필하려고 했건만. 그러고 보니까 아까도! 네 옆에 앉을 수 있어서 여길 택했다고 용기 내서 말했는데! 정작 신경도 안 쓰잖아! 이 인간!

    괜히 얄미워서 손을 부서트릴 듯 꽉 잡았다. 생각보다 세게 잡은 건지, 도란이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오길래 황급히 손힘을 빼긴 했지만.

    잠시 나를 바라보던 도란이는 말없이 창밖만 응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깥을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아서 자연스레 도란이만 쳐다보고 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얼굴이란 말이야. 웃을 때나 평상시에는 마냥 귀여운데, 저렇게 진지하게 사색에 잠길 때면 색기가 뚝뚝 흐르는 게 엄청 섹시해.

    …아, 넋 놓고 보다가 침 흘릴 뻔했다.

    도란이 손을 잡지 않은 손으로 입가를 훔치고는 다시 도란이를 쳐다봤다. 시선은 창밖을 보고 있지만, 도란이 눈이 이상하리만치 초점이 없다. 턱을 괸 채 눈을 반쯤 내리깔고 있는 게, 아무래도 경치 감상이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름대로 추측을 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종종 남들과는 다른 발상을 하는 도란이라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가 궁금증이 커져 물어보기로 한 나다.

    “란, 무슨 생각해?”

    “…응? 아, 미안. 심심해?”

    “아니, 심심한 건 아니고 너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내 말에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더니 별생각 안 했다고 대답하는 도란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더 궁금해진다. 왜 꼭 그런 기분이랄까.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나를 불렀으면서 이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끝내는 찝찝함.

    “그 별생각이 궁금하거든? 빨리 말해줘. 무슨 생각 했는데.”

    “…음, 왜 놀이동산 가면 그런 거 있잖아. 찻잔에 앉아있으면 뱅뱅 돌아가는 놀이기구.”

    “응. 갑자기 그건 왜?”

    “여기도 뱅뱅 돌아가는데 사람들이 식사하고 있잖아. 어쩌면 거기서도 잘하면 츄러스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너 그렇게 섹시한 얼굴을 하고 4차원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거냐. 갑자기 얼굴이 주인 잘못 만나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근데 잠깐만. 여기가 뱅뱅 돌아간다고? 무슨 소린가 싶어 바닥을 내려다봤더니 바닥 전체가 진짜로 회전형식이다. 용기를 내어 정면을 쳐다봤더니 아주 천천히 주변 경치가 돌아가고 있다.

    …엄마, 살려줘.

    순간적으로 온몸에 핏기가 싹 가셨다. 가뜩이나 높은 경치를 봐서 아찔한데, 돌아가고 있다는 것까지 깨달으니 미칠 것 같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도란이를 눕히듯 꽉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는지, 내 얼굴이 닿아있는 도란이의 가슴이 움찔거렸다. 그러다 이내 천천히 내 등을 다독이는 도란이다. 그 손길에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여전히 손이 덜덜 떨리기는 하지만.

    그냥 바닥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왜 굳이 돌아가게 만들어서는! 이렇게 안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아니라 몇 배로 무서워졌잖아!

    도란이를 꼭 안고서 창밖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싶어 슬며시 고개를 들었더니 식전 빵을 세팅 중인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뭘까, 저 눈빛은. 마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키스신을 보게 됐을 때의 내 눈빛 같다. 아니, 저 살고 싶어서 그런 거지. 무언가를 저지르려고 덮치듯이 안은 건 아닙니다. 아직 그 정도 이성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얘를 당장에라도 덮치고 싶을 만큼 좋아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좋은 시간 보내라는 듯, 고개를 살짝 까딱이고 사라지는 직원이다. 나이스, 커플석.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남들에게 친구가 아니라 연인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

    언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쁜 마음과 다르게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는데, 쳐다보지도 못하고 묵념 중인 나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보면 자연스럽게 바깥이 보이잖아! 해가 지면 불빛만 보이니까 좀 괜찮겠지만, 아직 밖이 밝아서 내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뼈저리게 느껴진다고.

    짐승의 감에 의존해 더듬거리면서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찾아야 하나.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간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내 입 앞에 한입 크기의 빵이 내밀어졌다.

    “아 해.”

    “…어?”

    “테이블 쳐다보기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거 아냐? 먹여줄게. 아.”

    정곡을 찔렸네. 괜히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게 아니구나. 미동도 안 하고 있었는데 내 상태를 눈치채고. 도란이를 따라 천천히 입을 벌렸더니 입안으로 빵이 들어왔다.

    맛있다. 고급 레스토랑은 빵도 맛있구나.

    아니, 맛도 맛이지만, 도란이를 바로 코앞에 마주하고 있어서 유독 달콤한 것 같아.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이되어서 그런지, 입안에 있는 빵이 유독 따끈한 것 같고, 보들보들한 살결이 어렴풋이 느껴져서 그런지, 입안에 있는 빵이 유독 부드러운 것 같아.

    …너무 좋아.

    그대로 도란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하면 좀 더 맛있게 느껴질 것 같아. 내 추측은 정확했는지 여태 먹었던 어느 빵들보다도 맛있게 느껴진다. 입안에서 사라져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어?”

    “…응.”

    “맛있다니까 다행이네. 여기까지 힘들게 온 보람이 있는 거잖아.”

    도란이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더니 도란이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고 있다. …이대로 있다간 진짜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도란이를 덮칠 거 같다.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이성을 어떻게든 간신히 이은 뒤, 도란이와 거리를 벌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감싸던 포근한 체온이 에어컨 바람에 휘날려 사라져버렸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왜 갑자기 도란이가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이렇게 바로 옆에 있는데. 괜히 분하면서도 오기가 생긴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도란이의 손을 잡고는 어깨에 기댔다.

    “오른손으로 내 손을 잡으면 식사는 어떻게 하려고?”

    “…네가 주는 대로 받아먹을 테니 열심히 먹여줘.”

    “풋, 알았어. 아.”

    도란이는 정말로 코스요리의 처음부터 끝까지 싫은 내색 없이 정성스레 먹여줬다. 나중에는 마치 어미 새에게 얌전히 먹이를 얻어먹는 아기 새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평소 같으면 애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싫었을 텐데.

    그래도 내가 먹기 불편할까 봐 한입 크기에 맞춰 주는 섬세함과 다정한 눈빛이 너무나도 좋아서 자꾸만 나답지 않게 어리광부리고 싶어졌다. 생일 주인공을 부려먹는 것 같아 미안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너무 다정하지 말라고. 쓸데없이 다정한 네가 나쁜 거야, 도란.

    …이 다정함이 오롯이 나에게만 향하는 거면 좋을 텐데. 그런 거면 얼마든지 다정해도 되는데.

    무척 행복한데, 동시에 위태로운 절벽에 걸쳐있는 듯 불안하다. 란이가 나보다 더 다정하게 대하는 상대가 나타날까 봐. 이런 다정함에 홀려 다른 누군가가 란이에게 빠져들까 봐.

    내 마음을 들키면, 더는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을까 봐.

    정말이지, 잠시 언급만 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시큰거린다. 심장에서 시작된 시큰거림이 큰 파동이 되어 온몸을 저릿하게 만든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져 도란이가 보기 전에 황급히 눈가를 닦았다.

    식사가 끝나자, 생일 촛불이 꽂아진 아담한 크기의 케이크가 나왔다. …다행이다. 초코파이로 생일축하 하지 않아도 돼서. 도란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다행이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케이크에는 문구가 적힌 초콜릿 장식이 올려져 있다. 아무래도 사촌 누나가 문구를 정한 건지 ‘겸디, 생일 축하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급조한 건지 생일 축하 문구 밑 부분에 찌그러진 글씨체로 ‘자빠트려!’라고 쓰여 있는 게 보인다.

    생일 촛불을 불던 도란이도 ‘자빠트려!’라는 문구를 발견한 건지 “뭘 자빠트리란 거야.”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잠시 고민하더니 우뚝 서 있는 초콜릿 장식을 검지로 넘어트리는 도란이다.

    …눈치가 없는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직접적인 문구를 저런 식으로 받아칠 줄은.

    “야! 갑자기 왜 그걸 자빠트리고 난리야!”

    “응? 이거 아냐? …누나라면 뭔가 장치를 해놨을 거로 생각했는데.”

    …역시 4차원 사촌 남매. 도란이의 말에 순간적으로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인 나다. 갑갑한 데다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오지만, 저런 엉뚱한 모습도 마냥 귀여워 미소가 지어진다.

    “어쨌든, 도란. 생일 축하해.”

    “고마워.”

    눈을 완전히 감은 채 배시시 웃는 도란이다. 축 처져서 곱게 접힌 눈꼬리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란이를 넘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이 웃음에 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란이가 케이크로 시선을 돌린 틈에 내 손가락에 입을 맞춘 뒤, 그걸 도란이 볼에 살며시 댔다.

    이 남자는 내 것이라는 나만의 표시가 조금이라도 효력이 있길 바라면서.

    ============================ 작품 후기 ============================

    soae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도요 *-_-*

    샤냥꾼님// 덮쳐라(짝) 덮쳐라(짝)

    sn님// ㅋㅋㅋㅋㅋㅋㅋ 알고보니 모든 게 계획된 어장관리...(?)

    빗자루계인님// 헉, 8-8.. 공부...하라고 말씀드려야하는데, 저는 계인님을 자주 보고 싶어ㅇ...

    왔어요! 제가 왔어요! 여러분 /ㅅ/ 수요일에 온대놓고.... 목요일 새벽에 온 저입니다... 저를 매우 쳐주세요 otz...

    다음 연재는 토요일  오후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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