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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42화 (42/97)
  • 00042 39. 절세미녀 예쁜 누님이 누군데. =========================

    케이크에 올려야 할 무스가지고 실컷 장난을 쳤더니, 도란이 말대로 무스가 부족했다. 볼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무스를 부었지만, 틀에 비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맛만 있으면 되지!’라는 정신승리를 시전하고는 케이크를 냉동실에 넣었다. 얼추 마무리를 짓고 도란이를 힐끔 쳐다봤다. 새카만 후드티에 요거트 무스가 군데군데 묻어있는 게 꼭 꽃이 만개한 벚나무 밑에서 구른 것 같다.

    물론 나도 도란이 비웃을 처지는 아니지만. 내 소매에 묻은 요거트 무스를 닦으며 키득 웃었다.

    “이제 2시간 정도 얼려주면 완성이래.”

    “와, 진짜 큰일 해냈다. 수고했어, 조수.”

    “셰프 님도 …는 일단 집 청소부터 하고 옷 갈아입어야겠네.”

    주변을 둘러보던 도란이가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응, 확실히 너무 날뛰었네. 집이 그야말로 개판이 되어있다. 군데군데 묻어있는 분홍색 요거트 무스하며, 아까 내가 사고 쳤던 밀가루까지. 청소하는 것도 한참은 걸리겠구나.

    그래도 둘이 함께하니까 생각보다 청소가 금방 끝났다.

    나보다는 도란이 얼굴에 무스가 많이 묻어있어서 먼저 세수하라고 했다. 욕실로 들어가더니 세면대 벽면에 부착된 거울을 보고 기겁하는 도란이다. …미안, 나도 모르게 신나게 발라버렸어.

    혼자 거실에 있으니 무척 심심하다. 세수하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이러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도란이 태블릿 뺏어서 게임이나 할까.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 카운터로 향했다.

    태블릿을 가지고 다시 소파로 가려는데, 카운터 쪽에서 진동이 울렸다. 뭔가 싶어서 다시 카운터로 가니 도란이 폰 액정이 밝게 빛나고 있다. 누구 전화지? 호기심에 액정을 봤더니 ‘절세미녀 예쁜 누님♥’이라고 되어있다.

    …절세미녀 예쁜 누님? 그것도 뒤에는 색깔 있는 하트까지 붙이고? 얼씨구.

    때마침 세수가 끝났는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나오는 도란이다. 내가 이럴 입장이 아니라는 건 머리로는 너무 잘 아는데, 속은 이성의 명령을 무시하듯 부글부글 끓고 있다.

    “…도란, 절세미녀 예쁜 누님이 누구야?”

    “엥? 그게 뭔데?”

    “나보단 네가 잘 알겠지! 네 폰으로 온 전화니까!”

    최대한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말이 날카롭게 뱉어진다.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는 도란이를 보니 더 열이 받는다. 내가 매섭게 째려보자 도란이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폰을 달라며 손을 내민다.

    …폰 주인이 달라니까 주긴 줘야지. 한숨을 쉬면서 휴대폰을 던지듯 건넸다. 폰을 잠시 만지더니 인상을 찌푸리는 도란이다.

    “…아, 누나가 또 내 폰 가지고 장난쳤네.”

    “무슨…!”

    이 타이밍에 또 전화가 오냐! 씩씩거리면서도 도란이가 검지를 입에 대며 “쉿”이라고 하자 얌전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다.

    “누나! 또 내 폰 가지고… 응? 뭐? 집 앞이라고?”

    “…누군데?”

    “은유 누나. …어? 아냐, 나 바로 밑이야. 금방 올라갈게.”

    전화를 끊은 도란이가 빠르게 현관으로 나갔다. 뭐라 말 걸 새도 없이. 은유 누나라면 분명 도란이 사촌 누나인데. …도란이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걸 아는데도 왜 자꾸 의심이 생기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한심하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면서 의심에 질투에. 가지가지 하는구나.

    …그래도 진짜 사촌 누나 맞나 궁금하긴 하니까 나도 따라가 봐야지. 대충 얼굴을 물로 적신 뒤, 수건으로 벅벅 닦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진짜 도란이 앞에 여자가 서 있다. …뒷모습만 보여서 도란이 사촌 누나가 맞는지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면 볼 수 있겠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아서 계단에서 힐끔힐끔 염탐 중인 나다.

    “…겸디. 너는 산모를 문 앞에서 기다리게 만들어야겠니?”

    “…죄송합니다. 근데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연락했거든? 너 아까 잔다면서 좀 이따 오라고 했잖아.”

    “…기억에 없는, 자, 잘못했… 켁!”

    아주 오랜만에 보는 도란이의 저자세. 그리고 도란이의 목을 능숙하게 조르는 암바. …사촌 누나 맞는구나. 도란이가 쩔쩔매는 모습으로 사촌 누나임을 파악하다니. 어이없는 구별법에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한 나다.

    사촌 누나가 도란이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었다. 콜록거리는 도란이를 이리저리 훑어보시더니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리신다.

    “옷꼬라지는 또 왜 이래. 층간소음 심하다고 아래층 사람한테 테러라도 당하고 온 거야? 언놈의 시키가 감히 내 동생을.”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뭐 만들고 오느라 이래. 근데 나 그렇게 엉망이야?”

    “응, 엄청. 누나가 비싼 돈 들여서 사준 옷, 이렇게 망가트릴래?”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언니. 그 옷 망가트리는데 제가 크게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니 도란이 목숨은 붙어있게 해주세요. 내 텔레파시가 전해졌는지 암바를 걸려던 걸 멈추는 사촌 누나다.

    “…어휴, 생일이니까 봐줬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설마 내 생일이라고 일부러 온 거야?”

    “응. 삼촌이 며칠 전부터 우리 엄마한테 네 생일 대신 챙겨달라고 계속 전화를 하셨거든. 그래서 우리 집에서 제일 한가한 내가 친히 행차했지.”

    “…하아, 아버지도 참. 고모 귀찮으셨겠다.”

    “하나도 안 귀찮아했으니까 신경 쓰지 마. 원래는 울 엄마가 오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못 온 거거든. 어쨌든 울 겸딩이, 생일 축하해!”

    축하의 인사와 동시에 도란이를 꽉 끌어안는 사촌 누나다. 끌어안는 것도 모자라서 찐한 볼 뽀뽀까지. 외국에서 살다 오셔서 그런지 언제나처럼 스킨십이 화끈하시다.

    …새삼 왜 도란이가 스킨십에 둔감한 건지 알 것 같다. 모델 출신인 쭉빵한 누님께 어릴 적부터 스킨십을 당해왔는데, 스킨십이 특별하게 여겨질 리가 있나. 내 추측을 증명하듯, 지금 도란이 표정은 스킨십 당하는 게 아니라 고문당하는 것 같다.

    “…으응, 고마워. 누나아. 근데 말로만?”

    “…말 아니면 뭐?”

    “이를테면 선물이라든가? 없어요, 누님?”

    도란이가 눈을 요염하게 내리깔면서 사촌 누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더니 이내 생글생글 웃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도란이다. 난 그 모습에 심장이 지하까지 쿵 내려앉았다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는데, 사촌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도란이 볼을 힘껏 꼬집으신다.

    “이놈 시키. 하여튼 지 필요할 때만 말꼬리 늘리면서 애교부리지.”

    “아아, 아파. 그래서 선물은? 진짜 없어?”

    “이렇게 아리따운 누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 아니겠니, 동생아?”

    “하하, 못 본 걸로 처리하고 자형한테 반송할게.”

    “이놈 시키가!”

    결국은 누님께 다시 한번 사랑의 응징을 당하는 도란이다. 어째 티격태격하는 게 나랑 이혁이 순화 버전을 보는 것 같다.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남매는 저런 모습이지. 도란이네 남매가 비정상적이었던 거라고.

    “네 선물, 전부 우리 집에 있어. 엄마 거, 내 거, 할머니 거, 삼촌이 준비하라고 한 거, 네 자형 거. 다 합치니까 도저히 혼자서는 못 들고 오겠더라.”

    “…설마 나보고 선물 찾으러 누나 집 가라고?”

    “빙고. 역시 우리 겸디, 똑똑해.”

    사촌 누나의 칭찬에도 표정이 떨떠름한 도란이다. 못마땅한 듯 사촌 누나를 한 번 째려보던 도란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참을 통화하는데도 상대가 받지 않는지 점점 인상이 찌푸려진다.

    “…얘 왜 전화를 안 받지?”

    …쟤 설마 나한테 전화하고 있는 건가? 내 폰 집에 두고 왔는데? 계단을 올라가서 언니한테 인사를 드려야 하나, 아니면,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전화를 받아야 하나.

    짧은 순간, 심각하게 내적갈등을 하다가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계단을 내려가려고 등을 돌리는데 사촌 누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까지 우리만 쳐다보더니 왜 갑자기 돌아가요?”

    “…네?”

    …설마 나, 걸…린 건가?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내 쪽을 바라보던 도란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젠장, 걸린 거 맞는구나!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지? 머리를 풀가동하는데 내 쪽으로 싱긋 웃으며 다가오는 사촌 누나다.

    …와, 웃는 모습 진짜 도란이랑 많이 닮았다. 응? 이게 아닌데.

    “아가씨, 우리 겸디…, 아니, 란이랑 같은 게 옷에 묻어있네요? 혹시….”

    “네? 아, 아니 그게….”

    “어머, 세상에. 얌전한 멍멍이가 살림부터 먼저 차린다더니. 재주 좋다? 겸디?”

    사촌 누나가 나와 란이를 번갈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오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나와 달리, 도란이는 피곤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라는 거야. 이소잖아, 이소.”

    “…이소? 이소가 누구더라. …아! 네 소꿉친구! 어머, 미안해. 엄청 예뻐져서 순간 못 알아봤어.”

    “…아, 아뇨. 괜찮아요. 안녕하세요, 언니.”

    “응,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니?”

    얼떨결에 언니에게 붙잡혀 근황 토크까지 하고 있는 나다. 붙임성 좋으신 건 여전하시구나. 덕분에 오랜만에 얘기를 나누는데도 어색함이 없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언니와 나를 도란이가 영혼 없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소야, 나 잠시 누나네 집에 들렀다 와야 할 것 같은데.”

    “어? 응. 다녀와.”

    “아니, 누나 맘이 좀 바뀌었어. 이따 네 자형한테 부탁해서 너희 집까지 배달해줄게.”

    사촌 누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도란이가 이끄는 손길을 단박에 쳐냈다. 단호박 같은 태도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는지 벙쪄버린 도란이가 이내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왜? 그냥 내가 바래다줄게. 자형 번거롭게 왜 그래.”

    “내 남편 내가 부려먹겠다는데 뭐가 어때서. 됐으니까 나 혼자 가도 돼.”

    “누나 집까지 안 데려다주면 내가 자형한테 혼난다고.”

    “괜찮아. 네 자형, 누나가 이겨.”

    단호하게 거절하던 사촌 누나는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더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도란이가 설득을 하는데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지 반응이 없다. 망부석 같은 사촌 누나의 반응에 안절부절못하는 도란이다.

    “그럼 버스정류장까지라도 바래다줄게.”

    “필요 없거든. 혼자 갈 거야. 그러니까 좋은 시간 보내.”

    “네, 언니.”

    좋은 시간 보내라며 나를 향해 윙크하는 사촌 누나다. 감사합니다! 언니!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사인이 오갔는지 전혀 모르는 도란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좋은 시간?”

    “하아…. 네가 그렇게 눈치가 바닥이니까 그 얼굴로 여자 한 번 못 사귀어봤지!”

    “자기도 자형 만나서 겨우 결혼해놓… 악!”

    도란이 쟤도 은근히 이혁이처럼 매를 버는 재주가 있다니까. 유독 사촌 누나한테만큼은 뇌내 필터링을 전혀 하지 않는 도란이다. 못할 말도 서슴없이 할 만큼 편하니까 그런 거겠지. 어쩐지 아주 조금 부럽다, 아주 조금.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작별인사를 하려는 듯 도란이 볼에 입술을 갖다 대려다, 내 눈치를 보시더니 짧은 포옹으로 끝내시는 사촌 누나다.

    “어쨌든 우리 귀여운 겸딩이, 남의 서방 부려먹었으니 …누나 꼭 국수 먹게 해줘야 한다?”

    “…국수? 뭐, 어쨌든 조심해서 가, 누나.”

    “조심해서 가세요, 언니!”

    “응, 이소야. 다음에 또 보자?”

    네, 다음에 볼 때는 반드시 예비 올케가 되어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내 각오가 전해진 건지 흡족하게 웃는 사촌 누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1층까지 내려가는 걸 지켜보던 도란이가 한숨을 쉰다.

    “…아, 기 빨려. 나 옷 갈아입고 올게.”

    “다녀와.”

    나도 옷이나 갈아입어야겠다. 세수도 다시 해야겠네. 이제야 얼굴이 따끔거리는 걸 느끼는 나다. 케이크 완성되면 뭐하지. 도란이랑 집에서 생일파티 할까, 아니면 밖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계획을 세우며 계단을 내려갔다.

    ============================ 작품 후기 ============================

    빗자루계인님// 제 건강까지 생각해주시다니. 계인님 상냥하셔 /ㅅ/

    sn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결내면 판타지로 장르를 바꿔야할까 봐요.

    독자님들의 사랑에 힘입어서 이틀 연속 연재! :D

    금요일은 드디어 마왕의 남자 재연재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은 주말에..*)

    도란이 사촌 누나와 자형의 러브스토리도 조만간 신작으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D

    과거에도 여전한 눈새본능으로 누나의 연애전선에 서포트롤링하는 도란이를 보실 수 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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